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골목탐방] 한국 최고(最古) ‘먹자골목’, 다동·무교동
근대화 백년의 역사, 한국에도 파리의 생제르맹 거리같은 곳이 있다. 생제르맹은 프랑스 파리 6구 서쪽의 명칭으로 생제르맹데프레(Quartier Saint-Germain-des-Pres)지구라고도 불린다. 서울 중구처럼 파리 도심 한 복판에 위치했다.
파리 생제르맹에 위치한 카페 레 뒤 마고는 약 130년 전 생겨나 유럽 지식인과 예술인의 아지트 구실을 하며 수많은 문예사조를 생산한 곳이다.
19세기 후반 파리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던 이곳 거리를 중심으로 프랑스에 카페들이 생겨났다. 많은 철학자와 예술인이 카페에 모여 커피와 술을 마시며 철학을 논했다. 사르트르,보브와르,앙드레 지드,랭보 등 프랑스 문인 뿐 아니라 헤밍웨이,피카소 등 파리를 사랑했던 외국계 예술인도 숱하게 이곳을 찾아왔다. 1885년에 문을 연 카페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와 카페 플로르(Cafe de FLORE) 등이 프랑스 근현대 문화예술의 요람을 자처했다. 이들 카페는 가난한 무명 작가를 발굴,후원하기도 했다. 실존주의와 현대 입체파 등 문예사조가 이 골목에서 생겨난 셈이다.
비슷한 위상을 가진 곳을 찾을라치면 대한민국에선 단연 다동·무교동이다. ‘조선의 생제르맹’에도 그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카페 레 되 마고보다 50년 쯤 늦은 1932년 용금옥이 문을 열었다. 좌우익을 불문하고 지식인들은 이곳에 모였다. 시를 쓰고 그림 그리는 예술가들도 용금옥 대문을 두드렸다. 분단 이후에도 북측인사 중 서울 출신이면 남측과 대화를 나눌 때면 어김없이 용금옥의 안부를 물었다. 김영주 김동석 박성철 연형묵 등이 서울 용금옥의 맛을 못잊던 사람들이다.
1960년대까지 분위기는 그대로 이어졌다. 시청 등 관가와 민주당사,국회의사당이 가까이 있고 언론사가 모여있어 숱한 정계 인사들과 잉크투성이 문인 예술가들이 드나들었다. 밤낮없이 막걸리잔 내려놓는 소리로 들썩했다고 한다. 추탕 한 그릇 앞에 놓고 밤늦도록 시대와 예술을 논했다. 식당과 손님은 서로 교감했다. 창업자 고 신석숭 사장은 작고하면서 외상전표를 죄다 태우라 했고 시인 이용상은 책 ‘용금옥시대’를 써서 그 마음씨에 보답했다.
이전에도 다동·무교동은 국내 최고 역사를 자랑하는 음식문화거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다례를 주관하던 사옹원에 속한 다방이 있고 여형사 격인 다모(茶母)가 거거하던 다동 그리고 무기를 만들었던 군기시(軍器寺)에 근무하던 종사관 등 무관(武官)들이 서로 만나는 곳이 이 지역이다. 다모와 무관이 함께 있는 곳, 당연히 맛난 음식과 술잔이 돌고 돌았을 게다. 돈깨나 만지는 시전 상인들도 이 곳에 터를 잡았던 부자마을이었던 까닭에 음식집이 차고 넘쳤다. 찻집도 무교탕반도 이때 생겨났다. 이렇다할 대중음식역사가 이곳에서 비로소 시작된 셈이다.
경기 좋던 1980~2000대 이후에도 맛좋은 현대식 식당들이 꾸준히 생겨나 다동·무교동 골목을 채웠다.
특히 60년대 후반과 70·80년대에는 서울 최고의 유흥가로 명성을 떨쳤다. 일대에 돈벌이 좋은 직장인들이 많았던 까닭이다. 다동 무교동 서린동에 있던 ‘삘딍’숲에선 술고픈 직장인들이 쏟아졌고 은행원들이 명동에서 길을 건너왔다. 멀리서도 찾아왔다. 휴대폰이 없던 시대, 중부소방서(현재 청계광장 앞)나 무과수 제과(르메이에르 빌딩) 청구서점 앞에서 만나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거리는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대포를 털어넣고 낙지를 씹었든 ‘삐-루’에 ‘로-스 구이’를 먹었든, 골목은 밤이 깊을수록 혼잡을 더했다. 취객들이 길거리를 메우던 오후 11시 쯤이면 서울의 택시가 모두 몰렸다.
‘캬바레’,‘나이트-크럽’,‘빠’ 등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간판도 오로지 다동·무교동에서만 볼 수 있었다. 당시 국내유수 초대형 나이트클럽이던 스타다스트,코파카바나와 음악다방 쎄시봉 그리고 수많은 극장식당 들이 군집해 저마다의 다양한 에피소드로 장안의 화제를 쏟아냈다. 싼 맛에 칼칼한 양념 낙지와 막걸리로 목을 축이는 낙지골목도 이때 전성기를 누렸다.(이후 서린동으로 이전)
1970년대 중후반 강남이 개발됐다. 수많은 유흥주점은 강을 건넜다. 서울이 넓어진 만큼 곳곳에 부심이 생겨났다. 신촌도 영등포 청량리도 번쩍번쩍해졌다. 강남 영동은 말할 것도 없다.
