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속 권력과 성폭력

권력관계 속 힘의 차이, 성폭력을 만든다

by 민들레

일상 속의 나의 권력

방학이라 여유롭게 큰 아이, 작은 아이, 나 이렇게 셋이 식탁에 빙 둘러앉아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은우가 어떻고, 장원영이 어떻고, 제니는 어떠하다는 등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을 때, 작은 아이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다.

작은 아이는 식탁 위에 두고 간 자신의 지갑을 들여다보더니 의심의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어째, 돈이 좀 빈 것 같은데?"

나는 웃으며 받아쳤다.

"설마, 돈이 빈 게 아니라 네 머리가 비었겠지?"

큰 아이는 피식 웃었지만, 작은 아이는 얼굴이 굳었다.

"뭐라고? 내 머리가 비었다고?"

그리고 휙,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급히 따라가 사과했다.

"엄마가 장난으로 한 말이야. 미안해."

큰 아이가 중얼거렸다.

"장난으로 한 건데 그것도 못 받아들이냐. 하여튼 예민해."

성격 좋은 작은 아이는 금세 풀렸다. 우리는 다시 식탁에 둘러앉아 아까 하던 연예인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은 아이 대신 나보다 권력관계에 우위에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머리가 비었다'는 말은 절대 장난이 될 수 없다. 그건 힘의 위치가 만들어낸 말이었다.


몇 년 전 교육청 성평등 강의에서 '교차성 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이, 성별, 지위, 경제력 등 여러 축이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힘의 구조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때 문득 권력관계에서 나의 위치를 되짚어봤다.

'나는 어떤 위치에 있을까?'

그리고 결심했다.

'이제부터는 권력자 대하듯 약자를 대하자.'


그 다짐 이후, 내 일상이 바뀌었다.

예전에 나는 급식실에서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서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맨 앞에 섰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절대 그러지 않는다. 왜냐면 그 줄에 교장 선생님이 서 있었다면,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테니까.


보건실에서도 마찬가지다. 학생이 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반갑게 맞이한다.

"어서 와."

아이들의 표정과 말투를 세심하게 살피고 건강 상태를 다정하게 설명한다.

학생들 뿐만이 아니다. 학교에 청소하는 선생님, 배움터 지킴이, 외부에서 온 강사분도 관리자 대하듯 한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맞다. 당연한 일이다.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막상 매 끼니마다 실천하는 일은 어렵다. 마찬가지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모두에게 평등하게 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감수하고 변하려 노력하자, 신기하게도 내 주변 사람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언제나 나를 반겼고, 배움터 지킴이 선생님은 보건실을 찾는 보호자를 보건실 문 앞까지 안내해 주었다.


누군가의 평등의식은 결국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바꾼다. 권력의 올바른 사용이란, 아마 그런 변화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가정 속 권력과 폭력

오랜 경험 덕분에, 상처만 봐도 대강 감이 온다.

"혹시 어른이 때린 건 아니니?"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제가 잘못했어요. 그래서 맞았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너진다. 스스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아이들.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네가 어떤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너를 때릴 수 있는 권리는 아무도 없어. 너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아이잖아."


세탁소에서 주는 하얀색 비닐로 감싼 철제 옷걸이에 맞아 온몸이 상처 투성이었던 아이도 그렇게 말했었다.

"제가 맨날 거짓말하고, 엄마 힘들게 했어요."

나는 그 부모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은 잘못했을 때 맞으면 행동이 고쳐지나요?"


아이가 어떤 잘못을 했다면, 잘 알아듣게 말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기에 말을 듣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 부모의 역할은 폭력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마음이 심란할 때 나는 법륜스님의 강의를 듣는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폭력은 어쩌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결과 일 수도 있다.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부모의 권력은 제왕적이다. 아이가 어릴수록 부모는 아이의 전부이다. 가정 내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폭력이 발생하거나 가정의 공기는 금세 험악해진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모든 걸 배운다. 그러니 보호자는 생각해봐야 한다.

가정 내에서 나는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혹시 내가 가진 권력으로 가정 내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나는 이제 안다. 권력은 특별한 상황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말, 매 순간의 표정과 행동에서 작동한다. 그리고 그 힘이 바로, 누군가를 살릴 수도, 상처 입힐 수도 있다. 심지어 죽일수도 있다.


폭력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 곳곳에서 형태를 달리하며 반복된다. 이제는 폭력을 끊어야 할 때다.


학교 속 권력과 성폭력

"여러분이 이런 같은 뉴스를 접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소녀 X몸 교과서]를 참고하여 권력에 의한 성폭력을 설명하는 판서
"지난밤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가해자는 A이고 피해자는 B입니다.'

칠판에 적었다.

교사-학생, 감독-선수, 선배-후배, 시장-직원, 어른-어린이, 인싸-아싸, 남성-여성


그리고 물었다.

"자, A에 어울리는 단어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은 손을 들었다.

"A는 B보다 힘이 셉니다."

"A는 B보다 나이가 많을 수 있습니다."

"A는 B보다 지위가 높을 것 같습니다."


