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에 외제차는 정말 사치일까.
곧 34살이 된다.
2015년 생일이 지나 33살이 된지 이제 갓 한 달 되었다.
내 애마 폭스바겐 골프 아스라다는 출고한지 1년 6개월이 훌쩍 지나고 있다.
주행거리는 2만 3천 키로.
그간 뭐 대단한 일이 있었겠냐 마는 나름 인생사에 희로애락을 함께했기에 구입기와 함께 롱텀 시승기 정도는 써야 내 아스라다에게 보답을 하는 거라 생각을 했다.
미루고 미루다 지금이라도 써볼까 한다.
지나고 보면 골프를 구입한 나의 나이는 32살이었다.
2014년 1월에 출고를 받았으니 구매를 결정하고 계약서를 작성한 건 31살이었다.
자동차를 구입하기에도 적당히 이른 나이.
국산 소형차를 구입해야 어딜 가서 욕이라도 안 먹을 그런 나이.
그 나이 즈음 외제차를 구입할 생각을 하였다.
2003년 첫 면허를 땄다.
스무 살 갓 넘기고 군대 가기 전. 남자들이 보통 그러하듯 그 시기에 면허를 땄다.
군대에서도 내내 운전을 했고 골프를 구입하기 바로 전까지 꽤나 빈번하게 자동차를 렌트하여 운전을 해왔다.
누적으로 대강 계산해도 오륙만 키로는 훌쩍 넘기지 않을까 싶은..
그동안 가슴 한편엔 내 차를 구입했으면... 싶은 욕망이 사그라든 적이 없었다.
그래도 나름 식견이 있다 자부하였고, 얼리어답터처럼 행색을 해왔던 터라 시선은 외제차로 줄곧 돌아서 있었다.
외제차에 대한 막연한 동경, 그리고 여러 비평가들 사이에서 쏟아지는 찬사 등은 그런 시선을 국산차로 돌려세우지 못하는 일등공신이었다.
인생은 항상 무엇인가 계기가 있다.
아버지가 아프셨다.
내 아들이 내 아내의 뱃속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목돈이 생겼다.
아프신 아버지를 뵙기 위해 내 자동차가 필요했고 내 아들을 품고 있는 내 아내를 편히 병원에 데려가야 했다.
그 와중에 뜻하지 않은 목돈이 생겼다.
나의 시선은 한 번의 망설임 없이 골프로 향했다.
젊다면 젊은 31살 청년이 외제차를 가슴에 품는 순간이었다.
물론 여차저차 벤츠나 제타 등등도 둘러보긴 했으나....
내 사랑스러운 아내는 선물로 생각하라며 선 듯 승낙해주었고 내 의견을 적극 따라주었다.
길게 고민할 필요 없이 아내와 옷 근사하게 차려입고 서초 마이스터 모터스 매장엘 가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계약금 현금 백만 원은 아주 우습게 딜러에게 건네어졌다.
출고는 최소 3개월이 걸린다 하였다.
예상을 했었더랬다.
구입을 결정한 폭스바겐 골프는 인기 절정이었기 때문이다.
내 생에 첫 차와의 고대하던 만남은 인터스텔라 블랙홀에 빠진 주인공마냥 차원이 다른 것과 같이 느껴졌다.
그동안 바삐 움직였다.
아무리 목돈이 생겼더라도 충분치 못했다.
1,500만 원가량이 부족했다.
어찌되었던 이 돈을 마련해야 했다.
자동차는 가능한 현찰로 100% 완납해서 구입하는 것이 좋다.
어떠한 형태로든 분할하게 되면 이자가 발생하는데 이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나이 31살. 지금은 33살. 몇 개월 뒤엔 34살.
취득세 포함 3,550만 원짜리 자동차를 완납할 돈은 없다.
그렇다고 금리 6%에 달하는 자동차 할부 캐피털을 이용할 필욘 없다.
나와 내 아내의 신용도는 2~4등급 수준이었으니까.
은행 대출을 이용하기로 했다.
신한 마이카 대출 등을 이용하면 4% 초반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취등록세 때문에 타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추가로 이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2,000만 원을 준비하게 되었다.
결제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계약 후 한 달 반쯤 지난 시점에 딜러에게서 다급히 전화가 왔다.
실제로 전화 벨 소리가 다급한 소리였다.
구매 직전 취소한 고객이 생겼는데 지금 돈 준비 가능하시면 이것 인수하시겠냐고.
3개월을 넘게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예상보다 절반이 줄었는데, 돈도 다 마련해두었는데 무엇이 문제겠냐 싶어 그러자 했다.
은행에서 대출을 실행했고 잔여금은 마이스터 모터스로 입금했다.
집 대출금액이 나에게 산정이 되어 있어 은행 대출은 아내 명의로 진행했다.
마이스터모터스에서 대출 실행은 아내 이름으로 하였으니 자동차 명의는 공동으로 하되
아내가 51%, 내가 49%로 하자 제안을 하였다.
은행 대출 심사 때문인 듯하여 그러자 했다.
매 달 원리금 45만 원씩 갚아야 하는 카푸어 부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아내는 내게 웃어 보였다.
암 선고를 받으신 아버지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남편에게 근사한 선물을 선사하는 천사의 모습이었다.
딜러는 내게 자동차가 한국에 잘 들어 왔다고 보험엘 가입하라며 차대번호를 알려주었다.
보험을 꼭 가입해야 인수가 가능하다.
자차 포함 첫 보험액은 년 98만 원이었다.
한 번에 납입하기 부담스러워 무이자가 가능한 카드로 12개월 할부로 결제하였다.
매 달 원리금 45만 원에 월 7만 원 5천 원의 보험이 더해졌다.
서초 마이스터모터스에 내 자동차가 입고가 되었고, 서비스 품목 선팅을 진행한다고 딜러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 차 가져가라고.
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병환 중이신 아버지도 그날만큼은 내 머릿속에 잠시 자리를 비우신 듯하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날 뭘 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대망의 디데이.
얼른 퇴근하고 고고싱!
순백의 폭스바겐 골프. 아스라다는 그렇게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자동차 오너가 되었다.
딜러와 함께 아스라다에 앉아 온갖 설명을 듣는데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저 빨리 이 녀석과 함께 아내가 기다리는 마천동으로 가길 원했다.
그곳엔 아내와 장모님께서 막걸리 한통을 구비해놓고 계셨다.
혹시 사고 날까 무서워 마천동까지 엉금엉금.
내 입꼬리는 다크 나이트 조커마냥 귀에 걸려있었다.
마천동엘 도착하여 아내와 장모님과 조우했을 때도 조커마냥 싱글벙글.
아스라다는 그렇게 나의 자동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