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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석 더 프리맨 Mar 26. 2023

과연 과일은 식재료로 과한 것일까?

[푸드로지] 인류 최초의 식재료 과일, 요리에서의 존재감을 말하다




■ 이우석의 푸드로지 - 과일

나무·풀·넝쿨에서 나는 과일
딸기·참외 등은 과채로도 분류

시고 단맛에 특유의 향 가져
설탕 등 조미료 대신 넣기도

파인애플은 피자나 볶음밥에
배는 국수에 올려 감칠맛 더해

매실 장아찌,일본도시락 필수품
올리브는 유럽인 이름에 쓰기도


왼쪽 사진부터 버터 같은 질감의 과일 아보카도가 들어간 멕시코 토도스 타코, 배 조각을 국수 꾸미 위에 얹어 내는 막국수, 아보카도를 넣고 말아낸 김밥.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는 다른 동물들처럼 열매를 식량으로 삼았다. 고기와 곡물은 구하기 녹록지 않았지만 열매는 주변에서 훨씬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지금도 열매를 열심히 먹는다. 열매는 더 커졌고 맛도 좋아졌다. 다만 주식의 개념에선 살짝 벗어나 디저트·감미료·향료·음료의 용도로 더 많이 쓴다. 우린 이것을 ‘과일(fruit)’이라 부른다. 식물의 생식기관이 열매다. 씨를 보호하는 씨방(子房·자방)이 수정된 것이다. 열매 중에는 과일도 있고 채소·곡물도 있다.

모두 열매라 부르지만 포도는 과일, 오이는 채소, 콩은 곡물로 분류한다. 맛이 좋고 인체에 필요한 다양한 비타민·미네랄 등을 함유한 과일은 인간이나 동물에게 굉장히 좋은 음식이다. 곡물에 비해 과일이 유독 단맛을 내는 이유는 동물이나 곤충이 이를 먹고 씨를 널리 퍼트려주기 바라는 생존 본능때문이다.


과일은 주로 유실수, 즉 나무에 열리지만 넝쿨과 풀에서 맺기도 한다. 성경과 뉴턴의 만유인력 깨우침,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으로 인해 인류사에서 가장 유명한 과일이 된 사과는 당연히 사과나무에서 열린다. 하지만 인류가 좋아하는 딸기류(berry)·수박·참외 등은 나무가 아닌 넝쿨 식물의 열매다. 자랐다 결실을 맺고 나면 말라버리는 덩굴에 달린다.


따라서 계통분류학에선 이들을 과일이 아니라 과채(果菜)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상식 문제에 ‘토마토나 수박이 과일인가?’가 등장한다.
참고로 딸기는 우리가 식용하는 달콤한 부분이 열매가 아니고 꽃받침이 비대해진 것이다. 거기에 박혀있는 작은 씨앗이 실제 열매다. 무화과 역시 마찬가지다. 껍질 과육 내부에 들어앉은 꽃술 자체를 먹는 셈이니 ‘꽃 피우지 않는 과일(無花果·무화과)’이라 이름 지으면 안 될 일이다. 파인애플은 그 자체가 알로에처럼 생긴 풀의 줄기에 열매들이 차곡차곡 덩어리처럼 맺힌 형태다.



실제 식탁에서 이런 분류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식생활에서 과일로 먹으면 과일, 채소로 먹으면 채소다. 과일은 보통 그 생산 주기가 짧다. 몇 년씩 자라는 과일은 없다. 꽃이 피는 개화로부터 꽃잎이 떨어지고 열매가 달리면 익을 때를 기다렸다 바로 수확해서 먹는다. 다만, 보다 맛있게 먹기 위해 수확 후 상온에 보존하는 후숙(後熟)을 거치기도 한다. 온실 재배 기술 발전과 열대·아열대 등 다른 기후 지역으로부터의 수입을 통해 제철 과일의 개념은 점점 상실되고 있지만 그래도 가장 맛있는 계절은 엄연히 있다.


