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 밸런스랍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 글(글이라기엔 새해 일기 정도)은 대입에 관한 글은 아닙니다. 2% 정도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4년제 정시지원 기간은 이번 주 수요일을 기점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러니 학부모님께서 (이제 이 글을 클릭하실 리도 없겠지만) 그런(?) 목적이셨다면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번 주. 정신없이 정시 상담을 했다. 그리고 이런 멘트를 제일 많이 날렸다.
"A야. 가나다군 에 하나(가급적 가나 군 중)를 확실히 붙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래야 나머지 두 개를 과감히 지를 수 있단다. 물론 나머지 둘은 확실히 붙는 곳이면 안 된단다." 그게 정시 밸런스야.
새해가 밝았다. 이렇게 진부한 표현이라니.
떡국을 먹는다.
이런저런 인사말을 주고받는다.
문득 생각한다. 2025년은 어떻게 보냈을까.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내 MBTI 어딘가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는 일들.
그리고 생각한다. 잘한 것도 많지 않은가?,라고. 애써 10개를 적어보기로 했다.
1. 365일 일기 작성에 성공했다. 매일 작성한 게 아니라 아이폰은 잘 인정해주지 않지만(그런 디테일한 분석까지 하더군요. ^^), 그래도 365일의 시시껍절한 말이 담겨 있다. 카페에서 멍하니 시간을 때울 때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질 것 같은 그런 일기.
2. JLPT N2를 땄다. 대단한 건 아니고, 겨우 과락을 면할 점수로 합격했지만. 이 자격증은 평생자격증이니 나중에 일본에서 뭔가를 하게 된다면 그래도 들이밀어 볼 순 있지 않겠는가.
3. 서재+건조대가 있던 방을 서재+싸지방(군바리들은 아시죠. 사이버지식정보방이라고..)으로 리뉴얼했다. 일본어 N1 공부 시 온라인 수강을 위해 시작했지만, 일본어는 정작 책으로만 하고 있다는.
4. 포트폴리오가 견실해졌다. 거시 환경이 급변해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를!)
5. 우리 반 입시 나름 괜찮았다.
6. 건강해졌다. 원래 건강한데 특히 2025는 골골대는 날이 일 년에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마 평일 저녁 매일 하는 트레드밀+턱걸이의 규칙적 루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타민 씨도 중요합니다.
7. 골프에서 아메리칸 싱글(물싱글)과 이글에 성공했다. 이글패 감사합니다. (난 독수리 모양이 좋은데. ㅠㅠ)
8. 충동적으로 고양이를 입양할 뻔했는데, 잘 취소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반려동물은 그들에게 몹쓸 짓이다.
9. AI 툴과 조금 더 친해졌다. 챗지피티 플러스도 구독해 보았고.
10. 난 좀 더 여유로워졌다. 달리 말하면 조금 더 단단해졌다.(이건 사실이 아니라 지향일 수도 있지만)
그래. 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나이를 먹는다고 인간이 필연적으로 성숙해지거나 견고해지는 것은 아니다. 벼는 필연적으로 익는데. 인간은 필연적으로 익기는커녕 좀 허접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브런치 작가님들 찬양합니다. 유튜브는 적당량만 봅시다!)
아무리 젠체하는 인간도(혹은 달라이 라마 님도) 절대적인 평정심을 지닌 존재일 수 없다. 많은 사람은 누군가를 영웅시함으로써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곤 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인류 진화의 생존도구인 이상화(라깡 식으로 말하면 objet a 정도)의 비겁한 양태일 뿐이다. 그래서 난 영웅화 작업을 싫어하고, 참 멋진 사람이다,라고 생각한 누군가가 대중에 의해 영웅으로 떠받들여 지면 오히려 그 팬심을 거두어 버리는(솔직히 조금 더 Aggressive 하게 나아가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어 버렸다. 유재석 님 죄송합니다. 훌륭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일론 머스크. 일론 머스크는 제가 먼저 발굴했다구요. 머스크빠가 많아져서 이제 팬심 철회함)
요는,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하지만 더 멋져질 수 있다. 대부분의 어른이 그렇듯이 나이를 먹으며 조금씩 더 견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몇 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가 언제 어디서 눈물을 훔치셨을까 궁금해한 적이 있다. 적어도 난 한 번도 아버지의 눈물을 보지 못했다. 5일 동안. 할머니의 관이 소각되는 그 순간에도. (그런 감정의 억제가 꼭 좋다고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궁금했다. 어떻게 저러실 수 있을까.
625 전쟁통 닭장 속에서 지내시며 이런저런. 아니 격심한 고생 풍파를 겪으신 할머니의 생애. 그런 할머니가 유독 예뻐하신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으셨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아버지의 나군(안정. 무조건 합격)은 무엇이었을까. 인생의 가나다군이라는 선택지 중에 어떤 군은 적어도 확실했기에 아버지는 그렇게 평온하실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떤 의사결정을 해야 할까.
어떤 것을 안정으로 두고
어떤 것을 소신, 상향 혹은 위험까지 하는 의사결정을 할까.
많은 사람에게 안정은 가족이겠다.
가족 외의 안정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가족만이 안정이 될까,라는 생각도 한다.
가족은 정녕 안정일까,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생각도 한다.
아버지에게 안정은 가족이었을까?
아버지를 견고하게끔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적지 않은 이직(물론 좋은 방향으로 갔지만).
중요한 결정 등에서 언제나 아버지는 당당했다.
소신, 상향, 위험 지원에도 주저함이 없었다는 말이지.
그래서 1월의 첫날. 병오년에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생각하는 멋진 인간. 아버지.
(아버지 버프 빼고도 진짜 멋진 사람)
당신의 안정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