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mains of the Day
새로운 질서가 시작될 때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미련을 가지지 말고 포기해야 한다. 인간은 후회라는 감정과 추억을 가지기 때문에 때론 그러지 못한다.
남아있는 나날이라는 소설은 내가 가장 힘든 암흑기에서 읽은 소설이다. 빛도 없고 오직 어둠만 가득할 때 읽었던 소설이다. 한번 지나간 인연이 다시 봉합되어 이어진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쉽지 않은 것이지만 때론 그런 인연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노스텔지어처럼 포기하기도 한다. 늦었지만 다시 인연을 다시 만들려고 한다.
주인공 제임스 스티븐스는 영국의 명망있는 귀족이자 외교계의 실력자인 달링턴 경의 저택에서 일하는 집사장이었다.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전운이 감돌 때 샐리 켄튼이라는 여인이 하녀장으로 합류한다. 켄튼은 스티븐스의 엄격한 업무 스타일에도 잘 적응했다. 그녀는 스티븐스에게도 개인적인 호의를 표하지만, 스티븐스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고 사무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애쓴다.
1930년대에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등장하면서, 영국과 독일 사이에 긴장감이 시대의 혼돈이 된다. 달링턴 경은 나름 개인적인 선의에 입각하여 양국간의 화친을 위해 애썼고, 자신의 저택을 비공식 외교회담 장소로 제공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차츰 달링턴 경은 나치의 주장에 빠지며, 전쟁을 회피하고자하는 유화론자로 변질되고 만다.
몰락은 어느 순간이던 다가온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달링턴은 영국에서 매국노로 지탄을 받아 사교계와 정치계에서 퇴출된다. 달링턴은 시대가 외면한 상황을 어찌해볼 수 없이 쓸쓸히 만년을 보내다 숨을 거둔다.
한편 켄튼은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스티븐스에게 지쳐 그를 떠난다. 켄트은 다른 남자와 교제하다 결혼을 선언하며 하녀장을 그만둔다. 사실 스티븐스도 켄튼에 대한 연모의 정을 남몰래 간직했지만, 끝내 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집사장이라는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달링턴 경의 저택은 미국인 부호인 패러데이에게 팔린다. 저택의 새 주인이 된 패러데이는 저택의 관리인을 최소화하고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그리고 스티븐스에게 휴가를 권유하고, 스티븐스는 켄튼을 만나기 위해 떠난다. 스티븐스은 20년만에 재회한 켄튼에게 다시 하녀장으로 돌아올 것을 권유하지만, 켄튼은 자신의 딸이 임신을 했고, 곧 아이를 낳을 예정이라 가정에 머물고 싶다고 대답하며 사양한다.
두 사람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관계로 돌아갈 수 없음을 확인한 채, 마지막으로 작별의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시대에 뒤떨어진 늙은 집사는 새로운 미국 부호 주인을 잘 모시기 위해 시대를 쫓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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