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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게도 괜찮은 이름을 허하라

[문화일보 연재]이우석의 푸드로지- 음식 이름 짓기에 관한 보고서.

by 이우석 더 프리맨


이름, 성명(姓名), なまえ(名前), Name, Nome, Nombre.

인식을 위해 사물에 붙이는 말이다. 매우 중요하다. 장황한 설명을 줄이고 혼동을 방지한다. 그래서 우린 의식주처럼 중요한 것을 만들 때 쓰는 ‘짓는다’를 이름에도 붙인다.

각 민족마다 사람 이름 짓는 법이 있다. 성이 있고 이름이 붙는 전형적 부계(父系) 작명 방식은 주로 많은 이들이 모여사는 농경 정착사회에서 쓰였다. 그리고 (근친혼을 방지하기 위해) 이름에 누구의 아들 임을 밝히는 경우가 있는데 주로 인구밀도가 낮은 유목민이나 산촌, 한랭기후대 거주 민족의 작명법이다.


사람 이름이야 그렇다 치고 음식 이름은 어떻게 지을까. 먹을 것이 모자라던 시절에 그냥 밥(Meal)이며 식량, 음식(Food)였지, 이름이 어디 있었을까. 이름이란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을 때 붙이는 것이다. 식량의 잉여 생산물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하며 비로소 음식에도 이름이 생겨났다. 이른바 ‘메뉴의 탄생’이다.

식재료와 기본 조리법을 붙이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구운 오리, 닭구이, 삶은 돼지 등이다. 음식문화가 일천한 경우 당연히 이같은 방법이 많이 쓰이지만, 오히려 외식업이 발달한 경우에도 그렇다.

어떤 음식이 나오는지 손님에게 정확하게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영문법과 중국 한자식 어순으로 [조리법+식재료]가 가장 익숙하다. 구운 쇠고기(Grilled Beef), 구운 닭(Roast chicken), 튀긴 닭(Fried chicken), 수육(熟肉삶은고기), 차오판(灼飯볶음밥) 등이다.
어법 상 한국과 일본은 반대다. 식재료가 먼저 나온다. 달걀 부침, 닭구이, 제육볶음, 다마고야키(玉子巻き·계란말이), 모츠니(モツ煮·곱창찜) 등으로 간다.

간혹 한국에서도 한자 어순을 따른 경우를 발견할 수 있는데, 주로 중국음식이나 문자 쓰기 좋아하는 양반이 많이 살던 지역에서 등장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유림이 많이 살던 대구 경북에선 아직도 닭찜이 아닌 찜닭, 갈비찜 대신 찜갈비 등으로 쓴다. 대구 무침회나 안동 누른국수 등도 마찬가지다.


그 음식이 탄생했거나 유난히 발달한 지역이 앞에 붙어 고유한 음식 이름이 되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양저우볶음밥, 뉴욕 치즈케이크, 프랑크푸르터 소시지, 비너(비엔나식) 슈니첼,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등이 이에 해당한다.

뉴욕/시카고 치즈케이크,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디트로이트 피자, 텍사스 바비큐 등 우리에게 익숙한 [지명+음식] 이름들이 있다.


토마토와 모차렐라, 바질 등으로 이탈리아 삼색기를 상징하는 인스탈라 카프레세(Insalata caprese) 역시 ‘뭔가 있어’ 봬지만 카프리식 샐러드(CapreseSalad)란 뜻에 불과하다.

지역명과 요리가 함께 들어간 이름, 평양냉면

이런 이름들은 익숙해지면 알아듣기에 좋다. 전주비빔밥, 평양냉면 등은 이름을 들으면 바로 조리법이 연상된다. 함흥냉면하면 고구마 전분을 넣은 가는 면발이 떠오른다.


나폴리에서 정작 잘 모르는 나폴리탄 파스타(일본에서 만들었다)나 프렌치 프라이드 포테토(벨기에가 원조), 멕시칸 샐러드(미국에서 시작), 하와이안 피자(캐나다에서 유래) 등의 경우는 실제 사실과 정통성에선 비껴났지만, 아무튼 고유한 이름이 되어 레시피나 맛을 대략 예상할 수 있긴 하다.


그릇이나 조리기구가 이름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철판 스테이크, 낙지 철판, 된장 뚝배기, 항아리수제비, 돔베고기(도마수육), 철판구이(데판야키), 돈가스 나베, 차완무시(찻잔 계란찜), 도빙무시(주전자 찜), 훠궈(火鍋) 등이 대표적이다.


