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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의도비주류 Aug 10. 2023

사장이 잘 먹으면 비서가 힘들다

국회의원의 밥상, 그리고 사장 매일 보는 직업의 괴로움

직업의 귀천이라는 것을 나누는 여러 기준이 있을 수 있다.

사회적 지위일 수도, 소득일 수도, 워라밸일 수도 있다.


보좌진에게는 위 3가지 모두 '딴 나라' 이야기지만,

직업적으로 가장 힘든 부분은 사장을 매일 보는 직업이라는 점이다.

이 얘길 S그룹 계열사 황OO에게 했다가 '주인보다 마름이 더하다'는 반론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나는 아직도 좋은 직업과 나쁜 직업을 나누는 기준은 '사장을 매일 보는 직업'이라 믿고 있다.

사장이 좋은 분이거나 나쁜 분이거나 이상한 분이든 관계없이 져야할 무게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금 더 보태면 '사장과 밥을 자주 먹어야 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살면서 가장 많은 밥을 먹었던 한 사람이 있는데 내가 모신 한 의원이었다.

어머니와 가장 많은 밥을 먹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주로 내 밥상을 챙겨주셨지 함께 수저를 들지 않으셨고,

여자친구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러기엔 내 연애 활동은 그리 길지도 못했다.



그런데 여의도에서 밥 먹는 일은 특히 어렵다.

여의도 음식은 확실히 맛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있던 맛집들 상당수가 코로나를 못 이기고 사라졌다.

여의도 섬 안으로 한정해보면, 국회 구내식당 밥이 제일 맛있다.

쏘세지 반찬도 자주 나오고 ㅎㅎ



국회의원회관 2층 구내식당 메뉴. 5,500원짜리 식사인데 외부인도 이용 가능하다. 다만, 방호과에서 유난히 시민들에게 까칠하여 출입이 까다롭다. 대신 국회박물관 건물은 출입제한 절차가 없어 이용이 편리한데, 점심시간에 줄이 유난히 길다.




유홍준 교수는 그의 기념비적 저서 ‘나의문화유산답사기-경북편’에서  "경상도 음식이 맛없다는 사실은 경상도 사람만 빼고 다 아는 사실"이라고 했다.


누군가 여의도에서 뭘 먹어야 되냐 물을 때면, 나는 주저없이 '여의도 음식이 맛없다는 사실은 여의도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면서 강을 건너 마포로 가거나 냇가를 건너 차라리 영등포로 갈 것을 추천한다.


음식이라는 것이 그냥 맛 없어도 먹기 힘들텐데 여의도 음식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비싸기까지 하다.


맛없고 비싸기까지 한 음식이 가격이 낮아지거나 품질의 개선 없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를 과장해서 말하자면 '지 돈 내고 먹는 인간이 드물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여의도엔 국회, 금융, 기업뿐 아니라 몇몇 시도의 서울출장소가 있기도 해서 그 분들은 법인카드로 식사를 하실 것이고, 기관 직원들이나 회사 직원들이 모여 서로가 서로를 접대하기도 한다.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의원실이 피감기관에 자주 하는 자료요구 중 하나가 '업무추진비'인데, 그 자료를 조금 상세하게 요구했더니 "힘 있는" 피감기관 직원이 나를 찾아와 "비서관님! 그럼 비서관님 보좌관님이랑 먹은 거 다 제출합니까?"라고 물은 일이 없다. 내 대답은 'YES'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전 얻어먹은 것이 없는데.."


그 직원이 며칠 후 다시 나를 찾아와 "비서관님! 제가 쓴 카드만이라도 좀 빼주십시오"하는데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덧붙여 하는 말이 무례하면서도 차분했으나

"임마! 너거 서장 남천동 살제? 내가 너거 서장하고 사우나도 가고 어디도 가고 다 했어!"라는

영화 범죄와의전쟁 대사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중


내가 직접 목격한 선에서는 룸살롱은 물론이고 노래방이든 사우나든 가는 경우를 본 적조차 없지만,

그 직원이 정중하면서도 위협적으로 한 이야기가 "너네 보좌진 선배들이랑 밥 먹은 거 다 내란 말이지?"로 들려서 씁쓸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청탁에 관해서는 또 너무 긴 이야기라 조금 미루고 오늘은 밥 얘기만 해야겠다.




보좌진 생활은 입이 짧아서 더욱 힘들다.

소주 한 잔에 안주 한 점이 철칙 같아서 일단 많이 못 먹는다.

아직 평양냉면은 맛을 배우지도 못했고, 콩국수 맛은 배운 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젓가락 놓고 있기 민망하여 몇 점 겨우 집어먹었지,

참치회를 가끔 찾아 먹기 시작한 지도 1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도 그런 '어른 맛'보다는 떡볶이, 치킨 같은 '험한 맛'이 좋다.



여의도에 처음 왔을 때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일식, 회, 고기를 많이 먹었더니 이제는 그 음식을 싫어할 정도까지 되었고, 꼭 주량을 절반정도는 남겨뒀다가 친구들에게 달려가 피자, 치킨, 떡볶이 먹자고 보채고 허기를 채웠다.






