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nnis Kim Feb 10. 2020

총,균,쇠 - 유럽 중심의 춘추필법

제국주의 이후, 유럽 문명의 식민지 착취는 지금도 계속된다. 

총,균,쇠 

무기 병균 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저.


총,균,쇠는 압도적인 두께와 논거를 증명하기 위한 다양한 예시를 자랑한다. 그래서 책 이름은 들어봤지만, 다 읽어본 사람이 적은 책에 속한다. 그래서 중고서점에서도 책이 앞 부분만 제외하고 대부분 깨끗한 상태로 중고 거래가 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전문가의 저작을 소위 돌려까기 위해서는 그 정도 지식과 반론할 역량이 필요하다.


물론 나는 그 정도 역량이 없다.


하지만, 독자로써 비판적인 감상문 정도는 가능하다고 본다.


총,균,쇠는 인간이라도 문명의 발달 수준이 차이가 난 이유는 각 지역이 가진 지리적, 환경적인 특징이 누적되면 문명 발달의 차이가 가속된다고 말한다. 지리적인 환경 차이 때문에 식량의 생산량에 차이가 생기면서 생존이나 종족번식 등 각 지역의 전반적인 문명발달의 수준이 벌어진다는 논거를 가진다. 그래서 인종별 지능(선천적인 능력)의 차이가 아니다라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주된 내용이며 왜 유럽이 세상을 지배했는지를 지리, 환경적 특징에서 설명하고 있다.


18세기 산업 혁명은 서구가 다른 문명 지역을 앞도하고 제국주의로 나가는 순간이 되었고 지금도 서구 문명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의 논거는 현대 고고학과 연구 결과에 의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첫째. 남미 역시 문자 체계가 있었다.


최근 연구 결과는 잉카를 비롯한 남미에서 매듭 문자 외에 다양한 문자 체계가 있었다는 증거가 발견되고 있다. 남미 문명이 배를 만들어 유럽으로 탐험하지 못했던 것이 문자와 중앙집권제의 한계성이라고 지적한 것은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다. 


스페인이 앞서 멸망 시켰던 아즈텍 문명은 그들의 문자 기록과 역사를 철저히 불태웠다. 


남미의 상황이 목숨을 걸고 탐험을 통해 무역과 부를 축적해야할 필요성까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둘째. 농업 시작 지점은 다양했다.


농업은 다양한 지역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이제는 고고학적으로 사실로 나타나고 있다. 인류의 정착지에서 다양한 농업적 시도가 있었고 지역에 맞는 곡물을 키우기 위한 노력과 품종 계량이 이루어졌다.


일례로 안데스 산맥이 원산지인 감자의 경우 품종이 200여개가 넘고, 스페인인들은 단지 2~3개의 품종만 유럽으로 가지고 왔을 뿐이다. 나는 미식이 문명의 한 지표라고 생각한다. 유럽의 경우 다양한 치즈가 발전한 것처럼 안데스 감자 품종의 다양성은 그 만큼 남미 문명이 역동적이였고 다양한 발전 과정에 있었다는 것을 간접 증명한다.  


셋째, 밀과 쌀의 단백질 차이는 크지 않다.


밀과 쌀의 단백질 함유랑이나 보조적 식품을 식품을 통한 단백질 섭취는 비슷했다. 영양 불균형이 되면 많이 먹게 된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점점 다양한 먹거리를 찾으면서 밥공기가 작아지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주식인 쌀에서만 영양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음식에서 영양을 흡수하기 때문에 밥의 비중이 작아진 것이다. 이런 경향은 유럽 역시 다르지 않다. 


유럽 역시 산업혁명 이전까지 편식에 논랄정도로 많이 먹었다고 한다. 주식이 한정적인 지역에서는 영양 불균형으로 인해 대식을 했던 것이다. 선교사들이 구한말 조선인들의 대식을 놀라하면서 기록했던 것은 근본적으로 영양 불균형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넷째, 유럽과 아메리카는 그냥 가까웠다.


유럽과 신대륙 사이는 가까웠다. 지리적 발견은 시간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바이킹도 신대륙인 아메리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식민지 구축과 착취 비용과 효율이 좋았다. 이런 신대륙의 자원 착취가 부의 불균형을 만들고 유럽의 풍요와 혁신을 이끌기 충분한 벤처 자본에 투입되었던 것이다.


