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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함 Jul 29. 2021

관계가 있는 도시, 자연을 잇는 시장

[INTERVIEW] '농부시장 마르쉐@' 이보은 상임이사


명동은 가장 번화한 도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익명의 관계가 뿌리내린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고팔기의 행위 속에 서로를 배려한다는 것은 떠올리기 힘들다. 그런 명동에 매달 하루, 따뜻한 관계 맺기의 현장이 열리고 있다. 올해로 9년째, 마르쉐는 성수, 마포, 명동 등 다양한 도시 지역에서, 기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웠던 도시농부와 소규모 귀농인들을 사람들과 연결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대화하고 교감한다. 자연에 해를 가하거나 속임수를 쓰지 않은 농부의 작물을 만져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들이 구매하는 것은 잘 진열된 상품이 아닌, 농부들이 흘린 땀의 결실이다. 손에 들린 우둘투둘한 채소를 바라보며 농부와 그가 마주한 자연을 생각한다. 나아가 농부와 자연의 지속 가능성에 기여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음식을 만든다. 


마르쉐가 시장을 통해 엮어가는 것들은 농작물과 음식에 대한 생각을 넘어 우리를 둘러싼 도시의 익명성을 다시 사유하게 한다. 마르쉐 이보은 상임이사는 단골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작물을 심는다는 어느 농부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의 헤리티지가 바로 농부들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구매를 통해 마일리지나 포인트가 아닌, 관계와 앎을 쌓아가고 있었다. 명동을 시장에 빗댄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보은 상임이사를 통해 관계와 앎의 연결망을 만들어내는 마르쉐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농(農)을 주제로 일하고 있는 이보은이라고 합니다.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로 활동하던 2011년, 문래동 철공소 골목 옥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농사로 연결하는 ‘문래도시텃밭’을 시작했어요. 2012년부터 도시농부를 비롯해 기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웠던 농부들을 소비자들과 이어주는 마르쉐 시장을 해오고 있습니다. 



Q. 도시텃밭과 마르쉐, 모두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르쉐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마르쉐는 우리 삶과 농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어요. 사람들이 일에 쏟아붓는 창의성과 에너지가 자신의 삶으로 환원되고 있는지, 수많은 자본이 투입되는 농업 분야에서 농부들의 삶, 그들이 마주하는 자연이 과연 더 나아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거든요. 


그런 문제의식 위에서 마르쉐는 자신의 삶과 자연에서의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는 농부들을 소개하고 있어요. 이런 분들을 ‘지구 농부’라 부르는데요. 생계를 위해 농사를 짓지만 그것이 단지 개인의 먹고사는 일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탄소격리를 통해 흙을 살리고 지구를 보살피는 일로 이어지게 하는 사람들이죠. 이들은 다양한 작물을 최소경운과 토양피복, 돌려짓기, 사이짓기 등을 통해 땅의 미생물생태계를 복원하고 자연생태계를 훼손하지 않는 방법으로 농사를 지어요. 몸도 고되고, 균일한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해내기 힘든 구조죠. 마르쉐는 이렇게 작은 규모의 농부들이 소비자, 요리사와 소통하며 의미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사진 제공 : 농부시장 마르쉐)



Q. 마르쉐에는 농부, 요리사, 공예가 등, 다양한 층위의 출점자들이 있는데요. 이들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우리의 핵심이자 유일한 기준은 ‘대화’예요. 출점을 원하는 분들이 대화에 열려 있는지, 그런 의지가 있는지를 봐요. 그리고 출점 신청서에 자신이 누군지, 어떤 작업물을 판매하고 싶고 어떻게 생산하고 있는지를 써 주시라고 부탁드려요. 정성스레 기른 작물에는 그만큼의 이야기가 있을 테니까요. 출점이 결정되면 파일럿 출점을 하게 되는데, 몇 번 시장에 참여해보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쌓아 나가고 있습니다. 



Q. 마르쉐는 성수, 마포, 명동 등 서울 여러 지역에서 열리고 있는데요. 서울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서 장을 열 계획도 있으신가요? 


마르쉐가 마르쉐만의 시장을 만들 듯, 지역에는 지역의 시장이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름도 형식도 그곳에 맞춰 만들어지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또 다른 무언가여야 하고, 그렇게 다양할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하셨어요. 농사짓기도 힘든 농부들을 왜 서울까지 모시고 가서 그런 걸 해야 하냐고요. 지역에 로컬푸드 직매장이 처음 시작되고 농부들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을 때였어요. 하지만 우리의 의도는 그런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이런 시장도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거든요. 도시농부들, 기존 시장에 진입할 수 없는 소규모 귀농인, 농사를 시작하는 이들이 진입할 수 있는 곳은 없었으니까요. 그 후 마르쉐가 성과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전국에서 이런 성격의 시장이 만들어졌어요. 처음에는 자신들의 동네에 와서 해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죠. 그럴 때면 각자의 지역에서 자신들에 맞는 시장을 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시장의 임팩트를 수치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사람들이 시장에 모이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 변화를 만들어내는데 기여를 했다고 스스로 생각해요. 



(사진 제공 : 농부시장 마르쉐)



Q. 시장이라는 시스템은 기존에도 있었지만, 마르쉐는 특히 차별되는 것 같은데요.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오프라인 공간의 물성이 주목받는 요즘 같은 시대에 사람들이 마르쉐, 그리고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정답을 이야기하자면, 경험과 취향이 중요해지는 시대니까요.(웃음) 하지만 저는 그것보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작물의 산지와 재배방식을 알고, 농부의 선한 눈빛을 생각하면서 먹는 음식은 피가 되고 살이 되지 않을까요? 가격이나 농작물에 대한 이야기에 진심으로 수긍하면서, 그 농부의 삶에 기여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기쁜 마음으로 먹을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사람들은 그런 행복을 추구하지 않을까요? 


