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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Aug 04. 2023

잡스처럼 창고에 전초기지 마련한 프로그래머

개인 천문대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꿈. 이를 향해 천체사진 찍으며 원 스텝 투 스텝 오늘도 전진한다.



profile. 지용호

1978년생

IT 기업 ‘모빌리티42’ CTO

유튜브 <아빠별TV> 운영자



천체사진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우주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오는 빛으로부터 모은 데이터를 가공해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활동이다.


이 공간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전초기지. 장비를 보관하는 것뿐 아니라 특정 활동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계획하는 장소다. 가령 새로운 망원경을 들였다면 이곳에서 망원경에 맞게 미리 세팅하고 필요한 부품이 있으면 만들거나 구입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테스트도 해야 한다. 현장에 나가면 기본적인 세팅만 하고 바로 촬영을 하기 때무에 시간을 아껴야 한다.


이곳을 택한 이유는?

천체사진을 위한 부품과 장비는 너무 많다. 집에 두면 가족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별도의 공간이 필요했다. 이곳은 집에서 도보로 5~10분 거리에 있다. 접근성이 좋은 데다 1층이기 때문에 장비를 들고 오르내리는 번거로움도 없어 택했다.


일주일에 얼마나 이 공간에 오나?

수시로 온다. 머무는 시간은 들쭉날쭉이다. 천체사진을 촬영하고 나면 매번 부족한 것이 보이기 때문에 수시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또 다음 촬영을 위해 장비의 상태를 점검하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채워야 한다. 그런 작업은 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별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시골에서 자라서 어릴 때부터 별을 자주 봤다. 가을, 겨울 밤에 보이는 작은 북두칠성 같은 별이 무엇인지 항상 궁금했고, 은하수를 보면서 신기해했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천체관측을 공부했고 별자리나 성운, 성단, 은하 등을 능숙하게 찾을 수 있게 됐다. 그러다 어릴 때부터 궁금해한 별들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은하수의 정체도 깨닫게 됐다. 천체관측은 알수록 재미있었고, 고3 때는 ‘안타레스’라는 천문 동아리를 만들어 천체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계속하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천체를 촬영할 때 꼭 확인하는 것이 있을까?

촬영 대상, 날씨, 빛 공해(광해)를 꼭 확인한다. 촬영할 때는 빛 공해가 적은 강원도 홍천이나 인제까지 간다. 어떤 대상을 촬영하느냐에 따라서 가까운 석모도나 강화도에 가기도 한다. 도심이나 골프장, 스키장이 있는 곳에서 수십 킬로미터는 떨어져야 천체사진을 촬영하기 좋다. 우리나라는 빛 공해가 매우 심한 편이라 은하수조차 촬영하기 어렵다. 심지어 빛 공해를 피해 호주, 몽골 등으로 원정을 가는 천체사진가도 많다. 나도 계획이 있다. 


날씨는 그날 바람의 세기, 습도, 구름의 이동을 다 확인한다. 낮 날씨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밤에 이런 지표들이 좋아야 별을 관측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요소를 꼼꼼히 확인하고 관측에 임한다.


촬영 대상은 지구의 공전과 자전 때문에 1년 365일 최적으로 촬영하거나 관측할 수 있는 대상이 정해져 있다. 특히 촬영의 경우 하나의 대상을 추적하면서 촬영해야 하는 만큼 해가 지고 뜰 때까지 밤하늘에 머무는 대상을 선정해야 한다.


별을 관찰하는 본인만의 프로세스가 궁금하다

주로 딥 스카이 오브젝트(은하, 성운, 성단 등의 먼 하늘 물체)를 촬영한다. 


암흑성운과 화성(주황빛), 혜성(초록빛)의 범상치 않은 만남. 제32회 한국천문연구원 천체사진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


천체망원경 하면 왠지 비싸고, 전문 영역이라 스펙을 따지기도 어려운 느낌이다

온라인에서 아무거나 좋아 보이는 망원경을 사면 반드시 후회한다. 본인이 천체망원경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먼저 알아야 한다. 눈으로 직접 대상을 찾아가면서 관측하기를 원한다면 ‘대구경 돕소니 안식 망원경’을 써야 한다. 크기가 매우 커서 실을 만한 차량도 있어야 한다. 무겁기 때문에 열정도 당연히 필요하다. 수백 킬로미터 왕복도 서슴지 않을 수 있는 마음가짐과 시간도 필요하다.


