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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함 Sep 29. 2021

극장을 개방하는 실험이 열리는 곳, 삼일로창고극장

[INTERVIEW] 삼일로창고극장 공동운영단 6인 인터뷰




삼일로창고극장 공동운영단 

(상단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장옥영(삼일로창고극장 매니저), 임현진(독립기획자), 김주원(배우), 허영균(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공연예술작가), 신재훈(극단 작은방, 연출가), 이희진(프로듀서그룹 도트, 프로듀서)




1975년 개관 이후 삼일로창고극장은 여섯 번의 개, 폐관을 거쳐 2018년 일곱 번째 개관을 했다. 현재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의 재정 지원을 받으며 민간의 공동운영단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공동운영단에게 주어진 시간은 10년. 그 뒤에는 민간에 이양될 예정인 이곳에서 저마다 다른 현장 경험과 스펙트럼을 가진 공동운영단은 젊은 창작자들과 경계를 넘나드는 공연예술 플랫폼이 된다는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벌이고 있다. 


인터뷰에 앞서 건네받은 애뉴얼리포트에서 삼일로창고극장을 ‘변방’이라고 표현한 대목을 만났다. 소극장들이 몰려 있는 대학로에서도 떨어져 있고, 우리가 ‘명동’이라고 부르는 큼직한 블록에서도 가장자리에 있으니 여러모로 이곳은 변방인 셈이다. 공동운영단 임현진 프로듀서는 삼일로창고극장 같은 변방이 여러 개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변방, 바꾸어 말하자면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다. 그러나 변방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각자가 중심이 된다. 달리 말해 세상에는 하나의 중심과 여러 개의 변두리가 있는 게 아닌, 저마다의 축을 가진 여러 개의 중심이 있는 셈이다. 페이지 명동의 이웃이자 재개관의 아이콘, 삼일로창고극장 공동운영단을 만났다. 




Q. 프로그램 준비 등으로 분주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삼일로창고극장을 처음 접할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장옥영 : 삼일로창고극장은 1975년, 민간예술단체인 극단 에저또에서 가정집을 개조해 만들었어요. 무대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고,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아레나 형태의 극장이었는데요. 극단 에저또 이후 여러 단체들과 예술가들을 거치며 극장도 다양하게 변모해 왔어요. 사람들이 많이 기억해 주시는 극장의 모습은 아마 1983년부터 86년까지의 ‘테아트르 추’ 시절일 것 같네요. 당시 추송웅 선생이 제작한 ‘빨간 피터의 고백’이 흥행하면서 극장 중심의 예술활동이 펼쳐졌고, 연극 외에도 다양한 공연예술 형태로 극장이 활용되었어요. 이후 개, 폐관을 거치며 명맥을 이어 오다 2013년, 서울시에 의해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민간 주도로 탄생했던 이곳의 정신과 전통을 이어 가자는 취지에서 예술계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로 공동운영단을 꾸렸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 온 이들이 함께 극장을 운영해 나가고 있어요.  


허영균 : 삼일로창고극장에는 두 가지 지향점이 있어요. 하나는 젊은 창작자들에게 낮은 문턱의 창작환경을 제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공연예술과 퍼포먼스를 매개로 한 플랫폼이 된다는 것이에요. 공동운영단은 이 두 가지 지향점을 바탕으로 극장의 작동원리나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춰 공연, 대화, 전시, 워크숍, 포럼 형태의 프로그램으로 풀어내고 있죠. 연말 중 하루 24시간 동안 창작자들이 속도감 있게 연극을 만들어 내는 ‘창고개방’처럼 매해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퍼포먼스와 관련된 논문을 무대로 올려 청중들에게 설득할 수 있도록 하는 ‘퍼포논문’처럼 해마다 주제를 달리하는 프로그램도 있어요. 여기에 더해 재개관을 거듭한 삼일로창고극장의 특성을 살려 극장에 대한 논의들을 변주한 몇 가지 프로그램이 더해지고 있고요.





Q. 삼일로창고극장은 현재 서울시의 재정지원을 받아 서울문화재단과 민간 공동운영단이 운영을 하고 있는 형태인데요. 이렇게 공동운영단으로 운영되는 이유가 있을까요?


허영균 : 지금은 서울시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지만, 추후에는 시에서 민간으로 이양될 예정이에요. 시와의 관계, 추후의 이양 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지만, 민간극장의 형태로 내실 있는 실험을 최대한 많이 벌여 좋은 모델이 되는 것을 목표하고 있어요. 그렇기에 실제 극장을 사용하고, 극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극장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중심으로 운영단을 꾸리게 된 것이죠. 한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의사 결정이나 방향 제안을 나눠 갖는다는 점에서 삼일로창고극장이 지향하는 거시적인 관점에 들어맞는 것 같기도 하네요.



Q. 삼일로창고극장의 과거를 살펴보면 ‘소극장운동’과 ‘실험적’이라는 수식이 따라붙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여섯 번의 개, 폐관을 거치며 극장의 성격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 가고자 하는 정신 혹은 방향성이 있을까요? 


