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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함 Nov 26. 2021

만화가 바꾼 동네의 일상

[INTERVIEW] '재미로' 리드로우 프로젝트 이윤재 책임


명동을 방문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로’라는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더라도 남산 가는 길에 만난, 다양한 만화 캐릭터들로 채워진 거리를 기억할 것이다. 2012년부터 다양한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요람으로 자리했던 재미로가 약 2년의 기간을 거쳐 새 단장을 마쳤다.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그림들이 혼재하던 과거와 달리, ‘이나피스퀘어’, ‘그라플렉스’ 등 트렌드를 이끄는 작가들과 협업해 재미로 일대를 한 편의 만화로 탈바꿈시켰다. 


이번 협업을 주도한 것은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이윤재 책임이다. 그는 이 사업의 목표가 단순히 벽화를 그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상생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재미로에 위치한 가게들에서 물건을 구매해 스탬프를 찍어 작가의 굿즈와 교환하는 ‘웰컴 재미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입면에 그려진 톡톡 튀는 그림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오롯이 지역으로 전하기 위해 분주히 노력 중이다. 덕분에 팬데믹 여파로 한산했던 거리는 조금씩 활기를 띠고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벌써 전용 태그 채널이 생겼다. 가장 큰 변화는 ‘케이블카 타는 곳이 어디냐’는 방문객들의 질문이 지역 맛집을 찾는 질문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산업진흥원(SBA)에서 운영하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남산 애니타운 상징거리’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이윤재 책임이라고 합니다.



Q. 명동 인근, ‘재미로’라고 불리는 일대가 요즘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남산 애니타운 상징거리’는 어떤 내용의 사업인가요?


재미로는 2012년, 남산 자락에 위치한 서울애니메이션센터를 중심으로 그 일대를 만화, 애니메이션 타운으로 조성하자는 ‘애니타운’ 사업에서 출발했어요. 명동 관광특구와 남산을 잇는, 명동역에서 애니메이션센터까지에 ‘재미로’라는 거리를 조성했고, 만화 문화 체험 공간인 ‘재미랑’이라는 공간도 함께 만들었어요. 


약 6년간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여러 가지 한계점을 느꼈어요. 지역 사업이다 보니, 행정 인허가, 지역 주민과의 소통 등 고려해야 할 사항도 많았죠. 확실히 저희 단독으로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방문 타깃을 어린이로 한정한 기존의 거리 풍경도 난점 중 하나였어요. 그 안을 채우는 만화 콘텐츠가 요즘 트렌드와는 다소 맞지 않았던 것이죠.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에는 ‘키즈카페’처럼 아이들이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방문 수요가 있었지만, 그런 곳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재미로에 방문하는 사람들도 줄어들더라고요. 지역과 잘 섞여 들지 않다 보니, 여기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기대감이나 신뢰도 계속 떨어졌던 것 같아요. 


이 사업이 잘 되기 위해서는 우선 거리 정비 사업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속한 중구청의 참여가 절실했죠. 대중들이 좋아하고 찾아올 만한, 트렌디한 콘텐츠를 채워 넣는 기획 또한 필요했어요. 2019년에 서울시 차원에서 ‘재미로를 조금 더 재미로답게’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방향성을 제안 주셨는데, 마침 그 타이밍에 중구청에서도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협조 관계들이 만들어졌어요. 이 부분에 대한 방침과 예산 등이 확보되면서 ‘남산 애니타운 상징거리’라는 사업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거죠. 그때부터 새로운 시즌이 시작됐습니다. 



Q. 새로운 사업에서는 무엇이 달라졌나요?


중구청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노후된 거리 환경 개선과 관련한 예산이 확보됐는데, 중구에서 거리 설계, 공사와 관련한 부분을 맡아서 진행해 주신 덕에 다양한 시도들을 해볼 수 있었어요. 어찌 보면 그게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는 동안 저희는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었죠. 서울역 일대의 도시재생을 주도했던 도시재생센터의 협조를 받아 주민들과의 워크숍을 시작했어요. 명동 주민센터와 주민자치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주민 거버넌스를 구축해 의견을 수렴하고 설문을 진행하는 과정이 진행됐어요. 총 4회의 워크숍을 진행하며 재미로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점이나 꼭 살려야 할 소중한 것들을 하나하나 도출하기 시작했어요. 그 내용을 바탕으로 거리가 가지고 있는 색채나 지향점 등, 기본적인 뼈대를 구상할 수 있었죠. 저는 PM 역할로 주민들과 중구청을 비롯해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아 프로젝트를 진행했고요. 



