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국수 한그릇 후룩, 그날이 잔칫날

[푸드로지] 시원한 국물에 사랑을 말아, 입모아 쪼로록

by 이우석 더 프리맨


0002471582_001_20210520104104093.jpg?type=w647 국수 그릇을 받아들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함안 옛골식당

■ 국수 이야기
小麵이 아니라 하얀국수 素麵
한반도에서는 귀했던 밀국수
美 밀가루 원조로 소면 유행
혼분식 장려운동에 한식 정착
삼성그룹도 국수로 사업 시작
길게 사랑하고 오래 살라는 뜻
결혼식 날이면 잔치국수 내놔



언뜻 한자어 같지만 국수는 순우리말이다。밀가루나 메밀, 녹두 가루를 반죽해 길쭉하게 (빚거나 썰거나 눌러 빼는 방식으로) 만들어 국물이나 양념과 함께먹는 음식이다。 일본이나 중국에선 그냥 국수만 먹기도 하지만 우린 그리하지 않는다。국물에 말고 양념에 비벼 먹어야 제대로 된 국수 취급을 받는다.



소면(素麵)은 작을 소(小)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이름처럼 그저 하얀색 국수란 뜻이다. 세면이니 중면 때문에 오해가 생겼다.

이 국수가 유행하며 잔치국수의 형태도 바뀌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 곳곳에 국수 공장이 생겨났다. 가내 수공업 형식에서 제면 기계를 들여오며 국수 공장은 현대 식품산업의 기수가 됐다.

1933년 대구에서 풍국면이 나왔고 소표, 곰표 등 국수 브랜드가 쏟아졌다. 이 무렵 창업한 삼성도 1938년 대구에서 국수를 만들어 팔며 사업을 시작했다. 이름은 별표 국수였다. (포장에 별 세개를 그려넣었다)



기계를 썼지만 원리는 재래식 면과 비슷했다. 베틀처럼 막대기로 실처럼 가늘고 기다랗게 죽죽 반죽을 늘인다. 막대에 걸어 말린 다음 잘라서 팔았는데 이게 아주 인기를 끌었다.

제주 국수3.JPG

원래 밀가루가 귀한 한반도에서 국수란 굉장히 귀한 음식이었는데 일제강점기 소면의 유행으로 비교적 흔하게 접할 수 있게 된 것. 한국전쟁 이후엔 미국의 구호 원조품 밀가루가 쏟아지며 국수가 최고의 패스트푸드로 각광받았다. 값싸고 빨리 해먹을 수 있는, 배부른 메뉴가 국수였던 까닭이다. 시장에서도 먹고 일터에서도 해 먹었다.(국숫값은 지금도 그렇듯 비싸지 않다)


소설 ‘수난이대’(하근찬)에서도 팔 한 쪽이 없는 아버지가 다리 하나를 잃고 돌아온 아들을 만나 국수를 사 먹인다. “참기름도 치소, 알았능교”라고 외치는 아버지의 마음처럼 희고 부드러운 국수에는 맛과 정성이 담겼다.



0002471582_002_20210520104104110.jpg?type=w647



1969년 제3공화국 정부가 밥(쌀)을 절약하기 위해 실시한 혼분식 장려운동은 과거 특별하던 날에만 먹던 국수(소면)가 거의 모든 한식 메뉴에 들어가는 전환점이 됐다. 수요일과 토요일 무미일(無米日)을 두고 절미운동(節米運動)을 벌였다. 국수와 수제비가 활약했다. 설렁탕, 곰탕에 국수를 말아 냈다. 추어탕에도 국수가 들어갔다. 이런 흔적은 지금도 이어져

90년 전통의 용금옥(1932년 개업)에서 추어탕에 마는 국수를 따로 내준다. 이후 국수는 입맛에 맞춘 기호식품으로 되돌아왔지만 전통은 이어졌다.

국수 이미지컷.jpg

결혼 시즌이다. 선남선녀가 만나 가약을 맺을 때면 마땅히 잔치를 열고 국수를 나눴다. 길게 사랑하고, 오래 살란 뜻. 영원한 사랑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다. 진정한 파티 음식이 잔치국수다. 한국인에게 국수는 그런 음식이다. 하지만 50인 이하만 모일 수 있는 예식장 방역수칙 앞에선 도리가 없다. 그저 밖에서 사 먹을 수밖에…. 잔치의 계절 오월, 아쉬움에 국수를 잘 말아내는 맛집들을 모아 소개한다. 값도 싸니 더욱 위안이 된다.


