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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Aug 04. 2023

노후주택 리모델링한 건축가 이야기


스님도 제 머리는 못 깎는다는데, 자기 머리를 직접 깎은 건축가가 있다. 

그가 전하는 ‘나의 집 건축기’.



profile. 정이삭

1980년생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 디렉터

동양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집을 다 짓고 난 뒤 서프라이즈 같은 감동은 없다.
소재 하나하나에 애정도 있지만참 힘든 순간도 떠오른다.
그래서 감동만 있을 수는 없다.
그건 지극히 정상적이다.
크게 놀라고 감동의 눈물을흘리기보다
담담하게 맞이하는 게 더 큰 애정이라고 생각한다.”



50년 된 노후주택을 리모델링했다. 노후주택을 택한 이유는?

1971년에 지은 집으로 알고 있다. 매입 당시에 딱 쉰 살 정도 됐을 거다. 그게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이 마을이 만들어진 지도 그 정도 되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 사는 이들이 대부분 그때 집을 지은 분들인데, 다들 노인이 됐고 건물도 수명이 다 되어간다. 그런 분위기에서 이 집이 어떻게 바뀌느냐는 굉장한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용한 마을 분위기가 마음에 들기도 했고.


건축가로서 남의 집을 지어주는 것과 내 공간을 짓는 데 따르는 마음가짐이 많이 다른가?

큰 차이는 없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건축가인 나는 정작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못 하고 살아왔다는 걸 알았다. 남의 공간은 잘 만들어내면서.(웃음) 그래서인지 남의 건물 설계할 때는 건축주의 요구 사항에 기반해서 좋은 아이디어를 비교적 명쾌하게 정리해 내는데, 내 공간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결정을 못 하겠더라. 평소 그런 생각을 정리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후주택을 리모델링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

당연히 상태가 좋지 않은 집을 좋게 바꾸는 작업이 어렵다. 리모델링 전에는 많은 이가 “귀신 나올 것 같은 집”이라고 했다. 그만큼 관리가 안 됐고, 속을 들여다보니 부재가 썩어 있는 부분도 많았다. 목구조가 부러져 있기도 했다. 그런 것을 새로 교체하고, 외관은 원형 그대로 유지하는 작업이 가장 고되다.


오히려 복원 이후 더 옛날 집 같아졌다 

건축가의 피와 땀이 스며 있다.(웃음) 내부는 완전히 새롭게 바꿨고, 외부는 티 나지 않게 고친 것이 굉장히 많다. 건축가로서 말하자면, 옛날 집 고치는 건 쉬운 작업이 아니다. 에너지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소위 리모델링 설계비는 법적으로 신축 설계비의 1.5배가 든다. 그 고됨을 법도 인정하는 거다.


귀신 나올 것 같은 외관을 보고도 어떻게 이 집을 바꿀 생각을 했나?

마을의 다른 집들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는데 이 집의 생김새가 제일 일반적이지 않았다. 다른 집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적벽돌로 지은 다세대 양옥집이다. 하지만 이 집은 지붕이 한쪽으로 굉장히 가파르고, 다른 한쪽으로는 완만하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2층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데다 다락을 만들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가 안 되어 귀신 나올 것 같다고 하지만 나는 ‘이 집이 충분히 좋은 공간이 될 수 있겠구나’ 확신했다.

내 집을 지으려면 그곳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지부터 상상해야 한다.


이 집에 이름이 있나?

산이 가까워 마을 전체가 습한 편이다. 그렇다 보니 녹색 이끼가 잘 낀다. 이 집의 석고 지붕도 수분을 먹고 마르기를 반복하면서 이끼들이 달라붙었다. 그래서 녹색을 띤다. 그런 점에서 ‘녹색 박공집’이라고 이름 지었다. 녹색 이끼가 낀 그 모습이 개인적으로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내 집이 완공됐을 때 심정이 어땠나?

집이 완성된 모습을 보니 ‘짠’ 하고 감동이 밀려드는, 그런 걸 말하는 건가? 음, 그런 건 있을 수 없다.(웃음) 왜냐하면 이 집의 공사 과정을 계속해서 지켜봤기 때문에 오히려 담담했다. 마치 매일 내 얼굴을 들여다보면 내가 얼마나 늙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현재 이 집을 어떻게 쓰고 있나?

작업 공간으로 활용한다. 건축사무소로서 직원들과 함께 향유하고 있다. 집을 사무실로 써보니 매력이 있더라. 일단 신발을 벗고 일하는 게 편하고, 집처럼 공간을 쓸 수 있으니 업무 피로도가 덜한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직원은 일반적인 사무 공간보다 편안하고 톤 다운된 정서 속에서 일하니 긴장감이 낮아지고 차분하게 일할 수 있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

2층 응접실. 이 집을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이 공간을 내 업무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커다란 발코니 문으로 신선한 바람이 오가며 머릿속이 환기되는 걸 상상했다. 하지만 이 좋은 공간을 혼자 만끽하기보다 함께 나누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응접실로 뒀다.


정이삭 디렉터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2층 응접실. 테라스 창을 열면 인근 산의 흙 내음이 들어오는 걸 상상하며 설계했다.


가구들도 직접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렇다. 디자인까지만 했다. 목공 기술이 있는 건 아니니까. 물론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제작 방법이나 스킬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으니 전문가와 굉장히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어떤 건 되고, 뭐는 안 되고, 어떤 건 하자 가능성이 있고 없고 등을 꼼꼼히 따져가며 커뮤니케이션한 뒤 만든 노력의 산물이다.


개인적으로 이 집에서 난간이 가장 인상적이다. 안정감이 느껴지는데, 뭔가 이유가 있을까?

난간도 직접 제작했다. 기성품이 아니다 보니 손잡이의 편안한 그립감, 그 좋은 감각을 위한 폭 사이즈, 안정적인 굴곡 등을 모두 고민해 완성한 것이다. 난간을 일종의 커스터마이즈한 셈이다. 노후주택이라 계단이 좁다 보니 난간의 부분부분을 나눠 제작한 뒤 마지막에 조립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는데, 오차 없이 딱딱 들어맞게 하기 위해 정밀한 사이즈 측정과 구현에 힘을 많이 썼다. 이 집 짓는 데 어려운 점을 꼽으라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게 난간 만들기였다.


이토록 힘든 일을 우리는 왜 동경하는 걸까, 우리 삶에서 집을 짓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삶에 대한 고민과 비슷한 것 같다. 나도 집을 짓고 난 뒤에야 내가 어떤 유형의 집에서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40대 중반이 되니까 아무래도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때 던질 수 있는 질문 중 하나가 ‘어떤 집에서 살래?’ 같은 물음이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민하다 보면 각자 살고 싶은 삶의 방식이 나올 수 있다. 만약 본인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모를 때는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를 상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TIP. 고수가 알려주는 내 집 짓기


1. 자기가 살 집을 머릿속에 그려봐라

내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과정이다. 가족과 함께 살 집인지, 혼자 쓸 집인지, 아내와 잠을 같이 잘 건지 등에 따라 집 모양이 달라진다.


2. 설계에 집중하라

모든 공사는 도면을 기준으로 진행된다. 도면에 따라 재료 리스트를 만들면 견적이 어긋날 이유가 없다. 만약 예산을 초과한 견적이 나오면 더 투자할지, 예산에 맞게 다시 설계할지 공사 시작 전에 확실히 정하고 진행해야 한다. 공사 중간에 비용이 추가되면 골치 아프다.


3. 답사를 다닐 때 차 진입로를 확인하라

집을 짓는다면 매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만큼 차량의 진출입이 얼마나 편한지 따져보는 게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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