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로지] 007보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스
고수, 세계서 가장 널리 쓰이는 잎. 부추·쑥갓, 고수 못지않은 향신채
고추·마늘·파·달래·생강도 향신료. 김치·순대볶음 역시 스파이시 푸드.
인도 커리, 다양한 향신료 끓인 국물. 집집마다 만드는 향신료 집합 마살라
중국 마라, 쓰촨지방의 향신료 배합 혀 마비될 만큼 맵고 얼얼하단 의미
태국 똠얌꿍, 새우·향신료 넣고 끓여낸 세계 3대 수프
향신료(spice)는 먹는 향료를 뜻한다. 게다가 매운맛이 기본이다. 향신료(香辛料)의 한자는 향(香)이 나고 매운(辛) 것이다.
영어의 스파이스(spice)는 라틴어로 ‘토산품’이란 말에서 나왔다. 정확하게는 남의 나라 토산품이란 뜻이다. 원래 없던 물건이었다. 지금 스파이시(spicy), 스파이시 소스(spicy sauce) 등은 ‘매운맛’을 뜻한다. 식재료에 향신료를 써야 비로소 매운맛이 나니 그렇다. 이는 가끔 핫(hot)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그런데 향신료가 많이 나는 지역도 열대, 매운 음식을 찾는 지역도, 계절도 핫(hot)한 곳이 많으니 이게 제법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다.
향신료는 오랜 시간을 인류 요리 역사와 함께 했다. 고대 로마에서 이미 후추를 썼다하고 그보다 훨씬 전인 중국 삼황 염제 신농씨가 일일이 풀과 열매를 씹어 그 맛과 효능을 신농본초경에 기록했다고 전한다. 단군 신화에도 마늘(야생 마늘로 추정)과 쑥이 등장한다. 둘 다 향신료다. 이후 야생 작물 중에 많은 것이 재배 작물로 편입되고 그중에 향신료로 쓰는 작물이 별도 구분됐다.
절실한 이들이 많을테니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다. 영어 “No coriander, please” 중국어 “我不要香菜”, 일본어 “パクチー抜きで”, 태국어 “ไม่ใส่ผักช” 스페인어 “Sin cilantro, por favor”, 프랑스어 “Sans coriandre, s'il vous plaît” 인도어 “धनिपा के बिना दीजिए” 등이다.
적어놓고 보여주면 된다. 채소 종류 하나에 이처럼 수많은 회화가 유통되는 경우가 또 있을까. 아무튼 적도처럼 호불호를 정확하게 가르는 향신료가 고수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잎채소 향신료(향신채)는 고수잎(cilantro)이다. 코리앤더(coriander)는 영어권에서 고수풀의 씨를 특정해 이르는 말이다. 아시아, 유럽, 중동, 중남미 등에서 요리에 범용적으로 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에선 특별히 꺼리는 악명(?) 높은 향신료다. ‘빈대 냄새’ ‘오래된 집 다락 냄새’ 등 질색하는 표현도 다양하다. 신기하게도 코리앤더는 그리스어로 빈대(koris)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특별한 학습경험 없이 우리도 고수를 빈대풀이라고도 부른다.
“비누로 설렁설렁 빤 행주 냄새가 난다”며 질색하는 이도 있다. 해외여행 회화책 식당 편에는 “고수를 빼주세요”라는 항목이 반드시 있을 정도다.
향신료로 이미지가 선명한 고수 탓에 한국인은 ‘향신료를 즐기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다.(실제로는 고수를 좋아하는 이도 은근히 많다)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계피, 산초, 명이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토종 향신료는 물론 고추, 마늘, 파, 달래, 생강, 냉이 등 한식에서 빠질 수 없는 양념 채소가 모두 향신료에 속한다. 심지어 늘 접하는 부추와 쑥, 쑥갓 역시 고수 못지않은 향신료다.
향신료 원산지로는 보통 인도 남부를 말한다. 코치, 캘리컷, 코친, 트리반드룸 등 인도 남서부 케랄라 지역은 습하고 더운 날씨 때문에 예전부터 다양한 향신료를 요리에 써왔다. 이 ‘맛과 향’ 때문에 침략도 수탈도 많이 당했다. 향신료를 찾아온 유럽인이 인도 남서부 지역과 이은 항로와 육로가 이른바 ‘스파이스 로드’다. 외진 땅에 처음엔 유대인이 들어와 유럽에 향신료를 팔았고 이 상권을 노린 이슬람 상인들이 뒤를 이었다. 나중엔 포르투갈 등 서양 열강이 직접 ‘인도’를 찾아 돌아다녔다.
‘대항해시대(age of discovery)’의 시작은 유럽 각국이 향신료를 찾아 나서면서 시작됐다. 1498년 바스코 다 가마는 드디어 인도 캘리컷(케랄라주)에 도착했다. 1503년에는 말라바르 해안 도시 코친에 식민지를 짓고 총독을 파견했다. 막대한 돈이 들어왔다. 포르투갈의 성공을 눈여겨본 다른 서유럽 왕조와 귀족은 ‘탐험가(사실은 무장한 장사꾼)’를 찾아 배를 띄웠다. 말이 대항해지 사실 침략의 시대다. 탐험가(?)가 도착한 곳마다 전쟁이 일어났다. 침략자들은 인도와 남아시아에 향신료를 생산 유통하는 식민지를 세웠다.
