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라이온즈 팬 이수민 인터뷰
2023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지난 17일 마무리됐다. 선수와 팬 모두 144경기를 완주하며 새로운 추억을 함께 쌓았다. 시즌이 끝난 후 11월 말부터 내년 프로야구 개막 전까지는 비시즌 기간이 이어진다. ‘세상에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져도 야구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입을 모으는 야구 팬들에게 이 기간은 혹독하다.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경기를 했는데, 이제는 모든 요일이 ‘야없날(야구 없는 날)’이다. 비시즌 기념으로 세일하는 유니폼을 구입하고, 선수들의 SNS를 확인하고, 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굿즈를 만들어도 여전히 야구가 고프다.
삼성 라이온즈 팬인 이수민 씨는 올해로 벌써 열 번째 비시즌을 맞는다. 10년차 야구 팬은 비시즌을 어떻게 보낼까. ‘야구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야구밖에 없다’는 그에게 삼성 라이온즈와 야구, 그리고 비시즌을 보내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Q. 모태 삼성팬이라고 들었다. 야구를 처음 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태어날 때부터 삼성 팬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부모님께서 모두 경상북도 분이시기 때문이다. 원래는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버지를 따라서 우연히 2013년 한국시리즈를 보다가 야구에 ‘입덕’ 하게 됐다. 당시 삼성과 두산 경기에서 오승환 선수가 세이브를 하러 나왔었다. 마지막 타자를 뜬공으로 처리하는데 그보다 짜릿할 수가 없더라. 그때 피칭과 세리머니를 보고 야구에 빠져들었다. 오승환 선수 때문에 야구에 빠졌는데, 슬프게도 오승환 선수는 그 바로 다음 해 일본으로 떠났다(웃음). 어쨌든 그 뒤로 야구를 계속 챙겨 봤고, 직관도 그 때부터 가기 시작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나.
두산과의 2013년 한국시리즈 7차전 경기와 LG와 맞붙었던 2015년 8월 30일 경기, 다시 두산과 만난 2015년 한국시리즈 5차전 경기가 기억에 남는다. 앞서 말했듯 2013년 경기는 내가 야구에 재미를 붙이는 계기가 됐다. 지금도 팀이 지고 있거나, 잘 안 풀린다 싶으면 그때 한명재 캐스터의 우승 콜을 찾아 듣는다. “보고 계십니까? 들리십니까? 당신이 꿈꿔왔던 그 순간, 삼성의 3연패입니다!” 이 멘트만 들으면 다시 애정이 샘솟는다.
2015년 8월 경기는 1:9로 지고 있다가 15:9로 스코어를 뒤집으며 그야말로 드라마를 썼던 날이다. 이 경기를 보면서 ‘야구는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2015년도 한국시리즈 5차전은 13:2로 졌는데, 경기장을 나오며 팬들과 함께 엘도라도를 부르며 울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야구에 관심 없던 내가, 야구를 보면서 울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Q. 이번 시즌은 어떻게 봤나.
작년에는 13연패를 기록했는데, 올해도 시즌의 4분의 1을 최하위로 보냈다. 통합 우승도 했고, 준우승도 많이 한 팀인데 계속 하위권에 머물고 있으니 참 씁쓸했다. 오승환이 최초로 400세이브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속상한 마음이 컸다.
Q. 팀이 부진해도 자꾸만 보게 만드는 야구의 매력은 무엇인가?
마지막까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 야구는 9회 말 투 아웃에도 역전이 가능하지 않나. 그러다 보니 끝까지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다. 언제든 뒤집고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이 야구의 매력이다.
Q. 비시즌에는 주로 무엇을 하나?
야구 시즌이 막 끝난 직후에는 정말 허전하다. 여섯 시 반이면 경기를 봐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7개월 동안 살아왔는데··· 이제 더 이상 야구가 없다니. 가을 야구를 찾아보긴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 팀이 진출했을 때만큼의 희열은 없다. 그래서 그런지 가을 야구 진출을 하지 못한 해에는 비시즌이 유독 더 길게 느껴진다.
