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전의 끝은 어디인가요

공직사회는 의전이 생명이라던데? 절반의 진실, 그리고 부풀려진 이야기들

by 여의도비주류

최근 며칠 소소한 논란 가운데 하나가 '김동연 경기지사의 호통'이었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컵라면을 끓여온 직원에게 격노하는 모습이 찍힌 영상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이다.


영상에서 김 지사는 회의로 점심을 거른 자신을 위해 여비서관이 컵라면을 끓여두자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한거라고)요? 지사라고 이런 것 부탁하는 것 싫어. 우린 이런 룰 깨자고. 그게 너무 답답해!"라고 소리친다. 이어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 축이 여성 경제활동인구 늘리는 것이다. 유리천장처럼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이어갔다.


이 영상은 7,000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렸지만 "대중의 호감을 사기 위한 위선적인 행위"라거나 "소리치는 모습이 오히려 직장 내 괴롭힘을 연상시킨다"는 반응도 붙으며 논란이 이어졌다.


진실을 떠나 정무적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김동연 지사 인스타그램이 오늘 촉발한 논란은 '정치인 홍보의 끝이 어디인지' 에 대해서도 할 말 많게 하지만, 우선 오늘은 '정치인 의전의 끝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 한다.)




김동연 지사가 받은 컵라면 정도의 의전이 문제일까? 컵라면 정도가 의전은 의전일까?


의원 일정이 많아 대신 사다드린 김밥만 100줄은 가까이 될 것 같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건 도지사나 의원이 아니라도 내 바로 옆자리 앉은 인턴이 바빠서 밥 먹으면 가끔 해주는 일이기도 하다.

(반대로 인턴에게 시키는 일은 요즘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화낼 포인트가 하나 있다면, 내가 라면을 원하지 않는데 물어보지도 않고 라면 물을 부었거나 진라면을 좋아하는 내게 사골곰탕면 내밀었을 때 정도가 아닐까 본다면 너무 하인근성인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떠올릴 때 과한 의전을 떠올린다. 운전기사에 늘 보좌관이 따라다니고, 차문을 늘 열어주고, 심지어 경호원이 붙는다는 상상이라던가, 비행기는 비즈니스 클래스만 타고.

대부분 드라마가 불러온 상상력이다.


조정래 작가 역시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 '천년의 질문'에서 정치인들이 받는 의전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했다.


"의원은 손사레치면서도 어느덧 쉽게 빠진다. 자기에게 베푸는 호의의 일종이니 매번 손사레 치는 건 힘든 일이다. 만약 의원이 의전을 배척하고자 한다면 화낼 정도여야 한다"



단정하긴 어렵지만 몇 년간의 보좌진 생활에서 봤을 때, 의외로 국회의원에 대한 의전 수준의 농도는 '순한맛'이 틀림없다. (간혹 드라마가 불러온 상상력보다 더한 상상력을 일으키는 의원실이 있어 이슈가 되기도 하고 수많은 소문들이 오가듯 예외는 있는 것 같다)


의원들은 혼자 더 많이 다닌다. 국회 내부인이 아니고서야 국회 경내를 다녀도 수행비서를 끼고 다니고, 어딜 가나 누가 따라다닌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혼자 다니는 일이 많다. 차문을 열어주는 일도 웬만해선 안하는 일이 많고, 비행기를 타도 보는 눈이 많아서라도 비즈니스 잘 못 탄다. (당연히 개인차는 있다! 외국 시찰 가는데 왜 비즈니스 안 끊었냐고 바꿔달라고 따지는 의원은 작년에 1번 들어봤다.)


반면 의외로 정부나 지자체, 그리고 공공기관들의 의전이 '매운맛'이다. 의전이 공무원의 생명이라는 말은 '늘공'사이에서는 성경처럼 받들어지고 있다.


국회 복도에 줄 서서 다니거나 좁은 엘베에 가득 타면 차관이나 부처 실국장들이 사무관, 주무관들 안내 받아서 우르르 다니거나, 그보다 숫자가 좀 더 많으면 무슨 조합의 조합장, 이사장 같은 분들이 대부분이다.


좁은 복도를 다 차지하고 지나며 보좌진들의 눈총을 받기도 하고, 가끔 그러다가 아는 의원들이 마주치면 조용히 지적을 받기도 할 정도로 보기 안 좋다.


