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억울한 천재 이야기 3 _ 앨런 튜링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
1945년 5월 8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앨런 튜링은 종전 소식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앨런 덕분에 2차 세계대전이 2년 일찍 끝날 수 있었고 전쟁으로 희생될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수학과 박사 과정을 마친 앨런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39년 영국의 암호 해독 기관 GC&CS에 참여해 나치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는 세션의 책임자를 맡았다. 그곳에서 앨런 튜링은 튜링봄부(Turing Bombe)를 개발했고 암호 조합의 경우의 수가 1,590억의 10억 배에 달하는 악명 높은 독일의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독일군이 에니그마의 체계를 좀 더 복잡하게 바꾸었지만 앨런 튜링의 튜링봄부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디지털 암호 해독기 ‘콜로서스’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할 수 있었다.
앨런의 연구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영국의 정보력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연구는 1급 국가기밀이었으므로 영국 당국에 의해 모두 폐기가 된다. 남아있는 자료 역시 최소 20년이 지난 뒤 영국 정부의 까다로운 허가가 있어야 공개할 수 있게 되었다. 앨런과 세션 구성원들이 죽을 때까지 관련 연구의 내용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던 것은 물론이다.
천재 하지만 너무 특별했던
앨런 튜링은 어릴 적 3주 만에 읽기를 배우고 미적분을 배우지 않고도 혼자서 미적분 심화 문제를 푸는(진짜 천재 맞다) 등 명석한 두뇌를 자랑하는 그는 영국의 명문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이때 앨런 튜링은 가상 기계를 생각해 낸다. 이른바 ‘튜링 기계’는 모든 질문에 답을 알려줄 수 있는 기계이다. 튜링 기계는 명령에 따라 한 칸씩 움직이면서 무한히 긴 종이에 표시를 해 나가는 가상의 기계이다. 이때 무한히 긴 종이에 적힌 조합들을 통해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앨런이 구상한 튜링 기계의 무한히 긴 띠는 컴퓨터의 메모리에, 기호를 읽는 기계는 컴퓨터의 중앙 처리 장치(CPU)의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
또한 1950년 튜링은 인공 지능에 대한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에서 “만약 사람이 컴퓨터와 대화할 때 그것이 사람인지 컴퓨터인지 알 수 없다면 그 컴퓨터는 지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튜링 테스트를 제안한다. 발표 당시에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오늘날에는 기계의 인공 지능을 판단하는 ‘튜링 테스트’로 쓰이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앨런 튜링의 과학적 안목이 그만큼 앞서 있었다는 것이며 과연 그가 천재였음을 증명한다.
앨런 튜링은 191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어린 앨런은 도로 곳곳에 쓰여 있는 숫자나 기호를 유심히 보았고 자신만의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는 것을 즐기는 특이한 아이였다.
1930년 앨런의 소중한 친구 모컴이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마도 앨런 튜링의 첫사랑이었을) 친구와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싶었던 앨런은 기계가 인식하는 과정의 단계를 매우 세분화시키면 사람이 사고하는 것과 비슷하게 작동한다고 주장했고 이렇게 인공 지능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으나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수학과 박사 과정을 밟았던 시기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그의 조국인 영국은 전쟁의 중심에 휘말리게 되었다. 당시 애국심에 불타는 앨런 튜링은 영국으로의 귀국을 선택했다. 과학자로서 조국을 위해 이바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이때 앨런 튜링의 성적 지향을 알았던 그의 미국인 동료는 동성애가 범죄로 분류되는 영국보다 미국에 남기를 충고했으나 앨런은 듣지 않았다.
전쟁 중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앨런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간다. 그는 학자로서 연구에 충실하기를 원했으나 1952년 동성애 혐의로 영국 경찰에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사법부는 앨런 튜링에게 징역형과 화학적 거세형을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 (천상 과학자였던) 앨런은 감옥에서 징역을 산다면 모든 연구가 중단될 것이라 생각하여 여성 호르몬을 주입하는 화학적 거세형을 선택했다.
여성 호르몬의 영향으로 생기는 신체의 이상 증세에 고통스러워하던 앨런은 전쟁 중 스파이였다는 누명까지 받게 된다. (그의 케임브리지 친구 중에 소련의 KGB 거물 간첩이 있었다) 이 누명에 대해 앨런은 아무 항변도 못하는데 전쟁 중 자신이 활동했던 암호 해독의 임무는 1급 국가기밀이라 보안상 비밀 유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범죄자 신분이 된 앨런 튜링은 국책 연구소에서도 일하지 못하고 출국까지 금지되는 상황에 처한다.
1954년 앨런 튜링은 시안화칼륨(일명 청산가리)에 중독되어 사망한다. 그의 죽음에 대하여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먹고 자살했다는 설, 연구 중에 시안화수소에 노출되어 사망한 사고사라는 설, 영국 정보부가 앨런 튜링의 해외 망명이 두려워 살해했다는 암살설 등 논란이 되었으나 명확한 사망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
앨런 튜링의 입장이 되어 상상해 본다.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었고 그저 능력을 발휘했을 뿐이다. 어릴 때부터 타인의 시선은 신경을 쓰지 않아 늘 구겨진 셔츠를 입고 다니고 잘 씻지도 않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남들의 시선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이 완벽하게 세상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은 자신의 특성일 뿐 그것을 누군가가 불쾌해한다거나 심지어 범죄로 규정을 하고 벌을 내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원하는 것을 마음껏 펼치라고 이야기한다. 정작 어른이 되면 눈치를 봐야 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라고 앨런 튜링은 말했다. 그의 자유로운 상상력은 배은망덕한 국가 기관(국가가 이러는 경우를 우리는 지금도 종종 목격한다. 아주 안타깝지만)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라 생각하니 그저 아깝고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