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로지] 무더위 보양식 오리고기
■ 이우석의 푸드로지 - ‘스태미나식’ 오리고기
불포화지방산 소고기 10배
中엔 혀·발바닥·내장 요리도
바삭한 껍질의 베이징덕 유명
佛, 오리기름에 고기절인 콩피
日선 살 저며 샤부샤부로 즐겨
죽염 창시한 일제시대 명의인
김일훈이 유황오리 전파하며
찜·진흙구이 레시피 등 유행
복중이다. 곧 입추지만 말복까진 좀 더 남았다. 요즘 복달임 메뉴 중에는 닭고기 대신 양고기, 오리고기 등으로 대체하는 트렌드가 있다. 늘 먹는 닭 대신 이들 고기는 입맛도 살리고 건강에 좋은 고기로 소문난 까닭이다.
오리. 인류가 가장 많이 소비하는 가금류 중 하나다. 정확히는 닭에 이은 2위. 칠면조나 거위, 타조 등이 뒤를 잇는다. 마릿수로 따지자면 가축 육류를 모두 합쳐도 당당히 2위에 해당한다.(1위 닭은 600억 마리) 무게로는 돼지고기나 소고기에 뒤처지지만 연간 무려 26억 마리를 도축하는 까닭에 그렇다. 게다가 지속적으로 소비가 성장하고 있는 육류다.
같은 가금류지만 고기의 모양과 맛은 닭과 완전히 다르다. 적색육으로 색이나 식감이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가깝다. 물에 사는 조류답게 껍질 부위 아래에 지방이 많은 편이지만, 조리 시 특유의 기름 냄새가 거의 나지 않으며 고소한 맛을 낸다.
일단 오리고기는 육식을 금하는 불교 이외엔 종교적 금기가 없어 어떤 문화권에서도 두루 쓰이는 육류다. 할랄(이슬람)이나 코셔(유대교)에선 오히려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이 쓴다. 코셔의 식용유는 상당량 오리 지방에서 추출한다.
프렌치 레스토랑이나 이탈리안 및 중화 요리 등 외국에서 보편적 식재료로 널리 알려졌지만, 삶거나 구워 먹고 훈제로 먹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가 가능해 한식 식재료로도 즐겨 쓴다. 특히나 오리 기름이 불포화지방산 비율이 높은 까닭에 몸에 덜 나쁘다는 인식이 있어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요리로 인기를 끌고 있다.
소고기는 누가 사줘도 먹지 말고, 돼지고기는 사주면 먹고, 오리고기는 자기가 돈을 내고도 사 먹어라
는 말이 있을 정도다. 많이 먹어도 그나마 낫다는 뜻이다.
오리고기의 불포화지방산 함량은 소고기의 10배 정도에 달한다. 불포화지방은 체내에서 콜레스테롤로 전환되는 비율이 낮다. 하지만 실로 엄청난 지방층을 두르고 있어 구울 때 흘러내리는 기름은 같은 무게의 소고기나 돼지고기보다도 훨씬 많다. 보통 오리를 화덕구이나 훈제 형식으로 구워내고 튀김으로 잘 쓰지 않는 이유다. 기름 덩어리에 기름을 더하기 뭐한 까닭이다.
오래 구워내면 기름이 빠지며 살코기 부분이 뻑뻑해지는 탓에 완전히 바싹 구워내지 않고 먹기도 한다. 닭고기와는 달리 오리고기는 살짝 덜 익혀도 괜찮다. 복중에 스태미나 식으로 즐겨 먹는다. 다만 닭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닭 요리보다 값이 좀 더 비싼 것이 흠이다.
중국에서도 오리고기는 고급육으로 통한다. 살코기는 물론이며 혀, 발바닥, 내장까지 활용한 다양한 오리 요리가 있는데 특히 베이징 덕(Peking Duck)으로 알려진 화덕구이는 중국을 대표하는 궁중요리다. 원래 이름은 베이징카오야다.
공기를 불어넣어 껍질과 살을 분리하고 화덕에서 바싹 구워낸 다음 얇은 채소와 함께 얇은 밀 전병(煎餠)에 싸서 먹는다. 오리를 잡아 양념을 바르고, 말리고, 굽는 등 밑 손질에 시간과 손이 상당히 많이 가는 고급요리다. 살을 붙여서 썰어내지만 보통은 맛있는 껍질만 챙겨 먹는다. 베이징 현지에선 취안쥐더(全聚德)가 가장 유명한 베이징카오야 노포로 알려졌다.
미식이라면 결코 물러서지 않는 프랑스에서도 오리는 자주 쓰는 식재료다. 스테이크나 스튜, 오리간 파테 등 다양한 요리가 있는데 특히 오리고기를 오리 기름에 절인 남부식 콩피(confit de canard)가 유명하다. 오리에 기름이 엄청나게 많은 특성을 활용해 개발한 레시피다. 동물 학대의 대표메뉴인 푸아그라(거위의 지방간)를 만들 때 오리의 간을 쓰기도 한다.
포르투갈에도 오리고기 육수로 지은 밥이 있고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도 오리고기를 이용한 다양한 메뉴가 있다. 일본에서도 오리를 즐겨 먹었다. 불교의 영향으로 가축과 가금류의 육식을 금지한 16세기 일본에선 물갈퀴가 달린 오리(가모)는 ‘물고기’라고 우기며 잡아먹었다. 신념과 집념이 서로 배치된 경우다. 맛이 좋으니까 어쩔 수 없었을 게다. 육수를 내서 소바를 말거나 살을 저며 스키야키(鋤燒)와 샤부샤부를 해먹는다. 오리에 대파를 넣은 면 요리 가모난반(鴨南蠻)이 유명하다.