국회의원도 잘 먹어야 하지만, 보좌진도 잘 먹어야 한다.

지역구를 다니면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과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기도 하는데,

그 관심과 사랑의 대부분은 먹을 것으로 돌아오곤 했다.


의원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면 밥을 주셔도 고봉밥이고, 술을 주셔도 말술이다.

특히 제주도는 아직도 동네잔칫날이면 돼지를 잡는데, 살면서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맛의 부위와 고기를 맛볼 때에 너무나 행복했다.


그러나 보좌진으로서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거 하나는 참 못했다.

배터져라 열심히 먹던 의원이, 절반은 남긴 내 밥그릇과 국그릇을 바라보며 흔들리는 눈빛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밥상에서도 난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주의만 산만했었던 난 어느덧 덩치도 산만해졌는데, 그건 내가 매일 먹는 맥주 때문이 아니다.

모셨던 의원님들의 지역구 어르신들 인심과 사랑 때문이다.

지금도 내 뱃살엔 서울시 OO구의 흔적이 가득 남아 있고, 제주도 어느 마을들에서 먹은 돼지기름이 배어있다.




나와 반대로 모셨던 분들은 모두 음식을 가리지 않았기에 입맛을 더욱 어렵게 했다.

국무총리를 지내신 K 의원은 어떤 국밥이든 국밥류를 너무 좋아하셨는데,

나는 국밥은 잘 먹지 않아서 힘들었다.


두어달 전국을 따라다닌 일이 있어 삼시세끼를 함께 해야 했는데, 너무 국밥만 드셔서는 힘들었다.

메뉴 선택권이 있으면 여름이라 가끔 '국수'였으나 대부분 '국밥'이었다.

강원도 OO군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그 분은 당연하게(?) 국밥을 주문했다.

자연스럽게 참석자들도 통일을 시키는 분위기에서 내가 다른 메뉴를 주문해서 잠시 눈길을 끌었는데, 센스있게 OO군수님께서 나와 같은 메뉴로 넘어와주셔서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았다.


한여름에도 국밥을 많이 드셨는데, 더군다나 그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서 비서들이 애를 먹었다.

그 의원을 앞에 모셨던 비서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국밥이 나오면 찬물부터 부었다고 했다.


오찬 만찬이 유난히 많았던 중진의원이셨는데, 혹시라도 빈 시간이 있으면 운전을 담당했던 친구에게

먹고 싶은 음식이 없냐고 묻고는 그 친구가 먹고 싶은 음식을 드시러 가주셨는데, 그땐 주로 국밥이 아니라 삼겹살이었다.





의원들 중에는 미식가도 많아서 과한 식비 지출이 가끔 논란이 되기도 한다.

의원들 중 일부가 고급진 입맛으로 유명하다.


정치자금은 공개되는 것이라 가끔 언론을 통해 소개 되기도 하고, 공공기관장 업무추진비나 국회의원의 정치자금은 대략적으로 공개가 되어 국민 누구나 볼 수 있기 때문에 동네 맛집을 가르는 기준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형식당 위주이고 자주 각 지역 유지의 식당이나 시군의원 친인척 식당도 꽤 있어서 나는 개인적으로 그리 참고하지는 않는다.





최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여당 A 의원은 한남동 한 클럽에서 1회 식사비용으로 131만 2,000원을 지출했고 야당 B 의원도 종로 한 한정식 집에서 한끼에 131만원을 썼다.


A 의원은 국회 앞 한 호텔 식당을 자주 찾는 등 지난 한 해동안 정치자금을 식대로만 4,000만원 이상을 지출했다고 하고, 마포 모 호텔 종로 호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골집 소유자들이 몇몇 소개되기도 했다.


지금은 국회에 계시지 않은 지난 20대 국회 S 의원은 절약정신이 투철하셔서 주유소 기름 넣는 것마저도 본인이 꼭 차에 탄 상태에서 주유소를 함께 가신 후 카드를 건넸다는데, 식비만큼은 몹시 관대하셔서 나도 국회 생활 5년여간 딱 2번 가본 국회 앞 가장 비싼 레스토랑을 1주일에 한번씩은 가셨다.


한편 정치자금으로 식대를 전혀 지출하지 않은 의원들도 76명이나 된다는데 "정치자금을 밥 먹는 데 쓰다 보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식비는 모두 사비로 쓴다"는 박지원 전 의원의 5년 전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농민운동가 출신으로서 18대 국회에 계시던 K 의원, 19대 국회 C 의원 등 가끔 의원실에서 밥을 해서 드신다는 분들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집밥처럼 먹는다는 건 개인적으로 너무 좋을 거 같지만, 본인이 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인생 통틀어 '단둘'이 가장 밥을 많이 먹었다고 앞서 밝힌 의원은 P의원이었다.

 

그 분은 소위 '핫한' '인기있는' 정치인이라 부르는 곳이 참 많아서 전국을 다니면서, 특히 고속도로 휴게소를 가장 많이 동행한 사람이기도 했는데 아무 음식이나 잘 드셔서 힘들었다.


