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꽃피다

by 정재환

“국 안 좋아하면서 웬일로 미역국을 끓였어? 아하. 나 해장하라고? 해장에는 황태국이 더 좋은데.”

소파에서 잤던 사실을 지우려는 듯 남편은 재빠르게 일어났다. 그는 어제 과음을 안 할 수 없었다. 퇴직한 최 이사를 만났다. 덕망이 높아 후배들이 많이 따르던 직장 선배였다. 덕망은 돈 안 되고 교훈도 안 된다. 사람 좋은 것은 먹고 사는 데 방해만 될 뿐이다. 그 잘난 ‘덕망’ 때문에 최 이사는 비자발적인 사표를 내야 했다. 검찰 수사까지 받는 피의자 신분이 되었다.

회사에서 야간수당 청구는 관행이었다. 급여가 박한 직장이어서 회사도 눈감아주는 사안이었다. 실제로 야근이 많아서 회사도 굳이 야근 일수를 일일이 따지지 않았다. 직원들한텐 부족한 월급을 채울 수 있는 작은 욕심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모른 척했던, 문제삼지 않았던 문제가 현실적 문제가 된 것은 정치권을 맴돌던 신임 감사가 낙하산 부임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게으른 자는 먹지도 마라. 게으른 자에겐 물 한 모금 주지 마라. 인간은 본성적으로 게으르고 피동적이며 의존적이어서 끊임없는 채찍질과 훈육으로 가르쳐야 한다. 너희가 가난한 것은 너희가 게으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신임 감사의 신조(信條)였다. 낙하산 감사는 직원들의 반발이 심해 취임에 어려움이 있었다. 신임 감사의 뒤끝이 시작되었다. 그는 눈자위를 희번덕대며 사냥감을 찾았고 첫 번째 먹잇감이 야간수당이었다.

최 이사는 야간수당 관리를 부실하게 했다는 이유로 사표를 요구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분위기였고 담당 임원이었으니 그러려니 했다. 신임 감사는 일벌백계를 주장하며 법적인 판단을 받겠다며 고발 조치를 했다. 최 이사는 도덕적 책임을 넘어 법적 책임까지 받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문제가 대두되었다 하나는 은폐되었고 다른 하나는 무시되었다. 최 이사는 이사회에서 여러 차례 야간수당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임금 체계에 반영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실은 이사회 멤버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은폐되었다. 다른 하나는 신임 감사의 고발 조치를 막기 위해 이사회가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무위에 그쳤다는 것이다. 감사는 자신과 의견이 다르거나 맞서는 이들을 악마화하고 정죄했다. 부정부패한 무리로 몰아가고 마침내 제거했다. 파렴치하고 악하고 교활한 짓을 공정이란 이름으로 행했다. 이런 해석은 무시되었고 최 이사는 제물이 되었다.

직원협의회가 설득에 나섰다.

‘회사는 야근수당을 하루에 한 시간, 한 달에 20시간으로 제한해서 수당을 지급한다. 야근 식대를 주지 않기 위해 하루 한 시간으로 제한한 것이다. 직원 모두가 매일 야근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야근할 때 최소 2~3시간은 일을 한다. 밥도 자기 돈으로 사 먹어가며 일한다. 이걸 월 단위로 계산하면 20시간이 훨 넘는다. 절차적인 문제는 있지만 야근을 안 하고 수당을 받아 간 것은 아니다.’

신임 감사의 논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바람처럼 어디에도 머물지 않았다.

‘회사에서 일을 주면 주어진 시간 안에 마쳐야 하는 것이 직장인의 기본 태도이다. 그걸 못 마치니까 회사가 한 시간을 돈까지 줘가며 일을 시킨 거다. 애초에 야근은 여러분의 무능력과 게으름이다. 회사가 추가적인 시간과 수당을 주었음에도 시간이 더 소요되었던 것은 전적으로 여러분의 능력과 열의가 부족한 탓이다. 더 이상 비겁하게 변명하지 말라.’


검찰 조사를 앞둔 최 이사는 수척했다. 수면 부족으로 눈동자는 흐릿했다. 볼살이 빠져나가 눈자위 윤곽이 뚜렷했고 입술은 쉽게 떨렸다. 목소리엔 불안함과 초조함이 배어 있었다. “나 때문에 회사가 어려움에 처해서 볼 면목이 없구만.”

최 이사는 씁쓸하게 독한 술잔을 비우며 말했다.

