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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는 민들레 Jul 03. 2024

이삿날 발가락이 골절되었다

새끼발가락이 45도로  골절되다.

2024년 5월 31일 금요일 오전 7시 30분. 

나의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골절되었다.

.

그날은 다섯 번째 이삿날이다. 이삿날 아침이 분주하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학교는 연가를 냈다. 105동 2004호에서의 마지막 아침은 볶은밥이었다.


우리 집 반려 냥냥이는 이사하는 동안 내 차에 있어야  한다. 냥냥이는 초인종 소리가 나면 겁을 먹고 어딘가로 달아나 숨는 습성이 있다. 이삿짐센터  직원이 도착해 벨을 누르기 전에 냥냥이를 고양이 이동장에 넣어야 한다.  7시 30분 즈음 작은 아이와 함께 냥냥이 몸을 반쯤 이동장에 넣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냥냥이는 잽싸게 이동장에서  뛰쳐나와 작은 아이 방으로 달아났다.


작은 아이 방의 방충망이 열려 있었다.  혹시나 냥냥이가 창문으로 뛰어내릴까 봐 겁이 났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달리다가 그만 침대 모서리에 오른쪽 발을 부딪치고 방충망  닫았다. 새끼발가락에 통증이 느껴져 오른쪽 발을 내려다봤다. 끼발가락이 45도 정도 바깥쪽으로 휘어져 있었다.  


발가락 골절이 틀림없었다. 작은 아이가 내 발가락을 보더니 당황해서 "어떻게? 어떻게?"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괜찮다고 발가락이 좀 부러진 것뿐이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본 골절된 학생들의 손가락이나 발가락은 언제나 나와 같이 휘어져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핀을 박는 수술을 했었다. 나도 그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발뒤꿈치를 붙이고 현관문을 열고 난 후 이삿짐센터 직원에게 고양이를 이동장에 넣어야 하니 밖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라고 양해를 구했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남편에게 갔다. 발가락을 보여주면서 "아무래도 발가락이 부러져 병원 가야 될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남편이 내 발가락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려졌다. 그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이사 가는데 뭐 하는 거야? 냥냥이는 천천히 이동장에 넣으면 되지. "라고  말했다. 다정함은 1도 없는 성격이라 찌푸린 얼굴도 신경질적인 목소리도 거슬리지 않았다.  큰 아이는 내 발가락을 보고 입을 쩍 벌린 상태에서 눈을 똥그랗게 떴다. 나는 괜찮다고, 별일 아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나에게 괜찮다고 해야 할 판국에 내가 그들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다친 학생들에게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내가 오늘은 학교가 아닌 에서 다치지도 않는 가족들을 진정시키는 것이 좀 우습기도 했다.


마음이 여린 작은 아이가 얼마나 울었는지 시뻘게진 눈으로 냥냥이를 이동장에 넣고 있었다. 나는 큰 아이에게 같이 병원 가자고 택시를 부르라고 했다. 작은 아이는 자기도 병원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작은 아이에게 냥냥이만 엄마차에 두면 냥냥이가 무서워하니   냥냥이랑 차안있으라고 했다.   


 백백을 멘 큰 아이와  냥냥이 이동장을 든 은 아이, 이동장에 갇힌 냥냥이,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45도 휜  , 이렇게 우리 넷은 2004 현관을 나섰다.  이삿짐센터 여직원이 자신의 키보다 높이 쌓아 올린 이사장비들과 함께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사정을 얘기하고 남편이 집안에 있다고 말했다. 여직원은  우리의 빈자리를 메꾸려는 듯  2004호들어갔다.


우리 넷은 엘리베이터에서 1층과 지하 2층 주차장 버튼을 눌렀다. 나는 큰 아이와 1층에서 내려 왼발로 콩콩 뛰면서 오른발을 들고 아파트 정문으로 나갔다. 예약된 택시가 이미  와 있었다.  택시 기사님께서  내 발가락을 보더니 놀라는 눈치였다.  10분 정도 택시를 타고 내린 후 나는 또 왼발로 콩콩콩 뛰면서 병원에 들어갔다. 내가 한 발로 이렇게 잘 뛰는지 처음 알았다.


병원에 8시 6분에 도착했다.   접수대기 번호  22번을 받았다. 도대체 내 앞의 21명은 몇 시에 왔단 말인가? 내가 도착하고도 많은 사람들이 대기 번호를 받았고 환자 대기용 소파는 금세 다 채워졌다.

