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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Sep 01. 2023

코리빙 하우스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나눠 쓰는 것

하진수 맹그로브 이사의 이야기


1인 가구가 늘어난다고 다인 가구에 맞춰 설계된 주택과 도시를 당장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면 주거의 개념을 바꿔보면 어떨까?


이런 시도에서 나온 것이 바로 공유 주거다. 그 대표 격으로 코리빙 하우스가 있다. 입주민이 저마다 방을 갖고 있으면서 주방, 로비, 세탁실, 취미 공간, 운동 공간 등은 공유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2~3년 1인 가구가 급증하는 트렌드를 등에 업고 상당히 빠르게 성장한 코리빙 하우스지만,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중년의 1인 가구에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그중 하나다. 그럼에도 코리빙 하우스 업체들은 자신한다. 향후 재미있는 싱글 라이프를 꿈꾸는 중년층, 자발적 1인 가구 등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다고.


코리빙 하우스 브랜드 ‘맹그로브’의 미래 사업을 이끄는 하진수 이사에게 그 근거를 물었다.


하진수. 코리빙 하우스 대표 기업 MGRV 이사, 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소속

‘코리빙’이란 말이 등장했다. 어떤 의미인가?

코리빙은 1970년 덴마크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당시 유럽은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해 있었기에 시니어 1인 가구가 꽤 많았다. 그들이 한곳에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코하우징(Cooperative Housing)’ 개념이 만들어졌다. 입주자들이 각자 개인 생활과 공동체 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협동 주거 형태를 말한다.


그러다 201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1인 가구 비중이 늘면서 영국 런던에서 ‘더 컬렉티브’라는 기업이 코리빙 하우스를 오픈했다. 코하우징을 위한 시설과 서비스를 기업이 제공하는 형태로는 처음이었다. 해당 코리빙 하우스가 반향을 일으키자 2010년 중반 런던, 베를린, 뉴욕, 도쿄 등 전 세계 대도시를 중심으로 코리빙 하우스가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집값이 비싸다는 점이다. 결국 비싼 집값에 대응하고자 코리빙 하우스가 탄생한 것이고, 지금 자리를 잡은 것이다.


셰어 하우스와 코리빙 하우스, 용어가 헷갈린다. 무슨 차이가 있나?

지향하는 바는 같다. 비용 절감과 안전상 이유로 방을 셰어하는 형태다. 하숙집, 기숙사 등도 어떻게 보면 셰어 하우스다. 그걸 기업 규모로 키운 것이 코리빙 하우스다. 셰어 하우스가 작은 집의 개념이라면 코리빙 하우스는 대형, 기업형이라는 차이다. 또한 셰어 하우스가 일반적인 형태의 집을 나눠 쓰는 개념이라면, 코리빙 하우스는 개인 공간은 독립적으로 설계되어 사생활을 철저히 보장받으면서 다양한 공용 공간을 함께 사용해 생활이 더욱 풍요로운 장점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의 코리빙 하우스는 언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나?

2010년대 후반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셰어 하우스, 즉 소규모 공동 주거 형태가 있었는데 2010년대 후반 SK, 코오롱 등 대기업에서 코리빙 하우스 사업을 시작하면서 대형화되기 시작했다. 2020년부터는 맹그로브처럼 아예 코리빙 하우스 전문 스타트업이 다수 생기면서 시장이 커졌다.


코리빙 하우스 이용자는 젊은 층이 대부분인가?

그렇다. 2030세대 비중이 약 80%로 가장 많다. 그들의 니즈는 명확하다. 등하교와 출퇴근 시간을 단축해 좀 더 편안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주거지를 정한다. 그래서 코리빙 하우스는 지하철역이나 대학교 근처에 많이 분포해 있다.


경제적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중년 1인 가구는 코리빙 하우스를 이용하지 않는 건가?

아직까지 중장년층은 코리빙 하우스를 이용하는 비중이 적다. 정확한 데이터도 없을 정도다.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하면 내 공간에서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게 사람 심리다. 다시 말해 중년 나이에는 공용 공간의 장점보다 개인 공간의 안락함을 더 중시한다. 그래서 코리빙 하우스로 유입되는 사례가 적다.


앞으로도 1인 가구 시장에서 중년의 자리는 없는 걸까?

