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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적 사회주의자 Aug 22. 2019

민주적 사회주의자 전문

몫 없는 자에게 몫을!

전문

                                                                                                                                                    2019.8.13.     

우리는 불안과 우울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이윤이 삶보다 우선되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불안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다. 용산참사를 보라. 자신이 살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철거민들은 망루에 올라 투쟁하다 목숨을 잃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를 보라. 사측의 일방적인 해고로 인해 노동자들은 극도로 고통스러운 10년을 보내야 했다.

 사람들은 위험으로 내몰린다. 세월호 참사를 보라.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오래된 배를 개조하고 무리해서 짐을 실은 결과 무고한 생명들과 함께 세월호는 가라앉고 말았다. 위험의 외주화로 죽어간 노동자들을 보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 씨부터 태안화력발전의 장비 때문에 사망한 김용균 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노동자들이 위험한 노동환경 속에서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란 이처럼 삶이 비용으로 전락한 시대, 그리하여 이윤을 최대로 거둘 수만 있다면 사람들이 죽거나 고통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믿는 시대다. 이런 시대를 사는 우리는 언제 희생양이 될지 몰라 두렵고 불안하다. 죽도록 경쟁해서 희생양이 되지 않는 삶을 쟁취해야 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는 불안하다.     


우리는 폭력이 존엄을 억누르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불안하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들은 숨죽이고 살아야 한다. 장애인은 시설 밖으로 나오지 말 것을,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밝히지 않고 살 것을, 여성들은 자신이 경험하는 폭력과 차별에 대해 말하지 말 것을, 이주민과 난민은 정치적 권리에서 배제될 것을 강요받는다. 소수자들에게 집요하게 가해지는 침묵의 압력은 폭력이 되어 삶의 존엄을 침해한다.

 국가와 기성정치세력들은 배제해야 할 ‘적들’을 끊임없이 소환한다. 오랜 시간 한국 사회에 그림자를 드리운 국가폭력은 급진적인 정치세력들에게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억압을 가했다. 분단체제를 이용해서, 배타적 민족주의를 이용해서, 남성성을 이용해서, 이중노동시장을 이용해서 끊임없이 배제해야 할 적들을 만들어내는 지배전략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배제와 억압을 가하도록 부추겨왔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란 다수가 규정한 ‘정상성’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노심초사해야 하는 시대다. 다수와 다른 소수가 되는 것은 ‘비정상’이 되는 것이고 언제든 폭력과 차별,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언제 내가 억압받는 위치에 설지 모르는 시대를 사는 우리는 불안하다.     


우리는 이 시대를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없기에 우울하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무기력을 학습시켰다. 87년 이후의 정치체제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달성했을 뿐 일상의 영역에 민주주의가 침투하도록 하는 데에는 무력했다. 대중들의 정치적 의지는 외면한 채 엘리트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제도정치는 정치를 그저 권력자들의 협잡질에 불과하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 우리를 길들여온 국가폭력과 이데올로기는, 이념은 낡고 위험한 것일 뿐이며 새로운 사회나 대안이란 없고 지금의 사회에서 균형을 잡는 것만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인식을 퍼트렸다. 불평등과 차별 속에서 불안을 느끼지만 그 불안을 표현할 정치적 언어도, 벗어날 수 있는 대안도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익명의 누군가일 뿐이다. 탈정치의 시대, 투명인간이 된 우리는 깊은 우울의 늪 속에 던져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념 있는 대중정당’이다.
이념이란 무엇이며 왜 대중정당에게 필요한가?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이념이 분명한 대중정당이다. 이념이란 무엇인가? 이념이란 이론의 언어로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는 것이다. 정의(Justice)란 그것이 잘못에 대한 응분의 대가이든, 노력과 헌신에 대한 보상이든, 존엄한 개인이 누리는 권리이든 누군가에게 응당 돌아가야 할 ‘몫’을 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만 어떻게 배분된 몫을 정당하다고 볼 것인지가 문제인 것이며, 이때 이념은 현실을 분석하는 이론의 언어를 통해 누구에게 어떤 몫이 돌아가야 정의로운지를 정의 내려주는 논리적 틀이다.

