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속 성폭력으로 시작된 경계존중 수업

성적경계 존중은 일상에서 자란다

by 민들레

교실에서 마주한 낯 뜨거운 문장들

학교는 성사안이 끊이지 않는다.

대부분은 담임교사 선에서 조용히 마무리되지만, 때로는 학교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상담실 가는 길에 5학년 부장선생님을 만났다. 나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선생님, 잠시 시간 괜찮으세요?"


선생님은 A4용지 세 장을 내밀었다. 삐뚤삐뚤 한 글씨로 채워진 그 종이에는, 한 아이의 성적 언동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줄마다 낯 뜨거운 문장들이 이어졌고, 어떤 문장은 그대로 읽기 어려울 만큼 낯설었다.

성적 행위를 흉내 내거나, 성인 방송에서 들을 법한 노골적인 언행이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행을 한 아이의 어머니가 진술서를 본다면 아마 뒤로 넘어갈 것이다.


부장 선생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정말 심하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들이 다시 한번 교육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나는 진술서를 천천히 접으며 말했다.

"매번 '하면 안 되는 행동이다'라고 알려줘도, 애들은 금방 잊어버리더라고요. 애들이라 그런가 봐요."


실제로 나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아이들은 인터넷에서 게임하다가, 유튜브를 보다가 들은 말과 행동을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아무렇지 않게 따라 한다.

심지어는 그 언행이 자신이 본 영상처럼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줄 거라고 여긴다.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았다.

'성적경계'를 다시 가르쳐야 한다.


성적경계를 배우는 수업

칠판에 'ㄱ ㄱ ' 초성을 적고 물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이 선을 뭐라고 할까요?"

아이들이 대답했다.

"경계요."


"경계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서로 잘 자내기 위해서요."

"싸우지 않으려고요."

"기분 좋으려고요."


"우리가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오고, 이렇게 숨 쉬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요?"

이번에는 칠판에 'ㅎㅂ'이라고 초성을 적으면서 물었다.

단번에 학생들은 외쳤다.

"행복하려고요!"


"맞아요.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삽니다. 행복해지려고 학교에도 오고 공부도 합니다. 행복하게 살려면 자기 결정권리가 필요합니다. 이미 배웠던 것처럼 우리는 성적인 부분에서도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칠판에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고 천천히 적었다. 아이들의 눈동자가 그 글자를 따라 움직였다.


"내 몸의 주인은 나입니다. 내가 어떤 외모를 할지, 누구랑 사귈지 말지, 결혼을 할지 말지, 이혼할지 말지, 아이를 낳을지 말지 모두 내가 결정하는 겁니다.


성적인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성적인 행위를 할지 말지도 내가 결정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들을 강요하고 간섭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지 않나요?"


초등학교에서는 성적 행위를 흉내 내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십 년 전에도 종종 있었지만, 지금처럼 심하진 않았다.


잠시 말을 멈추고 아이들을 바라봤다.

"내게 성적 자기 결정권을 있다고 해서 내 행복을 위해 마음대로 성적행동을 해도 될까요?"

두 세명의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맞아요. 안 됩니다. 그건 다른 사람의 경계를 침해하고, 행복을 방해하는 일이에요. 그건 폭력이 될 수도 있고 범죄가 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는 학교폭력으로 처리되기도 합니다.


성적 자기 결정권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할 때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


가정 내에서 잊힌 권리

'아이들은 과연 자신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정 내에서 얼마나 존중받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수업 중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연령, 나이, 성별, 인종, 장애, 경제적 능력과 상관없이 우리는 행복추구를 위해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자 한 아이가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선생님, 정말요? 정말 저도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어요?"

"그럼. 나이랑 상관없어. 너도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단다."

아이는 싱글벙글 웃었다. 그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사실 아이라고 해서 성적 자기 결정권이 없는 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쉽게 잊고 산다.


가정 내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 중 아이들이 가장 자주 말하는 것은 엄마가 헤어나 옷 입는 스타일을 강요하는 경우다.

