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단백질에 빠진게 죄는 아니잖아?

'두부의 세계'

by 이우석 더 프리맨
“단백질에 빠진게 죄는 아니잖아?”

‘두부의 세계’를 들여다 보다.

두부(豆腐)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완벽한 형태의 ‘분자요리’다. 그것도 기원전 2세기 이전에 고안해냈다. 비슷한 수준의 발명품으로는 치즈가 있다.

스위스 아펜젤 마을 치즈만들기 두부제조와 흡사하다

두부와 치즈, ‘육식의 대용품’인 이 둘은 너무도 닮아있다. 만드는 과정은 비슷하다 못해 똑같다고 보면 된다.

스위스 아펜젤 마을 치즈만들기 두부제조와 흡사하다.JPG 스위스 아펜젤 마을 치즈만들기. 두부제조와 흡사하다

어떤 식재료도 따를 수 없는 고순도 단백질로 낙농 유목민족과 농경 정착민족 각각의 식문화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서양권에선 두부가 최근에서야 발명된 가공식품인줄로 알고 있는 이들이 꽤 많다. 식이요법이나 채식관련 제품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그 유구한 역사를 말하자면 대부분 경악한다.


두부(豆腐)는 BC 2세기 경 중국 한나라 회남왕 유안(劉安)이 발명했다고 알려져 있다. 애초 콩을 시배한 만주 지역에서 저장용으로 두부를 만들어 고기 대체재로 개발했다는 설도 있다.
치즈(酪)는 수천년 전부터 가축을 키우며 살던 유목민족의 음식이다. 역시 중앙아시아 일대에 퍼져 살던 유목민들도 부족한 고기를 대신할 단백질을 무궁히 생산되는 젖에서 찾았다.

동물과 식물의 단백질 응고 식품(Curd)은 수 만리 떨어진 곳에 사는 인류의 목숨줄을 각각 지탱해 온 생명의 음식이었다. 영양가도 많고 흡수 역시 좋아 그야말로 피가 되고 살이 되어 건강을 지켜왔다.

콩 단백질을 응고시켜 만든 두부와 가축의 젖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고형화시킨 치즈는 원리와 응고제를 넣고 압착한 후 성형하는 등 그 제조 원리가 비슷하다. 특히 소금물로 굳히는 가염치즈는 재료만 바꾼다면 초당두부의 제조 공정과 똑같다.

게다가 이 두 음식은 자체 만으로도 매우 뛰어난 영양가를 지녔지만, 다시 요모조모 변형 과정을 거쳐 여러 음식의 식재료로 쓰인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그대로 썰어 먹기도 하지만. 굽거나 튀기고. 잘게 부숴서 음식 위에 뿌리기도 한다.

대만 취두부.JPG 대만 취두부

중국의 취두부처럼 썩혀서(발효) 먹는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의 카스마르주 치즈도 강한 악취로 유명하니 이마저도 맥락이 같다.


꾸덕꾸덕 말린 치즈 껍데기는 포(鮑)처럼 먹는데. 두부 역시 고형화 과정에서 표면에 굳은 껍질인 ‘유바(湯葉)’나 건두부(干豆腐), 푸주(腐竹)가 비슷한 맛과 식감을 낸다.

판두부 위에 널판지를 놓고 무거운 돌을 얹으면 수분이 빠져, 보관성이 좋아져 여러 용도로 쓸 수 있다.

이 때문에 비건(Vegan·우유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들 사이에선 두부가 치즈 대용으로 사용된다.

치즈 스틱 역시 반건조 두부로 대용품을 만들 수 있으며. 비지를 시금치에 함께 버무리고 오일 드레싱을 곁들이면 훌륭한 전채요리가 된다.

연두부는 푸딩처럼 즐길 수 있으며 두부를 튀겨 말린 생양은 고기처럼 볶아도 맛있고. 어묵처럼 즐길 수도 있다. 일본 사찰에서는 생양 두부와 다시마 젤라틴을 이용해 우나기(鰻·장어)의 맛을 내기도 한다.

요모조모 활용도가 뛰어난 식품이다.

인천집 두부전골2-s.jpg
단백질은 동물에게만 있는게 아냐

두부의 원료인 콩은 식물 중 단백질을 많이 함유한 대표 고단백 작물이다. 대두 기준 40% 정도는 지방, 33%는 단백질, 27%는 탄수화물이다.

