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위에 널브러진 남편을 힐끔 쳐다보며 여자는 미역국을 끓였다. 소고기를 넣었다. 조개나 굴 같은 해산물을 넣으면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국이 끓는 사이에 김치 한 포기를 꺼내 접시에 담았다. 그때 남편이 부스스한 얼굴을 비비며 일어났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어젯밤 소파에서 잤네. 안방 두고 소파에서 자다니 술이 약해졌나?”
남편은 어젯밤 잠자리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어젯밤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결혼생활 3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아무리 술자리가 길어져도 반드시 집에 들어왔다. 가벼운 샤워만 하고 다시 출근하더라도 집엔 꼭 들어온다. 깔끔한 성격이어서 와이셔츠를 이틀 연속 입지 못한다.
뜬눈으로 지새운 새벽이 희뿌연 어둠마저 지웠을 때, 여자는 시어머니한테 전화했다. 목소리가 우는 듯해서 마음에 걸렸다. 잔기침을 해봐도 우는 소리가 가시지 않았다.
“아범이 어젯밤 집에 오질 않았어요. 혹 어머님께서 짐작되시는 일이라도 있는지 해서요.”
시어머니의 깊은 한숨 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건너왔다. 침묵이 길어져 어색할 즈음 쉰 목소리가 나왔다.
“이런 얘기까지 해서 미안하구나. 아파트 계단을 한번 뒤져봐. 꼭대기 층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서 살펴보렴.”
시어머니는 감정을 쉽게 숨기지 못했다. 특히 당신의 아들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이 아들과 지내온 시간보다 이제는 아들이 여자와 보낸 시간이 더 길어졌어도 아들의 흠에 대해선 대역죄인처럼 굴었다. 그럴 때 시어머니의 목소리는 낙엽 밟듯 사각댔다. 그 목소리에는 깊이 잠들어 있던 옛일을 깨워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 보이는 마법이 있었다. 30여 년 전 일임에도 그렇다. 시어머니는 아들 결혼에 반대하며 며칠 앓아누웠다. 이혼한 여자를 흔쾌히 받아줄 시부모가 어디 있을까 싶어 여자는 오히려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며칠을 앓던 시어머니는 기운을 차리고 결혼을 승낙했다. 아마도 부모는 자식 못 말린다는 체념이었으리라 짐작될 뿐이었다. 금쪽같은 아들이 시름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여자는 꼭대기 층부터 살펴보며 내려오라는 시어머니의 배려 섞인 당부에 성긴 웃음이 나왔다.
남편은 중간층 계단에서 흐트러짐 없이 반듯하게 누워 자고 있었다. 깔끔한 성격답게 구두와 양말을 발밑에 벗어두었다. 양복저고리도 포개어 옆에 두었다. 두 손을 단정하게 모아 배 위에 올려두었고 빈틈을 보이지 않겠다는 듯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무슨 중대한 일이라도 있는 듯 결기있는 표정이 안타까웠다. 잠시 쉼도 없는, 치닫는 삶이 이러하리라 싶어 측은했다. 여름이라 벌거벗고 자도 춥진 않겠지만 콘크리트 바닥이 차가워 술기운으로 버틴 듯했다.
*
시아버지는 나이 오십 중반부터 술에 취하면 아파트 계단 어디쯤에서 잠을 자는 버릇이 있었다고 시어머니가 나중에 귀띔해 주었다. 남편은 시아버지의 유전자를 어떤 변형도 없이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그 덕에 네가 결혼생활이 나쁘진 않을 거라고도 했다. 시부모 두 분의 결혼생활이 좋았다는 말이 아니란 것은 나중에 알았다.
시아버지는 말술이었다. 두주불사(斗酒不辭). 술을 마다한 적이 없었다. 젊은 시절 탄광에서 일할 땐 깡말라서 갱도에 못 들어가게 했다고 한다. 무슨 힘이 있겠냐며 심부름으로 탄광 일을 시작했다. 나중에 회계일을 맡게 된 것은 순전히 술의 힘이었다. 술자리에서 권하는 술을 마다한 적이 없고 아무리 많이 마셔도 한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이런 사람이 금전 출납 일을 맡아야 사고가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씨가 되었다.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날마다 소주 한 병을 마셨다. 걸음걸이도 온전했고 귀도 밝았다. 시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지고 나서야 술을 끊었다. 이제껏 감기 한 번 앓은 적이 없는 시아버지는 몸의 일부를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부터 곡기를 끊었다. 죽음을 기다렸다.
