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창인
최근 조국 사태 이후 많은 당원들이 정의당에 실망하며 탈당계를 내고 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당 지도부의 지속적인 우경화 방향에 불만을 토로하는 당원들은 한 둘이 아니며, 심지어 바른미래당보다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다. 그만큼 현재 정의당은 내홍에 시달리고 있다. 정의당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있던 기존 당원들마저 떠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기치를 들고 ‘지금’, ‘왜’, ‘굳이’ 정의당에 들어가자고 이야기하는가? 이에 대한 의문에 솔직하게 답변하고자 한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세상을 바꿀 의지와 역량이 있는 집단이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근간으로 한 정치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국가다. 여기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한계들이 있지만, 적어도 이 룰(rule)에 맞춰서 경기에 뛰어들 용의가 있다면, 정당을 통해 제도정치에 개입해야 한다. 물론 제도권 바깥에서도 운동을 통해 사회 여러 영역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사회운동은 제도정치와 병행되지 않는다면 그 한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제도 정치와 결별한 사회운동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정부나 정치판을 향해 우리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부탁하는 ‘청원운동’밖에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제도정치에 직접 개입하여, 정권에 부탁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행동하고 실천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어느 정당에서 시작할 것인가? 모두가 힘을 합친 통합된 진보정당이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2019년 현재 한국의 진보정당은 모두 분열되어있다. 민주노동당 분당사태 이후 정파별 악감정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강화되고 있다. 19학번 대학 신입생마저도 운동을 처음 시작하면서 접하게 되는 것이 ‘NL-PD 논쟁’ 따위다. 이런 상황에서 통합된 진보정당의 등장을 기다리는 것은 지나치게 막연한 일이다. 오히려 하나의 정당 안에 들어가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진보대통합의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더 생산적인 일이 될 것이다.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창당을 고민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창당과정에 어려움이 있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새로운 진보정당 하나가 더 생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진보정당 중 가장 규모가 큰 정의당마저도 원내교섭단체가 못되는 형편을 고려하면, 신설 정당이 실질적인 힘을 갖춘 제도정당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오히려 복잡한 진보정당 구도에 짐을 하나 더 얹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기존의 진보정당들이 더 있지 않느냐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정의당 이외에도 민중당, 녹색당 등을 비롯한 진보정당들이 존재한다. 모두가 훌륭한 사람들이 진보적 가치를 기반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정당이다. 그러나 각자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없는 것이 아니며, 이는 정의당 또한 마찬가지이다.(각 정당별로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해서 서술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 판단하여 쓰지 않겠다.) 모두가 각자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는 한계를 기준으로 당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결심을 기반을 당을 선택해야 한다. 즉, 한계를 넘어선다는 전제 아래 그 당이 가진 가능성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진보정당인 정의당을 운동의 진지로 선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현재 한국의 운동은 정체기를 지나 후퇴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새로운 운동세대가 재생산되지 않는다는 현황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반대로 청년세대의 운동이 죽어있는 것은 아니다. 페미니즘을 주된 주제로 대학-지역별로 운동적 가치를 지향하는 새로운 세대가 출현하고 있다. 기성 운동세력은 재생산을 못하고 있지만, 대중공간에서 정치적 집단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조직 내 비민주성-패거리주의 등 기성 운동세력의 구습과 적폐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상황에선, 각자의 요구를 중심으로 새로운 집단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과 실천들이 제도정치로 향하게 하는 힘이 정의당에는 아직 존재한다. 그 근거로 첫째, 노회찬 서거 이후 정의당에 입당한 청년 당원들의 활동이 있다. 이들은 기존 당내 세력과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대중공간에서 자생적으로 출현한 운동가들이 타협적으로나마 지지할 수 있는 정당으로서 정의당이 있는 것이다. 설사 당원이 아니더라도, 대선이나 총선 때 차악으로 선택하는 진보정당 후보가 대부분 정의당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둘째, 정의당은 현재 한국의 진보정당들 중 가장 다양한 정파 간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1정파 1정당 형태는 당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의 경직성에 의해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이러한 차원에서 다양한 정파들의 이해관계로 구성된 정의당은 새로운 진보 정당의 방향을 제안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정파적 활동을 의견그룹이라는 형태로 보장하고 표면화하는 당내 문화는 새로운 정파를 만들어 활동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투명한 활동을 담보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의당의 현황과 당 지도부가 제시하는 방향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민주당 2중대라는 오명을 쓰면서까지 자유주의 세력과 결별하지 못하고 친밀하게 조응하고 있는 것, 당내 자유주의-반페미니즘 세력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 사회주의-좌파적 가치를 버리고 대중정당이라는 명목 하에 우경화하고 있는 것, 당내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당 대표 1인 주도 하에 운영되고 있는 것. 등 하나하나 살펴보면 문제적인 것이 한 둘이 아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에 대해 비판하고, 현재의 정의당을 바꿀 것이다. 정의당은 현 당 지도부들만의 것이 아니다. 당원들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부족하다. 정의당은 한국 최대 규모의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 한국의 최대 규모의 진보정당이 이런 모습이라는 것은 제도정치에 대한 불신만을 키울 뿐이다. 이는 남의 일이라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직접적 개입을 통해 바로잡아야 하는 문제다.
문재인 시대에 민주당 정부는 장기집권을 기획하고 또 추친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87년 체제가 낳은 쌍둥이다. 어느 것 하나만 청산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 모두 낡은 87년 체제의 잔흔이며, 한꺼번에 청산되어야 한다. 이러한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 제 1 진보정당으로서 해야 할 마땅한 책무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민주당의 왼쪽에서, 민주당과 다른 확연한 차별점을 가치를 내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민주당에 들어가면 되지, 왜 진보정당을 따로 만들어 활동하는가?
지금의 정의당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에게 100%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의당에 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입장과 목소리를 통해 정의당을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견인할 것이다. 현재 한국의 제도정치가 정치에 대한 불신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 한국의 진보정당들이 분열되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 그 중 정의당이 가지고 있는 한계들. 모두 우리가 처한 조건에 불과하다. 조건을 거부할 순 없다. 우리는 이러한 조건 아래 ‘어떻게 새로운 운동이 가능하고’, 또 ‘어떻게 제도정치에 개입하여, 실질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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