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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초딩입맛'에 대한 변론서

[푸드로지] '애들입맛'에 대해 '애드리브'로 옹호하다

by 이우석 더 프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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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위는 ‘애들 입맛’의 대표 메뉴 짜장면. 그 아래부터 순서대로 서울 망원동 ‘나들목’의 분홍소시지 부침, 명동 ‘명화당’의 쫄면, 대구 ‘뉴욕 통닭’의 양념치킨, 종로 ‘한육감’의 나폴리탄 파스타.




어른을 위한 ‘초딩 음식’, '애들입맛'이야말로 정직하다
생태찌개·회덮밥·청국장 대신 떡볶이·돈가스 선택하면 눈총
1970년대 초등시절 보낸 50대 비엔나소시지·계란말이에 향수
달달하고 짭조름한 음식의 위로 어릴적 먹던 맛 즐기는 것일 뿐



주변에는 ‘애들 입맛’이라 놀림당하는 이들이 있다. 일명 ‘초딩 입맛(초등학생 입맛)’으로도 불리는 ‘애들 입맛’이란 주로 어린이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선호 경향을 가진 어른들을 지칭한다. 주로 매운 것이나 발효취, 생선 비린내, 고기 냄새 등을 싫어하며 달콤하거나 튀긴 음식을 선호하는 이들인데, 대개 이런 입맛을 ‘애들 입맛’이라 치부하며 마치 편식 습성처럼 대하는 사례가 많다.



같은 뜻을 가진 ‘초딩 입맛’은 TV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단어. 전현무, 김성주 등 특정 방송인 중에도 이 같은 별명을 강제로 부여(?)받은 이들이 있다. 생선국이나 수육, 평양냉면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면 바로 ‘초딩 입맛’이라고 낙인을 찍는다.


보통 그런 메뉴들은 애들 입맛의 상대적 개념인 ‘어른 입맛’, 또는 ‘아재 입맛’이 선호하는 음식인데, 이런 취향에 대한 맹목적 추종자도 있다. 그들은 이것은 옳고, 쫄볶이 따위는 그르다. “너희는 아직 이 맛을 몰라서 그렇다”고들 한다. 하지만 자신의 입맛을 강요하기 전에 다른 이의 입맛도 존중해야 한다. 편식이 아니라면 식습관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그저 개인 취향일 뿐이다.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니까, 오월 가정의 달을 맞아 푸드로지는 ‘애들 입맛’에 대한 변론을 ‘애드리브(즉흥 대사)’로 펼쳐보겠다.


애들입맛 메뉴 양념치킨 대구 뉴욕통닭.JPG

‘애들 입맛’ 따위 호칭이라니. 이는 탐미적(貪味的) 기준에도 맞지 않는다. 사실 어린이야말로 얼마나 맛에 솔직하고 민감한가. 어린이는 식당 분위기나 창밖 풍경 등에 현혹되지 않고 철저히 자신의 밥그릇에 충실하다. 맛이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고 명확하게 표현한다. 다른 요소에 쉽사리 흔들리는 어른보다 직관적 입맛을 가졌다. 아내에게, 상사에게, 거래처 등 사회적 관계에서 대하는 음식처럼 ‘무조건 맛있다’고 해야 하는 음식이란 아이들에겐 없다. 맛없으면 당장 수저를 내려놓고 맛난 것만 계속 찾아 먹고 싶을 뿐이다.


돈가스나 치킨 등 익숙한 음식을 좀 더 선호하는 것은 어른의 세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현상이니 ‘어른 입맛’이 ‘애들 입맛’에 비해 우월한 것은 아니다. 정작 세상에선 성장하며 ‘어른 입맛’으로 마땅히 가야 하는 것처럼 군다. 생태찌개나 산채정식, 회덮밥 대신 매콤하고 달달한 떡볶이나 돈가스를 점심으로 먹는다고 하면 당장 ‘애들 입맛’이니 하는 힐난이 돌아온다. 호사가들의 ‘면스플레인’(냉면을 앞에 놓고 이를 장황히 설명하는 일)처럼 듣는 입장에선 성가신 일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 사회에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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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때문(?)인지, 맥도날드 햄버거에 빠져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나 투자가 워런 버핏 역시 이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어 이들의 식사 습관이 종종 외신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맥도날드 쿼터파운드 치즈버거에 ‘피클을 빼고’ 케첩을 뿌려 먹는 방식으로 정말 ‘애들 입맛’(childish palate)의 아이콘임을 입증했다. 이 중 압권은 바로 최상급 신선육 스테이크를 태울 정도로 바싹 익힌(super well done) 다음, 케첩을 잔뜩 뿌려 먹는 식습관을 보여주며 각국을 순방하는 등 ‘특별한 입맛’에 관한 구설에 올랐다.


