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들레는 민들레 Sep 04. 2024

나에게 합창부란

슬픔 그 자체이다.

나에게 합창부란 슬픔 그 자체다.


난 노래를 좋아했다.

국민학교 가기 전부터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어디에서 노래를 배웠는지 모르겠다.

부모님께 배우진 않았다.

아마도 언니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른 것 같다.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 특별활동을 했다.

특별활동은 4, 5, 6학년이 함께 모여서 했다.

친한 친구들이 모두 합창부에 갔다.

나도 합창부에 갔다.


합창부에서는 그동안  배우지 못했던 많은 동요를 배웠다.

새로운 노래를 부르니 즐거웠다.

다 같이 노래를 부르니 행복했다.

합창부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합창부 선생님은  노래지도를 잘하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었다.

우리 학교 오기 전에도 각종 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합창부 선생님은 나의 담임 선생님이기도 했다.

40대의 빼빼 마른 커트머리 선생님이었다.


합창부에는 또 다른 선생님이 계셨다.

병설유치원 선생님이었다.

병설유치원 선생님은 어렸다.


합창부 선생님은 우리에게 노래를 가르쳤다.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병설유치원 선생님은 피아노를 쳤다.


합창 대회를 앞두고

방과 후 시간에 합창부는 합창연습을 했다.

어느 날 합창부 선생님이 오지 않았다.

병설 유치원 선생님이 노래를 지도했다.

참 노래를 부르는데 병설 유치원 선생님께서

음치가 있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병설유치원 선생님은

한 명씩 노래를 시켰다.

내 차례가 되었다.

병설 유치원 선생님은 나에게 여러 번 노래를 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고 하셨다.


다음 방과합창부 연습이 있는 날

합창부 선생님이 내 앞에서 서서

내 노래를 들었다.


합창부 선생님은

조용하게 "너 가방 싸서 집으로 가"라고 말했다.

다리가 떨렸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이 노래를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들어가고 싶었지만

쥐구명을 찾을 시간이 없었다.

선생님이 집으로 가라고 했으므로.


학교에서 집까지 한 시간 거리였다.

나는 울면서 집으로 걸어갔다.

집에 도착할 즈음 울음이 멈췄다.


그로부터 여러 날 동안

합창부 4, 5, 6학년 친구들과 언니들이 나만 보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너, 노래 못해서 합창부에서 쫓겨난 거지?"라고 물었다.

나는 아무 말 못 하고 눈물을 흘렀다.


며칠간 학교 가기가 곤혹스러웠다.

다행히 6학년인 언니의 귀에는

그 사실이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았다.

언니는 한 번도 그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언니가 일부러 모른 척한 것 같다.

자존심 쎈 내가 속상해할까봐.


특별활동 시간에도 방과 후 시간처럼

나는 더 이상 합창부에 가지 않았다.

나는 그 시간에 혼자 학교를 배회했다.


어느 날 합창부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방과 후 시간에는 오지 말고

특별활동 시간에는 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특별활동 시간에도 가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특별활동 시간에 오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혼냈지만

나는 기어이 가지 않았다.

4학년 끝날 때까지 음악시간에 노래도 부르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혼자 있을 때만 노래를 불렀다.

왜냐면 난 노래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 뒤에 대나무 밭이 있었다.

한 번씩 대나무가 내 노래를 듣고

바람 부는 날  온 동네에 내 노래 소리를 퍼트리는 두려운 상상을 하기도 했다.


4학년 이후 나는 음악이라는 과목을 제일 싫어하게 되었다.

음악시간에 노래를 부를 때는 입만 뻥긋뻥긋거렸다.

가창 시험이 제일 싫었다.

가창 시험 때마다 소리가 작다고

선생님들에게 혼났다.


고등학교 1학년 장기자랑 시간이었다.

노래를 잘하는 아이들이 노래를 불렀다.

아침이슬을 부른 아이에게 담임선생님이 가수를 해도 되겠다고 칭찬했다.

키가 170 정도 되고 머리가 커트인 아이가 노래를 불렀다.

음정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

그 친구는 끝가지 즐겁게도 노래를 불렀다.

나만 빼고 반 친구들이 모두 웃었다.


그 친구를 보고 머리가 멍했다.

노래를 못 불러도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래는 잘해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면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뻤다.


나는 지금도 동요를 부른다.

나는 우리 아이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나는 남편 앞에서도 노래를 부른다.

나는 친구들 앞에서도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여전히 합창부를 바라보면

국민학교 4학년때의 일이 생각나

슬픔이 몰려온다.


나에게 합창부란 슬픔 그 자체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 껌이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