일본에서는 오리고기가 대파와 어울린다고 생각해 ‘오리가 파를 지고 나타난다’는 속담이 있는데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다는 것과 비슷한 뜻이다. 이처럼 오리는 고급육으로 인식돼 여전히 고급 온센료칸(溫泉旅館)의 가이세키(會席) 요리에도 자주 오르는 식재료다.
동아시아 다른 나라와 비교하자면 우리나라에서는 사실 오리를 그리 즐겨 먹지 않았다. 양고기나 염소까지도 가끔 언급된 것에 반해 오리고기는 문헌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19세기에 들어서야 오리를 키워 탕 요리를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인산죽염을 발명한 한의학자였던 인산 김일훈(1909∼1992)이 유황을 먹고 자란 오리를 조리해 먹는 민간요법을 개발해 유황오리가 널리 알려졌다. 오리가 최초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이다. 이때 오리찜이나 진흙구이 요리법이 퍼졌다.
프라이드 치킨 이전에 닭 요리란 백숙이나 계삼탕(삼계탕)이 전부였듯, 오리 역시 오리탕이 기본이다. 오리를 잡아 푹 고아내, 곰탕처럼 기름 가득한 탕국을 즐겼다. 옻나무를 넣고 삶아낸 옻오리는 오리 백숙의 한 종류다.
오리탕은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에서 즐겨 먹는 향토요리다. 광주에는 들깻가루를 잔뜩 넣은 오리 국물에 미나리를 수북이 얹어 먹는 방식의 오리탕이 인기다. 아예 오리탕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1980년대 오리 식육업체가 ‘날개 달린 작은 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오리고기를 건강 메뉴로 소개하며 다양한 메뉴를 전파했다. 당시 주부 잡지들은 앞다퉈 오리고기 레시피를 실었다.
요즘은 오리 로스, 훈제 오리, 수육, 진흙구이, 불고기 등으로 입맛에 맞춰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오리 날개 부위만 기름에 튀겨서 파는 오리 날개 튀김도 인기다. 바삭한 식감과 농후한 감칠맛이 치킨보다 좋아 별미로 통한다.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 쓰인 글귀처럼, 생각보다 오리는 우리 삶에 가까이 있었다. 기나긴 장마와 무더위로 보양식이 절실한 요즘, 한 끼 식사로 활력을 찾는다면 그게 모두 오리 덕(duck)이다.
놀고먹기연구소장
‘하카’의 베이징 덕.
■ 어디서 맛볼까
◇금강산 오리 = 훈제 오리, 오리 불고기를 비롯해 다양한 오리 메뉴를 파는 집. 부드럽게 훈제한 오리를 보쌈김치와 함께 내는 오리 보쌈은 다른 집에서 찾아보기 힘든 메뉴. 보쌈 전문점 못잖게 달달하니 맛좋은 김치가 기름진 오리 수육과도 잘 어울린다. 점심에는 오리 정식도 판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20길 15 지하 1층. 오리보쌈 4만8000원.
◇영미오리탕 = 그야말로 ‘광주 오리탕’의 본가 대접을 받고 있는 곳이다. 계절과 관계없이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미나리를 진한 국물에 적셔가며 오리탕을 즐기고 있다. 오랜 시간 고아낸 오리도 제법 크지만 들깻가루가 들어가 부드러우면서도 풍미가 좋은 국물이라 막판에 밥을 볶아 싹싹 비우게 만든다. 양이나 가격이 부담된다면 반 마리 메뉴도 있다. 광주 북구 경양로 126. 6만 원(1마리)
◇하카 = 베이징카오야를 광둥식으로 재해석해서 파는 홍콩 광둥식 캐주얼 다이닝 식당이다. 중간 크기의 오리에 양념을 발라 오랜 시간 구워내 속은 부드러우면서도 껍질은 달콤하고 바삭하다. 다양한 요리가 있어 오리와 곁들여 맛볼 수 있고 홍콩에서처럼 각종 딤섬과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조선호텔 홍연과 모트32 서울 출신 셰프 간 협업으로 개점 전부터 입소문을 탄 집이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9길 6-10 1층. 10만 원.
◇자연농원 = 창원 주남저수지 인근에는 오리집이 많다. 북면자연농원은 시원하게 끓여낸 오리탕과 매콤한 오리주물럭이 맛있는 집이다. 오리탕은 빡빡한 국물의 전남 스타일이 아니고 시원한 육개장 전골 식으로 낸다. 졸깃하고 존존한 오리주물럭을 집어먹고 칼칼한 양념에 밥을 볶으면 소문난 밥도둑들은 저리 가라 할 정도다. 경남 창원시 의창구 북면 천주로 201-12. 4만5000원.
◇금수강산 = 유황오리에 각종 한약재를 넣고 푹 고아낸 백숙인데 묵직하지 않고 시원하고 구수한 맛을 낸다. 살짝 진한 국물에 커다란 오리를 통째로 넣어 오랫동안 끓여낸다. 얼마나 오래 고았는지 오리 다리를 들면 입술로도 뜯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다. 곁들여내는 각종 찬도 솜씨가 좋다. 경기 연천군 신서면 고대산길 60. 동충하초 보양백숙 8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