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향하는 아침

로마의 돌길에서 포지타노의 계단까지

by 시니어더크


10월 8일 화요일 아침, 우리는 로마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는 아직 완전히 떠오르지 않았지만, 도시는 이미 밤을 벗고 있었다. 새벽빛이 건물의 윤곽을 또렷하게 드러내고, 공기는 조용히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이 아침이 평소와 다른 이유는 분명했다. 오늘 우리는 머무는 여행이 아니라, 건너가는 여행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돌길을 뒤로하고, 이탈리아의 남쪽을 향해 내려가는 하루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밤사이 도시는 큰 변고 없이 고요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고요는 멈춤이 아니라 곧 움직일 준비를 마친 상태처럼 느껴졌다. 로마의 아침은 대개 담담하게 하루를 여는 편이지만, 오늘은 어딘지 모르게 결이 달랐다.


오늘은 이탈리아 남부를 향해 떠나는 날이다. 공기에는 아직 새벽의 서늘함이 남아 있었고, 거리에는 이른 시간 특유의 여백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백 속에는 가벼운 설렘이 섞여 있었다. 이 아침은 담담하다기보다 산뜻했다. 하루가 천천히 열리는 것이 아니라, 밝은 쪽으로 자연스럽게 기울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날 저녁까지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로마 시내에 머물며 바티칸 시국을 다시 찾을 것인가, 아니면 과감히 로마를 벗어나 이탈리아 남부로 내려갈 것인가.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질문 앞에 자주 멈춰 서게 된다. 일정은 한정되어 있고, 선택하지 않은 쪽에는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여행의 선택에는 늘, 아직 오지 않은 후회의 그림자가 함께 따라온다.


그러나 이번에는 망설임이 오래가지 않았다. 아들이 산뜻하게 결정을 내렸다. 로마를 여행한 사람들 대부분이 남부 투어까지 해봐야 비로소 이탈리아를 다녀왔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냥 한 번 더 둘러보는 선택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그의 말은 분명했다. 그 어조에는 이미 여러 이야기들을 건너온 사람처럼 확신이 담겨 있었다.


나와 딸은 별다른 이견 없이 그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누군가 단단하게 중심을 잡아주면, 여행의 방향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남부는 우리끼리 서성거리듯 움직이기보다는, 한국인 가이드를 섭외해 다른 여행객들과 한 팀을 이루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설명이 있는 이동, 함께 나누는 시선이 이 지역의 풍경을 더 깊게 만들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여행은, 로마에 머무는 대신 남쪽으로 내려가는 쪽으로 조용히 방향을 틀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말 그대로 파랗게 열려 있었다. 여행 중 이런 날씨를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작은 행운처럼 느껴진다. 그날의 하늘은 하루의 방향을 미리 알려주는 듯했다.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오전 6시 30분에 숙소를 나섰다. 목적지는 테르미니역이다. 걸어서 대략 30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지하철을 타면 두 정거장이면 충분했지만, 우리는 걷기로 했다. 서두를 이유가 없는 아침이었고, 무엇보다 로마의 아침을 몸으로 건너보고 싶었다. 빠르게 지나치기에는 이 시간의 공기와 빛이 아까웠다.


로마 시내의 바닥은 여전히 삼피에트리니라 불리는 돌길로 깔려 있었다. 울퉁불퉁한 돌 위를 걸을 때마다 발바닥으로 잔잔한 진동이 전해졌고, 그 감촉은 이 도시가 오랫동안 품어온 시간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도로 옆에는 로마에서만 볼 수 있을 법한, 유적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건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늘어서 있었다. 오래된 벽과 창들은 일상의 배경이 된 채 조용히 아침을 맞고 있었다. 그 사이로 어느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이른 공기를 가르며 거룩하게 번져갔다.


아직 관광객들의 소음이 깨어나기 전의 시간이었다. 그 짧은 틈에서 도시는 장식과 연출을 내려놓고, 마치 오래된 본래의 얼굴을 잠시 드러내고 있는 듯 보였다.


우리가 향하던 테르미니역은 로마의 심장부에 놓인, 거대한 숨결 같은 곳이다. 이탈리아 전역은 물론 유럽의 수많은 시간들이 이곳으로 흘러들었다가 다시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진다.


