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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함 May 27. 2022

부동산에 대한 생각, 뒤집어야 산다

<오마이뉴스> '넥스트 브릿지' 시리즈 


1989년 4월 노태우 정부는 서울·수도권의 폭등하는 집값 안정과 주택난 해결을 위해 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 1기 신도시 건설 계획을 발표하였다. 당시 70% 남짓이었던 주택보급률은 1991년 신도시 개발 후 약 75%까지 상승하였다.


이후 2003년 2기 신도시와 2018년 3기 신도시까지 공급 중심의 대규모 개발이 추진되었다. 부동산 가격 폭등 제어를 명분으로 한 세 번의 대규모 신도시 개발을 통해서 서울·수도권에는 수백만 호의 아파트가 건설되었다. 하지만 폭등을 제어하기 위한 공급은 외려 폭등을 조장했다. 우상향 부동산 불패 신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니 부추겼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렇다면 신도시 정책의 또 다른 목표인 ‘주택난 해결’ 차원에서는 문제가 나아졌을까? 2천만 가구를 기준으로 한 주택보급률은 104%를 기록하지만, 이러한 주택보급률이 무색하게도 무주택 가구는 전체 가구수 대비 43.9%를 차지하고 있다(2020년 국토부 주거실태조사). 그런가 하면 일자리·교통·생활편의시설 등을 간과하고 추진된 2기 신도시의 경우 한동안 미분양 사태로 골치를 썩이기도 했다. ‘공급’이 주택 문제의 무조건적인 해법일 수 없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해마다 쏟아지는 주택은 절반의 국민에게만 돌아가고 있다. 반복되는 이사에 지쳐 영혼을 끌어모아서라도(영끌)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내 돈이 아닌 은행 돈으로 빚을 내서 집을 사는 대다수의 가구는 이자 부담에 휘청이고 집값 등락에 울고 웃는다. 이처럼 공급 정책만으로는 대한민국 부동산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수십 년간 목격하였고 체감했다.


그런데도 출범을 앞두고 있는 윤석열 정부 역시 임기 내 250만 호 공급을 부동산 정책으로 발표하였다. 또 80년대 말부터 지어졌던 노후화된 1기 신도시의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고 용적률을 상향하는 방향으로 특별법 제정을 예고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또 공급 정책이다. 똑같은 노래를 계속 듣는 것도 참기 힘든데, 주택 공급을 늘려 부동산 폭등을 막겠다는 도돌이표 메시지는 참는 것을 넘어 공포심을 자아내게 한다.




공급 일변도 정책, 필연적으로 투기 부른다


앞서 언급했듯 정부 주도의 (신도시) 개발은 단기적으로 투기를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우선 개발 대상지가 발표되고 보상이 시작되면, 토지소유자들에게 수조 원대의  보상금이 돌아간다.


2008년 2기 신도시 개발 당시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참여정부 5년 동안의 토지 보상비는 98조 5743억 원으로 2008년 정부예산 256조 1721억 원의 38.5%에 이르는 금액이다.


이러한 막대한 공적 예산이 토지를 소유한 소수에게로 돌아가는데, 이렇게 흘러간 돈이 다시 인근의 토지와 주택을 매수하는 데 쓰이면서 신도시 인근의 주택과 토지 가격은 큰 폭으로 상승하게 된다.


주택 공급으로 집값 안정을 이루기도 전에 이미 인근의 집값이 뛰어 버리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도시 개발 그리고 이와 연관하여 인근의 난개발이 지속되면서 공급량 대비 자가를 점유하고 있는 비율은 여전히 겨우 절반을 넘기고 있다.


한편, 이처럼 공급이 모두에게로 흐르지 않고 소수에게 집중된다는 데 문제의식을 가졌던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간 수요 억제 정책과 주거권 보호 정책을 연이어 시장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대책만 26번이나 내놓았지만 백약이 무효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간 1주택자들의 세부담을 줄여주는 데 집중했고, 반대로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에 대한 징벌적 세제를 완성했다. 이로써 세금 폭탄을 실제로 체험하게 된 다주택자들은 이제라도 세금 폭탄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지만, 양도세와 중과세에 가로막혀 있다 보니 매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임대차 3법과 주거 복지 로드맵을 대표로 하는 주거권 보호 정책 또한 연이어 쏟아졌지만 집값 안정을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실수요자들은 불안한 시장을 보면서 영끌하여 집 사는 데 줄을 섰고,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비판에 앞장섰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주택 대출 문턱이 높아진 현 정부 임기말 상황을 보면서 서민과 중위계층 실수요자의 불만은 폭발하고 있다.


공급을 늘려도 부동산 가격은 오르고, 수요를 조정해도 가파르게 오르는 이상 현상은 누구의 책임이고 무엇을 풀어야 하는가?



