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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적 사회주의자 Sep 12. 2019

저문 달에 삽을 씻고

고속도로 요금소 수납원 노동자들의 투쟁에 지지를 보내며 by 고준우

"활력있는 경제가 서로를 넉넉하게 하고 공정한 사회가 서로에게 믿음을 주며 평화로운 한반도가 서로의 손을 잡게 할 것입니다. (중략) 보름달이 어머니의 굽은 등과 작은 창문에까지 세상을 골고루 비추듯이, 국민 모두에게 공평한 나라를 소망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추석인사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강행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을 의식한 탓일까. ‘공정’과 ‘공평’이라는 두 단어에서 문재인 정권의 깊은 근심이 오롯이 느껴진다. 공정·공평이야 말로 지금의 대통령 문재인이 있도록 해준 핵심적인 키워드 아니었던가.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까닭은 국민의 대변자여야 할 대통령이 일개 사인(私人)을 위해 권력을 휘둘렀고 그 권력의 비호 하에 소수의 특권집단이 국가를 마음대로 주물렀다는 사실이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기 때문이다.     


 이 공분에는 두 가지 측면이 뒤섞여 있었다. 민주화운동에 헌신해온 이들의 피땀으로 세운 한국의 민주주의가 붕괴했다는 분노와, 그 어떤 노력도 능력도 증명하지 않은 ‘자격 없는 이들’에 의해 국가체계의 공정성과 합리성이 붕괴했다는 분노였다. 특히 박근혜의 지속적인 무능과 반민주적 행태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정권이 ‘최순실’이라는 인물의 등장과 함께 붕괴했다는 것은 후자의 분노가 얼마나 결정적인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대중들의 분노를 딛고서 새로운 사회의 상을 제시해야 했던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이미 답이 주어져있던 셈이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문재인 정권이 말하는 공정성 담론은 힘을 잃었다. 비단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강행 때문만은 아니다. 이 글(링크: https://brunch.co.kr/@ppmodernism/22)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한국사회 엘리트들이 공정성의 이상(理想)을 실현하는 과정에 필요한 막대한 부담을 짊어질 각오도 의지도 없으면서 다른 권력집단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아오기 위한 구실로 공정성을 내세워온 역사 때문이다. 전체 사회 차원에서 공정성을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 입신양명의 문제로만 공정성을 사고하도록 부추겨온 이기주의의 틀이 공정성을 텅 빈 구호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지금 고속도로 요금소(소위 ‘톨게이트’) 수납원 노동자들이 점거하고 있는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는 이러한 텅 빈 공정성의 민낯이자, 공정과 공평의 달빛이 비추지 못하는 가장 어두운 골짜기다. 수납원 노동자들은 한국도로공사에 의해 직접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들이었으나 공공기관의 노동유연화가 본격화된 2009년부터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파견직)로 전환되었다. 현재 수납원 노동자들은 특혜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니라 좀 더 안정적인 노동환경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소위 ‘파견법’)에 명시된 파견기한 제한을 위반했으니 한국도로공사측은 직접고용의무를 부담한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대판 2017다219072 등).      


 대법원 승소판결에도 불구하고 현재 수납원 노동자들이 투쟁해야 하는 이유는 한국도로공사 측의 꼼수 때문이다. 한국도로공사는 1,500명의 노동자들 중에서 승소판결을 직접 받은 당사자인 300명만을 직접 고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국도로공사가 이런 ‘갈라치기’를 활용한 것은 비단 오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2013년 6,500명의 수납원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할 당시 한국도로공사는 자회사를 만들어 자회사에 고용되는 것을 조건으로 보상을 포기한 5,000명과 계속해서 권리를 주장했던 1,500명을 갈라놓았다. 지금도 똑같은 수법으로 수납원 노동자들을 갈라놓으려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이 순간에도 수납원 노동자들은 분열과 후퇴 없이 자신들의 권리를 오롯이 실현하고자 한국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강자의 권리는 법과 공권력에 의해 손쉽게 달성된다. 땅과 건물을 소유한 지주·건물주의 권리에 앞에 임차인이 힘없이 쫓겨나고, 사업장을 소유한 자본가의 권리 앞에 노동자가 힘없이 쫓겨난다. 그러나 약자의 권리는 애써 승소판결을 얻고도 지난한 투쟁과 고통이 없이는 얻어질 수 없다. 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근로를 인정받고도 작업장에 복귀할 수가 없어 노동자들(예컨대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투쟁해야 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거리투쟁을 불사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한가위는 돌아보지 않으면서 한가위 같은 날만 있으리라 소망하는 것은 무신경하다. 보름달의 달빛처럼 공평한 사회가 이뤄지길 소망할 뿐 ‘법 앞의 평등’을 붕괴시키는 이 거대한 불공정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하다. 무신경하고 무책임한 소망, 이것이 텅 빈 달이 우리에게 말하는 공정성의 실체다.     


 우리는 머릿속에 추상으로만 존재하는 공정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권력을 가진 이들의 전횡에 맞서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평등한 자유를, 우리 곁의 약자들과 연대할 수 있는 사회구조의 변화를, 개인의 이기심을 포장하는 공평이 아니라 누구나 들어와 함께 그 내용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열린 정의를 원한다. 텅 빈 달이 저물고 역사는 흐른다. 우리는 저와 같아서 흐르는 눈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갈 것이다. 일자리라는 몫을 빼앗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길이야말로 내리쬐는 달빛에 기대지 않고 어둠으로부터 평등과 연대의 불꽃을 피워 올리는 투쟁의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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