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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Aug 04. 2023

힙한 작가의 레트로 공간 탐방


오래된 물건과 그것이 가득 쌓인 공간에 대한 진솔한 코멘트.



profile. 남승민

1977년생

<디스 레트로 라이프> 저자

유튜브 <삼청반점> 운영자


“카메라 기술은 이미 50년 전에 완성됐지만
끊임없이 외관을 달리하며 새 제품이 나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스토리가 탄생했고,
그건 다시 많은 이의 삶 속에서 더욱 다양한 이야기, 추억 등을 꽃피웠다.
그게 레트로의 본질이다.

단순히 과거를 좋아하고 향수를 느끼는 것이 아니다.
사물이 주는 메시지가 획일적인 지금 같은 시대에
과거의 다양성은 삶의 지루함을 완화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인터뷰 시작하려는데 왜 선글라스부터 쓰나?

좋지 않나? 장사꾼 같아 보이고. 어떨 땐 사기꾼 같아 보이기도 하고. 어쨌거나 내 공간은 레트로 물건이 가득한 곳이니, 그 주인장도 예스러운 게 당연하다 생각한다. 이렇게 동그란 알의 선글라스를 쓰니 꼭 과거 어느 시골 장터의 약팔이 상인 같아 보이지 않나?(웃음)


레트로 물건을 모으게 된 계기는?

어릴 때 카세트테이프 모으는 게 취미였다. 일부러 모아야지 하면서 모았다기보다 음악을 좋아해서 하나둘 산 것이 쌓여 컬렉션처럼 많아진 것이다. 성인이 된 뒤에는 백수 생활을 길게 한 적이 있다. 하필 그때 시계에 눈을 뜨면서 서울 종로 예지동에 있는 시계 골목을 돌아다녔다. 없는 돈에 시계를 사려다 보니 이 시계 저 시계 알아봐야 했고, 자연스레 공부가 됐다. 그렇게 점점 레트로 세계에 깊이 빠졌고, 어느 순간에는 물건을 떼다가 파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가 2000년대 초중반이다.



20여 년 전, 이미 레트로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건가?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뭐 재밌는 거 없나 싶어서 시작한 건데 트렌드에 편승하게 된 것이다. 사실 요즘 사물들은 되게 재미가 없지 않나. 하나같이 트렌드를 따라가니까 개성이 없고, 선두로 나선 기업들이 트렌드를 좌지우지하니까 스토리도 별로고. 그런데 시간을 되돌려보면 카메라건 시계건 헌책이건 각양각색 개성을 지닌 제품들이 있더라. 그런 게 재밌는 거다. 기존 공산품이 주는 재미들이 요즘 제품들의 한계를 채워주는 모습이랄까.


이 공간은 어떻게 활용하나?

내 취향을 담은 헌것들로 꾸민 공간이다. 학창 시절 재밌게 읽었던 소설이나 시집, 카메라, 시계, 영화 포스터 같은 것도 걸어놓고. 그리고 공간의 이름을 ‘디스 레트로 라이프’라고 지었다. ‘봐라. 내가 겪은 1980년대 사물들이 있는 공간이야’라는 뜻이 담겨 있다. 결국 내 개인적 취향을 큐레이션한 거다. 물론 여기 있는 물건은 모두 판매도 하고 있다.



애써 모은 물건을 왜 판매하나?

내 공간에 헌책, 카메라, 시계 등 좋아하는 레트로 물건을 쌓아놨는데 계속해서 늘어나는 물건 때문에 가끔은 심리적으로 짓눌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레트로 제품은 버릴 수가 없다. 설사 고장 나더라도 그와 비슷한 제품이 있으면 부품으로 또 써야 한다. 그렇게 수리를 하기 위해 남겨놓다 보면 계속 쌓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판매를 결심한다.


자신의 취향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권하는 데서 즐거움을 얻나?

그냥 재미를 나누는 거다. 나의 재미가 타인에게 전달되는 그 자체로 굉장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십수 년이나 어린 어떤 이가 옛 물건을 직접 사용해 보면서 나의 옛 경험이랄지, 음악적 취향 같은 것이 전해지는 것이다. 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그런데 판매되고 나면 추억이 담긴 물건은 없어져 버리는 것 아닌가?