'테르미니'라는 이름에는 애초부터 머무름과 이동이 함께 스며 있다. 그래서인지 이 역은 단순한 교통시설을 넘어, 로마라는 도시가 지닌 이중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소처럼 느껴졌다. 유적과 현대, 체류와 출발, 일상과 여행이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겹쳐지고 교차한다.


이곳에서는 도착과 출발이 늘 동시에 이루어진다. 누군가는 로마에 첫발을 내딛고, 또 누군가는 로마를 떠날 준비를 한다. 그 사이에서 시간은 멈추지 않고, 다만 잠시 서로의 궤적을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규모는 단연 압도적이다. 이탈리아 최대의 철도 허브답게 고속철과 지역 열차, 국제선까지 쉼 없이 드나든다. 새벽의 플랫폼에는 사람보다 커피 향이 먼저 도착하고, 북적이는 한낮의 대합실에는 수십 개의 언어가 동시에 울린다. 저녁 무렵이 되면 캐리어 바퀴 소리 위로 하루를 다 써버린 사람들의 피로가 겹겹이 쌓인다.


건축 또한 상징적이다. 전면을 이루는 유리 파사드는 빛을 끌어들여 도시를 역 안으로 초대하고, 내부의 유려한 곡선 구조는 1950년대 이탈리아 모더니즘이 지녔던 자신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고대의 흔적 위에 세워진 현대의 몸체. 로마가 늘 그래왔듯, 시간은 이곳에서 부서지지 않고 층층이 덧씌워졌다.


그래서 테르미니역은 아름답다기보다 정직한 장소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로마에 도착하고, 누군가는 이곳에서 로마를 떠난다. 그 사이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잠시 겹쳤다가, 각자의 방향으로 조용히 흩어진다.


테르미니역에 도착하니 젊은 한국인 남자 가이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는 사이, 함께 동행할 여행객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낯선 얼굴들이었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같은 일정과 같은 길을 공유할 우리나라 사람들이었다. 인원은 스무 명 남짓, 역 안의 분주함 속에서도 금세 하나의 작은 무리가 형성되었다.


잠시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우리는 기차 안에서 먹을 빵과 음료를 챙겼다. 서둘러 준비한 간단한 식사였지만, 이런 사소한 준비마저도 여행에서는 작은 설렘이 된다. 이제 움직일 준비는 끝났고, 하루의 여정은 본격적으로 시작될 참이었다.


열차는 트렌이탈리아였고, 좌석은 개인별로 미리 예약되어 있었다. 목적지는 살레르노역. 출발 시간은 오전 7시 25분, 도착 예정 시간은 9시였다. 시간표를 확인하는 순간, 이제 로마를 벗어난다는 사실이 비로소 실감 났다.



우리는 셋이 마주 보고 앉았고, 앞에는 작지 않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원래는 네 자리였지만 한 자리가 비어 있어 공간에는 자연스러운 여백이 생겼다. 그 빈자리가 주는 느슨함 덕분에 좌석은 생각보다 훨씬 편안하게 느껴졌다.


역에서 사 온 빵과 음료로 간단한 아침을 먹으며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풍경은 빠르게 뒤로 밀려났지만 마음까지 서둘러 따라가지는 않았다. 창밖으로는 푸른 초원을 떠올리게 하는 들판이 이어졌고, 그 사이사이로 작은 나무들이 군데군데 모여 서 있었다. 반듯하게 나뉜 밭의 선들은 평온했고, 시선은 자연스레 멀리로 흘러갔다.


로마의 돌과 유적이 하나둘 사라진 자리에는, 이탈리아의 또 다른 얼굴이 조용히 펼쳐지고 있었다. 이제 여행은 도시의 중심에서 벗어나, 점점 다른 결의 풍경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기차가 살레르노역에 도착하자 공기의 결부터 달라졌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로마의 아침이 돌과 유리의 차가운 온도를 품고 있었다면, 이곳의 공기는 물과 햇살의 기운을 먼저 건네왔다.