‘초딩 입맛’을 점잖지 못하게 치부하는 현상은 ‘일본 어른들’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도 소바(메밀국수)보다 라멘을 즐기는 ‘젊은 입맛’이라는 가십성 기사가 타블로이드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애들입맛 햄버거 트럼프대통령이 대표적 미국 애들입맛이다.JPG


‘애들 입맛’이란 1970년대 식생활 개선이 시작되며 소시지와 햄, 카레, 케첩, 치즈 등 서양식 식료품이 식탁에 등장하며 생겨났다. 전통적이지 않으며 다소 인공적인 맛에 익숙해진 세대가 경험을 통해 형성한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크게 변화하지 않고 그런 입맛을 유지하는 경우에 주로 붙이는 별칭인데 정작 ‘애들’에겐 쓰지 않는 말이다.


남작 미트파이.JPG

애들 입맛의 대표적 음식은 주로 달달하고 짭조름한 것이 많다. (양념)치킨, 돈가스, 크로켓, 소시지, 미트볼 등 튀기거나 구운 것이 많고 소스로는 토마토케첩과 카레를 많이 쓴다. 예전 도시락 반찬이나 학교 급식을 연상하면 쉽다. 달달하거나 치즈를 많이 쓴 것도 이에 속한다. 파스타(스파게티) 역시 토마토소스나 로제 소스를 선호하고 미트볼까지 들어가면 금상첨화가 된다. 케첩으로 맛을 낸 나폴리탄 스파게티는 철저히 ‘애들 입맛’의 형식과 기본을 지킨 메뉴다. 케첩은 애들 입맛의 상징 소스로 자리 잡았다. 케첩이 잔뜩 들어간 오므라이스와 ‘쏘야’(소시지 야채볶음) 역시 그렇다. 마요네즈도 한몫한다. 일본에는 아예 마요네즈를 가지고 다니면서 아무 음식에나 뿌려 먹는 이들을 칭하는 ‘마요라’라는 신조어도 있는데, 주로 젊은층에 많고 이를 질색하는 반응이 강하다.


‘애들 입맛’에 해물이라곤 거의 참치 통조림이나 익힌 새우 정도 이외엔 대부분 포함되지 않는데, 특히 날생선이나 등푸른생선은 끼어들 여력이 없다. 당근이나 가지 등 채소가 많이 든 음식도 제외다.(정말 아이들의 식성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매콤한 양념이나 청국장처럼 구리구리한 향이 나는 음식도 배치된다.


애들 입맛도 진화한다. 아니, 원래부터 상대적 개념이라 그렇다. 1970년대에 초등학생이었던 이들이 지금 50대 중장년이 됐는데 더 이상 ‘애들 입맛’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건강상 이유가 아니라면 ‘아재’들도 돈가스, 떡볶이를 즐기고 쫄면도 좋아한다. 필자 역시 반찬 중 비엔나소시지와 계란말이가 있으면 저절로 손이 간다. 옛날 분홍색 밀가루 소시지에 계란 옷을 입혀 부쳐오면 당장 소주까지 비울 수 있다.
오히려 ‘진짜 애들’은 그런 소시지를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니 이런 메뉴를 좋아한대서 무작정 ‘애들 입맛’으로 치부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 애들은 어른이 되지만 입맛까지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애들’과 함께 자연스레 입맛도 성장시키는 것이 시간의 힘이며 세월의 이치다. ‘애들 입맛’을 옹호하다 보니 문득 어린 시절 맛있게 먹었던 것이 그리워진다. 입맛 당긴다. 누군가 필자를 놀려댄다 할지라도 상관없다. 어린이 달인 오월이니까.



