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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Aug 04. 2023

[Den이 만난 명의] 박상재 국립암센터 박사

간담도췌장암 외과 의사

난치성 암을 다루며 비극을 가장 많이 마주하는 간담도췌장암 외과 의사 박상재. 그가 말하는 외과의사의 삶은 드라마처럼 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도전 정신과 성실함이 백미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꼭 살립시다.” - <슬기로운 의사생활>(2020)

“내 수술대 위에선 아무도 안 죽어.” - <용팔이>(2015)

“아직 수술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 <하얀거탑>(2007)

“살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린다. 다른 거 그냥 다 엿 많이 잡수시라 그래라.” - <낭만닥터 김사부>(2016)


화제를 모았던 의학 드라마는 모두 외과의사를 주인공으로 한다. 천재적 테크닉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냉철한 판단력, 순간의 집중력, 과감한 실행력,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윤리 의식 등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외과의사는 하나같이 매력적인 서사를 지닌다. 시청자들은 꺼져가는 생명과 촌각의 사투를 벌이는 외과의사의 세계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고, 그들의 노고와 직업 정신에 공감하고 존경심을 느꼈다.


그러나 이들 드라마가 한껏 미화한 외과의사는 현실에서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가혹하리만큼 노동 강도가 센 데다, 의료 사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머리 좋은 의대생들은 당연히 기피하는 중이다.


“우리끼리도 외과를 택한 이들을 ‘돌아이’라고 불러요. 돌아이, 어감은 안 좋지만 남 신경 안 쓰고 본인이 좋아하는 걸 하는 사람들을 말해요. 돌아이의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박상재 박사의 말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다. 외과의사는 멋진 직업이고, 그들의 직업 정신은 우리 생명과 직결돼 있다. 당연히 최고의 의사들이 도전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산다.


박 박사는 외과의사로서 오늘도 환자의 생사를 건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그는 완치율이 극도로 낮은 담도암, 췌장암 등의 난치암을 수술하는 임무를 띠고 간담도췌장암 외과의사가 됐다. 국립암센터 창립 멤버로 지금의 진료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병원에 간이식 프로세스를 세팅한 보건행정가이기도 하다. 현재 국립암센터 연구소장이자 간담도췌장암센터 임상교수로 있다. 그는 자신의 수술이 환자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서전(surgeon), 의사의 꽃



외과의사로 살기로 결심한 계기는?

특별히 목표가 있어 선택했다기보다는 재미있어 하게 됐다. 대학 재학 때부터 희한하게 외과 공부에 흥미가 있었다. 환자를 직접적으로 치료하고 목숨을 살린다는 데 왠지 관심이 더 가기도 했다. 젊은 치기였는지 모른다.


외과의사로서의 삶은 드라마에서처럼 극적인가?

드라마만큼 극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매우 극적이다. 수술할 때 정말 어려운 상황이 닥칠 수 있다. 또 수술 후에 환자가 회복하면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드라마 그 이상의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진다. 그때 마음 졸이고, 걱정하고, 대처하는 상황은 극적이라 할 만하다.


몸 또는 손에 피가 튀는 상황에서 환자의 생명을 살려내는 일은 찰나의 판단과 엄청난 집중력, 과감한 결단 등을 요할 것 같다. 실제로 그런가?

그렇지 않다. 간담도췌장암 외과 수술을 할 때, 예를 들어 다섯 시간 수술을 한다고 해도 대체로 애초에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진행된다. 수술실은 아주 조용하고, 시간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지나간다. 그래야 수술이 잘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응급 수술이나 외상 수술은 다르겠지만 간담췌는 그와 다르다.


수술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암 수술을 많이 하는 간담도췌장암 외과의사들에게 수술의 성패는 환자가 수술 후 회복해서 퇴원하는 것에 달려 있다. 그 이후로도 암이 재발하지 않아야 비로소 수술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수술실에서의 상황보다는 수술 이후가 진짜라고 할 수 있다.



수술을 잘하기 위해 멘털, 체력 등은 어떻게 관리하나?

간담도췌장암 수술은 짧으면 3~4시간, 길면 10시간까지 이어질 때가 있다. 그 긴 시간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하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운동은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편이었다. 좋아하기도 해서 자연스레 체력 관리가 된 케이스다.


평생 체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요즘은 조금 걱정이 된다. 나이가 있다 보니.(웃음) 그래서 수술하기 전날에는 최대한 휴식을 취하고 감정적으로도 차분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집에 일찍 들어가 저녁 잘 먹고 일찍 자면 그걸로 된다. 음주나 격한 운동도 수술 전에는 하지 않는다. 이토록 쉬운 일이 내겐 수술 전날 꼭 해

야 하는 숙제와도 같다. 어찌 보면 내게 수술은 수술 전날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간담도췌장암, 그중 담도암과 췌장암은 생존율이 매우 낮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런 난치성 암의 전공 의사로서 비극을 많이 마주할 것 같다. 실제로는 어떤가?

