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데믹 시대 미래를 예지 못한 병행수입 업체의 몰락
발란의 파산은 단순한 경영 실패를 넘어, 병행수입 모델의 고질적 한계와 패션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드러낸 사건입니다. 이 칼럼에서는 발란의 위기가 특정 회사의 문제가 아닌, 해당 비즈니스 모델 전체에 내재된 위험을 증명하는 사례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발란의 위기는 2025년 3월, 입점 판매자들에게 판매 대금 약 130억 원을 지급하지 못하는 미정산 사태로 본격화되었습니다. 이는 회사가 기업회생절차(워크아웃)에 돌입했음을 의미하는 확실한 신호였습니다.
발란의 재정 악화 징후
최근 몇 년간 발란의 재정 상태는 지속적으로 악화되었습니다. 2022년 890억 원이던 매출은 2024년 278억 원으로 급감했으며, 같은 기간 예수금 대비 매출 비율은 약 70%까지 치솟아 회사가 판매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을 유동자금으로 전용하고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발란의 사례는 병행수입 기반 명품 커머스가 가진 근본적인 취약점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1. 신뢰성 부재와 정품 논란
근본적 신뢰도 문제: 병행수입품은 위조품은 아니지만, 공식 유통망을 거치지 않아 정품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어려움. 명품 소비에서 '정품 보장'은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인데, 이에 대한 의구심이 지속적으로 비즈니스 발목을 잡았습니다.
애프터서비스 한계: 공식 수입품과 달리 A/S 및 품질 보증이 제한적이어서 고가 명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주요 우려 사항이 되었습니다.
2. 높은 반품률과 재판매 비용
한국 소비자의 높은 반품률: 한국 온라인 쇼핑 특성상 반품률이 매우 높은 편이며, 이는 명품 판매업체에 치명적인 비용 요소로 작용합니다.
재판매 가치 하락: 한번 포장이 뜯기거나 짧은 기간이라도 사용된 명품은 재판매 가치가 현저히 떨어집니다. 특히 '2주 동안 옷을 입고 반품하는 행태'는 상품 가치를 급락시키는 주요 원인입니다.
이중 손실 구조: 판매 시 발생하는 물류비용과 반품 시 발생하는 가치 하락이 겹치며 팔면 팔수록 적자가 누적되는 악순환이 발생했습니다.
3. 대형 플랫폼과의 비대칭 경쟁
대규모 자본력의 압도적 우위: 쿠팡, 네이버, SSG닷컴 등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막대한 마케팅 예산을 바탕으로 명품 카테고리를 빠르게 확장하며 시장을 잠식했습니다.
공식 유통망 확보: 대형 플랫폼들은 브랜드 본사와의 공식 유통 계약을 통해 정품에 대한 신뢰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했습니다. 예를 들어, 롯데온은 '럭셔리쇼룸'을, SSG닷컴과 11번가는 명품 브랜드관을 개설하며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광고비 효율성 저하: 대형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발란과 같은 전문 플랫폼은 같은 금액의 광고비를 유입해도 효과가 점차 감소하는 악순환에 빠졌습니다. 이는 곧ba 적자 누적로 이어졌습니다.
발란의 몰락에는 비즈니스 모델의 문제뿐만 아니라 소비 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MZ세대의 명품 소비 패러다임 전환
인식 변화: MZ세대에게 명품은 단순한 '사치품'이 아닌 '하이엔드 패션문화'이자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중고 명품 시장 급성장: MZ세대는 신제품보다 중고 명품 시장에 활발히 참여하며, 이는 신품 병행수입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 세계 중고 명품 시장은 2025년 1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새로운 명품 브랜드 부상: MZ세대는 기존의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고 로고를 과시하지 않는 '스텔스 럭셔리' 트렌드를 선호합니다. 아미, 메종 키츠네, 꼼데가르송 등 '신명품' 브랜드가 각광받으며 기존 명품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포스트 팬데믹 시장 환경 변화
팬데믹 특수 종식: 코로나19 시기 명품 소비는 각종 지원금과 비대면 쇼핑 수요로 호황을 누렸습니다. 발란도 이 시기 누적 투자 885억 원을 유치하며 기업가치 3,200억 원으로 평가받은 적이 있습니다.
엔데믹기 수요 위축: 경제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명품 수요가 줄어들며 발란의 월간 카드 결제액은 500억 원대에서 200억 원 대로 절반 이상 감소했습니다.
발란의 사례는 병행수입 모델만으로는 한국의 명품 이커머스 시장에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구축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전환 요구합니다.
신뢰성 구축: 공식 유통망 확보 또는 투명한 정품 인증 프로세스를 통한 소비자 신뢰 획득
차별화된 가치 제안: 중고 시장, 리셀, 조각투자 등 MZ세대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에 부응하는 비즈니스 모델 개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 다각화: 단일 카테고리 의존도를 낮추고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
발란의 파산은 한 기업의 실패를 넘어, 변화하는 소비자와 시장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비즈니스 모델의 종말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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