■ 전국 국수 맛집 12곳


망원동 원당국수3.jpg

◇원당국수잘하는집 = 잔치국수. 일단 푸짐하다. 곱빼기를 주문하지 않아도 든든할 만큼 커다란 사발에 푸짐히 담아준다. 진한 멸치국물은 살짝 단맛을 내는 것이 우동 국물을 닮았다. 김가루와 유부, 당근, 대파 등을 고명 삼아 후루룩 빨아들이면 소면 가닥 틈새로 국물이 딸려와 후련한 뒷맛을 남긴다. 이름난 국숫집의 비기(秘技)인 김치도 칼칼한 것이 참 잘 어울린다. 서울 마포구 동교로 22. 4500원.


은평구 부추국수3.jpg

◇가이오국수 = 얼큰 부추국수. 부추 무침과 김가루를 수북이 얹은 비주얼이 위압감을 준다. 잘 헤쳐야 국수가 보인다. 겉절이 부추와 국수를 한 번에 오물오물 씹으면 아삭함과 부드러움이 교차하는 식감의 대비가 좋다. 이름과는 달리 국물은 그리 맵지 않다. 뜨거운 국물을 계속 채워준다. 식으면 맛이 덜하다나. 열무김치와 배추김치도 맛이 잘 들었다. 서울 은평구 응암로 22길 13. 6000원.


진밭국수.jpg

◇진밭국수 = 잔치국수, 비빔국수. 레트로 분위기를 간직한 국숫집. 시원한 국물 맛의 잔치국수는 푸짐하고 부드럽고, 칼칼하기보다는 감칠맛이 두드러진 양념에 아삭한 열무김치가 어우러진 비빔국수는 입에 짝짝 붙는다. 국수는 가늘지도 굵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소면. 양도 많고 값도 좋다. 살펴보면 어느 테이블이나 곁들이고 있는 녹두전은 필수 아이템. 바삭한 기름 맛이 담백한 국수와 잘도 맞아 떨어진다. 고양 일산동구 진밭로 11. 잔치국수 4500원. 녹두전 6000원.


부산 할매회국시.JPG

◇김순분할매집회국수 = 회국수. 일반 잔치국수 소면보다는 약간 더 굵은 면을 쓴다. 냉국수라 더욱 쫄깃하다. 국수를 양은그릇에 담고 가자미회와 미역, 양배추, 특제 초고추장을 얹어 내온다. 숙성된 가자미회는 분식 특유의 허전함을 달래주며 맛의 깊이를 더한다. 문제는 그리 매워 보이지 않는 고추장에 있다. 색이 빨갛지 않다고 더 넣으면(상에 구비돼 있다) 정말 매워서 땀이 뻘뻘 난다. 부산 중구 남포길

15-3. 6000원. 물국수 5000원.

구포국수2.JPG

◇이원화 구포국시 = 1950년대부터 인기를 이어오는 구포국수다. 현지에선 ‘국시’라 한다. ‘밀가리’로 만드는 게 확실하다. 구포시장 내 위치한 이 집은 2대째 이어오는 노포로 ‘구포국시’ 특유의 맛을 지켜오고 있다. 국수로는 주로 중면을 말아먹는데 쉽게 붇지 않고 씹는 맛이 뛰어나다. 원래 면발 반죽에 소금을 넣는 데다 고명으로 시금치와 단무지 채, 김가루 등을 올리는 까닭에 시원한 국물을 들이켜가며 그냥 먹어도 간이 맞다. 부산 북구 구포시장1길 6. 4000원.

담양 국수.JPG

◇진우네 집국수 = 담양 국수거리를 알고 있다면 여행깨나 다닌 이가 틀림없다. 관방제림 옆으로 국숫집들이 늘어섰다. 초입에 위치한 이 집은 시원한 전남 특유의 진한 멸치국물이 특징이다. 얼추 우동 가락의 절반 정도 되는 굵은 면을 쓴다. 한입 집어도 입안 가득 포만감이 느껴진다. 고명으론 고춧가루와 대파만 얹었는데도 뭔가 상실감이 없다. 2알에 1000원 하는 삶은 계란도 필수 곁들임 메뉴라 한 알은 까먹고 나머지는 국수에 넣어 먹으면 든든하니 좋다. 담양군 담양읍 객사3길 32. 4000원.