다섯째, 18세기보다 고대가 더 풍족했을 수 있다.


고대 로마는 생각보다 소득 수준과 생활 수준이 높았다. 상하수도가 완비된 도시를 만들었고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인 아피아 가도와 같은 도로를 제국 전역에 건설했다. 알렉산더가 정복했던 페르시아의 경우 그 동방의 부와 찬란한 문명에 그리스인들이 압도 당했던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중국의 당나라 시대는 중국이 가장 부유햇던 시대로 손꼽힌다. 양쯔강에서 이모작이 가능할정도로 온난하여 농업 생산량이 엄청났고 개방적인 문화를 통해 활발한 해외 무역으로 세계적인 부유한 국가였다.


문명은 늘 시간 순서대로 발전하지 않는다. 

그림: 얼어붙은 템즈강


그럼, 왜 유럽은 세계를 지배했을까?


15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지구는 소빙하기였다. 위의 그림처럼 영국의 템즈강이 두텁게 열어붙을 정도로 유럽은 추웠다. 조선은 1670년과 61년 경신 대기근이라는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최악의 시기를 보냈을 정도로 지구의 날씨는 좋지 않았다. 


난방을 위해 나무 사용량이 늘어 도시 주변은 민둥산이 되었다. 유럽은 거대한 산림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지금도 검은숲이라 불리는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가 남아 있지만, 중세 유럽은 더 광대한 산림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소빙하기 난방을 위한 목재 소비가 급증했고 영국의 산림 역시 급격히 소모되었다. 그리고 한계를 드러냈다. 하지만 영국은 석탄이 풍부했다. 그 중에 토탄(feat)가 지천으로 있었다. 토탄은 목재 대신 난방을 하기 위한 좋은 열공급원이었다. 하지만 점점 토탄이 고갈되고 땅 밑의 석탄을 채굴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탄광의 문제는 바로 지하수

지하수를 퍼올리기 위해 말이 끄는 펌프를 이용했지만, 말은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증기기관이다. 1712년에 영국 기술자 토머스 뉴커먼이 피스톤의 왕복운동을 통해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증기기관을 발명했다. 덕분에 영국의 석탄 생산량은 2배 이상 증가되었다. 뉴커먼의 증기기관은 공전의 히트를 쳤고 많은 탄광에서는 증기기관을 사용하게 되었다. 


뉴커먼의 증기기관의 성공은 많은 발명가들에게 부에 대한 열망을 키웠다. 석탄으로 돈을 번 귀족 자본가들은 젊고 야망있는 청년들이 제안한 증기기관과 각종 기계에 투자를 했다. 한마디로 석탄 산업으로 늘어난 부를 통해 요즘 소위 말하는 와디즈, 킥스타터 닷컴과 같은 모험적인 스타트업에 투자했던 것이다. 


모험적인 투자 자본이 증가한 결과 1769년에는 제임스 와트가 뉴커먼의 증기기관에서 냉각기를 분리시켜 효율적으로 개량했다. 탄광에서의 석탄 생산량은 연간 1억 5,000만 톤 이상으로 증가했고 이는 철강 산업과 방직 산업이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템즈강을 얼릴 정도의 소빙하기가 영국의 풍부한 석탄 자연을 만나 산업 혁명을 이끈 것이다. 


남아도는 자원을 팔기 위한 창구로 유럽은 식민지를 개척하고 인종주의와 종교를 타지에 이식했다. 그 결과 유럽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식민지를 인력, 자원까지 잔혹하게 착취할 수 있었다. 지금 아프리카의 내전과 혼돈 역시 제국주의 유럽이 만들어 놓은 잔재이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 지배가 끝난 이후, 한국과 일본의 식민 종속 무역 역조로 남아있는 것을 최근 NO Japan 운동을 통해 재조명 받았다. G20 국가이며, 무역으로 12위 국가인 한국조차 제국주의 시절 구축한 가마우지 산업을 탈피 못할정도로 종속의 저주는 깊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결국 문명은 유럽처럼 진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문명 발달의 다양한 요소가 서양과 다른 지역을 갈랐다고 주장한다. 그의 일부 주장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서양 문명이 문화와 문명의 정점이고 지향점이라는 것은 유럽을 주어로 놓고 그에 맞는 주장과 근거를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16세기 세균, 질병으로 인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90%가 떼죽음을 한 것은 스페인 정복군이 갖고 온 천연두 등 새로운 병균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하지만, 인구 증가로 인해 치명적 병균을 보유한 쥐들의 서식지를 침입한 원주민들에게 살인적 전염병이 돌았다는 기록을 찾았다. 