아니다. 오히려 중장년 이상을 타깃으로 한 코리빙 시장 가능성이 더 크다고 확신한다. 고령화사회로 넘어가면서 중장년, 시니어 인구가 늘고 있는 데다 그들의 니즈도 코리빙으로 충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장년 이상은 자산을 유동화해야 하는 이슈가 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은퇴하고 줄어든 소득으로 살아가야 하는 기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보통 중산층은 집 한 채 갖고 있는 게 자산의 전부다. 그걸 갖고만 있으면 기나긴 노후를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없으니 예전에는 집을 팔고 외곽으로 이동했다. 시골로 내려가거나 귀향하는 인구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 들수록 도시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외로움이나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 웬만하면 도심 근처에 살려고 하다 보니 결국 집을 줄여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 니즈를 만족시켜 주는 대안이 코리빙 하우스다.

코리빙 하우스의 공용 도서관


중장년 이상을 위한 코리빙 하우스는 어떤 형태가 될까?

지금의 코리빙 하우스는 5평(약 16.5㎡) 정도의 작은 방을 제공한다. 2030 청년들의 주거 비용 부담을 덜어주고 6개월에서 1년, 길면 2년 정도 머물 곳을 마련해 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방 크기가 클 필요가 없다. 만약 중년을 타깃으로 한다면 5평 방 사이즈로는 어림없다. 중년쯤 되면 짐도 많고,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의 크기 또한 젊은 층보다 크다. 그래서 못해도 10~15평(약 33~49.5㎡)은 되어야 중년들이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중년은 안정감과 정주성, 즉 한곳에 오래 머물러 안정감을 느끼려고 하는 니즈가 강하다. 이를 충족해 주는 형태의 코리빙이 나와야 한다. 다행히도 코리빙 하우스의 장점 중 하나는 안정감이다.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의 구조적 특성상 기업들이 원룸이나 오피스텔은 다루지 않는다. 대부분 개인이 개인에게 월세, 전세 등을 주는 형태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가 관건이다. 좋은 집주인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간혹 전세 사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에 따르는 불안도가 굉장히 높은 구조다. 집에 하자가 발생했을 때 수리를 두고 갈등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 경우 큰돈을 냈음에도 제대로 서비스를 못 받게 된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 놓일 바에야 코리빙 하우스가 마음 편할 수 있다. 기업의 경우 평판이 중요하기 때문에 고객의 컴플레인 처리를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중년 1인 가구 중 워케이션을 목적으로 코리빙을 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딱히 중년에 한정할 수는 없지만 워케이션 수요가 코리빙 하우스에 몰리는 건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통상 집을 임대할 때 원룸은 1년, 전세는 2년을 기준으로 계약한다. 이는 한두 달 머물기를 원하는 워케이션족에게 걸림돌이 된다. 반면 코리빙 하우스는 계약 기간이 자유롭다. 맹그로브는 1개월에서 1년 내에는 원하는 기간만큼 계약할 수 있어 한 달이고 한 달 반이고 자유롭게 머물며 일할 수 있다. 즉 워케이션을 위한 니즈가 잘 맞아떨어지는 주거 형태가 코리빙 하우스인 셈이다.


최근 코리빙 하우스는 호텔형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알고 있다

호텔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기간 원하는 만큼 이용할 수 있고, 다양한 부대시설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맹그로브 신설지점, 동대문지점 같은 경우는 호텔 형태로 데일리 숙박부터 1년 이상 장기 거주도 가능하다. 여기에는 최근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중 하나인 플렉서블 리빙(Flexible Living)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플렉서블 리빙은 단기간 거주와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유연한 라이프스타일을 말한다. 하루를 살 수도 있고 한 달을 살 수도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워케이션 니즈와도 일맥상통한다. 다시 말해 코리빙 하우스를 호텔처럼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교통이 편리한 곳에 위치하고, 다양한 이웃이 모여 살지만 코워킹 라운지부터 피트니스 룸, 카페, 도서관, 영화관 등 20여 개의 다채로운 공용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코리빙 하우스의 쾌적한 방


그러고 보면 집이라는 개념이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앞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집의 개념은 지금과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인구구조, 가족구성의 변화 등을 감안하면 집의 형태나 레이아웃부터 다양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지금까지는 어느 건설회사가 짓든 브랜드를 떼고 보면 구조가 거의 비슷했다. 안방, 작은방 1, 작은방 2, 거실, 주방 등 아파트 하면 떠오르는 4인 가구 중심의 레이아웃 말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거실보다 주방이 더 클 수 있고, 안방 개념이 사라지고 모든 방이 동일한 크기일 수 있다는 말이다.


