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사회주의자>의 11개 강령
1. 우리의 이념은 민주적 사회주의다.
민주주의는 자유롭고 평등한 인민들의 자기 통치라는 이상(理想)과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운동과 제도를 아우르며, 국가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층위와 영역에서 우리의 삶을 보다 평등하고 자유롭게 (재)조직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자본이 물질적 생산을 통제하는 자본주의는 인민의 평등-자유를 깨트리고 계급적 불평등을 확대한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의 이상·운동·제도를 무력화시키며 결국에는 우리로부터 스스로의 삶을 규정할 힘을 모두 박탈한다. 우리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개인의 발전이 전체 사회의 발전과 조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2. 우리의 이념은 페미니즘과 차이의 정치다.
우리는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모든 폭력에 대항한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여성을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삼아 남성 지배의 권력을 유지해왔다. 타자는 늘상 발명되어 그 자리에 퀴어, 장애인, 이주자 및 난민 등이 놓이고 그럼으로써 보편의 위치를 차지한 이들은 국가, 지역, 조직, 가정 등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그 특권을 누린다. 우리는 사적이고 일상적인 이슈까지도 정치의 문제로 다루면서 복잡하게 교차하는 모든 폭력과 가해의 구조에 맞서 총체적인 인간해방의 기치를 분명히 할 것이다.
3. 우리의 이념은 평화와 탈식민주의다.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약화되는 가운데 파시즘의 망령이 무덤에서 기어 나오고, 전 세계가 전쟁과 테러의 위협에 시달리는 전 지구적 내전의 시대에 돌입했다. 아시아에선 청산되지 못한 식민주의와 냉전의 구조가, 신냉전 질서로의 전환기에 다시 전쟁과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에 맞서 우리는 한반도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체제를 이뤄낼 것이며, 아시아 평화 공동체 건설과 전 세계 인민들과의 국제연대를 지향한다.
4. 우리의 이념은 생태주의다.
우리는 인간뿐만 아니라 생물과 비생물을 포함하는 비인간 자연에 존재하는 내재적 가치를 인식하고자 하는 생태주의를 지향한다. 생태주의의 해방적 기획은 인간과 비인간 자연 모두의 지속가능한 번영을 목표로 한다. 생태주의는 자본주의와 현실사회주의가 공유했던 생산력주의ㆍ산업주의에 반대한다. 하지만 생태주의는 중산층의 안전한 삶을 위한 소비적 차원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이윤 추구적인 파괴적 개발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생태주의와 민주적 사회주의는 조응할 수 있으며 함께 나아갈 수 있다.
5. 우리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은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 것이다.
국가는 시민들의 생명과 생존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고 시민들에게 전가해 왔으며, 신자유주의 이후 한국사회는 각자도생의 원리 아래 해체되었다. 그 가운데 저항하는 자,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이들, 낯선 이방인 등은 ‘비시민’으로 취급되어 박해와 차별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민주공화국이란 정치공동체 속에서 운명을 공유하며, 동료의 고통은 공동체 전체의 고통이다. 우리는 모든 비인간화에 저항하며 찢겨나간 사회적 연대와 타자를 향한 환대를 회복하고자 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그 누구도 홀로 두지 않을 것이다.
6. 우리는 반폭력의 정치를 지향한다.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폭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려는 속성을 가진다. 지배적 폭력에 맞서는 대항폭력은 역사적으로 지배적 폭력의 자리를 찬탈하며 피해와 가해의 위치를 바꿔왔다. 폭력은 무한한 생명처럼 끊임없이 폭력을 낳는다. 우리는 대항폭력의 필요성을 인정하되 그것이 전쟁으로 치달아 정치의 조건과 사회적 연대를 파괴하는 것에 반대한다. 우리는 폭력의 연쇄를 끊을 반폭력의 정치를 지향한다.
7. 우리는 해방적 지식을 추구한다.
우리는 지식과 정치의 만남을 지향한다. 주어진 세계를 정당화하는 앎에 예속된 정치는 대안을 창출할 수 없다. 그러나 반대로 실재하는 세계에 대한 앎을 방기한 정치는 지속가능한 대안을 창출해낼 수 없다. 우리는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우리를 대변하고 우리를 더욱 자유롭게 할 해방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8. 우리는 정치를 통해 현실을 변혁한다.
정치가 인민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정치를 불신하고 냉소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스런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혐오, 탈정치를 배격하며 정치의 가능성을 믿는다. 현실 정치가 온갖 욕망과 이해와 뒤엉킨 복마전의 세계라면, 그 세계에 뛰어들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정치다. 이념에 매달린 채 현실에서 무능력한 좌파와 이념을 버린 채 현실에 순응하는 우파를 거부한다. 우리는 분명한 이념적 지향으로 비루한 현실에서 변혁을 이끌어내는 현실주의자들이다.
9. 우리의 정치는 사회운동정당을 통해 실현한다.
우리의 정당은 한국사회를 만들어온 인민들의 거대한 직접행동에 경의를 표하고, 제도정치와 사회운동 사이의 벽을 허물어 사회의 갈등과 요구를 대변하는 정당이다. 운동은 정치 외부의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정치의 일부다.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정당은 제도의 안팎을 가로지르며 다양한 실천과 실험을 잇는 플랫폼이자 거점이 되어야 한다. 다양한 균열과 적대를 정치적 쟁점으로 다루면서 대항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것이 정당의 역할이다.
10. 우리는 정파적 이기주의를 거부하고 신뢰의 연대를 구축할 것이다.
우리는 정파적 이기주의로 점철된 낡은 조직문화를 거부한다. 한국사회에 팽배한 권위주의와 패거리주의의 구습은 민주적 사회주의자에겐 불관용의 대상이다. 폐쇄적인 정파주의를 넘어, 정당과 정파의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운영을 지향해야 한다. 우리는 민주적인 절차와 자원의 공정한 분배를 통해 정치적 노선의 차이를 극복하는 신뢰의 연대를 꿈꾼다. 또한 조직 내 민주주의를 통해 다양한 세력을 포괄하는 대항 헤게모니를 구성하고, 대안적 사회상을 우리 내부에서 배태해내고자 한다.
11. 우리는 87년 체제에 도전한다.
1987년의 민주화 이후 정착된 보수와 민주의 양당 구도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강고하기만 하다. 양당 구도의 진영논리에서 진보정당은 포섭되거나 배제되고 있으며, 진보정당이 대변하고자 했던 노동, 여성, 청년 등도 마찬가지다. 87년 체제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협소화하고 정치 참여를 특정한 정당과 세력으로 한정하여 수많은 사회적 의제들을 정치의 문제에서 배제시켜 왔다. 우리는 87년 체제가 만들어낸 몫 없는 자들에게 그 몫을 돌려줌으로써 87년 체제를 넘어선, 민주적 사회주의를 실현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