아무튼 음식 이름이 이런 식으로만 구성된다면 너무도 재미없는 일이다. 주거와 복식과 함께 음식은 인간 생존에 필요한 ‘식문화’로 자리매김했는데 이처럼 단조로운 이름 일색으로 전승된다면 안될 노릇이다. 특히 식재료 이름만 병렬해놓고 그것이 메뉴 이름으로 굳어지면 정말 안타깝다.
피시앤드칩스(물고기와 튀김), 슈니첼(Schnitzel 얇은 고기), 슈바인스학센(Schweinshaxe 돼지무릎), 브리스킷( 양지)에 대체 무슨 인간성이 들었을까. 그나마 가끔 역사인문학적 음식 이름이 있어 식탁이 조금 더 즐겁다.


너무 맛있었던 나머지 고기(등심Loin)에 작위(爵位)를 내렸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설로인(Sirloin)과 목동들의 음식이라는 가우초 그릴 등이 있다.

이탈리아 왕비 이름을 딴 마르게리타 피자는 그 음식이 생겨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백적녹 삼색기의 고명에 더욱 입맛을 다시게 된다.

동파육

중국에도 소동파의 이름을 딴 ‘동파육(東坡肉)’이라던가, 도를 닦는 스님도 그 냄새를 맡고 담장을 넘을 만큼 맛있다는 퍼티오치앙(佛跳障), 걸인이 남의 집에서 닭 서리를 하다 고안했다는 규화자계(叫化子鸡·혹은 부귀계라고도 한다) 등이 있다. ‘추이샤’도 있다.

살아있는 새우를 술에 넣었대서 추이샤(醉蝦·술 취한 새우)라니. 얼마나 흥미로운가.


커다란 고기 경단에 잔뜩 위엄이 서린 스즈터우(獅子頭·사자 대가리)는 아무래도 ‘다져서 뭉친 돼지고기’보다 맛있어 봰다.


푸젠성 사투리 ‘밥 먹어’(食飯·chia̍h pn̄g 치아픙)에서 생겨났다는 짬뽕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도 이야기가 많다. 청나라 말 중국 청두에 살던 진(陳)씨 할머니가 두부에 다진 고기와 매운 양념을 넣고 볶아 팔았는데, 그래서 생겨난 것이 마파두부다. 곰보(痲) 할머니(婆)가 만든 두부 요리라는 뜻이다.


이름 속에 재미난 스토리가 담겨있으니 그 어떤 조미료보다 진한 풍미를 낸다.

소고기 안심 부위를 구운 샤토브리앙(Châteaubriand)도 동파육처럼 사람 이름을 땄다. 사실은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였던 샤토브리앙 F.R 남작의 요리사가 그 주인공이다.

영국 해군성에 근무했던 존 몬터규 샌드위치 백작의 샌드위치(Sandwich)는 영국에서는 보기 드문 인문학적 요리 이름이 됐다.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정당’ 등 시민단체나 정당에도 매우 직관적이면서도 이상한(?) 이름 붙이기를 즐기는 일본. 그래서인지 일본 음식의 이름에는 낯선 표현이 많다.

너구리우동, 여우우동, 부모자식 덮밥, 쟁기구이, 남남덮밥 등인데 어감이 퍽 이상하다. 원래 이름은 차례로 다누키우동, 기츠네우동, 오야코동, 스키야키, 타닌동 등이다.

가장 유명한 스키야키(鋤焼)는 과거 일왕에 의해 육식이 금지됐을 때 쟁기(鋤)에다 고기를 구워먹은데서 유래했다.

이 이상한 우동들은 너구리(다누키)와 여우(기츠네)가 좋아하는 튀김가루와 유부(정말 그럴까)를 얹었대서 붙은 이름이다.

닭고기와 계란을 쓰는 오야코동은 부모 자식이 한 그릇 안에 들었다는 뜻이다.

물론, 독일에도 죽은 할머니(Tote Oma)라 부르는 소시지 감자요리가 있긴 하지만 오야코동은 매우 기괴한 이름이다. 부모자식 덮밥이란 뜻의 오야코동(親子どん)은 닭고기와 계란이 함께 들어간대서 붙인 이름인데 꽤 괴기한 의식의 흐름이다.

여기다 닭고기 대신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쓰면 ‘남남 덮밥’(他人どん)이 된다니 이도 신기하다.

일식, 특히 스시에선 식재료를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일부러 기피하는 듯한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일례로 초절임한 밥은 샤리(シャリ), 그 위에 얹는 재료는 네타(ネタ)라 부른다. 원래 재료는 다네(たね)지만 거꾸로 은어처럼 부르는 것이 정착했다.

