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넥스트 브릿지' 시리즈
3년 가까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코로나로 인해 우리 삶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언택트 사회’로 전환되면서 재택근무가 늘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거나 모임을 하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주거 환경과 공간을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도 그 이전과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코로나 여파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집 공간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한 온라인 인테리어 플랫폼의 기업가치가 코로나 이후 1년 반 만에 2.5배 뛰었을 정도라니 인테리어 수요가 증가한 사실이 체감이 된다.
특히나 에코부머 세대(1979~1992에 태어난 세대)가 주택시장의 주 소비계층으로 교체되기 시작한 지금, ‘행복’과 ‘만족감’을 중심으로 주거공간에 접근하는 이들의 욕구 변화를 빠르게 감지할 필요가 있다.
주거 공간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 만큼 최근 들어 공급되는 신축 아파트들은 특화 설계, 라이프스타일 맞춤형 공간 구성-특히, 일과 취미 생활 등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레이어드 홈’-등을 강조하며 주거 평면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획일적이었던 공급 양상이 놀랍게도 근 몇 년 사이에 변화한 것이다. 민간 시장은 1~2인 가구의 증가, 초고령사회로의 진입, 재택근무 증가 등의 변화에 발맞춰 재빠르고 영민하게 변화해 가고 있다.
빠르게 변화해야 할 것은 주거공간의 평면도만이 아니다.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주거 니즈에 맞게 주거 정책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집이라는 공간-좀 더 확장해 본다면 동네생활권-에서 휴식, 일, 놀이 등 다양한 활동을 영위하게 된 변화에 맞는 주거정책의 변화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소위 인기 있는 집이 있다. 교통, 학군, 생활 인프라 등이 잘 되어 있는 곳이다. 한마디로 입지가 집값을 좌우한다. 입지에 따른 집값은 집을 고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그것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부동산 중개 플랫폼에서 2021년 어플리케이션 이용자 151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거 선택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외부 구조 요인으로 쾌적성-공세권/숲세권(공원, 녹지 주변)이라고 응답한 비율(31.6%)이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발코니, 테라스, 마당, 다락에 대한 응답비율(22.8%)이 높게 나타났다.
다음 해인 2022년, 같은 플랫폼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주거 공간 선택 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으로 ‘내부 평면 구조’라고 응답한 비율(28.8%)이 가장 높았다.
이는 접근성이나 교통을 중시하던 과거와는 분명 다른 양상이다. 재택근무와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난 탓에 통근 거리에 대한 고려가 줄어든 영향으로 보인다. 또한 ‘올인룸(All in room)’, ‘올인빌(All in village)’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는 것도 이러한 주거 니즈 변화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위 설문 결과는 입지에 좌우되던 주거 선호, 주택 가격이 변화할지도 모른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런데 정책 당국은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고 있을까?
지난 21일,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등이 제1차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윤석열 정부의 첫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다. 분양가 상한제 완화, 임대차 3법의 개선안, 월세 및 임차보증금 원리금 상환액 지원 확대 등, 지난 정부와는 다른 결의 정책을 세우며 조만간 발표할 ‘250만 호 주택 공급 로드맵’이라는 대표 정책을 예고했다.
개발과 공급, 그리고 수요 통제 및 보호 등의 전통적인 정책은 정책당국에서 시장 상황에 맞게 입안과 실행을 할 것이지만, 작금의 시대 변화는 이것을 넘어서는 또 다른 주거 모델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정책 입안자들로부터 특히 주목받고 있는 부분이 바로 ‘주거서비스’다. 팬데믹으로 인해 삶의 반경이 좁아지며, 여행, 운동, 문화 관람, 여가 등 다양한 일상의 요소를 향유하는 범위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 결과 영화관 등 지역 내 인프라가 맡고 있던 역할이 주민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부대복리시설, 그리고 단지에서 제공하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으로 옮겨 가며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고급 민간 분양 아파트의 경우 헬스클럽, 골프연습장, 도서관, 카페 등 단지 내 부대복리시설을 활용하여 다양한 주거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입주민은 이런 시설과 서비스 이용에 대해 사용자부담원칙을 두고 비용을 지불하고 있으며 고급 단지일수록 조식, 청소 서비스는 기본으로 제공하는 등 더욱 차별적인 서비스를 앞다퉈 제공하고 있다.
반대로 공공임대의 경우 주거복지서비스라는 개념이 있다. 주거정책지원계층(청년, 신혼부부, 고령층 등)과 소득이 낮은 층에 입주 우선권을 주고, 입주 이후에도 돌봄서비스, 일자리 제공, 가정폭력 상담 등의 주거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여기에 포함된다.
문제는 주거서비스가 양극화되어 정작 중위계층이 누릴 만한 이렇다 할 주거서비스는 없다는 것이다. 2015년부터 중산층을 위한 주거정책 사업으로 추진 중인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의 경우 주거지원서비스 의무화를 내세우고 실행하고 있으나 그 효과와 확산은 아직 미미한 상황이다.
세대수와 무관하게 대부분 단지에서 주거지원서비스 코디네이터를 1명 정도 계획하는가 하면, 임대관리 업무와 병행하여 운영하는 계획을 제시하는 등 주거지원서비스를 실질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제반 조건에는 무관심한 탓이다. 그러니 시설은 잘 갖추어 있으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유휴화 되어 버리기 일쑤다.
‘집값은 입지로 결정된다’는 명제는 마치 난공불락의 공식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입지’의 중요성과 수요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는 지금, 도심의 인프라를 대체할 수 있을 만한 커뮤니티 인프라의 변화가 빠르게 요구되고 있다.
지난 5월 3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 발표에서 단순히 많은 물량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주거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고품질 주택 공급과 종합적인 주거 품질 향상을 강조했다.
새 정부 역시 주거서비스 차원의 강화를 고려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시대 변화 속에 공공주택 정책이 부흥하고 소비자들의 주거 선택 기준과 인식이 바뀌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현재의 고착화된 부동산 양극화를 해소할 적기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공급을 통한 주거 안정을 기조로 정책을 펼치려고 하는 현 정부가 새로 조성되는 주거 단지를 중심으로, 일자리, 돌봄, 복지서비스를 기획하고 공급하는 ‘커뮤니티 관리’ 개념을 도입한다면, ‘주택 공급’ 그 이상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제언해 본다.
김종빈 (소셜디벨로퍼그룹 더함 커뮤니티 총괄 이사)
※ 위 글은 오마이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넥스트 브릿지> 32화에 기고된 글입니다. ☞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