과일은 그대로 먹거나 즙을 짜 주스로 먹는 방법이 가장 보편적이지만 식재료로도 다방면에 사용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시고 단(가끔은 쌉쌀하거나 떫은) 맛을 품고 있고 특유의 향까지 지니고 있어 이를 요리에 응용한다. 보통 식용 과일은 8~15브릭스(Brix) 정도의 당도를 가지고 있어 설탕이나 꿀의 대용으로 사용하기 좋다. 게다가 육류나 곡물에는 부족한 비타민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영양 균형을 맞추기에 최적이다.

우선 세계적으로 요리에 파인애플을 많이 쓴다. 파인애플은 산미·향·당도가 충분해 이를 활용한 요리가 많다. 살짝 그릴에 구워서 스테이크에 가니시로 쓰기도 하고, 잘라내 피자 위에 토핑하기도 한다. 파인애플을 얹은 피자를 하와이안 피자라 부르지만 실은 캐나다에서 개발한 레시피다. 새콤달콤한 맛이 좋다는 이도 있지만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음식 중 하나다.


동남아시아에선 속을 파내 볶음밥을 채운 파인애플 볶음밥이 유명하다. 중국 남부에는 광둥 요리인 탕수육(糖醋肉) 소스를 만들 때 새콤달콤한 파인애플이나 오렌지를 넣어 풍미를 올린다. 한국에선 파인애플 과육 그대로는 디저트로나 먹지만 과즙 속 단백질 분해효소인 브로멜린에 주목해 연육제로 즐겨 쓴다. 파인애플 과즙으로 고기를 재우면 대번에 육질이 연해진다. 브로멜린의 작용이 식육 내 조직을 분해해 시간을 들여 숙성(aging)시킨 효과와 비슷할 정도로 부드러워진다.

이와 비슷한 과일은 키위·배·파파야 등이 있다. 키위에는 액티니딘·배에는 프로테아제·파파야에 든 파파인은 모두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다. 고기를 요리할 때 과일 효소를 연육제로 쓰면 연육 작용도 좋고 단맛이 가미돼 풍미도 한결 좋아진다. 이들 과일은 얼마나 단백질 분해 효과가 좋은지 오래 재우면 고기가 스프레드처럼 물컹물컹해진다.

배는 한식 요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과일이다. 서울·경기 지방의 고급 김치인 보쌈김치나 냉면, 육회 등에 들어가 달콤하고 아삭한 맛을 더해준다. 연육 작용은 물론 소화에도 좋다. 키위는 샐러드 이외에는 형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갈아서 쓴다. 고기를 재우는 양념이나 비빔냉면 양념 등에 들어간다. 열대과일 파파야는 부드럽고 달콤한 완숙 상태로는 과일로 먹고 아삭한 풋 파파야(green papaya)는 채를 썰어 솜땀 등을 만들어 먹는다. 솜땀은 태국의 김치 격으로 대표적 샐러드다.


매실도 많이 쓰는 식재료다. 이른 봄에 꽃을 피우고 6월 경에 수확을 하는데 이를 청매실, 따지 않고 좀 더 놔두면 노랗게 익어가는데 이를 두고 황매실이라 한다. 매실은 장아찌로 담가 먹거나 달콤한 청을 내서 조리할 때 쓴다. 매실은 재배 역사가 꽤 오래된 과일이다. 중국 삼국지에도 매실 밭이 언급된다. 위나라 조조 군대가 후퇴하던 중 지치고 갈증을 호소하자 조조가 “저기 너머(가까운 곳에) 매실밭이 있다”고 외쳤다. 그러자 군사들이 매실의 시큼한 맛을 떠올려 침이 괴어 갈증을 견뎌냈다는 이야기다. ‘망매해갈(望梅解渴)’이란 사자성어로 전해진다. 소금에 절이거나 설탕에 재웠다 먹는데 특히 술로 많이 담근다. 불에 그슬린 매실(烏梅·오매)을 달여서 제호탕을 만들어 먹으면 여름날 갈증 해소에 그리 좋다고 한다.

