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들레는 민들레 Sep 07. 2024

발가락 골절로 수술하다

나의 소소한 일상을 훔쳐갔다. 수술과 입원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선물했다.

발가락 골절은 나의 소소한 일상을 훔쳐갔다. 대신 수술과 입원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선물했다.


목발을 짚고 수술하러 2층 간호사실에 갔다. 간호사가 수술실로 안내했다. 수술실은  교실 반 칸 크기였다. 수술대와 프로잭션 티비, 수술도구들이 난잡하게 벽면에 붙어있었다.


간호사가 수술대에 누우라고 했다. 침대에 눕자 간호사는

"정말 고양이 살리려다가 다치셨어요?."

"네."

"저도 고양이 엄청 좋아해요. 고양이 사진 있으면 보여주세요."

 핸드폰에서 냥냥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고양이 정말 귀엽네요."

 간호사는 두 명이었다. 둘 다  젊고 밝은 에너지를 뿜어냈다.


고양이 사진을 본 간호사는 나의  한쪽 팔에 링겔을 꽂고, 반대편 팔에는 혈압계 커프를 감았다. 가슴에는 EKG모니터를 붙였다. 간호사들은 수술  준비로  분주했다.


처음 보는 의사가 수실실에 들어왔다. 의사가 옆으로 누워서 무릎을 가슴 쪽으로 붙이라고 했다. 나는 새우등을 만들었다. 의사는 척추에 바늘을 꽂았다. 따끔했다. 몇 분 후 배꼽 위아래로 저리는 듯한 느낌이 더니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슴아래부터 발가락까지 마취가 됐다.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았다. 순간 무서웠다. 나는 '마취까지 하는데 너무 작은 병원에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취가 영원히 풀리지 않아 다리를 못 쓰면 어쩌지.'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 걱정은 다리에 감각이 사라질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했다. 이런 생각이 어리석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척추에 주사를 맞고 하반신이 마비되었다사연을 최근에  유튜브에서  본 후라 걱정은 점점 커졌다.


의사는 수술기구로 다리와 복부 등을 찔러 마취여부를 확인했다.  의사는 완전히 마취가 되고 난 후, 술할 다리를 들어 올려 소독을 시작했다. 발가락부터 허벅지 중간까지 포타딘을 발랐다. 나는 '발가락 하나 수술하는데 허벅지까지는 좀 오버네'라고 생각했다.  


의사는 마취된 다리를 좌우, 상하로 움직이며 소독약을 발랐다.  의사가 소독하는 다리가 내 다리가 분명한데 움직이는 느낌이 전혀 없어 끔찍했다. 간호사가에게 눈을 좀 가려주라고 했다. 간호사는 금방 끝난다고 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끔찍하면 내가 눈을 감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 생각을 하못했다. 역시 난 순간순간 유아다.


원장이 수술실에 들어왔다. 마취한 의사가 원장에게 마취가 좀 세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원장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하더니 괜찮다고 했다. 원장은 나에게 수술이 빨리 끝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수술기구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발가락에 핀을 박을 때는 의료진이 다 같이 "샷'하고 두 번 외쳤다. 그  소리가 노동요 같았다.  나는 평상시 맥박이 60회 정도이다. 좀 흥분해야 80이다. 수술할 때도 맥박이 60회 정도였다. 수술하는 중간중간 간호사들은 혈압과 심박수 등을 확인했다. 수술하면서 의사와 간호사들은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내가 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간호사와 의사가 그다지 소통할 일이 없었다. 의사는 오더를 내리고 간호사는 처치하고 오더에 궁금증이 있을 경우 의사에게 물어보고 이 정도였다.  작은 병원의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찬바랑 쌩쌩부는 종합병원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큰 병원에서 인간사에 치이고 업무로 상처받는 간호사들을 많이 봤었다. 이런 병원에서는 그런 상처는 받지 않겠구나 싶었다.


의사는 내가 부엌에서 설거지하듯 수술했다. 수술은 20분 가량 한  같다. 어디 가나 팀워크가 좋아야 한다. 병원은 작지만 환자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원장은 피부를 절개하지 않고 발가락에 핀이 잘 박혔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의사가 골절부위를 절개하지 않으면 일주일만 입원하면 된다고 했다. 속으로 '아싸'하고 외쳤다. 수술이 끝나고 원장이 제일 먼저 수술실 밖으로 나갔다.


간호사와 의사가 수술대에서 움직이는 침상으로 나를 옮겼다.  엑스레이를 수술실에서 찍었는지, 방사선실에서 찍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병실에 가니 다른 환자분들이 수술 잘 됐냐고 물었다. 나는 잘 됐다고 말했다.  간호사는 척취마취를 했으니 오늘 하루는 반듯하게 누워있으라고 했다. 저녁은 먹어도 된다고 했던 것 같다.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지 않았으나 마취는 금방 풀렸다. 마취가 풀리고 발가락이 움직여졌을 때 나는 하반신이 마비될 수도 있다는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비급여 무통 주사를 맞아서 그런지 수술한 부위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의술이나 의약품의 신통방통함을 오랜만에 경험했다.


오후 2시 즈음 남편과 아이들이 왔다. 내가 수술자체를 가볍게 생각해서 그러는지 가족들도  수술을 시술정도로 생각했다. 새로 이사 간 집에 대해 애들과 남편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배달음식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남편에게 반찬하고 국을 사고, 마트 들려 식재료를 사서 음식을 라고 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적당히 있다가 적당히 갔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뽀글이 할머니께서는

 "집에 있는 사람 먹을 걱정은 그만하고 자네 발가락이나 걱정하소."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니까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은 오래가지 않았다. 입원기간 내내 나는 가족들의 먹거리를 걱정했다.  우리 시어머니 말씀처럼 나는 정지꾼이라 그런가 보다.


저녁밥을 병아리 모이 먹듯이 먹었다. 입맛이 없기도 했지만 많이 먹으면 목발 짚고 링겔 단채로 화장실에 가야 하기에 일부러 적게 먹었다.  집으로 간 아이들은 전화해서 카레라이스를 어떻게 만드냐고 물었다. 나는 귀찮아 인터넷에서 찾아서 만들라고 했다. 인터넷의 도움으로 아이들은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인증샷을 보냈다. 속으로 '와따, 이것들 잘하네.'라고 생각했다.


다치지만 안았다면 새집에서 유튜브 보고 책 보고 있었을 것이다. 가족들에게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주고 저녁도 먹었을 것이다. 저녁 먹고는 작은 아이 꼬셔서 같이 산책도 갔을 것이다.


발가락 골절이 나의 소소한 일상을 훔쳐갔다. 대신 수술과 입원생활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선물했다.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 합창부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