담도암, 췌장암은 수술한다고 해도 재발할 확률이 높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환자의 수술 전부터 수술, 수술 후 회복 등 모든 치료 과정을 담당하며 자주 만나다가 어느 순간 병이 재발해 돌아가시는 경우를 마주하면 의사로서 느끼는 심리적, 정신적 부담이 상당히 크다.


어떻게 보면 동고동락해 온 환자를 갑자기 떠나보내야 하는데, 그것이 상식적인 세계와는 동떨어져 있다. 아는 사람이 죽는 걸 수도 없이 겪는다는 건 일반적이지 않으니까. 나쁜 소식을 환자와 공유할 때면 지금도 마음이 무너진다. 외과 의사 생활을 30년 가까이 했다고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한 인터뷰에서 “간담도췌장암 중 특히 담도암의 존재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현재 담도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

췌장암, 간암 등은 이미 많은 이가 알고 있다. 반면 담도암은 잘 모르는 이가 많다. 담도는 간에서 생성된 담즙을 췌장과 십이지장으로 운반하는 길이다. 여기에 암이 생기는 것이 담도암이다.


담도암은 현재 1년에 약 3000명씩 발병하는데, 그 수치가 계속 늘고 있다. 완치율이 20%밖에 안 되는 난치암이고, 항암치료나 면역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아 더 무섭다. 지금 우리가 담도암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고령화사회로 갈수록 담도암 발생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생소한 질병이지만 그 존재를 미리 알고 대비해야 한다.


담도암의 치료법은 따로 없나? 만약 그렇다면 고령화사회를 맞는 우리 삶이 너무 암울하지 않은가.

수술이 유일한 완치 수단이다. 췌장암이 스티브 잡스 등 유명인의 죽음 이후 주목받으며 연구 등이 상당히 많이 이뤄졌고, 치료법은 굉장한 속도로 발전 중이다.


담도암은 그 못지않게 무서운 암이기에 연구가 이뤄진다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췌장암만 보더라도 20년 동안 완치율이 5%에 머무르다 최근 10년 새 10%에 근접했다. 담도암도 사회의 주목을 받는다면 개선 속도가 빨라지지 않을까?




국립암센터의 기틀을 마련한 주인공



국립암센터가 시작될 때부터 함께한 1기 멤버라고 알고 있다. 서울대학교병원을 뒤로하고 국립암센터에 합류하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서울대학교병원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 그저 좀 더 빨리 하고 싶은 일을 직접 주도해 보고 싶은 욕심이 컸다. 외과 전임의를 마친 때가 2000년이었는데, 운명처럼 국립암센터 개원 시기와 맞물리면서 자연스레 오게 됐다. 개원하는 병원에 간다는 것은 장점이 명확하다. 무엇보다 어떤 좋은 비전을 세워놓고 처음부터 그 비전에 맞게 잘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엄청나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하루라도 빨리 본인이 주도하는 외과의사가 되길 원했는데,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고 생각하나?

내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간담도췌장암 외과의사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암병원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에 국내 유일의 국립암센터 의사로서 누구보다 열심히 수술에 임한 것은 맞다. 다른 외과의사들이 10~20년에 걸쳐 하는 경험을 나는 3~4년 만에 다 한 것 같다.


처음 국립암센터로 옮겼을 때 시스템이 미처 갖춰지지 않아 혼란스럽지는 않았나?

그렇다. 하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즐거웠다. 550병상의 국립암센터라는 큰 병원을 백지 삼아 자기가 그리고 싶은 걸 마음껏 그려본다는 건 흔한 기회가 아니지 않나. 혼란스럽고 힘들었겠지만 굉장히 재미있었고, 보람도 컸다. 물론 수백 건의 수술과 병원의 진료 시스템을 마련하고 의료진을 세팅하는 것을 병행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매일 수술하고, 진료하고, 행정 업무가 밤까지 이어지고. 때론 밤늦게 수술도 해야 하니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누군가는 업무 과중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내겐 그 치열했던 일상이 자기 발전과 성취의 달콤함을 안겨주는 꿀과 같았다.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았지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수술 결과가 좋지 않거나 암이 재발하는 등의 나쁜 소식을
환자에게 전해야 하는 마음은 그 어떤 드라마 못지않게 숙연하고 무겁다.
나를 비롯한 외과의사들은 그런 마음 아픈 상황을 늘,
 변치 않고 맞닥뜨린다.
그건 외과의사로서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박사님을 ‘국립암센터에 간이식 시스템을 세팅한 주인공'이라고 평가한다

나는 간이식 전문 의사는 아니었다. 우리나라 의료계 관행상 간과 담췌는 분리돼 있다. 나는 담도암, 췌장암 수술 전문의였다. 그런데 국립암센터에서는 간담췌를 통합하는 비전을 그렸다. 그 길로 나는 서울대병원으로 달려가 간과 관련한 외과 트레이닝을 다시 받았고, 미국과 일본 유학을 통해 간이식을 새로 공부했다. 3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05년부터 국립암센터에서 간이식을 할 수 있게 됐다. 서울대병원 서경석 교수 간이식팀의 트레이닝과 의료 지원이 엄청난 도움이 됐다.


