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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석 더 프리맨 Mar 12. 2022

러시아워(Russia War)에 묶인 명태

[푸드로지] 가만히 적의 '동태'를 살피는 중이다

■ 이우석의 푸드로지 - 명태

생선중 한국인 소비 1위 품목
1980년대 年 16만t 잡혔지만
무분별한 남획으로 씨가 말라
수입량 90% 가량이 러시아산

아가미·내장·알·껍질·대가리
뭐하나 버릴게 없고 영양 풍부
간태·먹태·코다리…‘이름 부자’

담백하고 부드러운 명태살은
게맛살·오징어링 등에도 쓰여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 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 치며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지프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캬~).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 헛 명태라고 헛~ 쯧~.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이집트의 왕처럼 미라가 됐다니. 얼마나 명태를 찬양한 글인가. 찬물에 맛좋은 명태에 대한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노래, 아니 시(詩) ‘명태’다. 양명문이 시를 쓰고 변훈이 곡을 붙였다. 노래는 바리톤 오현명이 부른 것이 유명하다. ‘독도는 우리 땅’처럼 이 안에 다 들었다. 명태의 생태(그 생태가 아니다) 습성이나 생장, 회유 지역, 이후 가공, 식습관까지 모두 설명한다. 실제로 동해에 사는 토종 명태는 수심 400m 정도의 차가운 바닷속에 살며 원산만에서 산란한다.

전유어를 부칠 때도 빠질 수 없는 재료가 동태다.

무분별한 남획과 수온 변화로 남측 바다에 씨가 마른 명태가 전화(戰火) 속에 갇혔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로 국내 수입량의 대부분(약 90%)을 차지하는 러시아산 명태 가격이 폭등했다. 지난 3일 기준 노량진 수산시장의 냉동 명태값은 전주보다 17.87% 올랐다.


            

▲  ‘김봉창 코다리’ 코다리조림



이에 해양수산부는 10만t가량의 냉동 명태 재고량을 보유하고 있어 가을까지는 공급에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본격화되면 한국 국적 해운선사의 극동 운항이 어려워져 수급에 차질이 예상된다. 푸틴 때문에 추석에 동태전 한 점 챙겨 먹기도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젠장)


명태는 한국인과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국민생선이다. 몇 년 전 회귀성 어종인 명태를 인공부화 및 자연부화시켜 방류했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아직은 아득하다. 대구목 대구과 한류성 어종인 명태는 북미 서해안에서 베링해, 오호츠크해, 홋카이도(北海道), 북미 서해 연안 및 우리나라 동해까지 분포하는 북태평양의 주요 수산자원이다. 영어명만 봐도 알 수 있다. 알래스카 폴록(Alaska Pollock)으로 불리는 명태는 북방 해역에서 연간 150만t 정도를 잡는다. 그중 한국이 약 25만t을 소비한다. 마른 명태까지 치면 40만t에 이른다. 생선 소비 1위 품목. 그 때문에 정부에서 수요량을 비축해 둔다. 거의 ‘쌀’급 지위다.


과거 명태 남방한계선은 강원 고성 거진항이었다. 찬물에 살기 때문에 거진항에선 주로 겨울철에 명태잡이에 나섰다. 지금도 여전히 생태찌개집이 많고 어시장에선 명태를 궤짝으로 판매하지만 정작 명태잡이 배는 없다. 명태가 사라진 탓이다.


1980년대 한때 동해에서 무려 16만t(노가리 포함)이 잡혔다. 그러고도 더 수입해 소비량을 채웠다. 국민의 살을 채웠던 으뜸 단백질원이었다.


보통 국과 찌개를 끓이고 내장과 알, 아가미로는 젓갈을 담근다. 이뿐인가. 전으로 부쳐 당당히 제사상에 올렸던 몇 안 되던 생선이다. 마른 포는 그냥 먹기도 하고 국으로도 끓였다. 어떤 이는 교통사고나 악재가 들지 말라고 차 트렁크나 방문에 걸어 두었다. 이런 생선이 또 있을까?


그 많은 이름만 봐도 명태가 우리 생활에 얼마나 친숙한 생선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원래 이름도 명태, 함경도 명천(明川)에 살던 태(太)씨 어부가 잡았다고 해서 이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 외 더욱 많은 명칭이 만들어졌다. 북쪽 바다에서 왔다고 북어(北魚), 얼렸다고 해서 동태(凍太), 누렇다고 황태(黃太), 잘못 말려 꺼멓게 됐다고 먹태(墨太), 대가리가 떨어졌다고 무두태(無頭太), 코에 꿰어 꾸덕꾸덕 말린 코다리, 낚시로 잡으면 조태(釣太), 그물로 잡으면 망태(網太), 너무 말려 딱딱해진 깡태, 어린놈은 노가리(애태), 작아서 왜태(倭太), 1월에 잡은 일태, 2월에 잡은 이태, 당연히 3월에는 삼태 등 한 종류 생선의 이름이 부지기수다.


한국에서 그 존재감이 뛰어난 명태의 이름은 주변에 퍼졌다. 일본에선 다라(たら)라고도 하지만 한자 그대로 써 ‘멘타이(めんたい)’로 읽기도 한다. 특히 명란젓은 한자 그대로 멘타이코(明太子)라 한다. 중국 동북 지방에선 밍타이위(明太魚)라고 부른다. 신기한 것은 러시아에서도 명태를 ‘민타이(минтай)’라 하는데, 당연히 ‘명태’를 발음한 것일 테다.(전쟁이나 멈춰라)


명태의 수많은 이름 중엔 하나 중요한 의미를 둔 것이 있다. 원산만이 아니라 강원 간성군 연안까지 내려와 잡히는 명태 떼는 간태(桿太)라 했는데, 요새 이 간태의 씨가 마른 것이다. 1980년대 초반 최고 어획량(16만t)을 기록한 이후 최근 몇 년간 1t 미만이었으니 아예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동해안 최북단 고성군 항구에는 이제 명태잡이 배도 없다.