생강도 쇼가(生薑)대신 가리(がり)를, 와사비는 ‘눈물’이란 뜻의 나미다(なみだ)로 부르고 있다.

참치 붉은 살(赤身)의 김밥 재료는 시뻘겋게 달군 쇠 ‘데카(鐵火)’란 이름을 쓴다.

인디언 이름짓듯 매우 드문 현상이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 한식에는 어떤 인문학적 이름이 있을까.

가장 유명한 것은 탕평채(蕩平菜)다. 극심한 당파정치를 경계하는 정책 이념인 탕탕평평(蕩蕩平平)에서 나온 말로, 영조가 청포묵(白), 쇠고기(紅), 미나리(靑), 김(黑) 등 사방색을 내는 탕평채 재료를 보며 신하들에게 음식처럼 각각의 색(남인, 북인, 노론, 소론 등 붕당)이 서로 어우러져 화합을 이루도록 독려하고자 했다는 고사가 전해진다.


겨울밤 눈 내릴 때 찾게 된다는 설야멱(雪夜覓)는 대표적 고기구이로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그 또다른 이름인 ‘너비아니’는 순 우리말(서울 지역)로 너붓너붓 넓적하게 썰어낸다는 뜻을 가졌다.

이에 더해 은유적으로 자라나 잉어와 닭을 함께 넣은 용봉탕(龍鳳湯), 전복과 낙지에 닭을 더해 용왕이 좋아했다는 해신탕(海神湯), 해산물과 새(닭)가 함께 있다는 해천탕(海天湯)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마침 요즘 즐기기에 딱 좋은 음식들이다.


뭔가 의미까지 오밀조밀 들어간 음식이 더 맛있다. 그 이름이 생겨난 이래, 사람들이 좋아해 지금껏 전해져 내려온 까닭이다.

풍성한 이야기를 간직한 이름은 가장 먼저 상에 올리는 ‘차림’에 다름없다.

<놀고먹기연구소장>

주물럭은 손님이 붙인 이름이다

어디서 먹을까?

그럴듯한 이름을 가진 음식, 어디서 맛볼 수 있나.

내장 수육 이름 중엔 ‘짤라’가 있다. 서소문에서 곱창과 김치찌개를 파는 집인데 손님들이 “내장 좀 ‘짤라’달라”는 이들이 많아 그대로 이름이 되었다.

앞선 손님이 만들어 놓은 이름이라, 꽤 좋다. 부들부들한 소양 부위를 주로 삶아서 낸다. 김치찌개 끓기 전에 냄비 뚜껑에 올려주는데 밥술을 뜨기 전 소주 한 병이 거뜬하다.

장호왕곱창 짤라 7000원. 점심 때만 판다.

잘라주세요 하던 것이 짤라가 됐다.

주물럭도 손님들이 붙인 음식이름이다. 예전 마포고등학교가 정말 마포에 있을 때 그 옆에서 고깃집을 하던 마포 주물럭집 사장님의 증언이다. 고기를 바로 양념해 올려줬는데 손으로 주물렀다고 어느 한 손님이 ‘주물럭’이라 부르라 했다는 것.

이후 주물럭은 아예 한식 고기 요리의 이름 중 하나가 됐다.(‘즉석양념 소고기 등심구이’라고 했으면 얼마나 심심할까)

현재 그 집은 건물을 지어 마포 토정로 쪽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 빌딩 이름도 ‘주물럭 빌딩’이다. 5만3000원.

부민옥 부산찜

부민옥에는 해물찜이 아니라 ‘부산찜’이 있다. 전쟁 직후 부산 부민동에서 올라온 부민옥이 부산에서 먹던 방식대로 만들었대서 부산찜(3만원)이다. 미더덕, 소라, 조개, 미나리, 콩나물 등이 들었다. 매운 해물찜 특유의 전형적 맛이 아니다.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하다. 방아(배초향)를 슬쩍 넣었다. 그래야 완벽한 ‘부산찜’이 된다.

을밀대에는 메뉴에는 적혀있지 않지만 ‘양마니(양많이 달라는 뜻)’가 있고, 영춘옥과 청진옥엔 ‘따구’가 있다.

한때 사라졌다 다시 생겨난 청진옥 따구국은 2만8000원. 메뉴 이름을 ‘뼈다귀’로 바꿨지만 여전히 단골들은 ‘따구’라 부르는 영춘옥 따구는 3만2000원을 받는다.


<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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