그냥 집에서 달이나 행성 정도를 보고 싶다면 ‘새 관측용 망원경’과 튼튼한 삼각대면 충분하다. 달의 크레이터, 토성의 고리와 위성, 목성의 줄무늬와 4대 위성 등을 관측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유명한 산개성단도 볼 수 있다.


천체사진은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다고 알고 있다

달이나 행성 사진은 눈으로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태양은 어떤 필터로 촬영하느냐에 따라 모습이 다르다. 성운, 성단, 은하는 대부분 어둡고 크기가 작아 우리 눈으로 직접 봐서는 세밀한 관측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사진을 통해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은 최소 수분에서 수 시간 동안 촬영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 어지기 때문에 우리 눈과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선명하다.


은하수 아래서 천체 사진 촬영 중


천체사진은 보정이 기술력이고 핵심이라고 알고 있다. 보정하는 데 얼마나 소요되나?

단 컷으로 촬영한 사진은 보통 2~3시간 소요된다. 문제는 모자이크로 촬영하는 경우다. 여러 장을 찍어 하나의 사진으로 합성하는 건데, 굉장히 세밀한 작업이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각 사진의 색, 선 등 모든 것이 하나인 것처럼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24~48시간, 때로 그 이상도 걸린다.


천체사진과 컴퓨터 프로그래밍, 둘 사이에 어떤 시너지가 날까?

아무래도 천문 프로그래밍을 만든 것?(웃음) 2001년 ‘천문노트’라는 비영리 민간단체를 만든 적이 있다. 군복무 중 천문 프로그래밍 관련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었는데, 서울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에 다니는 이형철이라는 친구가 자기도 천문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다고 해서 전역 후에 함께 만든 단체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관련 자료를 모아 공유했다. 운영진도 수십 명 뽑았다. 천문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는데, 한국천문연구원과 정보통신부에서 홈페이지 대상과 최우수상을 받았다. 아쉽게도 다들 결혼하고 삶이 바빠 홈페이지 관리를 못 하고 있다. 언젠가는 다시 복구할 생각이다.

굴절망원경 2대로 촬영하는 중


가장 짜릿했던 관측은 언제였나?

1997년 대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당시 엄청 밝고 크게 보였던 헤일-밥혜성(Comet Hale–Bopp)이 최고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눈으로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는데, 50mm 표준렌즈에 필름 카메라를 들고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동네에서 가장 촬영하기 좋은 곳을 찾아가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 기억이 여전히 좋은 인상으로 가슴속에 담겨 있다.


앞으로 꼭 보고 싶은 별이 있다면?

별은 다 똑같은 별이다. 별마다 색, 밝기, 크기 모두 다르지만 특이하게 생긴 별은 없다. 그래서 보고 싶은 별을 특정 짓기는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낮에 볼 수 있는 별이 갑자기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걸 초신성이라고 하는데, 맨눈으로 꼭 봤으면 좋겠다. 100년에 한 번 있을까말까 한 일이지만 지구와 가까운 별 중 하나가 폭발하면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오리온자리의 베텔게우스라는 별이 후보 중 하나다.



TIP. 고수가 알려주는 나만의 창고 만들기


1. 동선에서 가까운 곳에 마련하기

집, 직장, 기타 평소 자주 다니는 동선 안에 있는 공간을 찾든가, 도보로 이동하기에 부담 없는 거리에 위치해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다.


2. 무거운 장비가 많은 취미를 가졌다면 1층에 거처 마련하기

장비를 꺼냈다 넣었다 옮기는 것도 다 귀찮고 힘든 일이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취미라도 그 과정이 번거로우면 흥미를 잃게 된다.


3. 예산 맞추기

서울에서의 삶을 포기하면 개인 공간 하나 마련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또 주변에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과 공간을 공유할 수 있다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4. 장비가 있는 창고라면 제습기는 필수

각종 전자 장비는 습기에 취약하다. 제습기를 24시간 가동해야 한다.



지용호 천체사진전

신비하고 아름다운 우주의 모습을 천체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기간: ~8월 20일

장소: 대전시민천문대




ㅣ 덴 매거진 2023년 8월호
에디터 이영민(min02@mcircle.biz) 
사진 한도희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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