단백질의 품질도 좋다. 단백질의 과학적 평가단위 PDCAA(Protein Digestibility-Crrected Amino Acid Score)에 따르면 필수 아미노산 함양에서 대두 단백에 1.0 만점을 줬다. 카제인와 유청단백 등 우유의 단백질 성분과 계란 흰자, 번데기 만이 1.0을 받았다.(대두 자체도 0.91) 참고로 계란 흰자는 단백질(蛋白質)이란 말의 어원일 정도로 순도가 높은데 콩이 같은 레벨에 든다는 점이 놀랍다.

단백질 소화흡수율도 쇠고기보다 높아, 고기나 달걀이 귀하던 시절에 필수단백질을 공급받는데 어려움이 덜했다.

한마디로 고기 한 점 없는 농경민족의 상차림에도 단백질 반찬이 분명히 있었단 얘기다. 된장찌개를 쑤고 간장 종지를 차렸다. 이처럼 훌륭한 단백질을 갖춤으로서 균형잡힌 식단을 제공했다.

이 한식 상차림에서 가장 순도높은 단백질 덩어리는 바로 두부였다. 콩으로 담근 된장에 두부를 썰어넣고, 두부전을 부쳐 역시 콩이 주원료인 간장에 찍어먹으며 ‘육류 부족’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었다.

낙농 목축을 해온 서양이라고 육류가 충분했을까. 두부는 만들지 못했을지라도 콩을 넣어 단백질을 보충했다.

브라질(페이주아다), 베이크드빈즈(영국), 카술레(Casserole 프랑스), 아인토프(Eintopf 독일), 파바다 아스투리아나(Fabada asturiana 스페인), 칠리 콘 카르네(멕시코와 미국) 등 콩요리가 저마다 발달했다.

콩이란 식물은 세계를 단백질 부족으로부터 구했다.

황금콩밭 쥐눈이콩 모두부-s.jpg 황금콩밭 쥐눈이콩 모두부
내가 미치겠는건 두부와 순두부를 동시에 사랑하다는 거야

필자도 어린 시절 허구한 날 두부만 먹었다. “때릉때릉” 두부장수가 들고다니는 종 소리가 들리면 달려나가 한 모씩 사와야 했다. 동네 상점에도 으레 물에 담긴 두부판이 놓여있고 식칼 한 자루가 놓여있었다.

성형 틀에 금이 그려져 있지만 좀 더 많이 잘라가도 아무런 말 없다. 어차피 두부 판은 금세 동이 났다.

어느날 순두부 시대가 왔다. 소시지처럼 팽팽히 비닐에 가득찬 순두부가 인기를 끌었다. 식당이니 가정이니 다들 순두부찌개를 먹었던 것 같다.

이후 연두부도 나왔고 생양, 건두부, 두부껍질 등 다양한 두부가 시장에 등장했다.


이처럼 두부는 여러 형태로 가공이 가능한데, 열량은 순두부 쪽이 더 낮다. 모두부는 100g당 79kcal 정도인데, 순두부는 47kcal에 불과하다. 모두부가 다이어트에 불리하단 얘기는 아니다. 밀도가 높은 덕분이다. 단백질도 칼슘 등 영양가도 모두부가 높다.


지방과 탄수화물도 갖췄다. 한번 가열한 덕에 소화 잘되는 식물성 단백질에다 혈압을 낮추는 텝다이드 성분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누르는 리놀산 등이 있어 혈관에도 좋다.


현재 세계 포장두부 판매 1위는 풀무원, 지난해 미국 두부시장 75.4%(미국 닐슨데이터 기준)를 차지했다. 하지만 두부는 이미 우리 조상 대대로 잘 만들기로 소문났다. 최근에서야 각광받은 것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0년(1428)과 세종16년(1434) 기록에도 우리 두부가 명 선덕제의 입맛을 사로잡아 사신 백언에게 벼슬까지 내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임진왜란 때도 명군에게 제공급하던 모든 식량에 두부를 넣었다고 한다.
왜란 당시 왜장 초소카베 모토치카는 조선인 포로 박호인(朴好仁)이 만든 두부를 맛본 후, 당장 그를 자신의 고장(고치현)로 끌고갔다. 끌려간 박호인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고치 성 옆 도진마치(唐人町)에 살며 두부를 만들었고, 지금도 아키츠키(秋月)의 성을 쓰는 박호인의 후손들이 남아 일본 두부 제조의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대대로 우리 두부 맛을 인정받은 셈이다.
조선시대 두부는 보통 절에서 만들었는데 따로 조포사(造泡寺)라 했다. 이는 치즈나 맥주, 와인을 만들던 중세 수도원과도 유사한 대목이다.
강릉 짬뽕순두부.JPG 강릉동화가든 짬뽕 순두부

일상 속 두부를 즐겨온 선조들은 두부먹는 모임(泡會)를 열기도 하고, 연포탕(軟泡湯)이란 음식도 개발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연포탕은 낙지가 아니라 두부가 주재료다. 가늘게 썬 두부를 꼬지에 끼운 후 기름에 지지다가 닭 육수에 넣어 끓여 먹었다고 한다.

