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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징어, 내 몸을 이룬 단백질이여

[푸드로지] 10개 다리 만큼 다양한 오징어 맛의 세계

by 이우석 더 프리맨

‘풍년’ 맞은 제철 오징어
서민밥상 책임지던 오징어국
‘국민 주전부리’ 마른 오징어
데침은 대폿집 소주안주 인기

‘갑옷같은 뼈’ 갑오징어는 고급
‘한치 길이 다리’ 한치는 차져
제주선 귀한 무늬오징어 잡혀

피로해소에 좋은 타우린 많아
소화 잘되는 고급 단백질 함유

伊, 오징어순대 같은 요리 있어
지중해 낀 阿 국가도 즐겨먹어

오징어순대.JPG 오징어순대



“오징어가 돌아왔다.” 제철 생선이 별로 없는 여름철에 부드러운 매력 속 깊은 마성을 지닌 오징어가 돌아와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몇 년 전 품귀 현상을 빚어 ‘금징어’라 수년간 불렸던 오징어가 올해 어획 사정이 나아져 서민들의 식탁에서 당당히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중국 어선들의 남획이 예전보다 줄고, 동해안 수온이 평년보다 1도 정도 높아져 약 15∼20도로 유지되면서 오징어 어획에 최적 환경이 조성된 덕이다. 오징어 어선들은 매일같이 만선기를 휘날리며 귀항하고 있다. 주요 산지 동해안 어민들은 7월 중순까지 이런 조건이 유지돼 오랜만에 ‘오징어 대풍’을 맞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10708010318120000012_b.jpg?v=20210711103524 ▲ 오징어는 다양한 방법과 부위로 조리가 가능해 물리지 않고 즐길 수 있다. 오징어숙회, 갑오징어, 오징어입튀김, 오징어주물럭, 오징어먹물볶음밥(위에서부터)


갑오징어2.JPG

오징어는 오랜 세월 한국인과 함께한 어족자원이다. 오징어의 길쭉한 몸통(사실은 머리) 속엔 근현대를 살아온 민초의 애환이 숨어들었다. 시원한 오징어국으로 끼니를 챙겼고, 오징어 데침은 소주 한잔과 함께 대폿집을 지켰다. 오징어덮밥은 저렴한 분식집 점심 메뉴로 학생들과 함께했고, 마른오징어는 사시사철 열차 안이나 영화관, 야구장 등에서 심심풀이 주전부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뿐이랴. 오징어채는 도시락에서, 오징어 튀김은 노점 좌판에서 학생들의 든든한 먹거리가 됐다. 집에서도 반찬으로 더없이 활용도가 높다. 볶음, 조림, 무침에 불고기까지 다양한 맛을 낸다. 국민 식생활에서 따로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해산물이 오징어인 것이다.


오징어는 문어와 함께 연체동물이자 두족류의 대표적 해양생물이다. 둘 다 서양 일부 국가에선 ‘괴물’이나 ‘외계인’ 취급을 받았지만, 그 외 다른 지역에선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식탁을 책임진 인류의 중요 해양 식량자원이다. 문어, 낙지, 주꾸미는 팔완목(八腕目·다리 8개)인 데 반해 오징어, 한치, 꼴뚜기는 다리가 10개인 십완목(十腕目)에 해당한다. 짧은 다리 8개가 있고 길쭉한 촉완(觸腕)이 2개가 더 있다. 오징어는 이 촉완을 활용해 먹이를 사냥한다.

오징어.png 외국인들의 오징어에 대한 편견


오징어는 진화의 역사가 오랜 원시생물. 중생대 벨렘나이트(belemnite)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했으며, 생물학적으로 비슷한 종류로는 의외로 암모나이트가 있다. 암모나이트는 조개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두족류다. 오징어의 조상 역시 이 같은 껍데기로 몸을 보호했으며 오징어 정중앙의 기다란 연골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그 흔적이다. (갑오징어의 것은 몸통만큼 넓어 외투막을 완전히 지지하고 있다.) 뼈가 아니고 껍데기가 숨어든 것이란 얘기다.


벨렘나이트.jpg 벨렘나이트

오징어는 무척추동물이다. 세계 전역에 서식하고 있는데 길이 15m에 이르는 남극하트지느러미오징어, 10m가 넘는 대왕오징어, 2∼3m짜리 훔볼트오징어 등부터 작은 꼴뚜기까지 다양한 종이 있다. 우리나라 동해에서 많이 잡히는 오징어는 살오징어로, 피둥어꼴뚜기라 한다. 성체는 30㎝에 이르며 몸통 길이 절반 정도의 다리 8개와 20㎝에 가까운 촉완 한 쌍을 지니고 있다. 식용하는 대부분 오징어는 ‘살오징어’며 서해안의 갑오징어, 제주 해역의 한치꼴뚜기 등과는 명확하게 구분된다.


