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지 않는 척했다. 그녀는 많은 남자를 만났다. 그들에게서 필요한 것을 얻었고, 필요 없어진 순간 떠났다. 그녀의 미소와 목소리는 매혹적이었고, 그 누구도 그녀를 거절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구미호의 진짜 비밀은 그저 자신의 간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누군가의 간과 피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구미호의 필요를 채워주던 사람이었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주었다. 간이든, 피든, 돈이든, 시간이든. 그는 자신을 깎아내리며 그녀를 채웠다. 그녀는 그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단지 필요였다.
구미호는 어느 날 진짜 사랑을 만났다고 믿었다. 그는 그녀에게 간도, 피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옆에 있고 싶다고 했다. 그는 그녀에게 자유를 주었다. 그녀는 그 자유가 자신이 늘 원하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자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잊고 있었다. 자신을 위해 간과 피를 내주던 그 남자를. 그는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진짜 모습도, 그녀가 자유라고 부르던 새 남자도. 그는 그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의 간절함을 채워주고,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구미호가 새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흩어져 그의 가슴을 찔렀다. 그 순간 그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이 깎아내린 간과 피로 그녀를 채운 시간들은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는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탓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리고 긴 밤을 지나 그는 결심했다.
그녀가 떠난 후, 그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사랑했던 구미호였다. 그는 그녀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너를 사랑했으니까.”
그는 떠났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구미호는 그가 간 자리에서 그의 마지막 흔적을 보았다. 작은 병에 담긴 피와 간이었다. 그녀는 그가 무엇을 했는지 알았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그녀에게 남겼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사랑이었다.
구미호는 울지 않았다. 그녀는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은 차가웠고, 그녀의 심장은 그를 위한 공간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 어딘가에서, 그녀는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받았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늦은 사랑이었다.
그날 이후, 구미호는 그의 간과 피를 쓰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곁에 두고, 그를 떠올렸다. 그는 그녀의 모든 것을 주었지만, 그녀는 그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었다. 그것이 구미호의 저주였다.
구미호는 사랑을 믿지 않았지만, 그는 믿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대가로 그녀의 삶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살아남았지만, 그녀의 내면은 죽었다. 그것이 구미호의 비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