잘하는 담도췌장암 수술만 해도 벅찬 스케줄이었는데, 부족한 부분을 공부하면서까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었다니, 참으로 대단하다

그때는 신나서 한 것 같다. 간이식이라는 것이 지금이야 굉장히 대중적이지만 당시에는 국내의 몇몇 대형 병원에서만 할 수 있었다. 국립암센터의 경우 암 진료에 포커싱되는 만큼 이식하는 데는 적합한 백그라운드가 아니다. 간이식을 하려면 병원의 전반적 제반 파워와 맨 파워, 적합한 시설이 받쳐줘야 한다. 국립암센터는 이제 막 개원한 만큼 이런 부분이 취약했다. 그럼에도 간이식을 세팅한 건 엄청난 쾌거였다. 그런 의미 있는 일을 하는데 신이 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웃음)


큰 프로젝트의 최전방에 섰을 때 부담감은 없었나?

없었을 리가 있나. 엄청 부담스러웠다. 간이식 후발 주자로서 수술 성공률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었다. 수술이라는 것이 다 성공하면 좋겠지만 실패할 수도 있는 거다. 그러나 환자는 그런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누구라도 수술 결과만 보고 판단하지 않겠나. 그래서 초기에는 서울대병원 간이식팀이 직접 와 20회 이상 수술을 같이 해줬다. 국립암센터의 내부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그들이 철수하고 독자적인 간이식 수술에 나섰을 때다. 목표는 100명의 간이식 수술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모두 성공했다. 100명의 환자를 집도하는 동안 단 한 명도 실패하지 않는 데는 행운도 따랐다고 생각한다. 수술에 100% 성공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욱 값진 성과였다.




간담췌외과를 지원한 괴짜 의사 박상재



한 인터뷰에서 “간담도췌장암 외과를 하는 돌아이(?)들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의 저의가 궁금하다

처음 간담췌외과를 택한 것은 재미있기 때문이었는데, 막상 해보니 힘들다. 내 환자가 건강해지면 좋겠지만 상태가 나빠지면 의사로서 부담도 크다. 주말에도 쉼 없이 일해야 해서 워라밸 측면에서도 별로다. 그럼에도 사회적 보상은 크지 않은 편이다. 결국 간담췌외과에 종사하는 의사들은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밖에 없다. 그 사명감은 처음 간담췌외과를 지원할 때 생기는 것이 아니다. 환자를 자주 보고 수술하면서 생긴다. 그때부터는 그 희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만큼 달콤하다. 결국 내가 말한 ‘돌아이’는 제멋에 겨워 사는, 남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이다. 간담췌외과 의사를 보고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지만 보상이 적은 의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린 돌아이 기질이 있어 좋아하는 것을 한다. 실제로 간담췌외과 의사끼리 모여 서로 돌아이라고 말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웃음)


간담도췌장암 외과의사로 살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엄청난 부담감과 육체적 피로를 이겨내면서 얻는 보람인 것 같다

그렇다. 나 역시 설레지 않는 일을 오랫동안 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수술을 계획한 대로 끝냈을 때 희열이 엄청나다. 사실 수술 성패는 90% 이상 거기서 결정 난다. 반대로 그렇게 되지 않을 때도 많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으면 많이 속상하다.



최종 꿈은 무엇인가?

두 가지다. 앞으로 10년 동안 나이가 많거나 몸 상태가 덜 좋은 환자들이 암 수술 후 잘 회복할 수 있는 회복 프로세스를 제대로 만들고 싶다. 그런 다음 우리나라 전체 의료계에 그걸 세팅하고 싶다. 지금 그와 관련한 일을 진행 중이다.


두 번째는 국립암센터를 설립 취지에 맞게 우리나라 암 정책 연구, 진료의 컨트롤타워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개원한 지 23년이 됐고, 국가 병원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다. 암 정책, 연구, 진료가 통합되는 컨트롤타워가 되어 좀 더 효율적으로 암을 다스릴 수 있기를 바란다.



간담도췌장암 의사로서 수술을 앞둔 아침 출근길에는 마음이 설렌다.
 전날 밤에 환자를 어떻게 수술할지를 고민하면서도 설레고.
아침에 수술하면서 오늘 수술을 어떻게 할까, 어떻게 멋지게 잘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또 설렌다.
환자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그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책임감이 왜 없겠나. 기도한다.
적어도 수술을 앞두고 내가 멋있게 해내야겠다는 다짐 없이
큰 수술에 임할 수는 없지 않은가.



ㅣ 덴 매거진 2023년 8월호
에디터 이영민(min02@mcircle.biz) 
사진 한도희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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