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넥스트 브릿지' 시리즈
“이러다가는 다 죽어. 다 죽는단 말이야.”
대한민국 총인구 감소와 지방소멸 현상이 급속도로 전개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보며 떠올린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대사이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사망률이 출생률보다 높은 ‘인구 데드크로스’가 일어났다. 즉, 인구의 역성장, 총인구 감소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같은 해 기준, 전국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거주하는 인구가 50.1%로 나타났다. 이는 수도권 쏠림 현상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보여 주고 있다. 신규 소멸위험 지역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2022년 3월 기준 전국 시군구 2곳 중 1곳이 소멸위험 지역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간 정부가 손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정부는 지방소멸을 막고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국가균형발전 특별법'(2004년 제정), ‘지방분권 특별법'(2004년 제정),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2022년 제정. 2023년 시행 예정) 등 새로운 법을 제정하고, 지난 20년 동안 출생률 제고를 위해 정부예산 200조 원을 투입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이 매년 1조 원 규모로 배분될 예정이라 한다. 말 그대로 총력을 다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방소멸 추세는 백약이 무효할 만큼 악화되고 있다. 인구감소, 지방소멸, 저출생고령화의 복합적 악재를 극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2020년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전 세계 기준 최하위인 198위이다. 더욱이, 최근 몇 년간 코로나19로 결혼이 미뤄지거나 취소되는 일이 증가하면서, 출생률 저하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토의 88.2%에 해당하는 지방은 사람과 일자리가 없어서 문제이고, 11.8%에 해당하는 수도권은 쏠림 현상으로 ‘집값 폭등’, ‘경쟁 심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지방소멸은 수도권이든 지역이든 모두와 관계가 얽힌 문제이다.
본격적인 위험 시그널을 보인 2020년으로부터 20년이 지난 2040년이 되면, 대한민국은 연령별 인구 분포가 역삼각형을 그리는 ‘인구절벽’에 다다르게 된다(15~64세의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만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경우 이런 모양의 분포가 나타난다).
‘인구절벽’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이 절벽 앞에 서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를 해소할 방법은 없는가?
지방에서 나고 자란 청년 중 다수는 일자리가 많은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역으로 기업들은 유수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수도권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거나 더 모여든다. 이는 지방소멸이 빠른 속도로 가중되는 사회적 요인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방균형발전 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지방 분산, 귀농귀촌 정책, 메가시티 조성 등의 물리적 분산과 이동 중심의 정책이 주류였다.
지방균형발전 정책은 중장기 관점에서의 미션과 전략을 세우고 중요도에 따라 단계와 지역별 세부 계획 실행을 지속해야 효과를 낼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이래 현재까지의 모든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아끼고 있지 않지만 수도권 쏠림과 지역소멸을 막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총인구 감소를 막을 국가 정책도 필요하지만, 방인구가 유출되는 문제를 막을 방도도 함께 찾아야 한다. 최근에는 지방의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여 거점을 만들고,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생활·산업 인프라를 집적시키는 메가시티 조성 논의가 활발하다.
인프라가 집적되고 인구가 유입되면 각종 생활 비용과 사회적 비용이 절감될 수 있다는 점이 메가시티의 큰 장점이다. 부산·울산·경남, 광주·전남, 대구·경북, 대전·세종·충청의 4개 지역 광역시 권역이 메가시티 조성의 중심에 있다.
지방을 살리기 위해 초광역 지역을 구축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급속하게 소멸이 진행되는 것을 막기에는 너무 거대한 담론이고 정책이다.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거대 정책이 완성되기까지 기다리기에는 지방의 현실은 하루가 급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보다 빠른 기간 내에 실질적 효과를 가져올 방책이 필요하다.
메가시티 조성에 병행하여, 일정 수 이상의 인구수를 보유한 도시를 정하고, 해당 지역에 적합한 정주 여건을 보다 입체적이고 통합적인 방식으로 제공해야 한다. 적정 수준 이상의 일자리,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놀거리, 그리고 쉼을 제공하는 잠자리 중 어느 하나가 충족되면 나머지는 따라오는 시대는 지났다. 이 세 요소가 통합적으로 제공되었을 때 생산가능인구 인구가 유입되고, 도시는 비로소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특히나 문화 여가와 쉼의 중요성이 커진 시대이기에, 예전처럼 산업단지와 대기업을 유치하는 방식만으로는 정주 인구를 잡을 수 없다. 주말이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인근 지역으로 이동하는 통에 텅 비어 버린 산단 도시, 문화산업 클러스터로 조성되었지만 인근에 사는 이가 없어 삭막한 출판 도시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된다. 일자리와 주거, 문화시설의 조성은 반드시 연계 고려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입체적이고 통합적인 정주 여건을 어느 곳에 제공할 것인가? 적합한 도시의 기준은 바라보는 관점과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교통·교육·문화여가 시설 등의 중요 생활 인프라가 입지해 있는, 인구 30만 명 이상의 중도시형 지역이라면 가능하다고 본다.
인구가 계속 감소되는 상황에서 노후하고 쇠퇴한 모든 지역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은, 외려 공공투자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우리보다 앞서 인구감소와 지역쇠퇴를 겪은 해외의 사례를 살펴보면, 과잉 개발을 통한 도시재생보다는 저이용되는 공간들을 콤팩트하게 축소시켜 녹지를 늘리고 도시의 효율을 높이는 추세다(일명 ‘콤팩트 시티’).
2022년 현재 기준, 전국 226개 지자체 중 수도권과 메가시티 조성 지역을 제외하고 30만 명 이상의 도시에는 천안, 아산, 청주, 원주, 구미, 포항, 양산, 김해, 진주, 전주, 제주 등 10여 개가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도시민의 생활 반경이 줄어들고, 동네 생활권 기반의 ‘하이퍼로컬 비즈니스’가 새롭게 부상하는 지금, 지방도시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적기일 수 있다. 청년세대로 대표되는 생산가능인구가 수도권 대도심으로 더 유출되지 않도록, 기업 유치만큼이나 적정한 주거와 다양한 기회 요인을 살펴야 한다.
고금을 막론하고 청년들은 앞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 다양한 즐길 거리를 찾아 이동하기 때문이다. 통합적인 정주 여건이 곧 지방도시의 경쟁력을 만든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지금 당장 대안이 필요하다. 정부의 지방균형발전정책은 지금보다 더 강력하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다만, 공공의 노력뿐만 아니라 민간, 특히 지역 청년들의 활동이 결합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당사자들의 ‘니즈’를 도시 계획에 직접 반영할 수 있고, 청년들을 참여시키는 사업 일자리가 늘어나는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공간을 ‘삶을 담는 그릇’이라 말한다. 우리 사회에 너무 크고 획일적인 그릇만 있어서도, 너무 작아 활동에 제약이 있는 그릇만 있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다양한 욕망과 삶의 모양을 담아낼 수 있는, 일과 주거와 놀이가 통합적으로 담길 수 있는 적정 규모의 지방도시 지원정책이 갈급한 이유다.
대한민국 지방이 말한다. “이러다가는 다 죽어. 다 죽는단 말이야.” 2040년까지 20년도 남질 않았다.
김종빈 (소셜디벨로퍼그룹 더함 커뮤니티 총괄 이사)
※ 위 글은 오마이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넥스트 브릿지> 32화에 기고된 글입니다. ☞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