갑오징어는 갑옷처럼 두른 뼈가 외투막에 숨어 있어 붙은 이름이다. 원래 오징어란 이름은 서해안에서 쉽게 볼 수 있던 갑오징어에 먼저 붙었다고 한다. 나중에 이름을 빼앗은 ‘살오징어’와 구분하기 위해 갑(甲) 자를 붙였다. 두툼하고 탄력 있는 육질과 담백한 맛으로 다양한 요리가 가능해 서남해안에선 고급어종으로 친다. 괜히 ‘갑’이 아니다. 영화 ‘자산어보’에 등장하는 오징어도 갑오징어다. 정약전은 책에 갑오징어의 다양한 효능에 대해 적었다. 갑오징어 뼛가루를 상처에 뿌리면 피가 멎는다고 했다. 실제 지혈제로 쓰인다.

갑오징어.JPG 갑오징어가 인기다. 장흥 여다지횟집



한치는 다리가 짧아 한치다. 정작 다리가 한 치(一寸·약 3㎝)에 불과하단 말인데, 괜스레 점잖게 들린다. 원래 이름은 창오징어다. 제주에선 부드러운 한치를 오징어보다 값지게 취급한다. 생물은 채를 썰어 회나 물회로 먹고, 말려서 그대로 먹기도 한다. 식감이 더 차지고 쫀쫀하니 착 달라붙는다. 제주 속담 중에 “한치가 인절미면 오징어는 개떡”이라는 말도 있다. 동해에도 한치라 불리는 화살오징어가 있다. 살아 있을 때 붉은색이 도는 제주 창오징어보다 좀 더 하얗고 끄트머리가 뾰족하다.

오징어마늘칩2.jpg 오징어마늘칩 오징어풍경


제주 해역에는 이보다 더 귀한 무늬오징어도 있다. 흰오징어가 공식 명칭인데 낚시꾼들은 무늬오징어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갓 낚으면 번질거리고 얼룩얼룩한 무늬가 뚜렷하게 보이는데 죽고 나면 하얗게 변한다. 낚시꾼 입장에선 신선한 무늬오징어가 맞는 말이다. 갑오징어처럼 통통한 흰오징어는 연안에 자주 나타나고 몸집이 커서 낚시하기에 좋은 어종이다. 제주와 남해 쪽에 출몰하며 크게는 2㎏ 이상 대어도 있어 이를 노리고 출조를 나가는 동호인이 많다. 살오징어는 어딜 가나 ‘친척’에 밀린 셈이다. 그래도 존재감은 확실하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는 오징어를 많이, 또 즐겨 먹지만 외국의 사정은 썩 그렇지 않다.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과 북유럽 등 서양 일부에선 오징어(두족류 일체)를 입에 대지도 않는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스 등 지중해 연안 국가에선 오징어 음식을 매우 좋아하지만 대부분 유럽과 미국에선 오징어 자체만 봐도 질색한다. 007 시리즈나 과학소설(SF)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초대형 문어나 오징어인 것도 그들이 평소 두족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상상 속 외계인을 묘사할 때도 오징어 등 두족류를 닮은 경우가 많다. 유태인들은 ‘비늘 없는 생선을 식용금지’한 카슈루트(kashrut) 규율에 따라 오징어나 문어를 먹지 않는다.

20190902_202812.jpg 얼맥당 오징어입 안주
오징어 외계인.jpg 오징어 외계인



하지만 오징어를 식용으로 즐기는 문화권에선 또 끔찍이도 챙긴다. 이탈리아에선 오징어 먹물 파스타, 칼라마리 튀김 등 다양한 오징어 요리를 즐긴다. 이 중 통오징어 속에 빵가루, 마늘, 계란, 치즈 등으로 만든 소를 채워 익히는 칼라마리 리피에니(Calamari ripieni)가 있다. 오징어순대와 같은 원리의 음식이며 심지어 맛도 비슷하다. 스페인에도 이와 닮은 칼라마레스 레예노스(Calamares rellenos)라 불리는 오징어순대 튀김 요리를 타파스로 즐기고, 그리스에선 칼라마라키아(καλαμαρακια)라 불리는 오징어 튀김을 어디서든 맛볼 수 있다. 같은 지중해를 낀 아프리카 북부에도 다양한 오징어 요리가 있다.