“이사님 정신 좀 차리세요. 이제 이사님 감옥에 가게 생겼어요. 무슨 그 잘난 회사 타령입니까? 신임 감사 그 쥐새끼가 이사님을 제물로 삼은 거라고요. 이제 배를 째고 피를 흘린 다음 불에 태워 번제물로 올린다니까요. 모르시겠어요?”

여자의 남편은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을 느꼈다. 이웃에게 잔인한 방법을 쓰는 자는 스스로에게도 잔인해지는 것이다. 피 묻은 땅에선 평화를 일굴 수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통증은 이러한 성찰을 나약함이라 했다. 통증은 해일이 되어 가슴을 고동치게 했다. ‘신임 감사, 이 개자식을 반드시 응징하리라’ 하며 독한 술을 비워냈다.

*


여자의 남편은 서사를 중시했다. 숫자를 다루는 일을 했지만 숫자 그 자체보다는 숫자에 담겨 있는 사연들에 집중했다. 신용평가를 통해 대출 여부와 정도를 결정해야 하는 일의 특성에 남편은 서툴렀다. 대출자가 가지고 있는 담보조건은 만족스러운지, 이자와 원금을 기간 내에 무사히 상환할 수 있을지를 살펴야 했다. 대출자에게 대출금이 얼마나 절박한가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대출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구구절절한 사연이 아니라 상환능력이었다. 회사는 숫자에 담긴 의미를 알려 하지 않았고 해석하지 않았다. 남편은 대출자의 삶의 여정에 집중했다. 왜 대출이 필요한지, 이 정도의 대출로 삶의 행로가 바뀌거나 순항할 수 있는지, 이자를 감당할 수 있는 지에 주목했다. 회사에선 남편이 무해하나 무능해 보였고 때론 불필요해 보였다. 승진보다는 조기 퇴진이 가까워 보였다. 그나마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상사 덕분이었다. 다행히도 직장 상사는 그의 서사를 귀하게 여겼다.

얼마 전 남편에게 새터민이 대출 상담을 왔다. 그는 중국을 경유하고도 동남아 국가 중 한 곳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도착했을 때 그가 처음 한 일은 품에 간직했던 엄마의 금가락지를 파는 것이었다. 그 돈으로 허기를 면할 수 있었고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기관에서 정착 교육을 받고 경제적 지원도 받았지만 날품팔이 일용직과 저임금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고립된 생활에 외로움이 따라붙었고 차별과 배제가 덧대어졌다. 그가 대출 창구를 찾은 것은 궁핍을 면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한 모색도 아니었다. 엄마로부터 온 이메일 때문이었다. 그가 북한을 떠나올 때 중국 포털사이트를 이용하여 엄마의 이메일 계정을 만들었다. 엄마와의 유일한 접점이었다. 그는 거의 매일 이메일에 편지를 썼다. 중국에서도, 잠깐 거쳐야 했던 동남아 국가에서도, 한국에 정착하여 가난한 삶을 꾸릴 때에도 pc만 있으면 이메일에 접속했다. 수신이 확인된 메일은 없었다. 엄마가 pc에 접속하기 어려운 상황일거라 위로했지만 불안감을 쫓진 못했다. 답장은 섬광처럼 왔다. 중국에 있다고. 한국으로 넘어가려면 브로커를 통해야 하는 데 돈이 필요하다고. 여자의 남편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그가 필요한 만큼의 돈을 대출해 주기 위해 규정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신용대출 한도를 넘는 금액이라서 윗사람의 추가 승인이 필요했다. 남편은 윗사람의 사원 번호, pc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고 주저없이 승인 키를 눌렀다. 하지만 승인이 이루어진 그 시간에 남편의 윗사람은 외부에 있었다. 승인이 불가능한 시간에 승인이 이루어졌고 삽시간에 대출이 성사되었다. 부조리했다. 내부감사와 징계가 뻔한 상황이었다. 예상되는 여러 위험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윗사람이 나섰다. 자신이 영업 나간 사이에 승인이 벌어진 것은 맞지만 전화를 통해 보고받았고 자신이 비밀번호를 알려주어서 승인 절차를 밟은 것이라 했다. 자신의 뜻에 따라 대출이 이루어졌다는 데 징계를 할 순 없었다. 남편의 무리한 일 추진이 거슬렸던 회사 인사팀에선 이 밖에도 여러 의문을 제기했다. 남편의 상사는 제기된 모든 의혹을 일부는 무마했고 다른 일부는 무시했다. 남편의 상사는 여자의 남편이 그의 뒤에서 안전하길 바랐다.

