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서운함이 오래 남을 것 같다.
학교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지만 행정실 직원과 친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왜일까?
아마도 보건실과 행정실과의 업무갈등이 학교 내 만연하기 때문이리라. 그간 겪은 행정실 직원들과의 미묘한 갈등, 책으로 써도 족히 두 권은 될 것이다.
그들은 학교보건법이 보건교사 법인양 각종 업무를 보건실에 넘기려고 한다. 법이라는 것이 해석의 차이이기에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주장일 수 있다.
학교 내 인력부족이 갈등의 원인이다. 구조적 문제로 발생하는 갈등이지 행정실 직원이나 보건교사 개인의 인성과는 관련 없는 일이다.
학교에 오래 있어보니 행정실 직원들의 잡무가 많음이 보인다.
젊은 날에는 나도 행정실과 업무갈등으로 피 터지게 싸워봤다. 그러나 그 싸움이 보건교사에게 득이 없다는 걸 충분히 경험했기에 이제는 행정실 요구를 가능한 받아들이는 포지션을 취한다.
행정실의 요구를 일개 보건교사는 이길 힘이 없다. 괜히 꿈틀 했다가는 예산 쓸 때마다 눈치 받고, 경우에 따라서 교장, 교감에게 일하기 싫은 교사처럼 낙인찍힐 수도 있다.
급식 먹고 과학 준비실에서 차를 마셨다. 실무사님 책상 위에 새 업무일지가 여러 권 놓여있었다.
"선생님, 웬 업무일지가 저렇게 많아요?"
"공무직원 주려고 행정실에서 받아왔어요."
보건실에 가서 옆 보건샘에게 말했다.
"과학 준비실에 갔더니 새 업무일지가 있더라고요. 저희도 행정실에 업무일지 주라고 할까요?"
"당연하죠"
"근데 좀 말하기가 그러네요. 안 준다고 할까 봐서요."
"설마요."
마침 행정실에 갈 일이 있었다. 용기 내서 주무관에게 살며시 부탁했다.
"저희 보건실도 업무일지 2권만 주면 안 되나요?"
주무관이 주려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살짝 들려고 할 때 행정실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선생님, 3월에 꼭 필요한 사람 줘야해서요. 그때 남으면 드릴게요."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찮은 일에 체면을 잃은 듯 부끄러웠다. 민망했다. 그까짓 것 얼마 한다고. 속으로 바보 같은 날 욕했다. 뒤통수가 따가웠다.
보건실로 돌아오자 옆샘이 내 빈 손을 보더니 물었다.
"업무일지는요?"
"꼭 필요한 사람 주고 3월에 남으면 준다네요."
부끄러워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옆샘이 말했다.
"그냥 부족하다고 하면 될 일을 꼭 필요한 사람 주고 남으면 준다고 말해야만 했을까요. 실장님이 배려가 없네요. 우리가 필요도 없는데 업무일지를 주라고 조른 꼴이네요. 우리가 애들도 아니고, 떼쓴 것처럼 됐네요."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내면의 소리가 나온 것 같아요."
"그러니까요. "
"그냥 내돈내산 할걸. 그까짓 것 얼마 한다고. 민망해서 혼났네요. 쓸데없는 용기는 앞으론 절대 내지 않겠습니다"
옆샘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저번 방학 때 학교는 청소업체를 불러 모든 교실을 청소했다. 그런데 보건실은 청소가 되어있지 않았다.
옆샘이 말했다.
"징그럽네요. 다른 교실 하면서 좀 하지. 여긴 교실 아닌가요?"
"그냥 우리가 해요. 힘든 일도 아니잖아요. 잊어버렸겠지요. 의도적으로 빼진 않았을 거예요."
예산이 부족해 업무일지를 많이 사지 못했나 보다.
너무 바빠서 잊어버렸을 것이다.
나의 요구에 행정실장 입장이 곤란했을 것이다. 결코 악의가 있어서 뱉은 말은 아니다.
구조적 문제다. 개인을 원망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서운하다.
그리고 이상하게 서운함이 오래 남을 것 같다.
"필요한 사람 주고 남으면......"
퇴근 후 남편에게 말했더니
" 실장 눈에 당신은 필요 없었나 보지. 원래 남의 돈 버는 것이 그런 거네."
정말 남의 편이다. 남의 편을 실장 대신 한 번 흘기고 웃음과 함께 날리려고 했는데 그대로 있다.
에잉 바보바보.
그놈의 업무일지가 뭐라고. 에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