갑오징어 통찜.JPG 갑오징어먹물찜 장흥 여다지횟집


아시아 해양권에서도 오징어를 즐긴다. 필리핀에도 푸싯 아도보(오징어조림), 태국 팟씨유 파묵(오징어 간장볶음), 베트남 코믁찌엔(마른 오징어채 튀김) 등 고유의 요리가 있어 해외여행을 떠나온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오징어는 중량 대비 영양가가 우수하다. 일단 소화흡수가 좋은 고급 단백질이 가득하며 피로 해소에 좋은 타우린과 비타민E, 아연, DHA, EPA를 풍부하게 함유했다. 콜레스테롤이 많은 점을 제외하면 고단위 영양 식품이라 ‘여름을 앞두고 몸 만들기’에 딱 좋다. 닭가슴살 못지않다. 단백질에 비해 열량도 낮아 당뇨식으로도 좋다. 이처럼 흔하고 맛과 영양이 좋은 오징어는 꾸준히 사랑받는 식재료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말리면 보존성까지 좋아, 6·25전쟁 당시 국군 전투식량으로 보급됐다. 마른오징어는 말리는 과정에서 또 다른 맛이 난다. 생물 오징어보다 진한 풍미를 내고 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조기보다 굴비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와 같다. 하지만 강한 냄새도 난다. 미국인들은 이런 마른오징어의 향취를 시신 썩는 냄새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 이외에는 조미하지 않은 오징어를 그대로 말려서 먹는 경우가 드물다.



20210708010318120000013_b.jpg?v=20210711103524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오징어 먹물도 좋은 식재료다. 단백질로 이뤄져 있으며 감칠맛 덩어리로 남유럽에선 이에 착안해 리소토나 파스타에 즐겨 쓴다. 실제 먹이나 잉크로도 썼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징어나 문어 먹물로 글을 썼다. 매끌매끌 잘 써졌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1년 정도 지나면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지켜지지 않는 약속’을 일러 ‘오적어묵계(烏賊魚墨契)’라고 비꼬았다.



오징어 먹물은 곧 사라지지만 오징어의 우수한 맛과 영양은 오래간다. 다만 오징어 자체가 명태처럼 연근해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인간의 욕심 탓이다. 오랜만에 대풍이 든 오징어를 지금 당장 맛봐야 할 이유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먹을까



20210708010318120000014_b.jpg?v=20210711103524 향미 충칭오징어튀김



오징어 풍경 오징어회.jpg

◇오징어풍경 무교동 = 그야말로 오징어 전문점. 다른 해산물 중 이렇게 대표적으로 간판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또 있을까. 활오징어회를 채 썰지 않고 너붓너붓 잘라내 찰떡처럼 차진 식감이 좋다. 가늘게 썬 오징어 살을 마늘과 함께 튀겨낸 오징어마늘칩은 찾아보기 힘든 별미로 생맥주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서울 중구 다동길 5 광일빌딩 1층. 오징어마늘칩 1만5000원.


◇향미 = 연남동 화교 노포 ‘향미’에 몇 년 전부터 새로운 메뉴가 도입됐는데 이 중 인기를 끄는 것이 바로 충칭오징어튀김이다. 홍고추와 풋고추, 청양고추 등 여러 가지 고추를 잘라 부각처럼 바싹하게 튀겨내 매운맛이 강하지 않고, 튀김의 느끼함을 걷어내는 칼칼함 정도로 뒷맛을 살린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193. 2만5000원.

충칭오징어튀김2.JPG


원조두꺼비불오징어4.JPG

◇원조 두꺼비집 불오징어 = 안주나 식사로 푸짐한 오징어볶음을 즐기러 찾는 곳. 연신내 먹자골목에 위치한 집으로 널리 입소문이 났다. 메뉴는 불오징어지만 직화도 아니고 맵지도 않다. 미나리, 쑥갓, 부추 등 제철 채소 중 한 가지와 양배추를 잔뜩 올려 볶아먹는 철판 오징어불고기다. 서울 은평구 연서로28길 5. 1만8000원(2인분).

종가집오징어주물럭3.JPG

◇종가집 고추장주물럭 = 서울에선 생소하던 오징어 주물럭이란 메뉴가 강남에 뿌리를 내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집. 50년 가까이 됐다. 직접 담근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목살과 오징어 등을 주물럭 구이로 판다.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48길 108 정일빌딩. 1만3000원(1인분).

전주 전일갑오.JPG

◇전일갑오 = 말린 갑오징어를 맛볼 수 있는 곳은 현실적으로 드물다. 살오징어에 비해 워낙 살이 두껍고 단단하기 때문이다. ‘전주 가맥집’ 중 가장 유명한 전일슈퍼는 갑오징어를 잘해 ‘전일갑오’라고도 불린다. 단단한 갑오징어를 망치로 두드려 부드럽게 펴고 연탄불에 잘 구워내 맥주 안주로 낸다. 전주시 완산구 현무2길 16. 1만5000∼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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