그렇다. 어떤 물건은 판매한 뒤 아쉬움이 오래가기도 한다. 이 물건을 판매하면 또다시 못 구한다는 걸 알기에 레트로나 빈티지를 취급하는 건 때로 마음이 아프다. 허전한데, 어쨌든 ‘이걸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만큼 재미를 느끼겠지’ 하는 마음으로 판매한다.



이 공간은 레트로 물건을 진열해 놓는 곳 외에 다른 용도도 있나?

유튜브를 촬영하는 스튜디오가 있고, 개인 작업실도 있다. 레트로 물건을 진열해 둔 공간에서는 아는 시인을 모셔서 작은 강의를 열기도 한다. 2년 전 즈음에는 시인이 힙합 가사를 해석해 주는 걸로 꽤 큰 호응을 얻었다.


이곳에서 재미있는 건 모두 벌이나 보다

그런 편이다. 재미있겠다 싶은 건 일단 해보고, 실제로 재미있으면 더욱 파고드는 편이다. ‘시인의 힙합 가사 해석’ 강좌를 기획한 이후에 나 스스로 힙합에 빠져 열심히 듣다가 올해 <드랍 더 비트>라는 책까지 출간했다. 김근 시인과 함께 쓴 책인데, 힙합 가사를 내 나름의 생각을 담아 해석한 에세이를 실었다.


빈티지 인테리어는 직접 한 건가?

레트로 물건이 많은 만큼 그 자체가 인테리어라고 생각했기에 건물에는 손댈 필요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헌책과 카메라, 브라운관 TV, 캠코더, 카세트테이프, 시계, 안경테 등 레트로 물건을 진열하고 나니 빈티지 감성의 인테리어가 완성됐다. 물론 건물 자체가 오래되어 옛 느낌이 나기도 한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여기다’ 싶었나?

그런 느낌이 강렬하게 든 건 아니었지만, 주변 환경이 좋아 택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 있는 도서관과 잔디밭이 딸린 현대미술관이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주변에 산책 시설도 잘 마련되어 있고, 재래시장도 가까운 편이고.


황학동 시장 등 레트로 물건을 파는 시장에는 얼마 주기로 가나?

일주일에 네 번은 가는 것 같다. 바쁘더라도 주말에는 무조건 나간다. 


그렇게 자주 가도 새로운 아이템이 있던가?

아니, 없다. 그래도 시장 사장님들이랑 관계를 맺어야 하기 때문에 얼굴도장 찍는 거지.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괜찮은 물건들을 빼주고,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교환도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끼리는 협력업체라고 부른다.(웃음)



이 공간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재미있지만 때론 짠한 공간. 여기 있는 물건들은 성심성의껏 수집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재고들이다. 판매되지 못한, 선택받지 못 한 것들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이 공간에서 이 물건들에 어떤 재밌는 요소들을 끼워 넣어 판매할까 고민해왔다. ‘레트로 몽상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결국 이 공간은 사람들의 수많은 고민과 스토리가 담겨 있는, 사람 냄새 나는 곳이다.



TIP. 고수가 알려주는 나만의 수집 공간 마련하기


1. 물건의 색감을 최대한 활용하기

요즘은 ‘올해의 색’까지 지정해서 알려주는 시대다. 기업, 개인 할 것 없이 그 색을 차용해 패션부터 생활용품까지 다 따라 한다. 그러나 빈티지 제품에 쓰인 색깔은 딱 그 시절의 감성을 보여준다. 그래서 물건을 진열하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 느낌을 낼 수 있다.


2. 쇼룸은 정사각형으로 탁 트인 공간을 택하라

한눈에 자신의 제품이 돋보이게 하려면 공간이 구획된 구조보다는 원룸 같은 하나의 공간이 낫다. 물론 이건 요즘 트렌드다.




ㅣ 덴 매거진 2023년 8월호
에디터 이영민(min02@mcircle.biz) 
사진 한도희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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