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속 성폭력-이야기가 시작되다

교실 속 성적 언동 아이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장

by 민들레

성적 경계 침해, 말할 곳이 없는 아이들

나는 학교에서 3학년부터 6학년까지 또래 성폭력 예방 수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우르르 교탁 앞으로 몰려와, 성적 경계를 침해당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우리 반 남자애가 여자화장실에 쫓아와서 훔쳐봤어요.”
“작년에 잠옷파티할 때 친구들끼리 서로 보여줬어요.”
“우리 반 남자애들이 축구하고 골 넣었다고 상의 탈의했어요.”
“화장실에서 친구가 제 성기를 보고 작다고 했어요.”
“우리 반 누가 바지를 내렸어요.”


아이들이 나를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은 이유는 뭘까?

이런 일들이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거나,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나를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고맙고, 또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제의 일일 수도 있고, 1년 전 혹은 유치원 때의 일일 수도 있다. 그만큼 마음속에 오래 묵은 이야기들이다.


그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시간이 일 년에 몇 번 없는 ‘또래 성폭력 예방 수업 시간’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이 수업이 끝나야만, 아이들은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고 용기를 낸다.


만약 가정에서 보호자가 아이와 이런 대화를 평소 자연스럽게 나누었다면, 아이는 더 일찍, 더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야기로 교실 속 성적언동 바라보기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선생님들이 들려주신 이야기들, 오십이 다 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머리가 좋아서는 절대 아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야기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특히 어릴 적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더더욱 그렇다.


이런 이야기가 필요했다. 나는 이번에 5학년 아이들이 교실에서 했던 부적절한 성적 언행들을 바탕으로 [5학년 10반 윤주 이야기]를 만들었다.

윤주는 5학년 10반 학생이다.
같은 반에는 공부 잘하고 인기 있는 경호가 있다.
경호가 교실에서 성적언동을 했다.

그 행동에 승찬이가 호응하고 친구들은 웃었다.
윤주는 불쾌하지만 아무 말 못 했다.

어느 날, 누군가 이 사실을 담임선생님한테 말했다.
경호와 승찬이는 윤주가 말했다고 오해하고 윤주를 따돌렸다.


아이들은 숨을 죽인 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얼굴을 찌푸렸다. 참 신기한 일이다. 영상보다 교사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에 아이들은 훨씬 깊이 몰입했다.


"경호가 친구들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나는 질문을 하면서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교실 안의 손들이 파도처럼 동시에 올라갔다.


"경호의 어떤 행동들이 성적경계를 넘었나요?"

기다렸다는 듯 아이들의 손이 번쩍 들렸다.

"성적인 사진을 SNS로 보냈어요."

"성적인 행위를 흉내 냈어요.(몸짓과 소리로)"

"친구의 몸을 훔쳐봤어요."

"성적인 말을 했어요."

"성적인 사진을 보여줬어요."


정말 초등학생들이 성적 행위를 흉내 내냐며 놀라는 어른들도 있을 것이다. 많지는 앉지만 이십 년 전에도 고학년 아이들은 그런 행동을 했다. 다만 요즘은 미디어를 통해 이런 장면을 너무 쉽게 접하다 보니, 아이들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따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는 아이들에게 덧붙였다.

"장난처럼 친구의 바지를 내리는 것도 성적경계를 넘는 행동입니다."


저학년 아이들은 장난으로 자기 바지를 내리는 반면, 고학년 아이들은 친구의 바지를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이 예를 꼭 들어주어야 했다.


너무 구체적인 예가 아니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생에게는 '성적경계침해'의 예시를 구체적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행동이 경계를 넘는 것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성적 경계 침해에 대해 이야기할 때, 평소 장난이 심한 아이가 고개를 숙였다. 몸짓으로, 이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이 학생의 배움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에서 자녀와 교실 속 성적언동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

어쩌면 부모님과 대화가 교사와의 수업보다 훨씬 개인적이고 지속적이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더 깊은 신뢰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털어놓을 수 있다.


성교육의 시작은 학교일지라도, 그 완성은 언제나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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