문명은 다양한 우연성을 가진다. 

소빙하기의 영국은 석탄을 효율적으로 채굴하기 위해 증기기관을 발명했고 그로 인해 다양한 산업을 일으켜 산업혁명의 선봉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풍요로웠던 프랑스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소빙하기지만 유럽의 곡창지대인 프랑스의 농업 생산력이 달랐기 때문이라 보인다. 


유럽은 아메리카를 첫 식민지로 삼아 잉여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고 제품을 팔 독점적인 시장을 영구적으로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아프리카 국가들은 독립했지만 이런 독점적인 먹이 사슬은 잘 작동하고 있다.


문명의 이런 우연성은 고대 로마에서도 이집트라는 식민지로 잘 작동되고 문명이 꽃피웠고 페르시아 역시 주변국가 정복으로 식민 산업 구조와 문명을 키울 수 있었다. 


로마 문명의 절정기에서 상하수도를 비롯해 빵을 나눠주는 공공복지를 17세기 유럽인들이 본다면 미래의 어느 선진 문명을 보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시험을 통해 신분과 상관 없이 능력 있는 사람이 관직에 나가는 중국과 동양의 과거제도를 유럽의 지식인들은 18세기까지 부러워했다. 


산업 혁명으로 기세 등등했던 유럽 문명의 절정기에서조차도 중국의 과거 제도는 선진적인 인재 발탁 제도였던 것이다.


산업 혁명은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되어 세계 근대화의 촉매가 되었다. 그러나 그 변화의 속도는 과장된 점이 있다. 유럽 대륙에서조차 그 충격은 1850년까지는 몇몇 지역에 국한돼 있었다. 거대한 파도가 밀어닥친 것은 1875년 이후였다. 유럽 이외 지역의 산업화는 미국을 제외하면 훨씬 늦게 일어났다. 1895년 독일에서조차 인구의 3분의 1이 아직도 농부였으며, 동유럽과 남유럽의 거의 대부분 지역은 실질적으로 산업과 무관한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위키피디아 산업혁명 역사적 오해 중.


가만히 생각해보면 1,2차 세계 대전은 고상한 사상의 충돌이 아니라 유럽 외 해외 식민지를 유럽 제국에서 누가 더 나눠 가질 것인가하는 갈등이 충돌한 전쟁이었다.


유럽 문명은 아메리카의 거대한 식민지, 아프리카의 자원을 통해 인류의 고혈을 빨아 먹은 착취 문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로마, 페르시아, 중국 등 찬란했던 문명을 살펴보면 배후 식민지의 착취를 통해 문명이 성장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제임스 M 블로트의 ‘역사학의 함정, 유럽 중심주의를 비판한다’를 살펴보면 다이아몬드 교수와 대비되는 주장을 비교 통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족.


다이아몬드 교수의 한국판에 붙은 일본인의 유래 관련 글은 사족이고 본문의 논거와 다소 충돌된다. 그리고 최근 주식, 경제 전문가가 총,균,쇠를 투자의 길잡이로 소개하는데 이는 역사학자 출신이 과도한 뽕끼를 담은 것 밖에 안된다. 주식, 경제 전문가는 입으로 먹고 살지 말고 그냥 투자 수익율을 증명할 포트를 까면 된다. 



더 읽을 책


지상의 모든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러시아 종자 은행 창시자의 이야기)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401750



기타 자료

남미 토착 질병 설: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182786.html


유럽 중심의 역사는 틀렸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3&aid=0002256592


총,균,쇠 비판 블로그: https://m.blog.naver.com/epalflcl/220179265176


위키피디아 산업혁명: https://ko.wikipedia.org/wiki/%EC%82%B0%EC%97%85%ED%98%81%EB%AA%85



작가의 이전글 일취월장, 신영준 큐레이션인가 표절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