Q. 주민 거버넌스를 통해 이전 사업을 리뷰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잡힌 콘셉트는 무엇이었나요?


이 사업의 또 다른 이름은 ‘리드로우 프로젝트(re-draw project)’인데요. ‘재미로를 다시 그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콘텐츠의 콘셉트는 만화의 지면 형식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이 거리를 하나의 만화로 만들면 어떨까, 그러면 통일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건물을 비롯한 거리가 하얀 캔버스가 되는 것이죠. 캔버스 위에 만화의 칸을 형상화하는 검은 테두리를 그려 전체적인 톤을 잡고, 거기에 그림 콘텐츠를 집어넣었어요. 


사업을 구상하면서 두 곳의 주체들을 고려했는데요. 하나는 작가나 전시 기업, 다른 하나는 이곳에 방문할 사람들이에요. 그들이 그리고 싶고, 오고 싶은 거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했고,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그리고 싶도록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Q. 2020년에는 ‘이나피스퀘어’ 작가와 함께한 ‘쏘쏘빌딩’이 오픈했는데요. 이 또한 ‘남산 애니타운 상징거리’ 조성의 일환일까요?  


맞아요. 주민들 입장에서는 8년 가까운 시간 동안 스트레스가 쌓여 왔는데,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바뀐 모습을 보여줘야 했죠. 일단 보이는 무언가가 있으면, 그들을 설득하는 것도 수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2019년 12월, 재미로에서 정비가 가장 시급한 건물을 선정해 15만 팔로워를 가진 ‘이나피스퀘어’ 작가님과 함께 건물을 디자인하기 시작했어요. 중구청에서는 노후된 배관이나 타일, 간판 등의 건물 입면 정비를 통해 캔버스를 마련해 주셨고요. 


그렇게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고 나니 사업에 의문을 가지고 계셨던 지역 주민들도 바뀌기 시작했어요. 참여를 거부하신 분들에게 역으로 제안을 받기도 했고요. 전시 기업이나 작가들도 레퍼런스를 보면서 자신들에게도 재미로가 좋은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이나피스퀘어 작가님과의 협업 이후 국내 전시 기업들에게는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콘텐츠 작가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알릴 수 있는 공모 사업을 진행했어요. 그렇게 프린트 베이커리라는 전시 기업이 모집됐고, 그들과 협업하는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그라플렉스 작가님의 그림을 선정하게 되었죠. 팝아트나 순수미술이 아닌, 굵은 선의 카툰의 느낌이 들어서 이 분의 작품이라면 이곳에 들른 많은 분들이 재미있는 상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Q. 아무래도 건물의 입면을 사용하는 사업이다 보니 말씀하신 것처럼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하는 등,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것 같아요. 그들을 설득했던 특별한 노하우나 방법이 있었을까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재미로에는 사람들이 유입될만한 콘텐츠와 스토리가 빈약했던 것 같아요. 매년 애니메이션센터에서 거리축제 등의 행사를 하기도 했지만, 거리가 활성화되는 것은 잠시뿐이었거든요. 지역에 방문한 사람들의 체류시간을 늘리고, 흥미를 끌만한 것들이 부족했던 거죠. 그런 콘텐츠와 스토리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역시나 지역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 지역을 채우고 있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는 것 같아요. 기존 사업에 피로감을 느끼던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돌린 가장 큰 요소가 바로 그 지점이었어요. 매년 사업을 담당하는 관계자가 바뀌어 왔지만, 이번 사업에서는 제가 직접 주민들 속으로 들어갔죠. 주민위원회의 주민들보다도 많이 참여하면서 지역 어른들이나 자치위원회, 상인회 분들에게 애니메이션센터 또한 지역의 일원이라는 걸 인식시켰어요. 게다가 우리의 목표 또한 이 지역이 활성화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렸죠. 


제가 책임지고 사업을 끝까지 진행할 테니 지켜봐 달라, 그런 마음으로 매일 소통하기 시작했어요. 상점 하나하나, 점주 한 분 한 분을 만났고, 주말에도 이곳에 와서 주민들을 만났죠. 지속적으로 소비도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하더라고요. 결국 재미로의 모든 상점들이 이 사업을 이해하시고, 앞으로의 청사진을 함께 상상하게 됐어요. 



Q. <이면도로>를 통해 주변 상인분들을 꽤 알게 되고, 교류를 하기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지역의 여러 주체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 같아요. 지역 주민들과 소통을 하면서 어려웠던 부분이 있으셨나요?


한 건물의 입면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건물을 사용하는 모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나피스퀘어 작가님과의 협업에서는 건물에 입주해 있던 여섯 개의 상점 중 네 곳의 동의를 받았고, 나머지 두 곳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건물주님의 동의를 받은 터라 크레인으로 작업을 시작했는데 연락이 오더군요. 적게는 몇 시간, 한 달에 몇 번씩 찾아가 설득하는 과정이 이어졌어요. 다행히 모두 마음을 열어주셨고, 결과적으로는 모두 좋아해 주셨어요. 사실 바로 이런 우려 때문에 본 사업에 들어가기 전, 레퍼런스 작업을 한 것이기도 해요. 