침략과 전쟁 등 부정적인 일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인류는 향신료를 통해 금융 투자 활동을 본격화했다. 향신료를 찾는 탐사 작업에 대해 펀드가 생기고 주식이 발행됐다. 동인도회사는 최초의 주식회사다. 향신료를 찾으려 떠났다가 남미의 옥수수와 감자, 고추를 싣고 돌아왔으며 북미 미국 땅도 발견했다. 뭔가 잘못된 계산을 했던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두고 인도로 믿었던 것도, 애초 발진한 이유가 향신료 무역이었기 때문이다. 평생을 그렇게 믿다가 죽은 그는 북미 원주민을 유럽에 인디언이라 소개했다. 따지고 보면 이게 모두 향신료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향신료는 식재료를 보다 맛있게 먹기 위한 것이다. 식재료 특유의 냄새나 느끼함을 잡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생선에 고추냉이를 얹고 고기에 후추를 뿌리고, 돼지고기를 삶을 때 생강을 넣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축적된 경험에 의해 고기마다 생선마다 어울리는 향신료가 생겨났다. 향이 강한 팔각은 돼지고기에, 소고기에는 커민을, 로즈메리 등 허브는 닭을 구울 때 바르거나 뿌린다. 시나몬과 계피, 민트는 양고기와 궁합이 좋다.
가장 많이 향신료를 상식하는 나라는 인도와 남아시아 등 열대 기후대나 중동반도 쪽에 모여있다. 본향이자 종주국인 인도는 아예 향신료 가루만 섞어서 마살라를 만들어 난(혹은 밥)과 함께 먹는다. 커리(curry)란 ‘다양한 향신료를 끓인 국물’이란 뜻이다. 북아프리카나 터키, 이란 등에도 커리와 비슷한 전통 음식이 많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춧가루에 찐 마늘, 다진 양념을 기본으로 깻잎과 들깻가루를 넣고 들들 볶아 순대볶음을 만든다. 틀림없는 스파이시 푸드다. 이게 없으면 밍밍하고 냄새가 난다며 고개를 젓는다. ‘다대기’라 부르는 다진양념은 인도의 마살라와 결을 같이 한다. 국에 넣어 맛을 더하고 고기를 찍어 풍미를 강조한다. 김치 역시 카레(커리)와 같은 스파이시 푸드다. 구성을 보면 고추와 마늘, 생강 등 향신료 범벅이다. 배추 사이에 향신료 덩어리 ‘김칫소’를 욱여넣은 것이다. 여름이 습하고 더운 탓에 한국 역시 알게 모르게 향신료를 많이 섭취하는 나라 중 하나다.
향신료는 향을 내고 미각을 자극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중독(?)된다. 이탈리아인은 바질에, 한국인은 고추와 마늘에 분명히 중독돼 있다. 일본인은 강황이 중심인 카레에, 중국인은 마라(痲辣)에 유난히 친숙함을 느끼는데, 이것도 중독이다. 일본인에게 시치미(七味)는 국민 향신료 반열에 있다. 일본의 식당 테이블에 기본으로 놓인다. 시치미는 진피, 참깨, 파래, 후추, 차조기, 생강, 소금 등 7가지 향신료를 섞은 것이다.
마라는 중국 쓰촨(四川) 지방의 향신료 배합이다. 마(痲)는 ‘마비되다’는 뜻이고 라(辣)는 ‘맵다’는 의미다. 혓바닥이 마비될 정도로 맵고 얼얼해 특유의 음식을 만드는 데 쓴다. 고추기름을 낼 때 초피, 팔각, 화자오, 육두구, 정향, 회향 등 특유의 향신료를 섞은 것이 마라 소스이며 여기다 두반장이나 고춧가루를 첨가한 것이 마라탕 양념이다. 쓰촨에선 ‘기본’ 양념인 까닭에 ‘마라’를 붙이지 않는다. 그래서 안심하고 수이주위(水煮魚) 등을 주문했다간 입에 불이 나고 만다. 여기에 들어가는 게 마라 중 가장 매운 양념 배합이다. 국내에서 인기 높은 마라탕은 쓰촨의 마오차이(冒菜)가 다소 덜 맵게 변형한 음식이다.
미식 국가로 꼽히는 태국도 향신료를 많이 쓰는 나라다. 대표적 수프 요리 똠얌꿍은 새우와 향신료를 넣고 끓여낸 것이다. 생선 대가리를 넣은 똠얌후어쁠라 등 재료는 다양하게 쓰지만 똠얌꿍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 큼지막한 새우는 감칠맛을 내고, 고수와 민트, 레몬그라스, 고량갈(남방식 생강), 라임즙 등 향신료는 매콤하고 새콤한 맛과 달달한 향을 담당한다. 자칫 강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 코코넛 밀크로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보충한다.