매실을 가장 많이 먹는 나라는 일본이다. 매실 장아찌 격인 우메보시(梅干)는 일본의 대표적 반찬이다. 매실을 통째로 소금에 절였다가 차조기 잎을 넣어 붉은 물을 들인 염장 보존 음식이다. 우리네 김치처럼 입맛을 살리고 배앓이에도 좋다고 해서 과거엔 일본인들이 해외여행 갈 때 꼭 챙겨가는 필수품이었다고 한다. 요즘도 대부분의 도시락(벤토)에 반찬으로 한 알 정도는 꼭 들어있다. 신맛과 짠맛 그리고 은은한 단맛이 난다. 옛날 굴비처럼 상온 보존할 때는 굉장히 짜서 우메보시 한 알이면 밥을 한 공기를 먹을 수 있었다지만 요즘은 짜게 담그지 않는다. 새큼한 맛으로 입맛을 돋우기 때문에 차 밥(오차쓰케)에 올리거나 주먹밥(오니기리) 안에 집어넣는다.


과일을 장아찌로 먹는 경우는 매실 뿐만이 아니다. 사과나 복숭아 장아찌도 시중에 간혹 나와 있지만 여전히 생소하다. 널리 먹는 음식은 아니었단 얘기다. 대신 참외 장아찌만큼은 예전부터 즐겨 먹어온 음식이다. 참외는 이름 그대로 참 오이란 뜻이다. 과채류로 분류할 만큼 채소의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수박이나 멜론처럼 과일로 주로 먹는다.

참외 속에 든 태좌는 달달한 맛을 책임지고 하얀 과육은 시원하고 아삭한 식감을 준다. 이 과육을 활용해 장아찌를 담근다. 된장에 박거나 따로 염장을 해서 장아찌를 담그면 여름철 잃어버린 입맛을 돋우는 데 최고다. 참외 명산지 경북 성주군에 가면 찬으로 내주는 집이 종종 있다. 수박도 껍데기를 버리지 않고 채를 썰어 무쳐 먹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적으로 가장 식재료 활용도가 높은 과일은 역시 올리브다. 인류가 가장 먼저 대량 재배한 유실수가 올리브란 설이 있다. 무려 약 8000년 전 유적에서 올리브나무 과수원 흔적이 출토되었다. 감람(橄欖)이라 불리는 올리브는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다. 그대로 먹고 기름을 짜는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해 올리브는 과일이지만 우리의 무나 배추처럼 가장 절실한 채소 역할을 한다. 아니 그 이상이다. 그리스나 튀르키예·이탈리아 등에선 어떤 형태로든 올리브가 들지 않는 음식이 없을 정도다.


올리브는 염장해 쓴맛을 제거한 후 다양한 용도로 쓴다. 애피타이저로 그냥 먹기도 하고 초절임·기름에 재우는 등 장아찌로 담가 먹는다. 잘게 썰어 토핑하면 조미료 역할을 한다. 청매실처럼 덜 익은 그린 올리브를 쓰기도 하고 완숙한 검은색 올리브를 사용하기도 한다. 유럽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과일이냐 하면 흔한 올리버(Oliver)·올리비에(Olivier)·올리베이라(Oliveira)·올리비아(Olivia)라는 이름도 바로 이 과일에서 나왔다. 우리로 따지면 김 참외·이 수박 같은 이름이다.

