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위로 쌓인 바다의 마을에서 보낸 1시간 반
드디어 포지타노 마을 선착장에 닿았다. 배가 부두에 몸을 대자마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환호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서로 다른 언어가 뒤섞인 소리 속에서 사람들은 서둘러 카메라를 꺼내 들고, 저마다 가장 먼저 이 순간을 붙잡으려 분주히 움직였다. 고개를 들자 하늘은 물감을 아낌없이 풀어놓은 듯 짙고 깊은 파란색이었고, 바다 위로 내려앉은 가을 햇살은 생각보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긴 이동 끝에 마주한 남부 이탈리아의 첫 장면은, 기대를 넘어서는 밝음과 선명함으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마치 이곳의 하루가, 아니 이 마을 자체가 환영 인사라도 건네는 듯한 순간이었다.
가이드 청년은 우리에게 자유시간이 1시간 반이라고 말했다. 그 시간 안에 마을을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점심까지 해결해야 했다. 숫자로 들었을 때는 그리 짧지 않은 것 같았지만, 막상 포지타노에 도착해 보니 시간이 빠듯하게 느껴졌다. 한국을 떠나 먼 길을 와서 처음 밟은 포지타노의 땅인데, 이 마을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 1시간 반뿐이라는 사실이 조금 아쉽게 다가왔다.
자유여행이었다면 하루쯤은 아무 계획 없이 골목을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남부 이탈리아는 이동이 쉽지 않은 편이라, 오늘 하루만큼은 가이드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주어진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되, 놓치는 장면이 없도록 발걸음을 조금 재촉하며 포지타노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선착장에 올라서자마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었다. 아들은 동영상을 찍느라 연신 주변을 훑었고, 딸과 나는 사진을 찍느라 셔터를 계속 눌렀다. 어디를 향해 렌즈를 들이대도 화면이 되는 곳이었다.
포지타노는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마을이 아니었다. 바다에서 시작된 집들이 언덕을 따라 차곡차곡 올라가 있고, 그 사이를 계단과 골목이 이어 주고 있었다. 걷다 보면 길이 어느새 계단이 되고, 계단 끝에서는 자연스럽게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위로 올라갈수록 시야는 점점 넓어졌고, 다시 내려올수록 풍경은 한층 가까워졌다. 포지타노에서는 걷는 것 자체가 곧 전망을 만나는 일이었다.
그 풍경 속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언덕 위에 자리한 황금빛 돔이었다. 햇살을 받아 부드럽게 빛나던 그 돔은 멀리서도 단번에 시선을 끌었다. 마을 위쪽에 자리한 '산타 마리아 아순타 성당'은 바다 쪽에서도 잘 보여, 포지타노에 도착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게 만든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시선을 옮길 때마다, 그 돔은 늘 같은 자리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굳이 안내판을 찾지 않아도, 그 성당은 조용히 말해 주는 듯했다.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바로 포지타노라고.
포지타노는 원래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평지가 거의 없는 절벽 지형 탓에 집들은 옆으로 넓어지기보다 위로, 또 위로 쌓이듯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마을의 풍경은 바다에서 올려다볼 때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다. 층층이 이어진 집들이 언덕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그 사이로 계단과 골목이 길을 대신한다.
지금의 포지타노는 세계적인 휴양지가 되어 상점과 호텔, 레스토랑이 마을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하지만 골목 안쪽으로 한 발만 들어가면 분위기는 금세 달라진다. 점심 준비로 분주한 작은 식당, 계단에 잠시 앉아 숨을 고르는 여행자, 창가에 널어 둔 빨래와 소박한 화분들까지. 포지타노는 화려한 사진 속 모습만으로 완성된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는 마을이었다.
우리는 선착장에서 한동안 카메라 셔터를 쉬지 않고 눌렀다.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흘러 있었고, 그제야 천천히 마을을 구경하며 골목을 따라 위로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길을 따라 형형색색의 옷들이 걸린 상점과 작은 카페들이 이어졌고, 가게 안에서는 사람들이 커피 향을 피워 올리며 에스프레소를 즐기고 있었다.
고개를 들면 하늘에는 파란 도화지 위에 그려 놓은 듯 하얀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 있었다. 태양이 쏟아내는 밝은 빛 아래, 붉은색 골목길에는 때늦은 분홍 꽃이 핀 나무가 잠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걷는 내내 시선은 바쁘게 움직였고, 포지타노의 골목은 한순간도 같은 표정을 보여 주지 않았다.
건물 담벼락에는 거리 화가들의 그림이 걸려 있었고, 그 옆에는 기념 배지와 목걸이 같은 소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일부러 꾸며 놓은 전시처럼 보이기보다는, 골목 풍경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포지타노다운 장면이었다.