신재훈 : 삼일로창고극장이 왕성하게 활동했던 1970년대는 많은 관객들을 대상으로 상연되었던 대극장의 상업극이 주를 이뤘어요. 이런 흐름과 상반되게 작은 규모의 극장에서 새로운 연극을 시도하는 흐름을 소극장운동이라고 불렀는데요. 그러다 보니 소극장운동에는 실험이라는 단어가 한 몸처럼 따라다녔던 것 같아요. 지금의 삼일로창고극장에도 일반적인 범주에서 벗어나려는 정신은 있지만, 그것을 지금의 시대에 맞게 풀어 보자면 ‘실험’이라는 단어보다 ‘다양성’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것 같아요. 일반적, 보편적이라 생각되는 가치를 의심하거나 다른 사유를 해나가는 분들을 응원함으로써 ‘다양성’을 지향하는 것이죠. 서로 다른 형식과 장르에 대한 포용력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극장이라고 생각해요. 


허영균 : 이곳이 불사조처럼 개, 폐관을 반복해 왔다는 게 재미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현장의 지지나 애정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계속 기억하고 찾아 오는 극장인 것 같아 운영단으로서 즐거움을 느끼기도 해요.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극장이 몰려 있는 대학로와 멀리 떨어져 있고, 연결점도 없어 외딴섬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우려가 흐릿해지는 체험을 하고 있어 괜찮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임현진 : 극단 에저또 시절의 70년대 명동은 예술적으로 변방이 아니었어요. 문학을 비롯해 연극활동도 많이 일어났었죠. 명동이 예술적인 변방이 되기 시작한 것은 대학로를 중심으로 극장이 편성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어요. 개인적으로는 대학로도 나름의 중심을 잘 지키고, 저희 같은 곳들도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때 공연예술계가 건강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 의미의 변방이라면 언제고 지속됐으면 좋겠고요. 

저희는 극단 에저또 시대의 연극은 알지 못하는 세대예요. 그렇기에 그때의 역사를 똑같이 재현하기보다는, 추구해야 할 정신을 재미있게 살려 가면서도 창작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함께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객으로서도 재미있다고 느꼈던 프로그램이 ‘창고개방’인데요. 매년 행사를 진행할 때마다 ‘개방형 극장으로서의 삼일로창고극장은~’이라는 수식을 붙이거든요. 저는 이 표현이 삼일로창고극장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해요. 한 주체의 소유로 남는 게 아니라, 계속 문을 개방하는 ‘실험이 열리는 곳’인 거죠. 





Q. ‘극장을 개방한다’고 표현하신 것이 인상 깊은데요. 그런 의미에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창작자들의 퍼포먼스를 송출했던 ‘퍼포먼스 포 프라이스(Performance for price) : 클린 룸’ 같은 시도 또한 코로나 시대에 극장을 개방하는 또 하나의 시도였던 것 같습니다. 


허영균 : ‘클린룸’은 관객을 직접적으로 만날 수 없다는 코로나 시대의 상황뿐 아니라 늘어나는 1인 창작 환경에서 수없이 듣는 ‘가성비’라는 단어를 창작에 연계시키려는 고민에서 출발했어요. 창작자들은 일주일간 극장 한 켠에 격리되어 공연예술의 가성비를 묻게 되는데요. 모두에게 열려 있어 광장을 떠올리게 하던 극장이 송신탑이 되어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접근할 때 관객들은 어떻게 화답하는지, 그 화답은 어떻게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이었어요. 한국의 공연예술가들이 코로나 이후에 벌였던 실험들은 굉장히 다양하고 빠르게 번졌기 때문에 클린룸은 꽤나 초기의 시도라고 생각하는데요. 앞으로는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김주원 : 작년에는 관객과 창작자가 만나는 ‘새- 시대 비평 클럽’이라는 대면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는데, 올해는 ‘게더링’이라는 기획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요. 코로나 시대를 맞아 우리가 그동안 어떤 방식과 형식으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환대해 왔는지 다시 사유해 보자는 시도죠. 결국 중요한 것은 코로나라는 시대적인 상황을 넘어 사람들을 다시 극장으로 모이게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이라고 생각해요. 



Q. 앞의 소개에서 매년 주제를 달리 정한다고 하셨는데, 주제를 정하는 기준이나 거기에 맞게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을까요?


이희진 : 운영위원들의 의견이나 아이디어에 따라 달라지는데요. 특정한 단어나 슬로건을 정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관심사와 확장성을 고민하면서 토의하고 있어요. 


허영균 : 대화를 하다 보면 주제가 모아지는 지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올해는 창작자들에게 이야기 할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자는 이슈가 있고, 극장 자체에 대해서 고민하는 ‘불필요한 극장이 되는 법’이라는 프로그램이 하반기의 주된 프로그램일 것 같아요. 