여자는 남편을 감싸는 남편의 상사가 궁금했다. 남편의 뜻에 동의해서 자신의 위치를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 행동하는 것일까? 예전 같았으면 그러리라 했겠지만 오십을 넘은 나이가 세상을 그리 쉽게 보는 것을 막아섰다. 여자는 인간관계가 축구공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탄력 있고 단단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은 천천히 빠져나가고 마침내 새로 바람을 넣지 않으면 쓸모없는 물건이 되고 마는 것이다. 모든 관계는 일시적이고 즉각적이어서 지속되지 않고 영속적이지 않다. 눈앞에 없으면 죽을 것 같던 연인도 영원하지 않다. 불같이 뜨겁던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너덜너덜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가볍고 간사하던가? 십 년, 이십 년 맺은 우정도 사소한 말다툼에 무너진다. 남편의 상사는 다른 동기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뭘까?

새터민 관련 징계 건이 마무리되고 여자는 퇴근 시간에 맞춰 남편 직장으로 갔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 계획이었다. 남편한테는 상사분께 인사드리고 싶다고 같이 나오라 전했다. 상사는 눈빛이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덕주씨 파트너 순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짧고 간결한 상사의 인사가 여자에게 도발 충동을 일으켰다.

“덕주씨 누나를 혹시 아시나요? 배다른 이복누나인데.”

여자는 상사의 뒤에는 남편의 이복누나가 있다고 단정했다. 시아버지 임종 앞뒤로 있었던 남편의 행적은 몇 가지 흔적을 남겼다. 그중 하나는 이복누나가 오랜 시간 남편을 지켜봤다는 것이다. 시아버지가 임종하기 일주일 전에 나타났지만 남편의 집안 사정을 오래전부터 꿰뚫고 있었다. 두 자녀의 이름, 나이, 학교 등 자질구레한 사실들까지 알고 있었다. 잊었던 기억 뒤편의 오래된 일들도 머릿속에 새겨 두고 있었다. 또 다른 흔적은 그녀가 특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돈과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남편의 대학 시절부터 지켜봐 온 그녀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을 것 같지 않았다. 개입하여 이끌고 방향성을 잡아 틀어주고 마침내 오늘날까지 남편을 세워주었을 거라고 추측되었다. 개입과 영향력을 통한 도움은 부질없는 것이지만 형편이나 조건을 편하게 하고 좋아지게 한다. 중독성이 있어 떨쳐내기 힘들다.

상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의 질문을 못 알아들은 듯도 했고 무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표정까지 무덤덤하여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담장 너머를 들여다보는 깨금발과 시선은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상사의 선문답은 낯설지 않았다. 남편이 여자에게 보낸 편지에 주술적으로 쓰던 문구였다. 남편은 군대나 감옥 같은 고립되고 갇힌 삶이 강제될 때 이 문구를 조명탄처럼 쏘아올리며 자신이 구부러지지 않기를 바랐다. 여자는 남편의 상사를 끝내 알 수 없었으나 믿을 수 있었다.

여자에게 남편은 시한폭탄이었다. 언젠가 터지겠지만 터지기 전까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우성치며 눈물을 쏟은들 변할 남편이 아니었다. 여자는 남편의 일이 싫지 않았다. 남편은 일을 즐겼다. 뼈를 갈아 넣는 노동이 아니었다. 먹고 살기 위해,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멍에가 아니었다. 일할 때 남편은 활발하고 힘찼다. 대출자의 사연에 귀기울이며 공감했고 대출자에게 기쁨을 줄 수 있었다. 대출자들은 한결같이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무뚝뚝한 얼굴이었지만 일생을 소처럼 일했고 싸우거나 다투지 않고 제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귀가 가벼워 세상 유혹에 휘둘리지도 않았고 큰 욕심으로 붕붕 떠다니지도 않았다. 그들은 정직했고 땀흘려 얻은 것에 만족했지만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남편은 누구 못지않게 성실했지만 대출자들은 그보다 더 부지런하고 정성스러웠다. 그들은 좌절된 욕망을 곱씹으며 아쉬워하고 더 움켜쥐려 아등바등하는 욕심쟁이들이 아니었다. 좌절하며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삶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 남편의 직장이었다. 남편은 그들과 한 상에 둘러앉아 같이 밥을 먹는 식구였다. 남편은 직장에 있을 때 존엄했고 여자는 그런 남편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다.

새터민에 대한 무리한 대출로 고생한 날 저녁, 여자는 남편과 술자리를 가졌다. 둘 다 많이 취했다. 취하면 항상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 둘의 더운 가슴엔 하늘이 열리고 구름이 펼쳐지면서 연꽃이 피었다. 시아버지도 술에 취했을 땐 그러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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