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발의 기억

체온이 머물던 자리

by 시니어더크


"아무도 발을 안 주물러줘, 차가운데."


그 말은 오래된 겨울처럼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다. 세월이 흐르면 희미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어떤 문장은 시간이 갈수록 더 또렷해진다. 그날의 목소리는 여전히 생생하고, 그 순간의 공기는 아직도 차갑다.


중환자실은 늘 같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곳의 체감은 계절과 상관없이 겨울이었다. 기계음이 규칙적으로 울리고, 소독약 냄새가 엷게 번져 있었다. 밝은 형광등 아래 모든 것은 지나치게 선명했다. 보호자는 상주할 수 없었고, 면회는 하루 한 번, 짧은 시간만 허락되었다. 코로나가 채 가시지 않았던 시기라 병실 문 하나는 세상과의 경계선처럼 느껴졌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문이 열렸다. 나는 그 몇 분을 위해 하루를 버텼다. 침상 앞에 서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손이 허공에서 맴돌았다. 얼굴을 봐야 할지, 손을 잡아야 할지, 말부터 건네야 할지. 준비해 간 말들은 입안에서 흩어졌고, 시간은 늘 모자랐다.


그날은 유난히 발이 눈에 들어왔다. 이불 아래로 드러난 발은 창백했다. 살빛이라기보다 빛을 잃은 종이처럼 희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수없이 남은 주사 자국이 겹겹이 찍혀 있었다. 시퍼렇게 멍이 들고, 어떤 곳은 붉게 부어 있었다. 온통 상처 투성이였다. 그 작은 발이 그동안 견뎌 낸 시간을 그대로 증언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그 발을 감싸 쥐었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싸늘한 온도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때 들려온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무도 발을 안 주물러줘, 차가운데."


그 한마디에는 투정도, 원망도 없었다. 그저 사실을 전하듯 담담했다. 그래서 더 아팠다. 사람은 가장 약해졌을 때 가장 단순한 것을 원한다. 거창한 말도, 대단한 약도 아닌, 누군가의 손길. 그 사실을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나는 천천히 발을 주물렀다. 멍이 든 자리를 피해가며, 붉게 부어 오른 곳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마치 유리 조각을 다루듯 다독였다. 손바닥의 온기를 모아 조금이라도 전해 주고 싶었다. 발가락 하나하나를 감싸 쥐며, 이 작은 부분까지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그러나 면회 종료를 알리는 목소리는 언제나 잔인할 만큼 정확했다. 나는 억지로 손을 놓고 일어섰다. 중환자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그날따라 유난히 크게 울렸다. 복도를 걸어 나오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눌러야 했다. 조금만 더, 단 몇 분만 더 붙들고 있을 수 있었다면 하는 후회가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얼굴은 텅 빈 사람처럼 보였다. 차가운 발을 충분히 따뜻하게 해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마음을 짓눌렀다. 그 상처투성이의 발이 자꾸 떠올랐다. 내가 대신 아파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그 상처를 내 몸으로 옮길 수 있다면 좋겠다고, 불가능한 생각을 반복했다.


지금도 겨울밤 이불 속에서 발끝이 시릴 때면 그 장면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그 말은 단순히 체온의 문제가 아니었다. 혼자 견디는 시간의 차가움, 돌봐 줄 이 없는 밤의 냉기, 사람의 부재가 만들어 내는 고요한 공백을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마지막까지 체온을 그리워하는 존재다. 누군가의 손이 닿는다는 사실, 그 작은 접촉이 삶을 붙들어 준다. 그때의 나는 그것을 충분히 알지 못했다. 더 자주 손을 잡아 줄 수 있었는데, 더 오래 곁에 서 있을 수 있었는데, 일상의 사소한 일들에 묻혀 그 소중함을 다 헤아리지 못했다. 이제는 안다. 그래서 더 아프다.


하지만 그 기억은 나를 무너뜨리기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를 붙들어 준다. 누군가의 손을 더 오래 잡게 하고, 작은 신호를 가볍게 넘기지 않게 한다. “차갑다”는 말 속에 숨은 외로움과 두려움을 떠올리게 한다.


차가운 발의 기억은 내 삶에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사랑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상처 난 발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는 두 손이라는 것. 멍이 든 자리와 붉게 부은 상처를 피하며, 온기를 건네는 그 느린 동작이라는 것.


아마도 그날의 발은 내게 남겨진 질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곁에 있는 이의 차가움을 알아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차가움을 덜어 줄 만큼 따뜻한가.


그 물음 앞에서 나는 오늘도 잠시 손을 모은다. 상처투성이의 발을 기억하며. 그리고 그 겨울을, 조용히 안고 선다.