 

대기용 소파에서 앉아 아침의 부주의함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큰 아이는 오늘 이사 가면 자기 방에 있는 서랍장과 피아노를 다른 곳에 옮겨 주라고 했다. 나는 그 물건을  둘 마땅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 큰아이는 뽀로통 해지더니  "다른 집은  언니가 동생보다 큰 방을 쓰는데 우리 집은  왜  동생이 항상 언니보다 큰 방을 써."라고 말했다.  발가락이 골절된 상황에서  그 말을 하는 큰 아이가 너무 속 없이 느껴졌기에 입을 다물었다.  나의 불편함이 아이에게 전해졌나 보다. 큰 아이는 매번 엄마는 맘에 안 들면 이런 식 이라며  눈을 흘겼다. 나는 큰 아이와 있는 게 불편했다.  큰 아이에게  병원 앞 도서관에 있으면 진료 끝나고 연락하겠다고 했다.  아이는 원망과 서운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자리를 다. 혼자 있으니 큰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얼마나 피아노와 서랍장을 자기 방에서 없애고 싶으면 이 상황에서 저런 말을 할까 싶었다. 작은 아이가 자기주장이 강해 매번 언니보다 큰 방을 독차지한 것도 사실이다. 큰 아이가 도서관에 도착했다고 집에 갈 때 연락 주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큰 아이에게 병원까지 데려다줘서 고맙고, 집에 갈 때 연락하겠다고 답글을 보냈다.


작은 아이가 그 사이 흥분된 냥냥이를 진정시켰다며 병원에 가도 되냐며 톡을 보냈다. 실은 귀찮았는데 지하주차장에서 내 걱정으로 불안에 떨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차마 오지 말라고 말할 수 없었다. 8시 25분 즈음 작은 아이가 또 눈물을 글썽이며 병원에 도착했다. 아이는 도착하자마자 나를 안고 미안하다고 몇 번을 말했다. 아마도 이 사고가  자신이 냥냥이를 제대로 잡지 못해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이 사고는  순전히 나의 부주의로  인한 것인데 아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싫었다. 너 잘못이 아니라고 내 잘못이라고 몇 번 말했지만 아이 귀에는 들리지 않았는 것 같았다.


 8시 30분 접수가 시작되었다. 한   명 대기 순서대로 접수가 이루어졌다. 내 차례가 되어 또 한 발로 콩콩콩 면서 작은 아이와 접수처에 갔다. 접수처 직원이 이름을 묻고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라고 했다. 최근 법이 바뀌어 주민등록증 신분증을 제시해야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내가 주민등록증이 없다고 하자 앱에서 모바일 건강보험증을  다운 받으라고 했다.  작은 아이의 도움으로 모바일 건강보험증을 다운로드하고 접수를 한 후 진료실 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곱실거리는 단발머리에  칠십 즈음되어 보이는 한 할머니께서 내 발가락을 보더니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셨다. 다치게 된 서사를 이야기했다. 나도 예의상 할머니께 병원에 온 이유를 물었다.  할머니께서는  젊었을 때 허리를  다쳤는데 나이를 먹으니 그놈의 허리가 다시 아파오기 시작해 최근 허리에 통증 주사를 맞고 있다고 했다. 어제는 접수하고 기다리다가 주사 맞는 것이 겁이 나서 그냥 집으로 되돌아갔단다. 그런데 밤새 허리가 아파 오늘은 주사를 맞아야 할 것 같아 병원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물어보길 잘했다. 이렇게 할 말이 많은데 안 물어봤으면 어쩔 뻔했나 싶었다.  아이나 어른이나 주사가 무섭기는 매 한 가지다.


10시 즈음에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에게 인사를 하고 발가락을 보여주었다, 의사는 어떻게 다쳤는지 물었다. 나는 다치게 된 경위를 다시 복기했다. 의사는 차근차근 여유 있는 모습으로 날 대해주었다. 의사의 여유가 참 부러웠다. 의사는 골절된 것 같다며 엑스레이를 찍고  다시 오라고  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대기실에 대기하다가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컴퓨터 화면에 엑스선을 띄웠다. 새끼발가락 골절이 한눈에 들어왔다.  의사는 "발가락뼈는 엄지는 두 개, 나머지는 세 개의 뼈로 되어 있는데 일부에서는 새끼발가락뼈가 두 개인 경우가 있습니다. 환자분은 보시는 것처럼 새끼발가락 뼈가 두 개이고 완전히 골절되어 버렸네요." 뼈가 골절되지 않았다면 내 새끼발가락 뼈가 두 개인 줄 평생 모를뻔했다. 의사는 새끼발가락에 x자 모양으로 두 개의 핀을 넣어 고정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일단 피부를 절개하지 않고 핀을 두 개 박을 생각인데 상황에 따라 피부를 절개하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피부절개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1주, 절개하면 2주 정도 입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의사에게  오늘은 이삿날이니 다음에 수술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의사는 여전히 여유 가득한  모습으로 웃으면서 내일 수술하자고 했다. 의사는 "일단은 뼈를 제치로 돌려놓고 부목을 대 줄 테니 입원수속 하시고 외출해서 이삿짐 좀 옮기고 병원으로 다시 돌아오세요."라고 말했다. 의사가 발가락을 맞춘다고 하자 작은아이가 무섭다며 진료실 밖으로 나갔다. 의사는 새끼발가락을 양손으로 잡아 두어 번 비틀었다. 나는 울부짖는 것을 대신하여 왼손으로는 입을 막고 오른팔로는 빠른 날갯짓을 했다.  45도 꺾였던 발가락이 제 자리로 돌아왔다. 제자리로 돌아온 발가락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의사의 의술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공의 파업한다고 뉴스에서 난리던데 파업하지 않고 이렇게 내 발가락을 치료해 주겠다고 하니 의사에게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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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절된 발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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