정부는 국민생선의 귀환을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자연부화와 인공부화를 거쳐 방사하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명태가 사라진 것은 기후변화로 수온이 높아진 탓도 있지만 사실 무분별한 남획이 큰 원인이다. 별반 상관없을 것 같지만 ‘생맥주’의 유행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1980년대 초반 서울 시내에 갑자기 많이 생겨난 호프집에서 다양한 안줏거리를 고안했다. 그때 생맥주와 함께 어울리는 안주로 노가리를 구워 팔았는데 이게 성공했다. 명태의 새끼인 노가리를 먹어치웠으니 바다에서 명태가 순식간에 사라진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원래 명태를 즐겨 먹지 않던 일본과 러시아, 미국 등도 연육가공식품의 재료로 명태를 쓰면서 그 남획 속도가 더 빨라졌다. 명태는 식품공업에서 쌀처럼 쓰이는 재료다. 담백한 명태살에 맛을 더하면 못 만들 게 없다. 대표적으론 어묵, 게맛살, 생선가스, 피시필릿 등이 있다. 이뿐만 아니다. 패스트푸드 햄버거 체인점에서 만나는 새우버거 패티, 피시버거, 오징어링 등도 알고 보면 죄다 명태 연육이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것으로 변신하는 명태 연육의 마법이다.



명태는 비린내가 거의 없을 정도로 담백한 살과 부드러운 식감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실제로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이 잡히는 생선이다. 명태는 말려도 맛이 좋다. 명태가 북어나 반건조 코다리가 되면 생태와는 다른 특별한 식감과 농후한 맛을 품는다. 시원한 해장국 재료로도 딱이다. 한식에서 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니 국물 내기에 좋은 명태는 다양한 국과 전골로도 소비된다. 버릴 것도 없다. 아가미는 서거리젓, 창자는 창난젓, 알은 명란젓으로 쓰고 대가리로는 육수를 낸다. 껍질은 튀겨서 부각으로, 말려서 뜯어낸 살점은 명엽채라 해서 반찬거리로 쓴다. 삭혀서 식해를 만들면 함흥냉면 위에 올려진다.



이처럼 요모조모 우리 생활에 없어선 안 될 이 귀한 생선이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지금은 또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갇혀 있다. 어서 빨리 욕망이 걷힌 차가운 바다로 명태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래도 강원도 백두대간에선 황태가 노르스름하게 익어 가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다만 적의 동태를 살피고 있을 뿐이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먹을까



◇무교동 북엇국집 =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유명한 북엇국집이다. 오이지와 부추김치, 물김치 등 365일 변하지 않는 반찬이지만 북엇국 한 그릇이 절실한 이들로 기나긴 줄이 늘어선다. 고소하고 개운한 국물에 부드러운 두부, 잘게 찢어 낸 북어 토막이 들어 있다. 밥과 국물, 두부는 원하면 계속 채워 준다. 서울 중구 을지로1길 38. 8500원.



◇태진옥 = 낮에는 밥을 팔고 저녁엔 고기와 술을 차리는 집. 예전엔 생태를 했지만 재료가 사라진 요즘은 동태탕을 끓인다. 투실한 살 토막을 툭툭 던져 넣고 붉게 양념한 동태탕을 보글보글 끓여 낸다. 전골식이라 오래 끓일수록 시원한 동태 국물 맛이 살아난다. 어떤 전골에도 라면사리를 곁들이는 것은 이 집 단골들이 정한 무언의 약속이다. 서울 중구 무교로 17-25. 1만2000원.

                                


◇정정아식당 = 본점은 정아식당이지만 ‘정정아식당’으로 프랜차이즈를 한다. 워낙 닭볶음탕이 유명하지만 코다리 구이도 그만큼 인기가 좋다. 코다리를 기름 두른 번철에서 구워 내고 매운 양념을 얹어 차리면 값비싼 뱀장어구이 못지않다. 코다리는 꾸덕꾸덕 말린 반건조라 씹는 식감이 오히려 싱싱한 생태보다 낫다. 인천 부평구 세월천로40번길 7 정아식당 산곡본점. 1만8000원.



◇김봉창 코다리 = 물고기를 맛보려면 바다로 가는 게 맞지만 이 집 때문에 북한산으로 코다리를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 얼큰한 코다리 조림에 식사를 하려는 이들로 문전성시다. 살집 좋은 코다리와 가래떡에다 조리는 과정에서 그 맛과 기운을 모조리 품은 무가 압권. 살을 살살 발라 양념에 듬뿍 적셔 밥술에 올리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고양시 덕양구 북한산로 515. 코다리 조림 1만2000원.



◇맛나호프&치킨 = 이름은 호프집인데 참 다양한 메뉴가 있다. 각종 튀김부터 분식, 해산물 메뉴까지 있다. 늦은 밤에 만난 코다리 한 마리가 술꾼들을 집에 돌려보내지 않는다. 바닥에 깐 콩나물 위에 시뻘건 양념을 뒤집어쓰고 접시에 들어앉은 코다리찜은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 매콤달콤한 양념이 부드러운 살점과 잘도 어우러진다. 서울 중구 다동길 10.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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