신재훈 : 상대적으로 무대기술을 접할 기회가 적은 젊은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극장의 반입구라는 의미를 가진 ‘스테이지 도어’라는 무대기술 워크숍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희진 : 최근 몇 년 사이 ‘아트앤테크’라는 주제로 아티스트들의 관심사가 모이고 있는데요. 하지만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공연예술과 결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도 자체를 주저하는 경우도 있고요. 지난 해부터 코로나를 겪으면서 비대면 상황에서 관객을 만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가는 시점인데요. 이것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도 하나의 꼭지로 가져갈 예정이에요. 올해는 강의 형태의 워크숍을 했다면, 내년에는 조금 더 발전된 형태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자 합니다. 





Q. 삼일로창고극장이 벌여 온 다양한 활동의 중심에는 창작자가 있는 것 같은데요. 한편으로 창작자들의 활동에 힘을 더해 주는 것은 관객들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분들이 삼일로창고극장을 찾아 주시는지 궁금합니다.


임현진 : 삼일로창고극장을 거쳐 간 분들이 굉장히 많아서, 찾아 주시는 분들을 ‘관객’이라고 특정하기보다는 여러 이해관계자로   봐야 할 것 같아요. 주변에서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처음 연극을 봤다’, ‘연출로 첫 작품을 올린 곳이다’라고 말씀해 주실 때 그런 분들이 이곳의 친구이자 지지자라는 걸 느끼거든요. 어떻게 보자면 창작자들의 비밀기지 역할을 해온 것도 같고요. 그래서인지 삼일로창고극장에서는 관객과 예술가를 구분하는 것에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김주원 : 관객과 창작자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 이곳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공동운영단 내부에서도 소통을 비롯해 협업의 기회를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관객으로서도 단순히 극장에 공연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오롯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허영균 : 2년 전에 열렸던 ‘입체열람전’이라는 전시에서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는 아카이빙 기법을 소개한 적이 있어요. A와 B의 단일 정보가 아니라, 그 사이에 존재하는 정보들을 식에 넣어 관계를 조명해 보는 건데요. 여기에 1970년대 삼일로창고극장의 정보를 넣어 봤는데, 가장 많이 언급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을지로 인쇄소 사장님이었어요. 아마도 공연 포스터를 계속 인쇄해 주셨겠죠. 그래서 과연 극장이 매개하는 것이 창작자와 관객, 이렇게 둘로 나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때로는 우리에게 있어 ‘뜬금없다’고 여겨지던 이들과도 연결되어 있는 게 극장이니까요. 극장이 그들을 지지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들이 극장을 업고 간다고도 생각해요. 



Q. 삼일로창고극장과 페이지 명동, 걸어서 3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웃이자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켜 온 건물들이기도 한데요. 극장에 머무르며 느꼈던, 지역에 대한 인상이 있을까요?


임현진 : 관객으로 창고극장에 방문했을 때 마침 좋은 연극을 봤어요. 벅찬 마음으로 희열을 느끼며 극장 밖으로 나와 명동역을 향해 가는데 극장에서의 세상과 바깥의 풍경이 너무 이질적이고 생경해 관람했을 때의 감각이 도리어 또렷해지는 경험을 했어요. 그래서 이 극장이 명동에 위치한다는 사실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연극의 경험이 극장 밖으로 지속되지 못하고 서로 분리되어 있기에 극장에서의 경험이 좀 더 부각되니까요.


허영균 : 제 마음속에서는 명동과 삼일로창고극장의 지리적 결합성이 빈약한 것 같아요. 주로 다니는 동선이 극장에 오가는 것만을 위한 것이어서요. 개인적으로는 삼일로창고극장이 있는 이곳이 서울의 올드타운 같아요. 주변은 모두 세련되게 변했는데 이상하게 하나 남아 있는, 그런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인지 종종 일상과 유리된 느낌을 받곤 해요.


임현진 : 명동에는 자취를 감추고 있는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것들이 복잡하게 섞여 있는 것 같아요. 골목마다 삼일로창고극장의 느낌이 나는 곳들이 하나씩은 있더라고요. 명동을 큰 권역으로 놓고 봐도 길마다 다른 성향을 가진 느낌이어서 저는 이 지역의 맥락이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얼마전 명동 일대를 걸으며 진행되는 공연을 하나 본 적이 있어요. 헤드셋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명동 구석구석의 이야기들을 듣고, 장면들을 새롭게 조직하듯이 재발견하는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예술이 명동의 구석구석을 새롭게 보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신재훈 : 확실히 코로나 이후 관광객이 사라졌다는 걸 느껴요. 하지만 명동의 성격이 바뀌지는 않은 것 같아요. 폐점한 곳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것이 변화의 전조라기보다는 잠시 멈춤의 상태인 것 같거든요. 시간이 흐르고 유입인구가 늘어나면, 아주 빠른 기간 안에 원래의 흐름으로 복귀하지 않을까 싶어요. 


김주원 : 개인적으로 삼일로창고극장의 위치를 좋아하는데요. 공연이 끝나고 텅 빈 명동을 걷다 보면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하는데, 그럴 때마다 삼일로창고극장을 지키고 있는 게 뿌듯하기도 해요. 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명동에 삼일로창고극장이 있는 것을 당연한 풍경으로 느끼신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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