이 마을은 특히 레몬으로 유명하다. 마을 주변은 레몬 밭으로 둘러싸여 있고, 골목을 걷다 보면 레몬 캔디와 레몬 술을 파는 가게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우리도 가볍게 시식으로 캔디 하나를 맛보았다. 입안 가득 퍼지는 새콤한 맛이 예상보다 또렷했다. 결국 작은 봉지 하나를 사서 골목을 걷는 동안 하나씩 나눠 먹었다. 그 맛 덕분에 포지타노의 풍경은 눈으로 본 색뿐 아니라, 입안에 남은 감각으로도 오래 기억될 것 같았다.
골목을 한참 올라가자 넓은 전망대가 나타났다. 건물의 옥상처럼 시야가 훤히 트인 공간이었는데, 그곳에 서자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푸른 바다와 하늘이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고, 그 사이로 지나간 배들이 남긴 흔적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순간 숨이 멎을 만큼 시원한 풍경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사진을 찍기보다는 눈에 담고 싶은 순간이었다. 충분히 마음속에 새긴 뒤에야, 다시 올라왔던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그런 전망대였다.
전망대를 내려온 뒤에는 아들과 딸이 미리 메뉴를 살펴보고 예약해 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바닷가 1층에 자리한, 이 일대에서 가장 넓은 식당이었다. 입구 한쪽에서는 수제 젤라토와 피자를 만들고 있었고, 갓 구운 반죽 냄새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끌었다. 맞은편으로는 수많은 야외 테이블이 바다를 향해 놓여 있었다.
우리는 비교적 바깥쪽 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바다가 바로 눈앞에 펼쳐졌고, 테이블 너머로는 파도가 천천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포지타노에서의 점심을 시작하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였다.
튀김류와 피자, 조개 요리와 볶음밥까지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바다를 바로 앞에 두고 먹는 식사라 그런지, 해산물은 마치 막 바다에서 올라온 것처럼 신선하게 느껴졌다. 여기에 새콤한 레몬 칵테일을 곁들이니 짧은 점심이었지만 생각보다 든든했다.
길지 않은 식사였지만 포지타노에서의 점심으로는 충분했다. 남부 이탈리아 바다의 맛을 한 번에 담아낸 듯한,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가이드가 모이라고 한 장소로 다시 골목길을 올라갔다. 포지타노의 길은 대부분 계단이거나 완만한 경사로 이어져 있다. 지도에서는 가까워 보여도 막상 걸어보면 숨이 차는 이유다.
그래도 시간에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으며, 식사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다시 눈에 담았다. 집집마다 달린 작은 발코니와 노란 레몬 장식들이 골목을 따라 이어지며, 포지타노다운 분위기를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게 해 주었다.
모이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가이드와 몇 사람만 먼저 와 있었다.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하나둘씩 숨을 고르며 골목을 따라 올라왔다. 좁은 길과 계단이 많은 마을이다 보니, 다들 조금씩 늦을 수밖에 없어 보였다.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젤라토를 하나씩 사 먹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포지타노의 맛을 천천히 붙잡아 두며, 짧았던 이 마을과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제 버스를 타고 다음 도시로 이동할 차례였다. 포지타노에서는 대형버스가 마을 안까지 들어올 수 없다. 길이 좁고 굽이쳐 있어, 마을에서 운영하는 작은 버스를 먼저 타고 밖으로 나간 뒤에야 대형버스로 갈아탈 수 있다. 조금 번거롭긴 했지만, 이곳에서는 흔한 이동 방식이라고 했다. 마을의 구조와 지형이 그대로 여행의 방식이 되는 셈이었다.
작은 버스를 타고 포지타노를 천천히 벗어나며, 바다와 레몬 향이 섞인 점심의 기억도 함께 데리고 나왔다.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포지타노의 전부를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마을이 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잠시 멈춰 올려다본 하늘과 바다, 언덕을 따라 이어진 집들의 색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머무는 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그 장면들이 더 선명하게 마음에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해안도로 위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다시 한번 숨을 멎게 했다. 바다를 곁에 두고 이어지는 길을 따라, 우리는 '쏘렌토'와 '폼페이'를 향해 조용히 달리고 있었다. 포지타노는 짧은 만남만으로도 다시 돌아오고 싶게 만드는 마을로, 어느새 기억 속에 차분히 자리를 잡았다. 언젠가 이곳을 다시 찾게 된다면, 그때는 서두르지 않고 계단 하나하나를 오래 밟으며 천천히 걸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