그때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그런데요. 선생님, 항상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센 건 아니잖아요. 우리 반 누구는 남자애들보다 더 힘이 세요."

신체적 힘만을 이야기 한 건 아니었지만, 그 말이 참 반가웠다.

권력관계의 교차성에 대한 설명 판서

"좋은 질문이에요.

선생님과 교장선생님 누가 힘이 셀까요?"

"교장 선생님요!"

아이들이 신이 나서 외쳤다. 이것이 이렇게 신이 나는 일일까? 나보다 강자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약자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나는 일인가 보다.

"여러분과 선생님, 누가 더 권력을 가지고 있을까요?"

"선생님요..."

이번엔 아이들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자신이 권력관계에서 열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풀이 죽는다.

칠판에 수레바퀴 모양으로 권력의 교차를 알 수 있게 판서했다. 그리고 빨간색으로 교사인 나의 위치를 표시하고, 노란색으로는 학생들의 위치를 표시했다. 아이들이 다시 한번 권력관계 속 자신의 위치를 확인했다.


성폭력은 꼭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다. 사람 사이의 '힘의 차이', 즉 권력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누가 나이, 지위, 장애, 신체조건, 학력, 경제력 등 어떤 면에서 더 힘을 가졌는지가 폭력의 원인이 된다.

이처럼 여러 사회적 요인이 겹치고 교차하면서 사람 사이의 힘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를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라고 한다.


학교 안에서 발생하는 많은 성폭력은 꼭 학생들 사이에서만 일어나진 않는다.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관리자와 교사, 남학생과 여교사 사이에도 발생한다.

지위와 성별, 나이, 사회적 힘이 교차하는 공간이 바로 학교이기 때문이다.


교실에서도 이런 힘의 교차는 분명히 존재한다. 교사와 학생, 인기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비장애 학생과 장애학생, 남학생과 여학생 사이에 서로 다른 권력의 위치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학교는 단순한 배움의 공간을 넘어, '힘'을 배우는 공간'이기도 하다.


교사와 양육자는 아이들이 사람 사이의 힘의 구조를 인식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고 어른이 먼저 보여야 한다.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폭력예방은 힘의 올바른 사용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교실 속 성폭력

성폭력의 본질은 '힘의 차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들이 권력을 가졌다. 그러나 요즘 초등학교는 다르다. 잘 생기고, 예쁘고, 재미있고, 운동 잘하는 아이들이 교실의 중심에 선다. 그들의 한마디에 친구들이 웃고 울며, 때로는 교실이 흔들린다.


반에 권력을 가진 아이가 정의롭다면 교실은 건강해진다. 그러나 자신의 인기를 장난처럼 휘두르는 경우라면 그로 인해 소위 '앗싸'라 불리는 아이들이 상처를 받고, 담임교사도 지쳐가게 된다.


[5학년 10반 윤주 이야기]에서 경호는 교실에서 성적인 말을 하고, 성적 행동을 흉내 낸다. 같은 반 친구들은 웃고, 거기에 맞장구까지 친다.

나는 물었다.

"경호의 성적언동에 친구들이 웃은 이유가 뭔가요?"

아이들은 대답했다.

"재미있어서요."

"경호가 인기 있어서요."


다시 물었다.

"그럼, 만약 경호가 인기가 없는 친구였다면요?"

"무시했을 거예요."

"안 웃었을 거예요."

"쓰매싱해요."

상당수의 아이들이 '쓰매싱'을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쉽게 흘러나오는 게 섬뜩했다. 약자의 행동엔 서슴없이 폭력이 오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등줄기에 서늘한 기운이 흘렸다.


그때였다.

반에 장애가 있는 학생이 평소처럼 반향어를 했다.

"네, 있습니다."

그 소리에 한 아이가 웃음을 터뜨렸고, 순식간에 다른 아이들이 따라 웃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힘의 차이'를 이야기하던 교실에서, 아이들이 자신보다 약한 친구를 비웃고 있었다. 나는 속상하고 실망스러워 힘이 빠졌다.


잠시 말을 멈추고, 아이들을 바라봤다. 내 표정을 보고 아이들의 웃음이 잦아들었다.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왜 웃나요? 만약 경호처럼 힘 있는 아이가 저렇게 반응했다면, 여러분이 지금처럼 웃었을까요?"

교실은 시간이 멈춘듯이 고요했다.

"그 친구는 듣는 방식이 좀 다를 뿐입니다.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해서 비웃어도 될까요? 혹시 웃는 이유가 그 친구가 약자이기 때문이라면, 여러분은 비겁한 겁니다."

아이들의 눈빛이 변했다. 방금 전의 웃음이 부끄러움으로 바뀌는 듯 했다.


"사람관계에서 생기는 힘의 차이를 잘못 사용되면, 그것이 바로 폭력이 됩니다.

성폭력은 권력, 즉 힘의 차이를 이용하여 타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혼자 살지 않습니다. 늘 타인과 관계하며 행복을 추구하면서 삽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내 힘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 힘을 어떻게 써야 행복할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힘을 가진 사람일수록 말과 행동을 더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면 여러분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학생들도 알고 우리들도 모두 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권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은 어디쯤에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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