우선 비시즌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골든 글러브 수상자를 예측해 보는 거다. 우리 팀에 골든글러브 후보에 들 만한 선수가 있는지 성적을 한 번 쭉 훑어본다. 성적도 살펴볼 겸, 좋았던 경기들은 한 번 더 돌려보기도 한다. 이번 시즌 결과가 너무 아쉬우면 2013년 우승 콜을 한 번 더 찾아 듣는다(웃음).
시즌이 끝나면 교육리그에 갈 선수 명단이 발표된다. 유망주들이 경험을 쌓고, 기량이 향상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떤 선수들이 새로운 시즌에 비상할 수 있을지, 교육 리그 소식도 계속해서 찾아본다. 또, 이 때쯤 팬 카페나 SNS에는 어떤 선수가 팀을 옮기고, 어떤 구단 감독이 바뀔지 예측하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나도 선수들 계약 소식이나 감독, 코치, 단장 교체 소식이 있는지 계속 찾아본다. 매년 ‘이 선수는 꼭 같이 갔으면 좋겠는데’, ‘제발 붙잡았으면’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소식을 확인하곤 한다.
유튜브로는 구자욱 모음, 2023년 호수비 모음, 3루타 모음 같은 야구 영상 모음을 본다. LG로 이적하기 전 박해민의 삼성 활약상도 많이 찾아본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운영하는 구단 유튜브도 가끔 들어가 보는 편이다. 미국 야구를 보지는 않지만 오타니 쇼헤이 영상만큼은 종종 본다. 영상을 보면서 ‘오타니가 삼성으로 오면 어떨까?’ 같은 상상을 한다. 그런데 나만 이런 상상을 한 건 아니었나 보다. 각 구단 팬들이 오타니가 자기 구단으로 입단하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적어 둔 유머 글이 있었다. 삼성 라이온즈 입단 시에는 ‘선수 생활 종료 시 반납해야 하는 삼성 래미안 아파트’, ‘에버랜드 입장료 할인’, ‘삼성 전자제품 할인’ 등을 제공한다고 적어 뒀던데, 정말 재밌더라. 이런 유머 글도 많이 찾아본다.
Q. 다른 스포츠를 즐기기도 하나?
야구 팬들 중에선 야구와 배구 또는 야구와 농구를 콤보로 즐기는 ‘공놀이 덕후’들이 많다. 배구나 농구 개막이 야구 비시즌과 맞물려 있기도 하고, 야구와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나는 야구만 보는 편이지만, 다른 야구 팬들을 보면 배구 경기장이나 농구 경기장을 확실히 많이 간다. SNS에는 배구 직관 인증샷이나 농구 코트 사진이 종종 올라온다.
Q. 비시즌에 볼 만한 야구 콘텐츠를 추천해 달라.
일본 애니메이션인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추천하고 싶다. 고등학교 야구팀 이야기인데, 일본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인 ‘고시엔’을 배경으로 한다. 고시엔 정상 자리를 놓고 격돌하는 소년들의 서사를 낭만적으로 그려내 주인공은 절대 지지 않는다는 클리셰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팀원들과 함께 고난과 역경을 넘어 결국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하는, 짜릿하면서도 감동적인 스토리를 좋아한다면 틀림없이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디즈니플러스의 <풀카운트>는 야구 팬들이 비시즌에 많이 찾아보는 다큐멘터리다. 정상에 서기 위한 열 개 구단의 치열한 대결,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린 선수들의 땀과 눈물을 조명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에피소드들이 가득 들어 있다.
Q. 내년에는 어떤 시즌을 보내고 싶나?
단장이 바뀌면서 팀에 여러가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그 변화들이 부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길 바란다. 내년 4월에는 삼성에게 승리의 꽃길이 열려, 꼭 가을 야구 점퍼를 꺼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ㅣ 덴 매거진 Online 2023년
에디터 김보미(jany6993@mcircle.bi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