지금은 두부와 함께 산낙지를 통째로 넣고 말갛게 끓여낸 음식을 연포탕이라 부른다.

지역별로 두부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곳이 많지만 장단콩이 나는 파주시와 초당두부의 강릉시, 속초시 등이 유명하다.


두부의 조리법은 수도 없이 많다.

원형 그대로는 만들자마자 그대로 생식해도 되고, 삶거나 조리든지 지져 전을 부친다. 김치를 곁들여 먹는 두부김치는 발효유산균까지 섭취할 수 있어 더욱 건강식이다.

두부를 부재료로 쓰는 경우에는 다른 재료와 함께 볶거나 국 찌개에 넣는 경우가 많다. 전골이나 찌개에는 말린 두부를 넣으면 국물 맛이 배어들어 더욱 맛이 좋다.

두부를 상식하는 중국은 마파두부 등 음식에 많이 쓰며 다양한 조리방식이 발달했다. 심지어 썩히거나 얼렸다가도 먹는다. 악취가 나는 취두부(臭豆腐)부터 퍼석한 동두부(凍豆腐) 등을 별미로 생각한다.


심지어 곰팡이 포자를 털처럼 수북히 틔워낸 모두부(毛豆腐)도 지역 특산품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역시 두부 요리가 넘쳐나지만 대부분 연두부를 쓴다. 그대로 먹거나 뜨거운 물에 담아내는 유도후(湯豆腐), 튀겼다가 양념국물에 적셔낸 아게다시도후(揚げ出し豆腐), 도후가라아게(두부튀김), 두부 껍데기인 유바(湯葉) 등으로 즐긴다.


수천년간 농경 민족에게 고도의 영양분과 특상의 맛을 공급해온 두부.

건강의 가치가 무엇보다 소중해진 시기에 우린 이 위대한 인류의 발명품, 두부릐 세계를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놀고먹기연구소장>


어디서 먹을까? 두부는 보통 집에서 많이 먹지만 생각날 때 사먹을 곳도 수두룩하다. 공깃밥에 떡사리, 또 라면사리 등, 탄수화물 폭격이 이뤄지는 점심에 두부를 곁들인다면 다이어트나 혈당관리에 좋다.
●인천집=원래 조개칼국수로 유명한 집이다. 조개 육수를 써서 얼큰하게 끓여낸 두부매운탕부터 모두부(두부중탕), 두부전 등 두부요리 3종이 늙수구레한 술꾼들을 불러모은다. 입맛도 인수인계가 되는지 젊은 회사원들도 즐겨찾는 곳이다. 두부전골은 바지락과 오징어 등 해물을 넣어 매콤하면서도 시원하다. 두부전은 한 면을 바싹 구워내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소주를 부르는 ‘두부의 세계’다.서울 중구 다동길 36. 두부전 8000원. 두부매운탕 1만5000원. 두부중탕(모두부) 7000원.
●황금콩밭=두부 하나로 미쉐린가이드(빕구르망)에 오른 집이다. 쥐눈이콩(서리태)로 직접 만든 담백한 두부가 명품이다. 순두부라 하기엔 단단하고 판두부와는 확연히 부드럽기가 다르다. 고소한 맛이 크리미한 식감에 어우러져 마치 존득한 젤라토를 맛보는 기분이다.
두부에 곁들이기 좋은 코다리무침이나 김치도 썩 훌륭해 많은 단골이 찾아오는 집이다. 두부를 기본으로 한 코스 정식도 있다. 가정집을 리뉴얼해 옮겨간 새로운 가게 분위기도 근사해 가족모임하기에도 좋다.
그 두부로 기반으로 모두부, 냄비두부조림 등 다양한 요리를 낸다.서울 마포구 마포대로16길 9. 두부젓국 2만원. 냄비두부조림 2만6000~3만8000원
●동화가든=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초당두부촌에서 ‘짬뽕순두부’로 큰 인기를 얻는 곳이다. 늘 손님들로 긴 줄을 세운다.
부드러운 모두부를 맛보며 ‘짬순’을 기다리다 얼큰한 국물 속 부드러운 초당두부로 마무리하면 좋다. 오징어와 양파 등을 고추기름으로 볶은 불향 짙은 짬뽕국물이 진하디 진하다. 초두부(초당순두부) 백반도 판다.강원 강릉시 초당순두부길 77번길 15. 짬뽕순두부(원조짬순) 1만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음식에게도 괜찮은 이름을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