나는 K 장관실 남 모 후배의 표현따나 '포시랍게' 자란 사람처럼 입맛이 까다로왔고, 보기와는 달리 철저한 가정교육으로 대학교 오기 전까지 길거리 음식은 물론 햄버거 라면도 콜라도 마음껏 먹어보지 못했다.


혹시나 먹게 되어도 경계감과 죄책감을 가지며 먹어야 할 정도였는데, 의원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바로 '라면'이었다.


오죽하면 故 노회찬 의원이 당신에게 "O 의원! 몸에 안 좋으니 라면 먹지 말게!" 였다는 말을 하면서 또 라면을 먹었다. 내가 밥 먹기 싫다거나 라면 먹기 싫다는데 먹인 의원은 아니었지만, 어느덧 나도 라면에 길들여졌다. 그 분을 모신 2년간 나는 지난 30년 먹은 양의 라면보다 많은 양의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집 선반에는 라면이 가득 채워져 있고, 때가 되면 끌려 먹어야 하는 음식이 되었다.


술을 먹음 다음 날이면 가끔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라면 반띵 할까요?"라고 말하고 라면 하나를 시켜 둘이 나눠 먹었고, 가끔 지인들이 분식집에 마주 앉아 라면 하나를 두고 사이좋게 젓가락질 하는 모습을 찍어 SNS에 공유하기도 했다.



그리고 함께 좋아했던 메뉴가 햄버거와 김밥이었고, 둘 다 식성이 가벼워서(?) 어딜 가든 밥 먹는게 좋았다.

스케줄이 많다보니 의원이 식사때를 놓칠 때가 많아 힘들었는데, 김밥 2-3줄을 종류별로 사두고 나눠먹는 게 지나보니 추억이 되었다.


정말 많은 밥을 먹다보니 진로상담, 연애상담까지도 그 분의 몫이 될 정도로 대화 주제가 넓었는데,

그 분을 만난 어느날 '가장 좋아하는 음식'에 관해 물었고 나는 '짜장면'이라 이야기했다.

그때 그 분이 "선거가 곧 오면 지역에서 일을 주로 하셔야 할텐데, 그때 지역에 오시면 제가 짜장면은 많이 사드릴게요!"라고 말을 했다.

실제로 함께 많이 먹진 못했지만, 둘이 밥 때를 놓쳤을 때면 그 분은 나에게 "이럴 때 짜장면 먹어야죠"하면서 사무실 옆 짜장면 집으로 향했다.


다만 나는 '포시랍다'는 평을 들을 정도이니 음식점에 갈 때 깨끗해 보이는 걸 좋아하는데, 이 분은 그런 곳을 가리지 않고 다니셔서 그게 유일하게 힘들었다.



결국 입맛은 직책과 다르다.

'험한 맛'을 좋아하는 의원도 있고,

나처럼 의원도 아니면서 까탈스러운 입맛의 비서도 있다.


내가 잠시 모셨던 K모 의원처럼 식사약속도 잘 안 잡고 구내식당 같은 자리에서 주로 밥을 먹어서,

그 분과 이야기하고 싶을 때면 시간 잘 맞춰서 식당 내려가면 같이 밥 먹으며 얘기나눌 수 있는 분 도 있다.


여의도에서 어떤 집이 맛있냐고 다시 물어도 여의도보다는 마포나 영등포를 추천하겠지만..

굳이 추천하라면 국회 구내식당 밥을 추천하겠다.


가끔 까칠한 방호과 직원을 만나지 않는다면 무사히 경내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이고,

메뉴가 오늘 함박스테이크처럼 좋은 날이면 즐거운 식사가 될 것이다.

국회 일정이 있는 날이면, 서너테이블 건너 자리한 국회의원 구경하는 것도 많은 분들이 재미있어 하지만,

그래서 밥맛 떨어진다는 분들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사족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구내식당들이 있다.

내가 본 가장 비싼 구내식당은 서울대학교 구내식당과 동국대학교 구내식당이었는데,

서울대는 그냥 비쌌고 동국대는 무려 9,000원이었지만 단아한(?) 맛의 채식식당이라 비쌌다.

심지어 대검찰청 구내식당도 누구나 출입이 가능했다.

코로나19를 이유로 얼마 전 출입제한을 한 것까진 들었는데,

제자리로 왔는지 아니면 코로나19를 핑계로 그대로 남은 수많은 불합리 중 하나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모두 시민이 주인이고, 국민이 주인인 곳들이다.

특히 국회는 '국민의 국회'를 표방하는데,

국회 모든 곳을 개방하진 못하더라도 식당 정도는 누구나 편하게 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국회 구내식당에 국회의원들이 있다는 걸 신기할 정도로 국회와 국민의 거리감이 큰데,

더 많은 국민이 더 많은 국회의원과 밥상을 같이 쓰고 마주치면 그 거리감도 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국회에 오기전이나 지금이나 국회가 밥값 못한다는 이야기는 끊이지 않는다.

국회가 밥값을 당연히 해야겠지만,

당장 밥값 못하더라도 국민에게 밥 한끼는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애매한 규정으로 밥 한 그릇 하겠다고 찾아온 국민을 문전박대하는 일은 없어햐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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