제주 국수2.JPG

◇춘자멸치국수 = 제주도 여행객들이 출출할 때 들르는 ‘멜(멸치) 국숫집’. 메뉴는 딱 2개뿐이다. 보통과 곱빼기. 진하지만 비릿함이나 쓴맛이 전혀 없는 멸치 육수에, 고기 국수에 주로 쓰는 중면을 말아서 낸다. 중면 특유의 씹는 맛이 좋다. 양은그릇에 대파만 썰어 넣었지만 맛있게 먹는 비결은 칼칼한 깍두기. 반쯤 먹다 깍두기 국물을 넣으면 시원한 맛이 더해져 감칠맛 만점의 달달한 국물을 즐길 수 있다. 제주 서귀포 표선면 표선동서로 155. 4000원.

대구 묵국수.JPG

◇묵쳐먹고가는집 = 묵국수. 도토리묵을 썰어 넣고 국수를 말아주는 집으로 대구 동구 불로동 전통시장 앞에 있다. 메밀을 섞은 까무잡잡한 면을 쓴다. 국물이 고소하면서도 담백하다. 대구 지방 특유의 입맛인 ‘시원한 맛’이 강조된 육수다. 시원한 맛이란 얼마나 내기 힘든 것인가. 심심한 묵과의 조화도 예사롭지 않다. 대구에서 찾기 힘든 ‘빨갛지 않은’ 음식이다. 대구 동구 팔공로26길15. 6000원.

전주 새참국수.JPG

◇새참국수 = 전주 객사길에서 인기 좋은 맛집이다. 무슨 일본 우동 장인처럼 밸런스가 완벽한 육수를 낸다.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칼칼한 맺음이 숨어있다. 별반 많은 고명을 얹지는 않았지만, 이따금 풋고추 한입 베어 물고 그저 국물 속 잠긴 면만 건져 먹어도 그걸로 충분하다. 전주 완산구 전주객사4길 100. 5000원.

포항 철규네.JPG

◇포항 철규분식 = 원래 찐빵으로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은 집이다. 구룡포 초등학교 맞은편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온 집이다. 몇 번을 지나며 찐빵만 사 먹었다가 한번은 찐빵 출하를 기다리다 국수를 맛봤는데 이 역시 인상적이다. 시원하고 깔끔한 멸치육수에 부드럽게 삶은 국수를 말아준다. 육수는 진하지 않지만 심심하면서도 감칠맛을 낸다. 포항 시금치와 양념장을 얹고 휘휘 저어 한입 크게 빨아들이면 후루룩 잘도 들어간다. 포항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길 62-2. 3500원.

함안.JPG

◇함안 옛골식당 = 아라가야광장 주변에는 국수를 잘 말아내는 옛골식당이 있다. 커다란 사발에 담아내 보기만 해도 든든한 국수를 차려준다. 구수한 멸치 육수에 갖은 고명과 참기름 향 진한 양념장을 얹은 ‘옛날국시’다. 면발은 살짝 단단하게 삶아내 천천히 먹어도 마지막 한 가닥까지 쫄깃하다. 부추와 지단, 김가루, 쪽파 등 고명의 구성과 면면이 화려하다. 곁들여내는 경상도식 김치도 하나같이 정갈하고 맛깔난다.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 58-20. 5000원.

선광집 생선국수.JPG

◇선광집 = 생선국수. 멸치국수도 일종의 생선국수일테지만, 정말 싱싱한 민물고기로 끓여낸 ‘생선국수’란 이름은 뜻밖에도 내륙인 충청북도에서 주로 쓴다. 옥천 청산면에는 아예 생선국수 거리가 형성돼 있다.

1962년 창업한 선광집은 이 중에서도 전국구 입소문을 몰고 다니는 집이다. 생선국수와 생선튀김, 도리뱅뱅이가 주메뉴. 물고기를 통째로 갈아 고춧가루와 김칫국물을 넣고 오랜 시간 끓여내 죽처럼 진한 국물에 국수를 말아낸다. 옥천군 청산면 지전1길 26. 6000원.


<놀고먹기연구소장> www.playeat.net


#놀고먹기연구소 #먹고놀랩 #삼장밥사 #삼장밥사tv #foodie #관광및식도락 #컨설팅 #스토리개발 #콘텐츠 #굿즈개발 #이우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국의 생제르맹, 다동과 무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