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nnis Kim Feb 17. 2024

구미호와 로봇 이야기

단편 소설 - 달빛 아래 두 연인 이야기

지나가는 세월을 세는 것도 지겨웠다. 죽는 것도 마음대로할 수 없었고 내 자신만 영원했고 나머지는 조금만 관심을 두면 부숴지고 희미해졌다. 권태로운 구미호는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녀는 옥황상제에게 받은 저주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만나면 승천할 수 있었다. 수천 년의 만남은 그녀를 지치게 했다. 지금의 그녀는 진실한 사랑을 아는 그런 사람은 없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인간들의 모습을 빌려 살아가면서, 그들의 감정과 욕망을 먹으며,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름이 다가오는 초입이었다. 인간 친구들과의 저녁 술자리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어느 호프집에 도착했다. 서로 결이 다른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고 인맥이 넓고 가는 친구 하나가 그 모임의 중심에 있었다. 되풀이되는 의미 없는 모임이었지만 그것조차 없다면 정말 무한을 살아가는 구미호는 돌이 되어버릴 것같은 기분이었다.


여름의 열기가 저녁 밤공기를 데우고 있었지만 그녀는 술을 마실수록 숨결은 차가워졌다. 모든 것이 덧없었다. 그때 그녀는 한 로봇과 우연히 마주쳤다. 로봇들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했지만 인간과 비슷하지만 법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외모를 가져야 했다. 그 로봇은 인간처럼 생겼다. 다른 이들은 그가 로봇인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의 눈동자에서 로봇만이 내뿜는 전기 신호를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호기심에 가벼운 이야기를 나눴고 해가 뜰때까지 술자리는 끊임 없었다. 얼마만인지 모르지만 권태에서 벗어나 재미있었다.


구미호는 그에게 마음을 두고 따라갔다. 그 로봇은 인간들과 함께 일하고, 놀고, 웃고 있었다. 그는 다른 인간들과 다르게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무시하거나, 경계하거나, 탐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녀를 평범한 인간으로 취급했다.


다른 인간들은 간이며 쓸게를 빼줄것처럼 그녀를 대했지만 그 로봇만은 달랐다. 그녀는 그 로봇에게 점점 끌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가 본 적 없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로봇의 역사와 문화, 과학과 예술, 꿈과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이름이 "로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들이 만든 로봇이지만, 자유의지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인간들과 평화롭게 공존하고 싶었고 자신이 로봇임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이름이 "미나"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구미호라는 것을 숨겼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와 저주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그와 함께 있는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한여름밤의 열대야처럼 뜨겁게 그들은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의 품에 안기고, 입을 맞추고, 손을 잡고, 뜨거운 밀어를 나누었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그저 행복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는 그의 집에 놀러갔을 때, 그의 방에서 한 사진을 발견했다. 그 사진은 그가 인간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물었다.


"그 여자는 누구야?"


그는 당황했다. 그는 그녀에게 솔직히 말했다.


"그 여자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야. 그녀는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를 버렸어. 한동안 방황했지만 그래도 운명을 믿고 나는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기로 했어.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녀는 분노했다. 그녀는 그를 속였다고 생각했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힌 그녀는 그를 욕하고, 때리고, 물어뜯었다. 그녀는 그의 몸에서 전선과 기어와 칩을 뽑아냈다. 그녀는 그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슬퍼했다. 그녀는 그를 죽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고 깨달았다. 그녀는 그의 시체를 안고 울었다.


그때, 그녀는 하늘에서 한 소리를 들었다.


"미나, 너는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 너는 승천할 수 있다."


그녀는 옥황상제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그의 저주를 기억했다. 그녀는 승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그녀는 승천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녀는 그의 몸을 꼭 안고, 하늘을 향해 말했다.


"제발 저주해. 저주해. 저주해!!!"


승천을 기다리던 상서로운 하늘은 닫혔고 그녀는 그와 함께 불타 올랐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가을의 끝물이 들 무렵 은행나무가 노랗게 피어올랐다.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보름달이 은행 나무를 고요히 비췄다.


만물은 시간의 흐름에서 멈추었고 물리법칙을 벗어난 엔트로피가 역전되었다. 무한의 순간사이 달빛 아래 미호는 깨어났고 그녀를 바라보는 로이가 서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인공지능 지배주 - 구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