역을 나서는 순간, 남부라는 말은 더 이상 지리적 개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바로 몸으로 전해지는 감각이었다. 짭조름한 바람이 스치고, 빛은 한층 밝아졌으며, 시간의 흐름마저 느슨해진 듯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공기와 리듬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우리는 이제 로마가 아닌, 전혀 다른 결의 이탈리아에 들어와 있었다.


우리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곧바로 아말피 해변으로 향했다. 육로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이미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가이드는 이 해안의 진짜 얼굴은 반드시 배를 타고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은 설명이라기보다, 하나의 예고처럼 들렸다.


선착장에 도착해 배에 오르자 물결이 선체를 가볍게 두드렸고, 곧이어 낮게 울리는 엔진 소리가 출발을 알렸다. 이제 풍경은 멀리서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직접 건너가야 할 공간이 되었다.


배가 항구를 벗어나자 해안선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왔다. 바다 위로 곧게 솟아오른 절벽 위에는 집들이 붙어 있듯 들어서 있었는데,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흰 벽과 파스텔빛 지붕들은 햇살을 받아 부드럽게 반짝였고, 층층이 이어진 계단과 골목은 위와 아래를 잇는 숨은 문장처럼 조용히 이어져 있었다. 바다는 생각보다 더 짙은 푸른색이었다. 가까이에서는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다가, 배가 멀어질수록 남색으로 깊어지며 또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아말피 해변을 지나며 이 풍경은 '본다'기보다 '건너간다'는 말에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바라보는 쪽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배에 실려 풍경 속을 통과하고 있었다.


배는 바다 위를 가르며 나아갔고, 우리는 그 흐름에 잠시 몸을 맡긴 존재였다. 파도가 햇빛을 쪼개어 반사할 때마다 바다는 전혀 다른 표정을 드러냈고, 절벽에서 드리운 그림자는 물 위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포지타노로 향하는 길은 짧게 느껴졌지만, 그 안에는 충분한 밀도가 담겨 있었다. 살레르노를 떠난 배는 아말피 해안을 따라 한참을 나아갔고, 그 사이 바다는 여러 번 표정을 바꾸었다. 배 위에 머무는 동안, 이곳에서는 시간의 단위마저 달라지는 듯했다. 시계가 가리키는 길이와는 다른 리듬으로, 항해의 시간이 천천히 몸에 스며들었다.


한동안 이어진 항해는 하나의 장면처럼 마음에 남았다. 파도 위로 흩어지는 빛,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집들의 색,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선이 끊임없이 이동하며 시선을 이끌었다. 그 장면은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더 또렷해졌고, 쉽게 흩어지지 않는 여운으로 남았다.



배가 항구에 가까워질수록 층층이 쌓인 마을의 윤곽이 점점 선명해졌다. 위로는 하늘이 넓게 열려 있고, 아래로는 바다가 단단히 받치고 있었으며, 그 사이에 사람들의 삶이 촘촘히 끼어 있었다. 집과 집 사이를 잇는 길과 계단, 햇빛에 바랜 벽의 색감은 관광지의 표정보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생활의 결에 가까워 보였다. 포지타노는 도착하는 순간 감탄을 요구하는 장소라기보다, 바다를 건너오는 시간 속에서 이미 마음에 자리 잡는 마을이었다.


이제 우리는 포지타노로 들어간다. 육지에서 바라보던 풍경이 아니라, 바다를 건너 도착하는 풍경 속으로 스며들 듯 다가간다. 배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 항구가 가까워질수록, 마을은 하나의 장면이 아니라 우리가 곧 발을 디딜 생활의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곳은 멀리서 감탄만 하고 지나칠 풍경이 아니라, 계단을 오르고 길을 걷고 숨을 고르며 마주해야 할 자리처럼 느껴졌다. 바다는 뒤에서 조용히 밀어주고, 하늘은 위에서 넉넉히 열려 있었다. 그 사이에서 포지타노는 이미 우리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듯 보였다.



이탈리아 남부 여행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육로가 아닌 물길을 따라 건너와서, 시간과 풍경을 함께 통과한 끝에. 이곳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 자체가 이미 여행의 한 장면이 되어, 포지타노라는 이름보다 먼저 마음에 남아 있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