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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mji Jul 01. 2023

STAX SR-X Mark2, 70년대의 정전형 헤드폰

소소한 음악기계

빈티지 오디오Vintage Audio를 미국에서는 하이파이 트레저HiFi Treasure라고 부릅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평가되고 살아남은 보물 같은 것이므로 트레저란 말이 적합해 보이기는 하나 역사가 비교적 짧은 나라 미국에서 쓰는 호칭이기에 약간은 과장된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일본에서는 레토로レトロ 라는 표현을 주로 씁니다. 영어에서 유래한 단어이지만 일본에서의 의미는 '낡은 것에 대한 취미' 정도가 되겠습니다. 역사가 깊은 나라이거니와 70년대 자국에서 생산된 갖가지 제품이 여전히 사용되거나 유통되고 있으므로 희귀성이 떨어지기에 비교적 가볍게 여기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빈티지 제품을 수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유를 물어본다면 '그냥 좋으니까'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희귀하면 갖고 싶어지는 것이니까요. 다만 빈티지 오디오의 경우는 약간 다른 차원에서 호감을 갖는 듯합니다. 빈티지 오디오의 수집 대상은 대략 1930-80년대 생산된 제품들로 현대 제품에 필적하는 성능을 지니는 제품들입니다. 옛 기술로 생산된 것이고 부품의 열화에 따른 성능저하가 없을 수는 없겠으나 음악이란 '성능평가'로 즐기는 것은 아니기에 몇 가지 이유로 옛 오디오를 찾게 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빈티지 오디오는 당시의 음색을 거의 그대로 재현해서 들려주며 옛 기기를 기술적 차원에서 다시 한번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요새는 오디오 기기의 해상도를 무척 따집니다. TV나 모니터의 중요한 성능 지표가 의 해상도인 것과 비슷합니다. 요새 음원들은 디지털 레코딩으로 음의 질감을 생생하게 담고 있으므로 이것을 그대로 재생하는 고성능의 음향기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다면 과거에 아날로그로 레코딩된 음악을 현대의 음향기기로 들어보면 어떨까요? 디지털 레코딩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아날로그 자기 테이프에 의한 녹음방식이 1990년대 말까지 이어져 왔으므로 이 시기 전까지의 음반들을 아날로그 레코딩의 결과물로 보면 되겠습니다. 참고로 마이클 잭슨의 1987년작 'BAD'는 아날로그 테이프에 녹음된 음반 중 하나입니다.


저는 오디오 전문가가 아니므로 다음의 평가가 정확한 것이 아닐수 있습니다. 저는 이 시기의 음반들을 요새의 고성능 헤드폰으로 듣게 되면 선명하게 들리기는 하나 감동이 없다고 할까, 무엇인가 빠져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쉽게 피곤해지는 느낌입니다. 4K 모니터에서 보이는 출연자의 어색한 화장 끝마무리가 감상을 방해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굳이 등장인물의 땀구멍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는데 이런 것까지 보이니 해상도가 전체 감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는 당시 기술로 잡아내지 못한(또는 잡아 낼 필요가 없었던) 소리들이 재생되기도 합니다. 일본의 장인들이 여러 가지 이점을 포기하면서도 수작업을 고집하는 것처럼 빈티지 오디오를 사용함으로써 얻는 것이 있다. 이것을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그 시대의 음악에 더 어울리는 소리를 들려준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진 속의 헤드폰은 STAX사의 정전형 헤드폰 SR-X Mark2입니다. 다이내믹 스피커가 코일에 부착된 진동판으로 소리를 내는 것과는 달리 정전형electrostatic 헤드폰은  2미크론 내외의 막을 정전기 변화로 진동을 주어 소리를 냅니다. 1938년부터 음향기기를 생산한 소화광음공업昭和光音工業을 전신으로 하는 STAX사는 현재도 꾸준히 신제품을 내놓고 있는 정전형 헤드폰의 명가 중 하나입니다. SR-X Mark2는 1972-75년동안 생산되었으며 가격은 22,000엔이었습니다. 당시 100엔이 현재의 270엔의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환산할 때 이 헤드폰은 현재의 59,400엔, 즉 54만 원 상당의 제품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STAX의 요즘 제품 중 가장 저렴한 것이 59만 원 정도 하므로 그때나 지금이나 구입에 부담감을 느꼈을 듯합니다.


외관을 보면 스테인리스와 가죽이 주된 재료이며 하우징의 검은 부분은 아세테이트 수지로 추정됩니다. 무광플라스틱을 주 재료로 사용하는 요즘 헤드폰과는 다른 이미지입니다. 고급스러워 보이며 현대 정전형 헤드폰의 원형 같은 정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생주파수 대역은 30-25,000Hz로 현대 레퍼런스 헤드폰 중 하나인 젠하이저 HD600의 대역 12-39,000Hz과 비교하면 재생능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으나 인간의 가청 주파수가 20-20,000Hz인 만큼 저역대가 조금 빠지는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헤드폰의 성능이 대역폭만을 가지고만 평가될 수 있는 것은 아닐뿐더러 우리가 느끼는 저음이 70-150Hz 정도 되므로 음감에서의 부족함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음이 공중의 어딘가로부터 가볍고 경쾌하게 들려오는 듯한 인상을 주며 50년 전의 기술로 이 정도의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지난달까지는 Pioneer사에서 1975년에 생산한 헤드폰을 사무실에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70년대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이 사용할 정도로 유수의 스튜디오에서 프로용으로 사용하던 모델로 꽤 좋은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음질만큼 디자인도 멋진 모델이었는데 그 헤드폰이 잘 어울리는 지인에게 주었습니다. 헤드폰을 착용하게 하고 음악을 들려주자 바다를 처음 본 것 같이 놀라는 표정을 보여주었습니다. 헤드폰의 성능도 괜찮았지만 이 헤드폰과 궁합이 잘 맞는 곡을 골라 들려줬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진 속 CDP는 파나소닉의 해외 브랜드 테크닉스Technics에서 1985년 생산한 SL-XP5입니다. 발매시기가 헤드폰의 그것과  차이가 있으나 둘 다 주 재료로서 금속이 사용되었으며 기하학적으로 정형에 가까운 디자인이기에 잘 어울립니다. 이 둘을 같이 놓고 보면 시간을 뛰어넘는 아름다움 -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이것을 '품격'이라고 표현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당시 최고에 해당하는 제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찬찬히 외관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이런 건축을 하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항상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SL-XP5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쓰며 듣고 있는 곡을 소개합니다.

https://youtu.be/6YWpMQvS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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