신군부가 말하던 ‘대망의 80년대’를 앞두고 다동과 무교동은 일대 정비에 들어갔다. 세종대로는 넓어지고 프레스센터와 코오롱빌딩 등 ‘서울의 새로운 얼굴’을 자처하는 빌딩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만 갔다. 변화가 시작됐다.
먼저 말하자면 다동·무교동의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다. 한국 최고(最古)의 음식문화거리로서의 위상 역시 굳건하다.
1980년대 홀로 청년기를 맞은 다동·무교동은 기존 유흥·환락가의 이미지를 벗고 ‘솜씨좋은 먹자 골목’으로 변신했다. 유흥가를 가득 채우던 취객이 떠났어도 인기는 여전했다.
좋은 지리적 요건도 한몫했다. 사방에 고궁과 광장이 있다. 청계천의 시작점 청계광장에 위치한 ‘올갱이탑’(원명 Spring)도 다동·무교동의 간판 역할을 한다.
2000년대 들어선 노포(老鋪)의 고향인 동시에 식도락 트렌드의 바로미터로 꼽혔다. 다동·무교동에 있는 노포의 나이만 보아도 1000살은 대번에 넘긴다. 대표적인 노포로는 용금옥(1932년 개업)과 더불어 1956년에 문을 연 부민옥. 지금까지도 유행을 쫓지 않은 여전하고 꾸준한 맛으로 젊은 층에게 맛을 상속시켜나가는 집으로 인기가 높다.
시원한 복지리에 고소한 복불고기로 유명한 철철복집,쇠고기 된장찌개와 로스구이의 낙동강,언제나 신선한 통영의 제철해물을 맛볼 수 있는 충무집,냉면과 어복쟁반으로 입소문난 남포면옥,시원한 조개칼국수와 보쌈이 맛있는 인천집,80년대 선술집 분위기가 오롯이 남은 참새골,정통 북한식 만두를 선보이는 리북손만두 등도 수십 년째 고유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노포들이 다시금 젊은 층의 입맛으로 대물림되고 있는 가운데, 파이낸스 센터를 비롯해 재개발 이후 생겨난 대형 빌딩가에도 핫한 레스토랑이 입주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각각 골목마다 다양한 메뉴와 분위기로,명성을 좇아 이곳에 온 이들에게 색다른 맛과 멋을 선사한다.
서울신문사와 파이낸스센터 빌딩 지하 몰에도, 가와 골목에도 식사나 술모임을 즐길 곳이 다양하다. 키사라 춘산 등 일식당, 북경 초류향 경복관 원흥 등 중식당, 강가 리틀타이 등 세계음식에다 붓처스컷 등 정통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는 곳도 있다. 메밀국수 잘하는 대가나 된장 유명한 산불등심,무교동 북엇국집,곰국시 등 대박 아이템으로 승부를 거는 곳도 수두룩하다. 사무실이 많은 곳이니 회식의 주요아이템인 고깃집이나 횟집이야 원래 득시글하다.
다동무교동에도 변화가 일었다. 나지막한 건물만 있던 곳에 대형빌딩이 들어서 지금은 과거와 현재가 함께 혼재하고 있다.
청주회관 제일가든 참숯골 태애진숯불갈비 장안문 등에서 고기를 맛보고, 영덕회식당 동해일식 사조참치 스시미토 삼원일식 등에서 회를 챙겨먹으면 된다. 애초 식사로 끝날 곳이 아니다. 2차 호프를 즐길 수 있는 곳도 천지다. ‘무교동 골뱅이’로 유명한 곳이 아니던가. 태성골뱅이 대성골뱅이 등이 남아있고 과거 두산빌딩 지하에서 명성을 얻은 비어할레와 늘 좋은 음악을 틀어주는 아바,밤새 주당들이 모이는 맛나호프,다양한 세계 맥주를 즐길 수 있는 텍사스가 불야성을 조장한다.
포인트는 몇군데 있다. 서울시청 뒤 태평로 1가 프레스센터와 파이낸스센터를 돌다가 코오롱 빌딩을 지나 무교로를 건너오면 신세계가 열린다. 파출소(태평로지구대)를 중심으로 좁은 사거리,동쪽으로 종로통(남대문로) 남쪽으론 시청광장 앞 을지로입구까지 이어진다. 북쪽엔 청계천변이다. 다동길,을지로1길,3길,남대문로9길에 식당이 많다.
볼거리도 다양하다. 대표 음식문화거리답게 한식체험관이 위치했으며 다양한 셀러브리티를 정교한 밀랍인형으로 만나볼 수 있는 그레뱅뮤지엄,청계천 광통교,모전교,청계광장,서울광장 등 서울대표 명소가 ‘식후경’을 보장한다.
다동무교동에선 근사한 맛집과 함께 대한민국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찾으며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일찍이 파리 생제르맹이 카페와 술집으로 유럽 근현대 문화의 요람을 자처했다면, 다동 무교동의 밤은 서울 나아가 대한민국의 많은 이야기가 잉태되고 출생하는데 훌륭한 산파 역할을 했다. 이 곳을 아직 방문한 적 없는 이라면 반복되는 일상 속, 역사적 밤거리에 한번 서봤다는 것도 꽤 괜찮은 추억거리가 될 듯하다.
<놀고먹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