마음을 고치는 한의원

정신과를 찾아가기까지

by 이공



이것은 몇 년 전의 기억이다.


휴학까지 하고 본가로 내려왔지만 내가 정신과에 가는 게 싫었던 부모님은 현대의학 외의 모든 방법으로 내 <마음의 병>을 치료하려고 했다. 그건 마음의 병이니까 병원에 가지 않아도 쉬면 낫는다. 좋은 걸 읽고 좋은 걸 들어라. 그런 우울한 책이나 음악은 듣지 말아라. 약은 한 번 먹으면 계속 먹게 되니 약에 의존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병원 얘기를 꺼낼 때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고 서울에서 왜 혼자 정신과를 다녔느냐고 화를 냈다. 다 기록이 남을 거라고 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게 두려워서 나 역시 오랫동안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기록이 남지 않을 거라고도 했지만, 마침내 간 건 기록이 남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차피 이대로는 죽게 될 텐데 보험이나 기록이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였다. 그것들은 전부 살아야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본가에서 나는 종일 우울해했다. 스스로가 미웠다. 견디지 못하고 휴학한 나 자신이 한심했고, 영원히 제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모든 걸 망쳐버리지 않았을 거라고 수없이 가정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고통은 생생했으며 매순간 죽고 싶었고, 사실 죽고 싶지도 않았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운동이나 일기 쓰기가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 상태가 너무 좋지 않으니 그마저도 전부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운동을 하면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괴로웠고 일기를 쓰면 지난 시간을 돌아보려는 시도만으로도 공황에 이르렀다. 남들이 보기에는 나태하게 집에 가만히 누워 있는 사람이었겠지만 사실 매 순간 지옥불에 있는 것 같았다.


차도가 없자, 부모님도 현대의학을 제외한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 먼 충청도에 있다는 마음을 고치는 한의원에 가게 됐다. 한의사가 사람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을 그렇게 잘 들여다보고 고친다고 했다. 나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병원을 싫어하는 부모님이 좋아할 만한 캐치프레이즈라고는 생각했다. 몇 시간을 차를 타고 촌 동네 속으로 들어가 어느 한옥에 도착했다.


이미 상담을 받고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구석에 방석을 깔고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 한 아주머니가 몸을 숙이고 앉아 있었다. 여기저기 한약통이 얹어져 있고 큰 액자가 있고, 큰 유리창 바깥에 소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고동색의 나뭇바닥은 반질거리고 천장이 높았다. 그 한의사가 냈다는 책도 입구에 진열되어 판매중이었다. 마침내 내 차례가 왔을 때 한의사는 어떻게 왔냐고 물었고, 부모님은 우울증이라는 표현 외의 모든 방법으로 내 증상을 설명했다. 나는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죽고 싶다고 했던 것 같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의사는 우선 맥을 짚어 보더니 아주 미약하다고, 그러나 몸보다는 정신적인 문제가 선행하여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부모님, 이건 마음의 병입니다. 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겠어요. 병원에 가셔서 치료를 받으면 분명히 나아집니다. 이런 방식의 접근보다도 치료를 받는 게 좋습니다.> 정신과 이외의 방법이 있을 거라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왔던 부모님은 말이 없었다. 내게는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돌리고 큰 유리창 밖을 구경했다. 소나무가 용의 꼬리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병들지 않은 소나무는 처음 본 것 같았다.


한의사가 침을 놔줄 테니 맞고 가라고 해서 황토를 발랐다는 어둑한 토굴 안에 침을 꽂은 채 누워 있었다. 그곳은 천장이 낮았다. 부모님과 어둠 속에서 조용하게 이야기를 했다.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태어나기 전처럼 아늑했다. <아빠, 약을 계속 먹어야 한다고 해도 고혈압 약 같은 건 평생 먹잖아. 그냥 그런 거야….> 아빠는 잠잠히 내 말을 듣다가 그래, 그렇네, 병원에 가보자, 말했다. 우리는 토굴을 나와서 소나무를 지나서 몇 시간동안 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엄마는 환약 몇 통과 한의사의 책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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