아이도 하고 싶은 헤어스타일이나 패션이 있다.

건강과 안전을 해치지 않는 한 아이의 자기 결정권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아빠의 사랑, 통제가 되어선 안된다

한 여학생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선생님, 아빠가 남자 친구 사귀면 안 된데요. 그럼 슬프데요. 그래서 저는 남자 친구 못 사귀어요. 아빠가 제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한 거 아닌가요?"


딸이 남자 친구 사귀면 슬프다는 아빠들. '딸바보'라 불리며 사랑을 표현하지만, 때로는 그 사랑이 소유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독립된 인격체다.


나는 아이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아빠가 너의 안전이 걱정돼서 과하게 표현했구나. 남자 친구 사귀고 싶으면 사귀어도 돼. 그건 수업시간에 배운 것처럼 너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니까.

네가 남자 친구를 사귄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건 아니잖아.


아이가 행복하면 부모님도 행복하단다. 네가 행복하면, 아빠도 분명 행복하실 거야."

아이는 금세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요?"

"그럼. 당연하지. 혹시나 아빠가 슬퍼하면 선생님한테 알려줘. 선생님이 전화해 줄게."

"네!"

시무룩했던 아이가 햇살처럼 웃었다. 부모는 아이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야 한다.


가정에서 경계를 넘는 젓가락

5학년 학생들에게 자위에 대해 수업했다.

"자위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하는 거예요. 방문을 잠그고, 혼자 있을 때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하 면 경계침해고 범죄행위입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한꺼번에 외쳤다.

"엄마가요. 젓가락으로 문 따고 들어와요!"

"저도요".

우리 집 방문도 손잡이 옆의 조그만 구멍에 젓가락을 넣으면 문이 열린다. 아마 아이들 집도 우리 집과 같은 문인가 보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에게 보건수업 시간에 가정 내에서도 지켜야 할 경계가 있다고 배웠다고 말해보세요.

집 안에서도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공용공간과 개인이 사용하는 사적공간이 있잖아요. 여러분의 방은 여러분의 사적공간입니다.

엄마가 여러분 방에 들어가려면 노크를 하는게 당연한 거예요. 여러분도 부모님 방에 갈 땐 노크를 해야 하는게 당연하고요.

가정에서도 경계를 지켜야 모두 행복해질 수 있어요."


그때 한 아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엄마가 혼낼 것 같아요."

나는 잠시 아이를 바라보다가, 안쓰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럴 땐 선생님한테 꼭 알려줘요. 선생님이 대신 전화해 줄게요."


정말로 전화를 해 준 적도 있다. 전화한 다음 날 아이는 보건실로 달려왔다.

"선생님, 엄마가 노크해 준대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가까이에 있다.


가정에서 자라는 성적경계 존중

양육자 성교육 동아리를 운영할 때면 '아빠가 속옷만 입고 집안을 돌아다닌다.'는 고민이 끊이지 않는다.


십여 년 전, 아빠가 엄마에게 틈만 나면 뽀뽀하는 모습을 지켜본 1학년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좋아하면 뽀뽀해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같은 반 여학생이 좋다고 갑자기 뽀뽀를 했다.


가정 내 성적경계 제대로 존중되고 있는 걸까?

가정에서 존중받지 못한 아이가 타인을 얼마나 존중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 일 년에 몇 시간 이루어지는 성교육만으로는 성적경계를 가르치는 일이 불가능하다.


가정 내에서 보여주는 성적경계 존중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게는 '배움'이 된다.


성적경게 존중은 일상에서 자란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부모님이라면 가정 내에서 구성원 사이에 '성적경계 침해'는 없는지 잠시 생각해 보면 좋겠다.


아이들은 배운 대로 행동한다.

존중받은 만큼 존중을 알고, 존중받지 못한 만큼 타인의 경계를 쉽게 넘는다.


성교육은 교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정에서, 일상에서,
존중과 경계는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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