부동산 공급 패러다임의 변화를 위한 제언


필자는 공급량 증대 혹은 수요 억제를 중심에 놓는 정책 패러다임이 획기적으로 전환되어야만 현재의 부동산 딜레마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다음과 같은 여건과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공급량이 아닌 ‘공공성’의 실현을 정책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공공이 주택을 공급한다고 해서 곧바로 공공성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오히려 투기가 조장되는 등 공공성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공성은 개발 과정에서의 이익을 공공으로 환수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주택단지 개발의 이익과 혜택이 지역 사회와 폭넓게 공유될 수 있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부동산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지만, 건물이 철거되고 들어서는 동안 그 지역사회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부동산 개발의 목적이 안정적 주거지 확보와 자산 형성이라는 개인적 요인을 넘어 사회의 질(Quality of Social) 상승을 담보해야 하는 이유이다.


해외의 사례에서 지혜를 빌려오자면, 영국의 로치데일 지역주택 상호조합(RBH)의 주도로 공급되는 사회주택은 단순 주거 공급만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곳에 살고 있는 시민들, 특히 취약계층의 다양한 삶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예컨대, 일자리 창출, 돌봄 서비스, 복지서비스 연계 등 사회적이며 통합적인 지역 재생 효과를 확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새로 조성되는 주거 단지를 중심으로 일자리, 돌봄, 복지서비스를 기획하고 공급할 수 있는 ‘커뮤니티 관리’ 개념을 도입한다면 주택 공급 그 이상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소유'(사는 것, buying)에서 ‘거주'(사는 것, living)로 주거의 의미를 전환시킬 수 있는 주거 모델을 확산시켜야 한다. 현재까지의 정부 주도 공공분양과 공공임대는 시민들에게 ‘사거나 빌리거나’ 제한된 선택지만을 제공할 뿐이었다. 수백만 호 공급 정책을 내걸어도 자가점유율이 일정 이상 더 늘지 않고, 민간의 전월세 비용은 더 높아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제3의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


소유하지는 않더라도 적정한 주거 비용을 지불하며 평생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모델이 주거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현재까지는 작은 규모로 실험되고 있는 사회주택의 모델들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데, 입주민들이 공동 소유, 공동 운영하기에 개인이 소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안정적으로 양질의 주거 환경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주거 대안 ‘위스테이’의 사례로부터


공공성을 높이면서도 주거의 본질적 의미를 되찾는 대안 중 하나로, 현재 내가 몸 담고 있는 회사에서 조성한 ‘위스테이’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위스테이는 남양주 별내지구와 고양 지축지구에 각각 491세대, 539세대의 단지로 조성된 국내 최초의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이다.


기존의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정책에 ‘협동조합’ 모델을 접목해 만든 국토교통부 시범 사례로, 입주자들로 구성된 사회적협동조합이 개발 단계에서부터 지분 참여를 하여, 임차인이 간접적인 소유주가 되는 독특한 사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사회적협동조합은 출자금을 통해 지분 참여하고 있기에 개발 단계에서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의견을 주도적으로 낼 수 있으며, 커뮤니티 시설을 중심으로 다양한 마을 커뮤니티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위스테이는 공급량으로만 보자면 큰 규모는 아니다. 각각 약 500세대의 중소규모 단지이지만, 이 단지가 내고 있는 사회적인 임팩트를 보자면 그 규모를 뛰어넘는다.


예컨대 80여 개의 마을 일자리에 입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있고, 400여 명의 입주민들이 50개의 자발적인 동아리에서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코로나로 더욱 심화된 사회 문제인 돌봄 공백을 공동육아, 마을돌봄 등의 활동으로 해결한다.


단순한 공급에 그쳤다면 이 같은 공동체 활동들을 위해 추가적으로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었겠지만, 이 모든 것이 아파트의 관리 비용과 주민들의 자치·자발에 의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입주민들이 실제 느끼고 있는 삶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으며(2021년 국토교통부 주관 공동체 주택 입주자 만족도 조사 결과 74%의 입주민이 삶의 만족도 상승을 경험),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이웃이 있다”라고 답한 입주민이 71.4%에 달할 정도로 서로 간의 신뢰도 상당한 수준이다. 이곳은 주거 단지인 동시에 일종의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5년간 250만 호를 추가 공급하겠다는 차기 정부에 공급만이 답은 아니라고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하고 싶다. 소유하지 않고 빌려 사는 주택이지만, 더 오래 살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대안이 여기에 분명 있다고 말이다.


김종빈 (소셜디벨로퍼그룹 더함 커뮤니티 총괄 이사)


※ 위 글은 오마이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넥스트 브릿지> 26화에 기고된 글입니다. ☞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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