시아버지가 왜 술이 필요했는지를 알게 된 것은 시아버지의 죽음 후 1년이 지나서였다.
“너희 아버지는 한평생 한 여자만 사랑했다. 70여 년을 넘게 같이 산 나는 그 여자가 아니다. 이름은 모르고 최씨였다. 아범를 가졌을 때 처음 알았다.”
시아버지 1주기 제사 후 음복을 하면서 시어머니는 남 얘기하듯 담담하게 말했다.
“너희 아버지는 쇠락한 선비 집안에서 태어났지. 최씨는 아버지와 한 동네 친구였고. 최씨는 중인 집안이었고 그 지역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부자였지. 너희 아버지 집안은 비록 쇠락했지만 최씨가 중인이라서 싫었지. 최씨 집안에선 몰락한 선비 주제에 가타부타하는 너희 아버지 집안이 우스웠고.”
구순이 넘으신 시어머니는 잔에 있던 제주(祭酒)를 다 드시고도 모자란 듯 퇴주잔에 있던 청주까지 비웠다. 보름달이 창 너머로 창백했다.
“너희 아버지는 최씨와 혼인하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책 읽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책상물림이 무슨 재주로 돈을 벌 수 있겠어. 최씨한테 서찰 한 통 남기고 탄광에 돈 벌려 떠났지. 그나마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니까 심부름꾼으로 써주더래. 술 잘 마시고 우직하고 머리께나 쓴다고 나중엔 경리를 시켜주었다나. 3년 동안 개같이 벌어 돈다발을 들고 최씨를 찾았어. 최씨는 이미 다른 집에 시집가고 아이까지 임신한 상태였대. 남산만큼 부른 배를 본 너희 아버진 대성통곡을 하며 돌아섰다더라.”
시어머니의 입술은 메말랐고 이야기는 새털같이 가벼웠다. 여자 마음에선 하얀 안개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여자의 남편은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만나자는 요청은 은밀했고 무거웠다.
“아버지가 보낸 서찰은 어머니한테 전달되지 않았어요. 최씨 집안에서 미리 단속했거든요. 어머니는 아버지가 징용 가신 줄로 알았어요. 연락도 없이 떠난 아버지를 원망할 틈도 없었어요. 아버지는 몰랐지만 어머닌 임신한 상태였거든요. 뱃 속에 있는 아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서둘러 혼인했어요. 배가 불러 들키기 전에. 3년 지나 돌아온 아버지가 임신한 어머니를 보고 통곡하셨지요. 그때 임신하고 있던 아이는 둘째예요. 살아남은 첫째가 저예요. 당신의 누나이기도 하고.”
젊은 날 대성통곡을 하며 돌아선 시아버지는 청춘에도 등돌렸다. 시소의 한쪽 끝에 최씨를 올려놓고 더없이 그리워했다. 살아 있는 모든 시간에서 그리움은 소멸되지 않았다. 흩어지지도 않았다. 불가해한 형상으로 다가왔다. 술은 그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에서 잠시 떠날 수 있게 했다. 잊을 수 없는 것을 짧게나마 보이지 않게 숨겨 주었다. 목련꽃 활짝 피던 날, 시아버지는 버거웠던 삶을 내려놓았다. 아슬하게 얹혀 있던 숨이 멎고서야 비로소 그리움의 무게는 휘발되었다.
시아버지와 헤어진 최씨는 먹을 수도 잠잘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다. 밤새워 오래 울어야 했다. 시아버지가 그녀의 인생에서 덧없이 빠져나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시아버지를 지켜보았다. 불안하게 서성이던 그녀는 시아버지가 임종하기 일주일 전에 나타났고 오래도록 따뜻한 눈빛으로 시아버지를 지켜보았다. 낮달이 창 너머로 흔들렸다.
시아버지 임종 후 최씨는 곡기를 끊었지만 그녀의 딸, 남편의 배다른 누나는 그녀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극진한 간호 덕에 백 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건강이 회복되었다. 그리고 시아버지 제사 1주기에 맑고 향기로운 청주를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