잠시 경기도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공보관실에 일했는데 처음 시장실에 가던 날 시장 비서실에 있던 처음 보는 6급 늘공에게 혼났다. 이유는 "서류뭉치에 각이 잡혀있지 않다"는 이유였다. 반면 국회에서는 그런 지적을 받아본 일은 없었다. 메신저로 보고하는 일도 많고, 내용을 문제삼지 형식으로 문제삼는 경우는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물론 아닌 의원실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김동연 지사의 분노와 비슷한 분노를 눈 앞에서 본 일이 있었다. 지금은 3선의 중진 의원이 되셨지만, 여전히 젊은 한 의원님께서는 최소한의 의전에도 알러지 반응이셨다.


문 열어주면 혼났고, 문 잡아줘도 혼났다. 억울했다. 내 뒤에 따라오는게 중고딩이라도 잡아주는게 국룰 아닌가? 심지어 나는 내가 모시는 의원에게 꽂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정치인인 내 의원으로부터 받는 시선보다 더 중하게 여기기때문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잡았는데.


그걸로 초반에 혼나기도 많이 혼나고 대들기도 많이 대들었다. 대들던 내용은 대부분 '뒤에 중고딩이 따라와도 이 정도는 해야하고, 내 여친이나 학교다닐 때 스승들께 하던 정도는 하면 안되냐'였다. 의원의 반론은 "내가 싫다는데 왜하냐? 과한 의전은 나를 죽이는 것이다!" 였다. '죽인다'는 표현까지 의원이 했을 정도면 내가 물러났어야 했는데 참 철이 없었다.


그렇게 그 의원을 모시면서 나는 감히 주제넘게 그 의원과 그렇게 부딪히며 2년이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의원의 뜻이 옳고 그름을 떠나 어쨌든 의원의 의정철학이었을텐데 따르지 않은 비서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죄송하다.


김동연 지사의 영상에서 비서관은 아무 말 못했지만, 딱 똑같은 상황에서 나는 당당하게 그렇게 말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 놔두시면 안 되겠냐고"


그렇게 나는 분에 넘치는 말을 자주 했고, 의원은 분에 차는 일들이 참 많았다.

나의 스승은 "네가 의원을 케어해야 하는데, 의원이 널 케어하는 것 같다"고 혀를 차기도 했다.




웬만한 기업 사장이나 기관장들에게 흔한 일일지 모르지만, 의원의 개인적인 일을 해야할 일이 생긴다.

경계가 애매하다.

누가 정치인은 불법과 합법의 담장 사이를 위태롭게 거닐고 있는 존재라는 말을 했다.

의전도 마찬가지다.

의원에 대한 비서의 업무도 갑질과 의전의 담장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걸을 수밖에 없다.

'이거슨 갈비인가 치킨인가' 수원왕갈비통닭처럼, 사적인 일인지 공적인 일인지 애매한 일은 하루에도 몇 번씩 생길 수밖에 없다.


아래 나열하는 경우들이 모두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흔치 않은 일은 또 아니다.


의원의 개인서류 업무를 대신해주는 경우도 잦은 것 같다.

해마다 해야 하는 본인의 재산신고를 의원이 할 여유가 될까.

국회 경내 매점에 못갈 시간이 되어 부탁할 때도 있고,

컵라면이 아닌 도시락을 요청해야 할 때도 있다.


의원에 따라 다르지만 명절선물을 배달하러 다닐 일도 생기고,

명절 시즌이면 의원이 사는 아파트 경비실에 맡겨진 택배를 찾으러 수시로 드나드는 비서도 봤다.

"택배기사에게 말해서 문 앞에 두어달라고 하면 되잖아?" 했더니..

택배가 너무 많아서 문 앞에 놓을 공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어떤 비서는 이따금 의원의 강아지를 돌봐 주기도 했고, 다른 어떤 비서는 의원의 고양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오길 반복했다.


나도 시골에서 갓 당선돼서 온 의원과 함께 집을 알아보러 다니기도 했다.

시키진 않았지만 이따금 그 방에 비번 누르고 들어가 필요한 건 없는지 둘러보고 놓아드린 일도 있다.


어느날 나는 의원의 따님의 기숙사 짐을 옮겨준 일이 있다. 여름 휴가철 의원이 직접 가려다가 갑작스러운 일정으로 못 가게 되자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었다. 의원의 따님이기도 했지만, 내게는 조카나 동생 같은 아이였다.

TV조선 같은데서 앞뒤 자르고 보도했으면 해명조차 못할 '갑질'로 매도되었을 것이다.


의원의 가족여행 안내를 하며 서울사람으로서 서울을 안내해주는 친구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것도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지만, 지나고보니 내 진의와 상관없이 조심했어야 할 일이었다.