Q. 이번 사업을 보면, 단순히 기획이나 콘셉트의 매력을 떠나 지역의 활성화를 향한 책임님의 진실함이 지역 주민들에게 가닿은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설득력이 정말 중요했던 것 같아요. 사업의 담당자로서 상대가 납득할만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사업을 하면 어떤 것들이 실질적으로 바뀌게 되는지, 지역에는 어떤 것들이 돌아가는지를 계속 고민해야 했고요. 그리고 이런 고민들은 이미 거리를 조성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역이 활성화되고 자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 같아요. 


이나피스퀘어 작가님과 조성한 쏘쏘빌딩도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넣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빌딩 1층에는 ‘다스티’라는 카페와 ‘강원식품’이라는 식료품 가게가 있는데요. 이곳에 ‘쏘쏘’ 캐릭터가 그려진 컵홀더와 포장봉투를 두었어요. 이 물품의 디자인은 작가님께서 재능 기부를 해주셨고요. 보통이라면 인근의 편의점이나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셨을 분들도 이 봉투와 컵홀더에 이끌려 찾아오시더라고요. 이 컵홀더가 끼워진 컵을 들고 건물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기 위해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쏘쏘빌딩 사례 이후로도 그라플렉스 작가님과 협업하면서 콘텐츠를 지역에 녹여낼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은 ‘웰컴 재미로 굿즈’라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재미로에 있는 상점들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스탬프를 찍어 오시면 작가님의 아트워크가 들어가 있는,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할 굿즈를 전달드리는 이벤트예요. 



Q. 그라플렉스 작가님 이후로 예정된 일정이 있나요?


그라플렉스 작가님의 결과물을 보고 참여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건물이나 골목들이 있는데요. 우선 그렇게 남아있는 작은 골목이나 입면을 채워줄 작가님을 찾기 위한 공모가 나갈 예정이에요. 2, 3년이 지나면 페인트 색이 바래기 때문에 그때가 되면 새롭게 진행하게 될 것 같아요. 



Q. 중구청의 협력, 주민들과의 워크숍, 그리고 지난했던 설득과 소통의 과정을 지나 뚜렷한 윤곽이 드러난 것 같아요. 사업 이후 주변의 반응이나 찾아주시는 분들의 코멘트가 조금 달라지기도 했나요?


사람들의 질문이 바뀌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케이블카나 대사관 위치를 묻던 사람들이 지역 맛집이 어디인지를 묻더라고요. 방문객의 연령대도 조금 낮아진 것 같아요. 사업이 공식적으로 공개되기 전에 제 SNS 계정을 통해 재미로의 맛집을 시리즈처럼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그러면서 골목골목 맛집이 정말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남산동 또한 팬데믹의 영향을 받았지만, 비어있는 곳들에 청년들이 유입되어 생기 넘치는 골목을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Q. 콘텐츠만큼이나 지역의 색깔, 특성들도 많이 연구해 보셨을 것 같아요. 재미로가 있는 남산동은 어떤 곳인가요?


제가 남산으로 발령받기 전까지는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충무로 대한극장 앞에서 순환버스를 타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일하다 보니 이곳이 명동역에서 남산 케이블카 탑승장까지 갈 수 있는 코스더라고요. 남산에서 가장 예쁜 둘레길과 이어지는 길목이기도 하고요. 사업을 하면서 재미로는 명동과 남산을 잇는 중요한 길이구나, 이야기가 생긴다면 정말 활성화되겠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죠. 



Q. 말씀하신 것처럼 지역에 입체감을 더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매력을 발견하는 시도와 순간이 중요한 것 같아요. 현재 명동은 팬데믹의 여파에서 여전히 회복 중인 것 같은데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로컬, 지역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지역의 콘텐츠를 발굴하기보다 결이 다른 콘텐츠를 축적하면서 고배를 마신 기억이 있어요. 그 이후 지역의 자원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고, 주민들과의 워크숍을 통해 지역에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과정을 거쳤죠. 이런 과정이 선행되고 나면 이들을 연결하는 일이 보다 수월해지지 않을까요? 그렇게 지역과 밀착된 결과물이 나오면 하나 둘 이야기가 생겨날 것이고, 결국에는 그것이 모여 이어지고 확대되겠죠. 실제로 사업 이후 남산동에 없던 상인회가 결성됐고, 명동 주민센터에서도 사업을 만들어 골목사업을 함께 진행하게 됐어요. 페이지 명동과는 지역적으로 이웃이기도 하니, 결국 서로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함께 재미있는 일을 도모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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