코로나 시대에 시장을 열면서 사람들이 대화와 만남, 그리고 이런 식의 연결됨을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이렇게 연결된 관계는 담백하고 깔끔한, 그야말로 ‘좋은 관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소비자는 농부의 삶을 책임져주고, 농부는 소비자에게 맛있는 재료를 제공하니까요. 서로가 열심히 일해서 번 것을 교환하는, 더없이 군더더기 없는 관계죠.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이런 데서 나오는 것 같아요. 요리사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농부에게 특정한 작물을 재배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소비자들은 마르쉐에서 구매한 작물의 씨앗을 농부에게 돌려주러 오기도 해요. 반대로 어떤 농부님은 작물을 심을 때 그걸 매번 사 가는 손님들 얼굴이 떠오른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서 굳이 심으려 하지 않던 것도 그들을 떠올리며 심는 거죠. 



Q. 말씀하신 것처럼, 마르쉐가 사람들에게 주는 기쁨은 관계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물건을 사는 행위가 단순히 소비로 끝나는 게 아니라 판매자, 그리고 지구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 같아요. 작년 12월에는 약 5주간 페이지 명동에서 ‘마르쉐 라운지’라는 상설 시장을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상설 시장을 연 것은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팬데믹으로 안정적인 시장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소비자들을 연결하는 방식이 제한됐어요. 모두가 온라인으로 넘어가는 때, 마르쉐도 온라인에 진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내부 의견도 있었죠.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할 수 있는, 보다 유연한 연결 방식을 실험해보고 싶었고, 농부들과 소비자들이 직접 연결되기 힘들다면 느슨한 팝업을 통해 그걸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여기에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 같은, 농부들의 작업이나 그들의 생각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기도 했고요. 


농부들께 팔고 싶은 물건을 택배로 보내달라고 했는데, 한두 팀 정도를 제외하고 모두 직접 들고 오셨더라고요. 온 김에 라이브 방송도 하고 가셨고요.(웃음)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 기후 위기 시대에 농부시장의 역할은 무엇일지에 대한 포럼을 했는데요. 농부들이 농사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엮어 발표를 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자연재배를 택한 농부님들이 엄청난 장마와 궂은 날씨를 겪으면서 오히려 가장 좋은 수확을 냈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뿌리와 땅이 건강해진 거죠. 


마르쉐 라운지 이후 농부시장이 정말 특별한 역할을 할 수 있겠다, 그런 농부들이 빛나는 시장을 계속해보자는 확신이 생겼어요. 나아가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느낄 수 있어 좋았고요. 돈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많은 협업자들이 함께 해 주었어요. 우리들만의 힘으로 된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 경험이어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2020년 12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약 한 달간 열렸던 '마르쉐 라운지' (사진 제공: 농부시장 마르쉐)



Q. 라운지를 하며 명동에 특히 오래 머무르셨을 것 같은데요. 이곳에 머무르며 느낀, 명동의 인상이 있을까요? 


구석구석, 오랜 시간 이어온 맛집들이 있다는 게 반가웠어요. 특정 집단이 아닌, 이질적이고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강남이나 홍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성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어요. 온갖 문화가 융합되어 있다는 인상이었죠. ‘주택가’나 ‘오피스’처럼, 지역이나 동네의 성격을 규정하는 한 가지의 단어로는 담을 수 없는 다양한 분들이 라운지 기간 동안 방문해 주셨어요. 그만큼 오랜 역사를 간직한 거리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혜화, 성수 등 다른 동네에 비해 명동은 부모와 자녀 세대가 혼재하는, 다른 층위의 여러 세대가 어울리는 시장이에요. 명동성당 지하에서 마르쉐가 열렸을 때 특히 장년층분들이 오시기도 했는데요. 식자재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가지고 계셔서 다른 곳에서는 아무도 찾지 않았던 작물을 찾으시기도 했어요. 



(사진 제공 : 농부시장 마르쉐)



Q. 이면도로 프로젝트의 첫 번째 주제는 ‘헤리티지’입니다. 헤리티지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을 의미하는데요. 마르쉐가 가지고 있는 헤리티지는 무엇일까요


마르쉐의 헤리티지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진 다양한 농부들인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일본의 농부들은 자기 명함에 ‘백성’이라는 호칭을 붙이는데요. 지배층에 반대되는 의미로서의 백성이 아니라, 한자 그대로 ‘백 가지 성을 가졌다’는 의미라고 해요. 여기에는 ‘백 가지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어요. 그들이 마주하는 자연환경도 다르고, 이어가는 씨앗과 농사 방식도 제각기 다를 테니까요. 농부들이 다양한 가능성을 품은 존재로서 그 모습을 펼쳐내는 게 시장이고, 거기에 우리의 미래를 찾아보고 있는 겁니다. 


Q. 현재 준비하고 있거나 구상 중인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지구 농부 시장’이라는 개념으로 기후 위기 시대에 맞춰 채소시장을 운영하려고 해요. 어떤 모습이 될지는 정확히 모르겠네요. 시장들이 일상 곳곳에 뿌리내리고 더 많이 생겨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올해는 작년보다 한 군데 더 늘려서 한 달에 네 번의 시장을 만날 수 있게 진행하고 있어요.



(사진 제공 : 농부시장 마르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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