유럽에서 올리브를 다양하게 활용하듯 동남아시아에선 야자수 열매인 코코넛을 다방면으로 쓴다. 코코넛 안에 든 과즙은 주스로 먹고 하얀색 과육은 말렸다가 빻아서 밀가루처럼 쓴다. 빵가루처럼 튀겨내면 바삭한 맛이 난다. 과육을 말리지 않고 갈아낸 것을 코코넛 밀크라 부르는데 실제로 코코넛의 과육은 배젖이라 해 씨앗이 발아하도록 영양을 공급하는 성분이라 밀크라 명명한 것이 들어맞는다. 코코넛 밀크는 크림처럼 과자나 빵을 만들 때 쓰기도 하며 똠얌꿍 같은 수프에 들어간다. 마침 매화꽃이 피는 시기, 창백한 꽃잎이 휘날리고 나면 바로 탐스러운 매실이 영글 테다. 괜스레 흥건히 괸 군침을 삼키며 돌아올 계절의 과일 이야기를 적어본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육회 = 전주옥. 신선한 육회를 달달한 배와 함께 정갈하게 내놓는다. 슬쩍 양념했지만 그리 달지 않아 좋다. 고깃덩어리를 즉석에서 썰어내기 때문에 가만 놓아두어도 물기가 생기지 않고 씹는 맛이 좋다. 아삭한 배는 고기의 씹는 맛을 거들고 감칠맛은 더욱 살려준다. 서울 중구 충무로7길 19 1층. 2만7000원


◇막국수 = 고기리막국수. 요즘 어디가나 막국수 얘기를 하면 이 집이다.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청량한 육수와 고함량 메밀의 구수한 면발이 특징이다. 정갈하고 깔끔한 담음새와 포인트로 배를 썰어 꾸미로 얹었다. 한 조각뿐이지만 그 존재감은 훨씬 크다. 달달하고 아삭한 배 맛이 구수한 메밀면과도 ‘쩡’한 육수 맛과도 잘 어울린다. 경기 용인시 수지구 이종무로 157. 8000원.


◇시나몬사과튀김 = 쿠시카츠쿠시엔. 일본 오사카(大阪)의 명물 쿠시카스(튀김꼬치)를 하는 집. 이 가게는 빵가루를 입혀 바삭하게 튀겨내는 간토(關東) 스타일이다. 육류는 물론이고 채소, 과일까지 모두 튀김꼬치로 즐길 수 있다. 즉석에서 튀김 옷을 입혀 뜨거운 기름에 튀겨낸 사과가 달달하고 아삭하다. 은은한 시나몬 향이 당도높은 사과와 궁합이 좋다.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5나길 18 108호. 2000원.


◇파인애플볶음밥 = 어메이징 농카이. 태국인이 운영하는 집이다. 파인애플 볶음밥은 카오팟쌉파롯이라 한다. 달큼하지만 단무지 정도라 생각하면 된다. 오히려 돼지고기(무)와 새우, 다양한 채소와도 잘 어우러져 입맛을 살려준다. 매콤하고 짭조름한 피시 소스를 넣으면 더 좋다. 서울 마포구 동교로 156-11 1층. 1만3000원.


◇보쌈김치 = 충무칼국수·보쌈. 화려한 보쌈으로 은평구 일대를 평정한 집이다. 부들부들하게 삶아낸 삼겹살 수육 한 접시에 굴과 밤, 배를 잔뜩 넣어 버무린 보쌈김치를 접시에 쌓아 따로 내준다. 시원한 멸치육수의 칼국수도 맛이 좋다. 상호 속 ‘충무’가 포인트다. 낙지와 꼬막을 넣은 보쌈김치도 있다. 서울 은평구 은평로 193 2층. 3만2000원.


◇냉면 = 동무밥상. 이름도 ‘랭면’이다. 북한을 나오기 전 현지 요리사로 지냈던 윤종철 오너 셰프가 차린 집이다. 합정동에 있다가 얼마 전에 고양시로 옮겼다. 백김치 국물과 고기 육수, 장을 조합한 육수에 순면에 가까운 메밀 면을 말아낸다. 꾸미로 얹은 소고기 수육 아래 배 한 조각이 숨었다. 배는 단맛보다는 소화를 돕기 위함이다.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대로 1032.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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