■ 어디서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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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탄 파스타 = 한육감. 데이트나 회식으로 맛있는 육식을 할 수 있는 고깃집인데, 이것저것 다양한 메뉴를 진정성 있게 낸다. 토마토 퓌레가 아니라 정말 토마토케첩으로 만든 나폴리탄 파스타가 나온다. 나폴리탄 파스타는 1970년대 일본에서 시작한 메뉴로, 이탈리아 나폴리에는 없다. 면과 채소를 볶고 케첩으로 맛을 낸 다음 치즈를 뿌린다. 진정한 ‘애들 입맛’의 시그니처 메뉴라 할 수 있다. 한육감에선 육즙 가득한 소시지를 얹고 계란으로 방석을 깔아 내온다. 고기 메뉴와 함께 주문하면 산뜻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종로3길 D타워 5층.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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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그스테이크 = 남작. 귀족 남작(男爵)이 아니라 넘치게 따른다는 남작(濫酌)이다. 이른바 ‘힙지로’로 각광받고 있는 을지로 인쇄골목 사이에 근사한 해물포차가 생겨났다. 보기엔 그냥 인쇄골목인데 문을 열면 디제이가 음악을 쏟아내고, 그릴과 오븐, 히노키 도마에서는 다양한 동서양 음식을 쏟아낸다. 싱싱한 생선회도 있고 미트파이도 있다. 여기 ‘애들 입맛’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햄버그스테이크가 있다. 직접 둥그렇게 빚은 햄버그를 숯불 야키바에 굽고 속에는 수란을 박아넣은 호화판 안줏거리다. 그레이비 소스를 곁들였다. 서울 중구 을지로14길 16-8 1층. 2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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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전 = 나들목. 망원동에 위치한 오랜 선술집이다. 다양한 전을 부쳐 파는데 가끔 ‘초딩 입맛’ 어른들이 와서 소시지전을 주문해 소주와 함께 먹는다. 이상하게도 누군가 주문하고 나면 연쇄적 주문 반응이 일어난다. 크게 썰어낸 소시지에 계란 옷을 입혀 부쳐내는데 어린 시절 입맛을 사로잡던 기름진 맛이 그대로 살았다. 한입 베어 물면 바삭하고, 당연히 속은 부드럽다. 계란말이와도 궁합이 맞아 처음부터 식사 대용으로 주문하면 좋다. 당연히 케첩과 가장 어울리지만 간장을 찍는다는 이도 있다. 서울 마포구 동교로33.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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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면 = 명화당 1호점. 1980년 개업한 유명한 분식 노포다. 이 집 쫄면이 40년간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평양냉면보다 쫄면을 좋아한다고 하면 바로 ‘애들 입맛’ 인증이다. 콩나물과 나물, 화끈하면서도 새콤달콤한 고추장을 얹어내오는 비빔쫄면은 내외국인 모두에게 정평이 났다. 특히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글로벌 맛집이다. 이리저리 면을 자르고 쓱쓱 비비면 아삭하고 매콤한 쫄면 한 그릇으로 거뜬히 한 끼를 달랠 수 있다. 나물을 빼달라 하고, 만두까지 곁들이면 좀 더 애들 입맛에 가까워진다.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4길 30 2층. 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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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 = 장미경양식. 강원 고성 땅이라 일명 ‘최북단 돈가스’로 불리는 집이다. 이름부터 강하게 ‘레트로’ 느낌을 준다. 바싹 튀겨낸 돈가스가 연령대를 막론하고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야말로 옛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노릇하게 튀겨낸 넓적한 돈가스는 바삭하고 고소하다. 김치도 유난히 맛있어 느끼함을 덜어준다. 이 집이 전국적 입소문을 탄 것은 군인과 방송 덕이다. 이 지역에서 근무하던 군인들이 제대하고 입소문을 낸 ‘군사기밀’ 돈가스와 정식을 판다. 요즘은 ‘애들 입맛’의 정통성을 수성하기 위해 치즈 돈가스를 메뉴에 추가했다. 고성군 거진읍 거진길 37-1. 9000원. 치즈 1만2000원.


<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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