국경을 넘나드는 커리는 향신료 음식의 대표 격이다. 향신료 조합인 마살라에 뭔가 다른 식재료를 넣으면 그때부턴 ‘커리’다. 인도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커리는 식민지 시절 동인도 회사를 통해 영국으로 넘어가 유럽식 커리가 됐고, 일본은 영국에서 들여와 ‘카레’를 만들었다. 가까운 네팔은 물론, 포르투갈이나 이란, 태국, 말레이시아에도 각각 다른 맛의 커리가 있다. 커리를 상식하는 인구는 족히 10억 명이 넘는다. 감자, 치킨, 크림, 버터, 토마토, 렌즈콩, 시금치 등 재료를 첨가할 때마다 새로운 향과 맛의 커리가 생겨난다.
더위를 먹거나, 심신쇠약, 자양강장, 어떨 때는 배앓이 약으로 두루 쓰였을 정도로 향신료는 오랜 세월 동안 인류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아온 보물이다. 사상 유례없는 감염병 팬데믹에다 초유의 무더위. 지금이야말로 정신을 번쩍 차리도록 도와주는 화끈한 향신료가 절실할 때다.
<놀고먹기연구소장>
◇네팔식 그린커리 = 더 히말라얀. 현지인이 향수에 시달리면 저절로 찾아드는 맛집. 북인도와 네팔식 퀴진을 표방하는 이곳 시그니처 커리는 팔락 파니르(palak paneer)다. 채식주의자들의 커리다. 시금치와 코티지 치즈를 넣고 푹 끓여 진한 녹색을 내는 모양새만 보면 식욕이 그다지 당기지 않지만, 부드럽고 입안에 퍼지는 그윽한 풍미가 꽤 좋다. 칼로리도 낮고 맛도 부담 없어 찾는 이가 많다. 인도를 떠나면 신호등처럼 그린, 레드, 옐로 3가지로만 구분되는 게 이상했는데 이곳은 그보다 훨씬 많은 커리를 판다. 경기 파주시 새꽃로 196. 9000원. 난 2000원.
◇터키식 양갈비 = 이스탄불 그릴. 쿠주 피르졸라(kuzu pirzola)라 불리는 양갈비 구이다. 민트와 정향, 칠리파우더 등 각종 향신료로 미리 숙성시켰다가 주문하면 숯불에 구워낸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를 말끔히 걷어내고 육향을 끌어올렸다. 육즙 풍부한 어린 양갈비에 살짝 매콤한 맛이 곁들여져 한 입 베어 물면 진한 풍미가 도드라진다. 샐러드와 감자튀김을 세트로 내준다. 그릴 바를 갖춘 레스토랑은 터키인이 직접 운영하는 곳으로 현지식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서울 마포구 백범로 152. 2만4000원.
◇이란식 커리 = 페르시안궁전. 이란인들은 페르시아 제국 시절부터 커리를 먹어왔다고 한다. 이란 출신 귀화 한국인이 운영하는 이곳은 다양한 마살라를 직접 배합해 커리를 끓이고 화덕을 설치해 닭을 굽는다. 20년 가까이 된 ‘에스닉 노포’다. 양, 닭 등의 재료와 매운맛을 따로 주문할 수 있는 커리는 인도풍, 케밥은 이란풍이다. 통닭 커리부터 요거트, 디저트까지 다양한 메뉴가 있다. 양갈비 커리에 보통 맵기가 가장 인기.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6길 9. 1만5500원.
◇중국식 탄탄멘 = 탄탄면공방. 이름은 딴딴미엔(擔擔麵)으로 상당히 귀엽지만 쓰촨(四川)요리 특유의 얼얼한 양념은 강렬하다. 마라 양념에다 돼지고기를 볶아 얹어 자작한 소스에 면을 말아낸다. 땅콩기름이 들어가면서 조금 부드러워졌을 뿐, 첫 젓가락부터 자극적이다. 거의 비빔면에 가까운 쓰촨 현지식보다는 일본식 탄탄멘 스타일로 국물이 좀 더 자작하다.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6길 25 재륜빌딩. 9500원.
◇ 똠얌꿍 = 어디로가든. 가게는 작지만 아시안 퀴진을 제대로 차려 내는 집. 태국식 똠얌꿍을 한국인의 입맛에 살짝 맞춰 낸다. 탱글탱글하고 튼실한 새우가 적절한 배합의 향신료 수프 속에 잠겼다. 끝 맛만 살짝 매콤한 국물은 마음껏 떠먹어도 부담이 없어, 꽤 많은 양이지만 금세 사라진다. 수제 파니니와 감바스 알 아히요, 하몽 콘 멜론 등 서양식 메뉴도 있다. 요리주점답게 다양한 주류를 갖춰 한잔 즐기기에도 좋다. 여행을 좋아하는 부부가 해외를 콘셉트로 구성한 인테리어와 메뉴가 최근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 속, 반전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일현로 97-11.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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