 그래서 이념이 분명한 대중정당이 필요하다. 불안과 우울을 느끼고 있는 대중들에게 그들의 불안과 우울이 왜 발생하고 있는지, 왜 그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감수해야 할 것이 아니라 저항해야 할 대상인지, 어떻게 해야 그 저항이 성공할 것인지 말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이념이 필요하다. 이념적 색채를 드러내기를 기피하는 대중정당은 당장 눈앞의 표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대중들 스스로가 발화하고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정치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중들 스스로 민주주의를 확장해 나가도록 추동하지 않는 정치는 소수의 ‘인물’에만 의존하게 될 뿐, 결코 역사의 흐름을 바꿔나갈 수 없다.     


몫 없는 자들의 몫을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정의다.

 우리가 추구하는 이념은 무엇인가? 그것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은 단순히 동물로서의 삶을 초과해 정치적 인간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구성해나갈 수 있는 존엄한 존재로, 즉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민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선언이자 약속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불평등과 차별, 폭력과 배제를 통해 사람들로부터 ‘시민’으로서의 삶을 박탈하고 사회라는 정글 속에서 경쟁하며 가까스로 생명활동을 유지할 뿐인 무력한 개개인들을 만들어낸다. 바로 여기서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우울이 등장한다. 작금의 사회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불평등과 차별 앞에 우리가 통제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윤 앞에서 비용 내지 장애물로 전락한 익명의 사람들, 다수가 점령한 정상성에서 쫓겨난 익명의 소수자들, 아직 이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몫을 논할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무력한 투명인간들, 다시 말해 ‘몫 없는 자들’의 몫을 되찾는 것이 곧 우리가 말하는 정의로서의 민주주의다. 우리는 불안과 우울 속에 떨면서 살아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정당한 몫이 아니다. 우리의 정당한 몫은 불안과 우울을 떨치고, 우리의 삶을 우리가 규정해나갈 수 있는 실질적인 힘과 평등한 자유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이념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약속하는 정당한 몫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일상의 민주주의를 보다 심화하고 확장함으로써, 그리고 끝내는 자본주의를 비롯해 각종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극복함으로써 실현될 것이다. 특히 자본과 그에 기생하는 자본가들이 독점하고 있는 물적 조건에 대한 결정권을 우리 모두의 몫으로 가져와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민주적 정의의 핵심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와 같은 이념을 ‘민주적 사회주의’라 부른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세대교체

 민주적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우리는 또한 진보정치의 세대교체를 요구한다. 우리가 말하는 세대교체란 단순한 인적 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적 교체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세대는 교체될 수 있다. 세대라는 것은 특정한 인물들의 합이 아니라, 특정한 경험을 공유하는 인간들의 관계 맺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요구하는 세대교체라는 것은 이전과 다른 방식의 정치적 관계 맺음이다. 배타적인 조직문화 속으로 잠식되지 않는 것, 다수의 입장을 내세워 소수를 묵살하는 패권주의를 벗어나는 것, 군림하는 지식인과 복종하는 활동가의 관계를 넘어서 지식인과 활동가의 민주적 소통을 촉진하는 것, 선배 활동가와 후배 활동가의 교류를 보다 평등하게 만드는 것, 당의 지도부와 당의 구성원들 사이의 격차를 좁히는 것 등. 당내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그 모든 것이 새로운 세대를 구성하는 새로운 정치적 관계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관계가 저절로 형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로부터 새로운 관계들이 형성될 수 있도록 치열하게 성찰하고 실천해나갈 것이다.     

 시대의 변화는 그 시대를 변화시킬 힘을 가진 정치의 변화로부터 촉발될 수 있다. 그리고 정치의 변화는 그 정치를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들 간 관계의 변화로부터, 즉 세대교체로부터 시작된다. 우린 우리가 서 있는 현장으로부터, 그 현장들을 아우르는 사회구조에 이르기까지 이 사회가 강요하는 반민주적이고 불평등한 구조에 맞서 우리의 정당한 몫을 되찾는 정치를 실천해나갈 것이다. 이 길의 첫머리에서 사회는 도리어 우리를 문제라 규정할 것이다. 왜 모두가 감내하고 살아가는 불안과 우울을 견디지 않고 떼를 쓰느냐고, 왜 제대로 된 몫을 승인받지도 못한 너희가 감히 목소리를 높이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끝내 우리는 우리의 몫을 되찾고, 거꾸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규정할 힘을 손에 넣을 것이다. 우리에겐 얻어야 할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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