비서 입장에서도 의원이 혼자 한다고 좋은 일도 아니다.

장관을 역임했고 얼마 지나 국무총리까지 했던 한 분은 직접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업무를 처리했다.

그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서류가 부족해서 새로 가고, 또 뭐가 안돼서 나중에 다시 가고..

심지어 그때는 선거 기간이었는데, 그 중간에 공단 직원과 통화를 하고 진행상황을 챙기는 건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비서 입장에서도 그냥 첨부터 내가 했으면 나았을 일이, 의원이 직접 하면서 피곤하게 되기도 한다.


개인적인 일인데 하는 게 옳으냐 묻는다면 할 말도 없지만, 또 반대로 내가 처리하는 걸 두고 호통을 치거나 비난할 만한 문제인지는 결코 모르겠다.



반면 명백하게 과한 의전의 사례도 있다.


의전과 관련되어 가장 실수가 잦았던 사람은 황교안 국무총리였다.

총리 시절 노인복지관을 방문했다가 총리가 언제 탈지도 모르는 엘베를 직들이 한참 잡고 있는 옆으로 어르신들이 힘겹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광경이 포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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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황교안 국무총리는 총리 시절 차량을 서울역 플랫폼까지 몰고 들어갔다가 논란이 되었고,

오송역에서는 버스 대기 장소에서 승객들을 태우기 위해 기다리던 시내버스들을 내쫓기도 했다.


어떤 법무차관은 직원이 무릎을 꿇은 채 씌어준 우산 때문에 논란이 되었고, 김무성 전 대표는 공항에서 캐리어를 비서에게 '노룩패스' 했다가 두고두고 욕 먹었다. (수행비서 대하는 태도로 보면 그런 분들 쌔고 쌨다! 오히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걸 알면서 노룩패스한 김무성 전 대표의 솔직함 인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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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목격한 사례 중에서 단연 최고는 최근 여당 지도부 선거에도 출마한 모 의원이다. 예전에도 주요당직을 맡아 국회 본청으로 출근을 했는데, 이른 아침 한산한 본청 로비 앞에 그의 비서가 본청 앞을 한참을 서성이면 잠시 후 검정색 세단이 한 대 도착했다. 그러면 그 비서는 정중히 인사로 예를 갖추고, 그 다음 하는 일은 바로 그 분이 앉았던 뒷좌석 옆자리로 조용히 가 문을 열고 두 손바닥만한 핸드백을 들고 앞서 걸어간 의원을 따라가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늘 '사퇴하세요'라고 강요하다가 정작 지금은 본인이 사퇴하듯 낙선한 그 당의 모 의원도 비슷했다. 퇴근길 의원회관 현관에 배웅하는 비서가 늘 작은 핸드백을 건네줬다. 백팩이면 충격까지 받지 않을 일이었다.




그래도 국회에서 과잉의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의원식당에 의원 없이 보좌진만 갈 수도 있다. 내가 국회에 오기 전에는 의원 전용 엘베가 있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없다. 직접 운전해서 출퇴근 하는 의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고쳐야 할 점도 있다. 아직도 본청 현관 자동문은 의원만 사용할 수 있고, 보좌진은 옆 구석떼기에 마련된 아주 좁고 불편한 회전문을 지나야 한다. 의원과 본청 건물에 갈때는 아무리 의원에 대한 애정이 깊어도 안타깝게도 잠시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건물 출입 때 의원은 출입증을 찍지 않아도 리모컨으로 문을 열어준다.


앞서 말했듯 의원 업무에 공과사가 몹시 애매하기에 어떤 의전이 과잉의전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민원이나 청탁과 비슷하게 보려고 노력한다. 국회 보좌진으로서 누군가에게 민원을 받고 처리할 때, 내가 받은 민원이 옆자리 다른 동료에게 말하기 좀 조심스러우면 그건 민원이 아니라 해서는 안될 청탁이라 물러야 한다. 마찬가지로 의원에게 어떤 일을 행할 때 그게 주변 사람 시선에 신경 쓰이는 일이면 그건 과잉의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압존법의 법칙'을 쓴다. 높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더 높은 사람에게 높임말로 전하지 않는 것처럼, 정치인이 받들어야 할 시민들 볼 때는 의원을 오히려 낮추기도 한다. 어떤 물건을 전할 때 한 손으로 전하거나, 고개를 숙여 인사하지 않을 때도 있다.




여기서 말은 이렇게 해도 결국 국회 비서라는 직업이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 물으면 난 이렇게 답한다.

사장이 하는 일 빼고 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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