가족의 관계 설정도 바뀔 것이다. 예전처럼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TV를 보는 경우는 일상적 모습이 아니다. 지금 3~4인 가구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거실에는 아무도 나와 있지 않다. 가족 구성원이 저마다의 방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밥 먹을 때만 얼굴을 보는 건 우리네 평범한 가정의 일상이 됐다. 즉 거실로 대표되는 전통적 가족구조가 붕괴되면서 주방이 소셜 역할을 하는 메인 공간으로 새롭게 등극한 것이다. 이때 주방은 요리를 하는 부엌이기보다 모여서 밥을 먹는 식당 역할에 더욱 치중한다. 1인 가구 증가와 빠르고 다양한 배달 음식 등 식생활 혁신이 일어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향후 1인 가구 시대의 메인 공간은 주방일까?

장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밥을 먹은 뒤 결국 침실로 들어가 쉬기 때문이다. 그럼 침실이 나만의 공간, 가장 많이 머무는 공간이 된다. 이는 침실 중심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같은 트렌드는 자발적 1인 가구에 매우 중요하다. 그들 중 대다수는 가장 나다운 걸 찾기 위해 싱글 라이프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내 방을 취향대로 꾸미는 것도 그 일환이다. 나다운 건 결국 내 취향이고 벽지 컬러부터 매트리스, 가구, 조명 등 스스로 고른 것이 모두 집약된 공간인 내 방이야말로 가장 나다운 것이다.

코리빙 하우스의 공용 라운지


‘내 방’이 중심이 되면 싱글라이프는 더 재미있어질까?

그럴 수 있다. 이제 부부도 각자의 방이 필요해졌고, 부부의 관계 설정도 다시 해야 하는 시점이다. 가족구성원 여럿이 같이 살더라도 각자의 방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1인 가구는 아니지만 라이프스타일은 1인 가구처럼 사는, 새로운 형태의 싱글 라이프가 등장하는 셈이다. 이 같은 트렌드를 반영한 주거 레이아웃을 제안하기 위해 코리빙 하우스들의 고민이 막 시작됐다.


코리빙 하우스의 다양한 커뮤니티도 싱글 라이프를 한층 재미있게 하기 위한 방편일까?

요가, 독서, 각종 강의 등 다양한 커뮤니티가 있다. 이들 모임은 모두 입주민끼리 자발적으로 조직하고 운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상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줘도 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초반에는 코리빙 하우스 기업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공동의 행사나 이벤트를 연다. 곳곳에 포스터도 붙이고, 공지 사항도 만든다. 그렇게 입주민이 모이면 안면을 트고 친분을 쌓아간다. 그럼 밥도 같이 먹게 되고, 점차 점조직이 생겨난다. 그것이 코리빙 하우스의 장점이기도 하다. 원룸, 오피스텔에 살면 옆방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코리빙 하우스에서는 서로 인사하고 동호회도 같이 하는 이웃이 된다.


향후 코리빙 트렌드는 어떻게 될 것 같나?

서울시에 따르면 공유 주거 공간에 사는 인구는 현재 1만 가구 수준인데, 2030년에는 10만 가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1인 가구가 늘면서 폭발적으로 시장이 확대될 것이다. 시장이 커지면 다양한 상품이 나올 것이고, 각 세대의 니즈에 맞은 서비스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때가 되면 방만 만들어준다고 공유 주거가 아니라 다양한 테마의 상품을 제공해 입주민이 취향껏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워케이션, 커뮤니티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맹그로브의 경우 ‘느슨한 연결’에 집중해 다양한 커뮤니티를 개발해 차별화하고 있다. 집이 넓든 좁든 혼자 살 수 있는데, 외로움이나 허전함, 고립감 같은 심리적 문제는 행복한 관계 설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예전에 가족이 헛헛함을 채워준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가벼운 커뮤니티를 연결하고 쉽게 찾아 매칭할 수 있는 기술, 그러니까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앞으로 계속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ㅣ 덴 매거진 2023년 9월호

 에디터 이영민(min02@mcircle.biz) 

 사진 한도희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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